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델리와 A

김선영(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등장인물
   코델리아
 A
 남자(목소리만 등장한다)

 

 무대
 하나의 방으로 꾸민다. 왼쪽에는 책상과 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창문이 하나 있다. 벽에 여러 가지 그림이 걸려있고, 가운데 이젤도 있다. 이젤 위에는 그림이 하나 올려져 있고, 앞에 의자가 있다.
 무대 오른쪽 끝에는 작은 화단이 하나 있다. 창문을 열면 화단이 보이는 구조다. 실제 화단을 만들지 않고 빔 프로젝터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델리아, 방에 앉아 노트에 무언가 적고 있다. 

 코델리아를 비추는 불빛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코델리아 : 이곳에 갇힌 지 일 년 정도가 된 것 같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왜 이곳에 갇혔을까?

 

 누군가 방에 들어와 음식을 안에 넣어준다. 코델리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코델리아 : 오늘도 음식이 생겼다. (음식을 먹는다) (사이) 처음에 이곳에 갇히고 두 달 정도는 누군가 나타나 나를 꺼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꿈속에서도 종종 백마 탄 왕자님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잡으려고 하면 왕자님은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사이) 그리고 두 달이 더 지나고 백마 탄 왕자님은 동화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들은 내가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활동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게 두렵다. 여기서 탈출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죽어갈 텐데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델리아, 음식을 다 먹고 빈 그릇을 있었던 자리에 놓는다.

 

 코델리아 :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언가 적는 것밖에 없다. 매일 똑같은 어둠 속이지만 내용은 다 다르다. (고민하며) 여기서 내가 죽으면 이 노트는 유언장이 되는 건가? 누구라도 발견해줘야 유언장이 되겠지.

 남자 : (목소리만) 나갔다 올게.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코델리아 : 가끔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냐고 묻고 싶지만, 이상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대답도 할 수 없는데 누가 자꾸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남자 : (목소리만) 나 왔어. 약속이 취소됐어. 옆집 남자가 또 주차를 이상하게 했더라고 

 코델리아 : 또 듣고 싶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다. 저 목소리 그만 듣고 싶다. 저것만 들리지 않으면 하루가 조금은 더 편해질 것 같다.

 남자 : (목소리만) 오늘 손님 오기로 했던 거 기억하지?

 코델리아 : 여기는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A, 코델리아 옆에 서 있다. 코델리아, A가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코델리아 : (A를 발견하고) 으악.

 A : 으악.

 코델리아 : 누구세요?

 A : 나? 지금 그게 제일 궁금해?

 코델리아 : 갑자기 나타나니까 물어본 거잖아요. 근데 왜 저한테 반말하세요?

 A : 미안. 너를 오랫동안 지켜봤더니 혼자 친숙해서. 너도 반말해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 줄게.

 코델리아 : ...

 A : 내가 누군지 진짜 궁금해?

 코델리아 : ...

 A :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없어? 예를 들면 네가 여기 있는 이유 같은 거?

 코델리아 : 여기가 어딘데?

 A : 그건 내가 알려줄 수 없어.

 코델리아 : ...

 A : 뭐야 화났어?

 코델리아 : 아니.

 A : 화났네. 화내지 말고 내가 누구일까? 잘 생각해봐.

 코델리아 : 혹시 오늘 오기로 한 손님이야?

 A : 손님?

 코델리아 : 아까 목소리가 그러던데 오늘 손님이 올 거라고?

 A : 아. 그래서 내가 그 손님이다?

 코델리아 : 아니야?

 A : 글쎄. (작게) 내가 누군지 알면 된다고 해서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어지겠네.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코델리아 : 뭐라고?

 A : 아니야. (주변을 둘러보고) 근데 여기 진짜 심심하겠다. 혼자 있으면 안 외로워?

 코델리아 : 처음에는 외롭고 무서웠는데 지금은 익숙해.

 A : 혼자 있는 게 익숙해질 수도 있는 거야? 나라면 절 때 못 해.

 코델리아 : 별로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거든. 탈출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A : 탈출하는 방법이 있으면 나갈 거야?

 코델리아 : 방금 뭘 들은 거야? 나가고 싶지 않다니까.

 A : 왜?

 코델리아 : 이게 익숙해졌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뭔가 멸망한 지구 속에 나 혼자 살아 있는 느낌이야.

