Ⅰ. 미술사,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 문화사, 미술사에 대한 우리 지식의 한계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미술사개론 수강생들에게 지난 10년 넘게 해온 이야기가 있다. 지구의 나이를 대략 45억 년으로 보고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을 20만 년 전으로 본다. 인류미술의 시작인 동굴벽화나 조형물 같은 문화유산은 기껏 3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문자가 시작된 역사시대는 과거 5, 6천 년에 불과하다. 45억 년을 거리로 산정하여 45km 마라톤으로 가정하면, 문화유산은 맨 끝자락 30cm, 역사시기는 마지막 5cm정도에 불과하다.

   이 5cm에 해당되는 기간에도 기록된 내용보다는 빠진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존된 사료도 객관적 시각에서 본 사실의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주관적•편파적 시각, 적자생존에서 승자의 시각, 주변보다는 주류층의 견해를 반영한다. 그러니 역사를 공부하자면 이 5cm의 공간에서 분실과 오류가 수없이 더 많은 퍼즐조각들을 맞추고자 북적대면서, 상실된 부분들을 해석과 추정으로 채워나가는 퍼즐게임을 하게 된다. 100퍼센트 정확한 재구성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무지의 영역이 거대한 우주처럼 확대되고, 나라는 존재는 우주 속의 한낱 모래알과 같아진다. 그럼에도 역사를 계속 붙드는 것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구처럼, 일순간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미술사는 발생한 사건의 재구성(reconstuction) 뿐 아니라 해석(interpretation)의 쓰기 작업이다. 역사가는 어떤 시각과 방법론에 의거해서, 역사에 무엇을 포함하고 배제할지 끊임없이 선택하고 해석하며 기술한다. 시간과 공간, 곧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개념과 평가가치의 차이로 인해 역사가는 각자가 사는 시대•문화•이념적 제한 내에서 나름의 방법대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특정 작가, 작품, 시대경향을 평가절상 혹은 평가절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술사 저술을 대할 때 누구를 위한 누구의 역사인지, 어떠한 시대적•사회적•문화적•이념적•학문적 틀을 가진 어느 느가 제시한 것인지 유의해야 한다. 아니면 서구 미술사가가 저술한 서양미술사를 읽을 때,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서구중심적 관점으로 기술한 사관과 규범(canon)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Ⅱ.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그 배경과 비판

   곰브리치(Emst Hans Josef Gombrich, 혹은 곰브릭, 1909-2001)는 학계에서 7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20권 이상의 저술을 남긴, 이른바 20세기 미술사학자 중 가장 많이, 널리 언급되고 읽혀지는 학자로 평해진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미술개념처럼, 그 역시 유구한 미술의 역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론들 중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다. 20세기의 고전이 된 저서 『서양미술사』 서두에서 그는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우리들이 미술이라 부르는 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며"(예경 2012, p.15)라면서, 시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개념을 논하며 시작한다.

