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절차

임남규(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감자에 난 싹처럼 당신의 폐에는 암세포가 자랐다
    나는 당신을 한참 동안 햇볕 아래 두었다
   그림자 아래 머물면 더 빨리 자랄 것 같았다

 당신이 좋아한 과자는 감자로 만든 것
 그늘에 오래 둔 과자에도 싹이 자랄까
 밀봉된 입구를 양손으로 잡았다
 가슴을 열어둔 환자처럼
 과자 봉지를 열어 두었다 

 이쯤에 폐가 있을까
 가슴에서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넣었다
 조각이 침과 섞여 암세포가 되었다
 혀로 이에 붙은 것을 떼어냈다  

 보험 서류를 서랍에서 꺼냈다
 눈을 감은 뒤부터 넣어둔 것이었다
 가입자 서명란에는 부스러기가 있었다
 수령자 서명란은 비었다
 빈 봉지에 이름을 적어 쪽지를 접었다 

 당신이 눈을 뜨면
 내 몸에 싹이 자랄 것 같았다
 다시 눈을 감으면
    내 몸이 과자가 될 것 같았다

 

시 부문 당선 소감

누군가 읽어주기를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를 계속 썼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가 쌓였습니다. 스스로를 시인보다는 독자가 어울린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무엇이 잘 쓴 시인지, 시를 잘 쓰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시는 더욱 멀어졌습니다. 그래도 시를 놓지 못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시적인 순간을 갈망했고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독자로 만족하기에는 제가 아직 젊은가 봅니다.
 제 시에서 가능성을 읽어주신 많은 교수님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막내아들이 시를 쓴다고 할 때 그저 지켜봐 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봅니다. 응원을 아끼지 않은 나의 친구들아, 고맙다. 이걸 읽고 혹시 나인가 한다면 네가 맞다. 그 밖에 저를 스쳐 간 많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시를 쓰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다들 몸도 마음도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금은 천천히 지냈으면 합니다. 

 

시 부문 심사평

시적 언어체의 탐구와 삶의 진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각과 감성에 도전하는 시대에 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성 AI가 작품을 창작하는 시대에 시의 존재 증명은 과연 여전히 유효할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런 현상과 마주한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는 한없이 공을 들여 시적 언어체를 탐사하는 문청들이 여전히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정도가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올해 김용시문학상 응모작을 읽는 과정에서도 유효하게 적용되었다.
 인간 삶의 단면에 대해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를 낸 응모작은 「욘더」 외 2편, 「인센스 스틱」 외 2편, 「처음 읽는 책」 외 2편, 「무질서」 외 2편, 「내 마음의 옥탑방」 외 2편,  「마요네즈」 외 2편, 「휴일」 외 2편, 「환란」 외 2편 등이었다. 응모자들이 기본적으로 시적 대상을 아주 성실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성실한 게 문제였다. 잘 다듬어진 언어의 매끈함이 도리어 시에서 인간의 삶을 미끄러지게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욘더」 외 2편, 「인센스 스틱」 외 2편, 「마요네즈」 외 2편은 믿음직했다. 「욘더」 외 2편은 파편화된 인간의 삶을 정교하게 재구성하려는 외과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물먹은 시집의 입술」 을 눈여겨보았는데, '시집'에는 "인생에 오점이나 낙인 하나쯤 남기려는 듯/ 푸르게 허우적대던 과거가 찍혀 있"다는 진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시상 전개의 조급함이 시의 이미지를 누적하지 못하고 휘발시키고 말았다.
 「인센스 스틱」 외 2편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에서 뛰어났다. 시에 대한 자기만의 어법이 일정한 궤도에 올라 있어서 어떤 상황에도 가뿐하게 작품을 써낼 수 있을 듯했다. "서툰 손톱질로/ 자국 남은 어린 시절과 바로 어제/ 그리고 내일의 침대도 집어넣습니다" 같은 구절은 자기 내면의 미세한 숨구멍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럼에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기성의 유행하는 흔적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성품 같은 이미지를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마요네즈」 외 2편은 수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 비하면 투박하고 거칠었다. 그러나 꾸미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시의 몸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드러낼 줄 알았다. 이 작품들은 몸이 부딪치는 삶의 현장을 정직하게 보여주었는데, 시 「마요네즈」에서 "상온에 오래 둔 마요네즈는/ 하얀 살덩이와 묽은 영혼으로 나"뉜다고 한 것이나, 「이민 절차」에서 "감자에 난 싹처럼 당신의 폐에는 암세포가 자랐다"라고 시작하는 부분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의 끝에 「이민 절차」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전체 맥락이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 시는 인간이 인간에게 호소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기도문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읽혔다. 폐암에 걸린 '당신'의 신체를 해부학적으로 짚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당신이 눈을 뜨면/ 내 몸에 싹이 자랄 것 같았다"라고 말하는 순간의 시적 순정함과, 동시에 그것을 이민 절차의 한 과정으로 덤덤하게 해치우고 있는 삶의 냉혹한 현실이 모순적으로 결합하고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더불어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응모자 모두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심사위원:  강연호(시인,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신(시인,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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