 A : 밖이 궁금하진 않아?

 코델리아 : 응. 이제 내가 밖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지고 있어. 어쩌면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여기에 갇혀 살고 있었는데 꿈속과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사이) 어차피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고 상관없는 일들이니까. 상처받으면서 살아가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해. (사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오늘 처음 봤는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라 자꾸 내 안에 있는 말을 하게 되나 봐. 그냥 무시해. 사람이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반가웠나 봐. 

 A : 너도 내가 반갑지? 나도 네가 반가워.

 코델리아 : 근데 여기까지야. 네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탈출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빨리 탈출해. 내가 보기에 너는 이곳에 적응할 수 없어.

 A : 그걸 어떻게 확신해?

 코델리아 : 그냥 그렇게 보여. 너처럼 사람 좋아하고 궁금한 것도 많은 데 이 어둠을 버틸 수 있을까?

 A : 너는 하고 있잖아. 그럼 나도 할 수 있어.

 코델리아 : 너와 나는 달라. 나는 사람도 싫어하고 궁금한 것도 없고 이제 내가 과거에 뭐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A : 나는 너와 함께 나가고 싶어.

 코델리아 : 나는 괜찮아. (사이) 오랜만에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

 A : 네가 탈출하기 싫다면 뭐. 나 혼자 갈게. 잘 지내. 건강하고.

 

 A, 무대 밖으로 나간다. 코델리아, 노트에 무언가 적는다.

 

 코델리아 : 새로운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다. 목소리가 온다고 했던 손님일까? 어딘가 이상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나와는 다른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사이)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해서 재밌었다. 기다리지는 않을 거지만 언젠가 한 번은 다시 왔으면 좋겠다.

 남자 : (목소리만) 왔어? 생각보다 늦었네?

 코델리아 : 오늘 유독 목소리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 손님이 온 것 같다. (사이) 그럼 아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누구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곳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나에 대해서도 점점 잊어가는 것 같다.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델리아, 바닥에 누워서 잔다. A, 코델리아 옆에서 노트를 본다.

 

 A :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트를 몇 페이지 넘기고) 또 있네. 여기도 있잖아. 무슨 거짓말만 잔뜩 적었어.

 코델리아 : (뒤척이다가 A를 발견하고) 뭐야? 너 간 거 아니었어?

 A : 갔다가 다시 왔어. 누가 자꾸 나를 부르더라고. 그래서 올 수밖에 없었어.

 코델리아 : 그럼 너를 부른 사람에게 갔어야지. 왜 여기로 다시 왔어?

 A : 몰라. 여기로 와지던데?

 코델리아 : 이상하다. 여기는 나 혼자 있는데? (A의 손에 들려진 노트를 보고) 어? 그거? 내 노트 아니야?

 A : 이거? 맞아. 네 노트.

 코델리아 : 읽었어?

 A : 여기는 할 게 너무 없고 궁금하기도 하고 심심해서 읽었어.

 코델리아 : 뭐야. 왜 남의 노트를 함부로 봐. 빨리 줘.

 A : 남? (남이라는 소리에 약간 발끈하고) (사이) 싫어. 아직 다 못 읽었단 말이야. 그나저나 읽다 보니까 궁금한 게 생겼는데 기다리지는 않지만 또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코델리아 : 됐고 빨리 줘. (A를 잡으려고 뛴다)

 A : (코델리아를 피해 뛰어다니며) 싫어. 아직 다 못 읽었다고 다 읽으면 줄게.

 

 코델리아, A를 잡으려다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다.

 

 코델리아 : 잠깐만. 여기가. 원래 이렇게 넓었나?

 A : 뭐?

 코델리아 : 우리가 뛰어다닐 정도로 여기가 이렇게 넓었나? 이상해.

 A : 또 이상한 게 있을 거야. 잘 찾아봐. 여기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이 이상해. 

 코델리아 : 그러고 보니. 네가 들고 있는 그 노트. 그건 어디서 난거지?

 A : (희망이 가득 찬 얼굴로) 맞아. 네가 가지고 온 거야?

 코델리아 : 아니? 나는 여기 갇혔다니까. 납치당한 것 같은데 노트를 챙길 수 있었을까?

 A : 그렇지. 납치범이 너에게 노트를 줄 필요도 없지. 가족들에게 거대한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글씨체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코델리아 : 가족? 난 그런 거 없어. 만약에 가족이 있었으면 나를 찾았겠지.

