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없이 많은 경계들을 넘나들며 살고 있으며 지구화의 맥락에서 서로 다른 사회와 문화의 온갖 분야에서 상호작용과 혼합이 이루어짐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역설적이게도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맞닿은 지점, 즉 경계가 그어진 지점에서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면서도 새로운 공간과 공간 사이에 경계가 그어지고 있다. 동사의 접두어로서의 탈경계를 의미하는 트랜스(trans)는 전이하고(transfer), 초월하고(transcend), 침투하는(trespass) 것을 말한다. '트랜스'는 일방향적이지 않으며, '정착되지 않은' 이동을 가져오고, 고정된 영역의 이탈과 새로운 생성의 과정을 의미한다. 자크 데리다는 접두사 'tr-'가 한 곳을 떠나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 편안한 여행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전이 혹은 변형을 발생시키는 용기와 모험스러운 여행의 개념을 내포한다고 본다. 
 『다른 곳을 사유하자』의 부제는 "정주(定住)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사유"이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은 <자기초월>에서 지식을 "지속적인 넘어섬"으로 정의했다. 탈경계적 사유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 한다. 첫째, 문과 문턱이다. 문은 공간을 분리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시 이어주기도 한다. 문은 분리와 결합의 상호관계를 요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문의 이동성을 통해서 폐쇄에서 개방으로, 안에서 밖으로, 불연속에서 연속으로 나아가는 상반된 것들의 역동성이 드러난다. 짐멜에 의하면 이 역동성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으로 구조화 된다. 문은 열리기 위해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기 위해 만들어진 사물이다. 문은 상징적으로 환대와 자유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짐멜은 인간을 "경계 없는 경계적 존재"라고 표현했다. 
 둘째, 한계와 경계이다. 국경은 임의적인 제한선이고 인간이 그려놓은 분할선으로 역사적 정치적 변동에 종속된다. 경계선을 중심으로 경계선 안의 구성원과 밖의 구성원 철저히 분리시키는 반면 경계선 안의 구성원들끼리의 내적 결속력은 강화시킨다. 국경은 본체라는 개념과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짐멜은 소위 자연적이라는 국격(산맥, 바다, 사막 등)이 어떤 지역을 보호하고 고립시키지만 정치적 국경이라는 기하학적인 선만큼 분화된 조직에 일체감을 강하게 부여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국경은 전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간의 산물이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국경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이에 짐멜은 "국경 즉 경계석이 말뚝 사이에 그어놓은 상상의 선은 지도상에나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셋째, 이방인에 대한 여담이다. 이방인에 대해 "타성에 젖지 않은 새로운 시선을 존재와 사물에 던지는 자"라고 정의한다. 이방인은 안에 있는 동시에 밖에 있다. 짐멜은 이방인은 현재 머무르고 있는 사회와 좀 더 객관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고는 "집단의 편파성이나 특수성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객관성'이라는 특정 태도를 취하며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객관성이란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거리두기, 관심과 무관심이 특수하게 조합되어 이루어진 태도이다."임을 말한다. 전통의 제약을 덜 받아 좀 더 자유로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이방인은 선입견에 덜 치우치고 비판적 사유에 능하다. 
 지금, '근대' 사회의 사유 방식인 이분법적 가치매김, 인간과 자연의 타자화, 인간중심적 구조와 행위의 극복에는 『다른 곳을 사유하자』에서 제시한 "탈경계적 사유와 행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의 관료화되고 분업화된 구조속에서 자신들의 행위의 대상이 되는 타자들이 더 이상 인간적 존재,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자 윤리적 존재로 보지 않고 단지 사물로서의 대상으로 자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 행위능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인간 대 비인간, 정신 대 물질, 문화 대 자연 같은 근대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 및 비판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하게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사이자 자연주의자인 이언 매컬럼은 지구의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어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지구 자체는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극을 피하려면 지구를 고칠 것이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원인이 존재하는 곳을 건드리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숨겨진 패턴을 인지하고 모든 주체를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적 질서가 회복되고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가 촘촘히 연결되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어떠한 지구를 만들어 갈 것인가'의 문제를 논의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계와 탈경계의 사이에서 "관계"란 무엇인지 사유해야 한다. 짐멜은 의미론적 차원에서 '사이'라는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구분한다. '사이'는 관계의 상호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학적 결합을 좀 더 강조하는 공간적인 중재를 가리킨다.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지금까지 무(無)에 지나지 않았던 빈 공간을 '너와 나', '우리와 그들', '인간과 지구'를 위한 어떤 것으로 만든다. 관계적 상호작용은 공간을 채우고, 공간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짐멜은 이러한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 이름한다. 제3의 공간은 문화적 차이와 복수성이 교섭되는 발화 장소를 의미한다. 열린 공간이면서 통행과 혼합의 장소이다. 이러한 제3의 공간에서 경계를 넘어 탈경계적 사유와 행위로 정주(定住)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전철후 교수(교양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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