   곰브리치가 '인기 높은' 미술사가가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대중들에게 예전에 접근불가능 했던 미술사를 전문용어를 최소화하고 쉽고 명확한 기술방법으로 '손쉬운' 미술사를 제시함으로써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한 데 있다. 아울러서 그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르네상스연구, 지각심리학연구, 문학•철학•문화사 등 고전과 현대 문예 이론에서부터 심리학•물리학 등 현대과학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학자로서 인정받는다. 곰브리치의 역사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생과 성장배경이 필수적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대계 부모 아래서 출생한 그는 1936년 나치의 장악을 피해 영국에 망명하고, 평생을 전체주의적 이념에 대립되는 학문적 방법론에 몰두하게 된다. 런던대학 와버그연구소(Warburg Institute)에서 연구원, 강사, 교수, 소장을 지냈고,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석좌교수를 역임하는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1972년 영국정부로부터 기사 작위, 1988년 메릿(Merit)훈장을 수여받는 등 영예를 얻었으나, 그의 최대의 업적은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사 저술 중 2권의 저자가 된 것이라고 흔히 말해진다. 그 중 하나인 『미술과 환영 Art and Illusion』(1960년)과 쌍벽을 이루는,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는 1950년 초판발행 이래 1994년 곰브리치가 최종적으로 개정한 16판까지 발행되었다. 현재까지 약 30개국 언어로 번역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 미술사개론서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대학에서 미술사개론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선사•원시시대부터 20세기 모더니즘까지 총 28장으로 나누어 미술의 변천양상을 연대기별로 서술한 이 책은 논리적•객관적 시각을 중시한 저자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갖은 비판을 야기해 왔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페미니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 등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대상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 『서양미술사』로 번역된 책의 원제는이다. 이는 곰브리치가 미술의 역사보다는 미술의 서사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원제에 충실했다면 라고 하지 않은 한, 동서양미술을 고루 다루었어야 했다. 그러나 천재작가로 일컬어지는 소위 '백인 남성 대가(white male masters)'들과 그들의 대작 혹은 걸작(masterpiece)들을 위주로 하는 서양(유럽)미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997년(예경, 2012년 9쇄) 출판된 최종 번역본의 총 685페이지 중 동양미술에 할애된 부분은, 서양미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단편적으로 언급된 경우를 제외하면 제 7장 「동방의 미술-2세기에서 13세기까지: 이슬람과 중국」에 해당하는 총 13페이지, 그것도 도판을 제외하면 서술부분은 약 4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미술사교재로서 개론서를 비판없이 사용할 경우에 '서양미술사'를 곧 '미술사'로 동일시하고, 서양미술을 미술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서구중심적(Eurocentric) 혹은 신식민주의적(neo-colonialistic)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게 될까 우려되는 것이다. 곰브리치의 저서는 개론서로서 애용될만한 여러 장점이 있지만, 자신의 시각이론에 기초하여 서양미술사의 근저에 흐르는 전통, 곧 가시세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일루져니즘(illusionism)을 주된 논지로서 미술사를 전개한 점과 1980년대에 이르러 당시 대두된 신미술사(New Art History)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의 입장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미술작품의 미학적 가치라든가 작가에 대한 고증적 자료에 의거한 평가를 계급(class)이나 성(gender) 같은 집단적 개념으로 대체하려는 새로운 방법론들을 거부했다. 가령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하 The Social History of Art』라든가, 1980년대에 대두된 수정주의 사관의 신미술사학 저술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이야기임에도 여성작가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971년 린다 너클린(Linda Nochlin)이 미술사의 전환점을 선언한 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를 통해 서양미술사에서 남성 미술사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여성작가들을 배제해 온 규범을 문제시한 이후에도 곰브리치의 고집은 여전했다. 아울러서 그의 유럽중심적 사관은 예를 들어, 제1장 <신비에 싸인 기원- 선사 및 원시 부족들: 고대 아메리카>에서 구석기시대 스페인과 프랑스 동굴벽화에서 1880년경 알래스카의 가면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15,000년 백인 유럽과 12세기~20세기 유색인 미술을 두루 "원시인"의 "원시미술"로 일컬은 데서 명백히 드러난다. 서양은 문명, 동양은 비문명 혹은 원시로 보는 오리엔탈리즘 사관이다. 이러한 사관은 이집트를 중요시하되, 이집트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 시대와 연결되는 전통"의 시작, 곧 현재 "우리(서양)" 문명의 시작인 그리스를 준비하는 토대로서 중요시한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비서구미술에 대한 평가기준은 현재 서구인의 문화예술을 위한 역할과 기여도 여부가 관건이다. 마틴 버낼(Martin Bernal)의 『블랙 아테나: 서양고전문명의 아프리카, 아시아적 뿌리』(1987-91)과 대조적이다.

 Ⅲ. 곰브리치를 위한 해명

   곰브리치는 전통주의와 보수주의 미술사의 대표 주자로서 인지되면서 최근 학계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가 미술사학자로 입문할 때는 오히려 기존 학계에 대한 도전의 주자이었다. 그는 당시 학계에 만연한 헤겔 식의 관념주의 역사철학을 토대로 하는 문화사를 비판했는데, 나치세력의 확장을 피해 영국 망명 후 독일어권 미술사학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화되었고 2차 대전 전후 전체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사관과 좌파 이론에 대항했다. "헤겔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다는 것을 고백한다."는 곰브리치의 1967년 강연이 이를 예증해 준다.

   '미술은 시대정신(Zeitgeist)의 구현이 아니라, 미술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철학, 사회, 경제, 등 틀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함께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없다'고 주장한 그는 개별 작가들, 개별 사유들, 개별 사료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 연구를 중시했다. 실증주의적이며 객관적인 문헌과 사료연구를 토대로 하는 미술사를 대변한 것이다. 역사의 전개는 설정된 특정 개념과 법칙을 추구하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진행된다고 믿었다. 아울러 그는 미술을 시대정신의 구현으로 간주하고 미술사조, 양식, 도상을 철학, 문화, 등과 함께 시대적 흐름이라는 전체적 틀(가령 변증법)로서 파악하고 해석하는 당대의 전형적 방법론들을 비판했는데, 이 비판은 르네상스를 "발견의 시대"로 파악한 J.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 문화사, H. 뵐플린의 양식론(양식의 변화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보편적 법칙), A. 리글의 조형의지(kunstwollen), E. 파노프스키의 이미지 해석 방법인 도상학을 포괄했다.

   2차 대전과 이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파시즘을 피해 영국에 망명 온 곰브리치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거슬러서 영국과 자유세계 우익보수 지식인의 입장을 미술사에서 대변하고 좌파 사상이 미술하에 유입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서구우월주의와 전통사관의 타파를 시도하고 주변화(marginalization)된 사료들을 도입하는 상황에서 미술사 방법론에 여러 대안책이 제시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기호학, 현상학,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과 젠더(gender), 등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지만, 곰브리치의 위상이 여전히 드높은 배경에는 시대적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저한 문헌과 사료중심 역사서술이 신뢰를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곰브리치 자신도 '절대적인 하나의 미술사'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조은영 교수(미술과)

<필자 소개>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연구원,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정부 인문사회진흥재단(NEH) 연구원.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역임.

-현재 원광대 미술과 교수, 지역협력홍보실장.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저술로는 공저 <East-West Interchanges in American Art>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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