 A : 너를 안 찾은 게 아니라. 못 찾는 거야.

 코델리아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번부터 진짜 궁금했는데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A : 그건 네가 풀어야 할 숙제야. 나한테서 답을 찾을 수는 없어. 답은 네 안에 있어.

 코델리아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남자 : (목소리만) 오늘 저녁에 공원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는데 재밌겠지?

 A : 대답 안 해? 너한테 하는 말이잖아.

 코델리아 : 뭐? 너도 저 목소리가 들려?

 A : 안 들리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불꽃놀이 한다잖아.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나는 괜찮으니까 편하게 대화해.

 코델리아 : 안 해. 아니 못 해.

 A : 왜? 나하고는 말 잘하잖아.

 코델리아 : 저 말에 대답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목소리가 안 나와.

 A : (중얼거리며) 나랑 대화 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안 되구나. (코델리아에게) 그럼 다시 종이와 펜의 출처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건 할 수 있지?

 코델리아 : 원래 여기에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아? 나를 납치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납치해서 그 사람이 떨어트리고 간 물건일지도 모르잖아. (고민하며) 근데 그건 아니겠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새것처럼 보였어.

 A : 네 물건은 확실히 아니야? 누가 선물했을 수도 있고 네가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을 수도 있잖아. 잘 생각해봐.

 코델리아 : 여기 들어오기 전 기억이 희미해. 이 정도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거와 같아. 내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모든 기억이 살아날 것 같은데 여기에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도 내 이름을 모르잖아?

 A : 알아. 하지만 부를 수 없어. 내가 부르는 거는 반칙이거든.

 코델리아 : 가만 보면 너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친구였어?

 A : 친구보다 더 깊은 관계지. 나는 오래전부터 네 옆에 있었거든 너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노트는 네 노트일 거야. 제일 아끼는 노트니까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코델리아 : 내 노트라고?

 A : 정답은 너의 기억 속에 있어. 지금은 당장 생각이 안 날 테지만 (사이) 이 노트에 뭘 적고 있었어?

 코델리아 : 그냥 이것저것 적고 있었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거든. 가끔 앞에 둘러보면 재밌기도 하고 여기에 익숙해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하고.

 A : ...

 코델리아 : 근데 여기에만 있으니까 새로운 활동을 못 하고 있어. 

 A : 지금은 뭘 하고 싶은데?

 코델리아 : 색다른 걸 하고 싶어. 지금까지는 하지 않은 거.

 A : 여기에 바닥, 천장, 종이, 펜 그리고 너와 내가 있어. 뭘 할 수 있을까?

 코델리아 : 그림?

 A : 그림? 그래 우리 그림을 그려보자. 지금 네 감정을 그림으로 그리면 멋질 것 같아. 너만의 그림. 너무 아름답지 않아?

 코델리아 : 큰 기대는 하지 마. 나 그림 못 그려.

 A : 뭐 어때 누가 볼 것도 아닌데. 여기는 너와 나 둘만 있잖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그림을 볼 수 없어.

 코델리아 : 그래? 그럼 한 번 그려보자.

 A : 뭘 그려볼까? 나 학교 다닐 때 졸라맨 많이 그려봤는데 너 졸라맨 알아?

 코델리아 : 졸라맨?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A : 줘 봐. 내가 먼저 그려볼게. (졸라맨을 그리고 관객을 향해 보여준다) 졸라맨은 이렇게 생겼어.

 코델리아 : 어? 이거 나도 알아. 나도 어릴 때 자주 그리고 놀았어. (사이) 중학교 때는 사람을 그리면서 놀았던 것 같아. 수업 시간에 선생님 얼굴도 그리고 야자 시간에는 반 친구들도 그려주고.

 A : 그럼 나 종이 한 장만 뜯어줘. 나는 너를 그려줄 테니까 너는 나를 그려줘.

 코델리아 : 갑자기 네가 나타나고 나서부터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것 같아.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많이 생각해내고 있어. 왜 그림을 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

 A :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야. 네가 옆에서 귀찮게 뭐라도 하자고 하니까 하는 거지.

 코델리아 : 네 말이 맞아. 너 아니었으면 무언가 끄적이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거야. (사이) 그럼 한 번 그려보자. 네 얼굴.

