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텔레비전 비평

수용자의 욕구 따라 ‘채널쏠림’ 주목
급변하는 텔레비전 환경…외국 방송 자본 국내 진입 경계

2006-04-02     원광대신문

공중파·위성·케이블 정립기에 통신 가세
케이블, 다양한 채널 불구하고 콘텐츠 빈곤

박 영 학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

 청탁 받은 ‘텔레비전 비평’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환경을 더듬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끊임 없이 변화 중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텔레비전 스크린의 기본적인 기술은 지난 50여 년 동안 여전히 제자리 걸음 상태이다.

 최근 들어 디지털 기술과 접목된 텔레비전 화면의 크기가 다변화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수상기의 배후 기술은 여전히 극장식 스크린처럼 웅대한 화상을 기대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텔레비전 시그널을 규제하는 법규들이 정비되고 통신과 융합된 방송 체계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작금의 주요 방송정책 가운데 하나인 것을 감안하면 이른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급속히 가까워질 것으로 보여진다.

 시청자들은 보다 널찍하고 생생한 스크린을, 그리고 콤팩트디스크 수준의 음향을 접하며 한껏 질 좋은 영화관의 관객이 된 기분을 집에서 향유하게 될 것이다. 곁들여 텔레비전 방송국이 데이터를 제공하는 공급원천으로 부상하는 부대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전자 산업계에 엄청난 폭풍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존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엄청난 부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늘 새롭게 사회 환경의 변화를 유도하였고 가치와 신념체계의 변화를 피하지 않았다.

 이쯤해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늘 기술의 변화가 일시에 소비자를 완벽하게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의 실용화는 산업계의 새로운 시장 창출 욕구와 밀접하다. 냉장고를 예로 들면 내구성이 강하고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처음부터 개발하지 않는다.

 A형 첫 제품으로 시장을 형성한 후 제2의 신기술로 약간 보완한 B형 제품으로 시장을 재형성하는 식이다. 텔레비전 산업은 단순히 즐길 내용을 제공하는 문화 소비 도구이기에 앞서 멀리는 한국전자 산업의 미래와 연결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공중파·위성·케이블의 정립(鼎立)기이다. 여기에 통신이 가세함으로써 관련 시장 점유를 위한 각박한 대립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있는 수용자들은 자신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채널 선택권의 확보 가능여부에 따라 ‘채널쏠림’ 현상을 야기할 것이다. 관련 사업자가 유념할 점이다.

 케이블 쪽은 특화된 전문 채널이 다양하게 나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빈곤은 여전하다. 케이블 채널사의 영세성도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하겠지만 동일 프로그램을 중탕·삼탕 방영하는 것을 넘어서서 중(週)중 계(季)중 년(年)중 콘텐츠로 재등장하는 현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공중파, 케이블, 위성이 서로 엉켜 동일 수용자를 포획하려드는 지금의 우리 텔레비전 환경은 진검(眞劍) 승부나 다름없다. 관련법이 어떻게 마련되느냐에 따라 관련업계의 명암은 극도로 엇갈릴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원리 하에서 적자생존은 피할 수 없는 법칙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올드 기술 산업을 여지없이 망가뜨려 관련종사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한 역사적 전례가 수 없이 많다.

 쉬운 예를 하나 들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출현은 결과적으로 당시 필사출판(筆寫出版) 업을 강타하여 5천여 파리 거주 필사자들이 사생결단으로 인쇄소를 불 지르며 태업을 불사한 것은 출판역사의 유명한 일화이다.

 우리는 급격히 변화하는 지구 차원의 텔레비전 환경에 방비 없이 노출되어 있다. 외국의 유수한 방송자본이 국내 진입을 타진하거나 계획 중일 것이다.

 텔레비전 관련 사업주체들끼리의 배타적 융합을 시도할 경우 질(質)의 상대적 우위에 섰던 양질의 사업체가 축출되거나 약화되는 엄청난 사회적 손실과 희생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지배, 군림, 영속 논리는 그런 경우를 허다하게 체험하며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에게만 축배를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