 

 코델리아, A를 그리는 것에 집중한다. 책상 쪽의 조명이 켜진다. A, 책상을 발견한다.

 

 A : 저것 봐. 또 다른 게 보이지 않아?

 코델리아 : 다른 거? (주변을 둘러보고 책상을 발견하며) 저게 뭐야? 책상이잖아!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A :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어. 나처럼.

 코델리아 : 책상 위에 그림 관련된 책이 엄청 많아. 도구들도 많고. (책상에 앉으며) 가까이 와 봐. 네 얼굴 좀 보자. (그림을 그리며) 근데 넌 이름이 뭐야?

 A : 내 이름? (말을 돌리며) 네 이름은 뭔데?

 코델리아 :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A : 네가 쓰고 싶은 이름 같은 것도 없어?

 코델리아 : 있어. 여기서 탈출한다면 무슨 이름으로 살아갈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거든.

 A : 그게 뭔데?

 코델리아 : 코델리아.

 A : 코델리아?

 코델리아 : 응. 코델리아 (사이) 다 그렸다. 이제 자리 바꾸자. 네가 나 그려줘. (사이) 그래서 네 이름은 뭔데?

 A : A.

 코델리아 : A?

 A : 응. A. (말을 바꾸며) 기대해도 좋아. 나 그림 진짜 잘 그리니까.

 코델리아 : 진짜? 정말 기대되는데. (사이) 이게 진짜 나라고? 너 정말 그림 못 그리는구나 (웃으며)

 A : 이게 어때서 나만의 개성이 보이는 그림이잖아. 아무도 이렇게 못 그릴걸. 나는 제2의 피카소라고! (사이) 이제 다른 걸 그려보자. 꽃 같은 건 어때?

 

 창문과 화단에 조명이 비춘다. A가 말하면 조명이 들어오고 코델리아가 말하면 조명이 꺼진다. 이걸 반복한다.

 

 코델리아 : 꽃? 나 여기에 일 년 정도 갇혀 있어서 정확하게 그릴 수 없어. 조금 더 정밀하게 그리고 싶은데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는 꽃이 없잖아.

 A : 꽃 보고 싶어? 새벽이슬과 아침 햇살을 먹으면서 자란 윤기가 흐르는 꽃잎과 거친 세상을 버티면서 살아가기 위해 단단해진 줄기. 그리고 그 옆을 날아다니는 나비까지.

 코델리아 : 궁금하긴 한데. 여기서는 계절도 알 수 없잖아. 만약에 겨울이면 어떻게 꽃은 없어.

 A :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이 존재해.

 코델리아 : 그건 그렇긴 한데. 꽃을 보려면 여기서 나가야 하잖아.

 A : 혹시 몰라. 여기서도 꽃을 볼 수 있을지.

 

 창문과 화단을 비추는 조명이 확실히 켜지려고 하다가 팍 꺼진다.

 

 코델리아 : 아직 잘 모르겠어. 오늘은 여기 있는 걸로 그리고 싶어. 상상해서 그리고 싶진 않아.

 A : 그래. 그렇게 해. 천천히 하나씩 해보는 거야.

 코델리아 : 내일 하자. 피곤하다.

 A : 그래.

 

     A, 코델리아 옆에서 자고 있다. 코델리아, 노트에 무언가 적는다.

 

 코델리아 : 옆에서 자는 이 사람의 이름을 알아냈다. A. 도대체 정체가 뭘까? A와 함께 있으면 재밌다. (사이) 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사실 보고 싶다. A와 같은 꽃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A가 그린 그림은 웃기겠지만 재밌을 것 같다.

 

 코델리아, 자리를 정리하고 눕는다. 조명이 꺼진다. 창문과 화단을 비추는 조명이 희미하게 들어오다가 꺼진다. 조명이 켜진다. (창문과 화단도 같이 켜진다) A, 코델리아를 깨운다. 코델리아, 귀찮은 듯 A를 멀리한다.

 

 A : 일어나 봐. 나 자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코델리아 : 귀찮게 하지 마.

 A : 저기 봐 (창문을 가리키며) 창문이 생겼잖아. 이게 뭐야. 어제 나 잘 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코델리아 : (당황하며) 나 자기 전에도 없었는데. 이게 갑자기 생길 수도 있는 거야?

 A : 이 세상에 갑자기는 없어. 잘 생각해봐. 자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코델리아 : 잘 모르겠어. 그냥 자기 전에 네가 본 꽃을 나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A : (표정이 밝아지고) 진짜? 그랬어? 그럼 우리 가서 창문을 열어볼까?

 코델리아 : 그러고 싶은데 여기는 지하야. 그러니까 이렇게 어둡지.

 A : 그건 모르지. 내가 말했잖아. 여기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이상한 곳이라고 네가 열지 않으면 내가 열거야.

 코델리아 : 내가 열게. 또 다른 게 보일 수도 있잖아?

 

 코델리아, 창문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코델리아 : (눈을 가리며) 눈부셔.

 A : 우와. 저게 뭐야. 엄청 아름다워.

 코델리아 : 뭔데? (서서히 손을 치우며) 우와. 꽃이야. 저것 봐. 구름도 있어.

 A : 어때? 일 년 만에 보는 세상이?

 코델리아 : 너무 아름다워. 난 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않으려고 했을까.

 A : 네가 그만큼 상처받았기 때문이야.

 코델리아 : 내가? 난 그런 기억 없는데

 A : 네가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상처를 받았다는 거야. (사이) 우리 이제 그 이야기 좀 해볼까?

 코델리아 : 무슨 이야기?

 A : 네가 여기 있는 이유. 그것만 알면 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어. 

 코델리아 : 뭔가 무서워. 하기 싫어.

 A : 아니. 해야 해. 이제 더는 피할 수 없어. 내가 아는 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 사람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코델리아 : 사람 착각한 거 아니야? 나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아했던 것 같긴 해. 하지만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아. (사이)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은데 너는 왜 자꾸 나를 여기서 나가게 만드는 거야?

 남자 : (목소리만) 창문을 열었다고? 잠깐만 지금 확인해볼게.

 A : 너도 방금 목소리 들었지? 창문 하나 열었다고 좋아하는 네가 듣기 싫어하는 저 목소리. 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해?

 코델리아 : 그야 나를 이곳에 가둔 사람이겠지. 납치범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잖아.

 A : 저 사람은 납치범이 아니야. 오히려 너를 구하고 싶어 하는 쪽이라고.

 코델리아 : 그게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듣고 싶지도 않고. 이제 와서 정체를 안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A : 저것들은 언제든지 다시 사라질 수 있어. 네가 보고 싶어 하던 저 꽃도 좋아하는 그림도 어쩌면 나도 사라지겠지. (사이) 나는 지금이 네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코델리아 : (화를 내며) 그래. 나갈 수 있다고 해. 그럼 어디로 나가? 저 창문으로 나가? 그걸 원해? 그럼 지금 나와 함께 창문으로 나가자. 그거면 되는 거냐고?

 A : 이 방 어딘가에 문이 있어. 너는 그 손잡이만 찾으면 돼. 스스로 나가야 해. 문손잡이도 네 마음속에 있어.

 코델리아 :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 무섭다고. 그냥 여기서 숨만 쉬면서 살게. 그렇게 하게 해줘.

 A : 무섭다고 언제까지 외면할 거야? 진실을 봐. 너의 과거를 봐. 네가 무서워하는 게 세상인지 상처받을 네 모습인지 그건 알아야지.

 코델리아 : 넌 대체 누구야?

 A :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누군지 보다 네가 누군지가 더 중요한 거야.

 코델리아 : 아니! 나는 그게 더 중요해 너 뭐야!

 

 밝았던 무대가 조금씩 어두워진다.

 

 A : 이거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남자 : (목소리만) 무슨 일 있어? 갑자기 큰 소리가 나.

 A : 저 목소리가 누군지 생각해봐. 너를 걱정하고 있는 저 사람이 누구야?

 코델리아 : 몰라! 나도 알고 싶어! 누군데!

 A : (망설이다가) 아빠야.

 코델리아 : 네 아빠? 내 아빠?

 A : 네 아빠.

 코델리아 : 뭐? (당황해하며) 나는 가족 같은 거 없어.

 A : 넌 가족이 있어. 밖에서 너를 걱정해주는 아빠가 있다고. 너를 가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가 여기에 너를 가둔 거야. 저 그림 때문에.

 

 이젤 위에 조명이 들어온다.

 

 코델리아 : 그림? 여기에 그림이 어디 있어? 우리가 저번에 서로 그려준 그림 말하는 거야?

 A : 아니 저 그림. 자세히 봐. 네가 그린 그림이잖아.

 

 코델리아, 그림을 자세히 보러 다가갔다가 뭔가 기억이 난 듯, 한 발씩 멀어진다.

 

 코델리아 : 저 그림이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저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니야.

 A : 아니. 저 그림은 네 그림이야. 마치 너와 똑 닮았잖아. 왜 회피하는데

 코델리아 : 내 그림이 아니야. 나는 인정받지 않은 그림은 그리지 않아.

 A : 그게 널 여기로 가둔 거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중요해?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너는 저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했어. 즐거워했다고!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근데 넌 왜 자꾸 외면해. 외면하지 마.

 코델리아 : 저 그림은 실패작이야. 저 그림을 그린 이후로 아무런 그림도 그리고 싶지 않아. 인정받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물어봤지? 나는 엄청 중요해.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도 칭찬받으려고 한 거니까. (사이) 근데 저 그림 이후로 사람들은 나를 칭찬하지 않았어.

 A : 너는 인정받으려고 그림을 시작한 게 아니야. 좋아해서 시작한 거라고.

 코델리아 :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조명이 꺼진다.

 

 A : (목소리만) 제발 너를 인정해. 너를 사랑해줘. 아무것도 아니잖아. 너는 이겨낼 수 있잖아.

 

 조명이 켜진다. A는 없다. 코델리아, 바닥에 앉아 있다. 

 책상과 창문을 비추던 조명도 사라지고 코델리아를 비추는 조명만 남았다. 

 

 코델리아 : 아니야. (A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에 대해 뭘 알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떠드는 거야. 나는 여기가 편해.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그릴 수 없는 어둠이 편하다고.

 

 조명 하나가 이젤 위에 올라간 그림을 비춘다. 코델리아, 그림을 확인하고 천천히 다가간다.

 

 코델리아 : 저 그림은 실패작이야. 실패작을 그린 나도 실패작이야. 앞으로 좋은 그림을 그리다고 해도 저 그림이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닐 거야.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아.

 A : (목소리만) 너는 저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어. 즐거워했다고!

 

 코델리아, 눈물을 흘리며 그림을 조심히 쓰다듬는다.

 

 코델리아 : 그래. 행복했지. (조명이 책상을 비춘다) 재밌기도 했고 (조명이 창문을 비춘다) 설레기도 했어 (A가 등장한다) 근데. 그게 중요하지 않아. 언제나 결과가 중요한 거야. 아무리 내가 그리면서 행복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건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A : 그 그림이 널 그렇게 괴롭히면 그냥 버리고 잊어버리면 되잖아. 근데 너는 왜 버리지도 못하고 있어? (그림을 집어 든다) 네가 못 버리겠다면 내가 버려줄게. (그림을 내리치려고 하며) 내가 끝내줄게.

 코델리아 : (그림을 뺏으며) 안돼! 하지 마! 내 그림이야! 버려도 내가 버려.

 A : 사실 버리고 싶지 않잖아. 그래서 숨은 거잖아.

 코델리아 : 맞아. 어쩌면 그럴 수도 있어. 나 저 그림 정말 열심히 그렸어. 다른 작품들보다 더. 그래서 더 칭찬받을 자신 있었어. 하지만 칭찬받지 못했고 그런 내 모습을 나는 용서할 수 없었어. 그래서 숨은 거야. 한 번 웃어넘기고 털어버리면 될 문제지만 그만큼 애정을 쏟아부어서 말처럼 쉽지 않다고.

 A :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그 순간부터 너에게 그림은 더 이상 재밌고 행복한 것이 아닌 거야. 너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만들지 마. 현재를 즐겨.

 코델리아 : 현재를 즐겨라. (사이) 다시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괜찮을까?

 A : 물론이지.

 

 문을 비추는 조명이 켜진다. 코델리아,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A, 문을 발견한다.

 

 A : (감격스러워하며) 다 왔어.

 코델리아 : 뭐라고?

 A : 저거 봐. 문이 생겼어.

 코델리아 : (문을 확인하고) 진짜네.

 

 코델리아와 A,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간다.

 

 코델리아 : 문고리가 없어.

 A : 어디에 숨어 있을 거야. 찾아보자.

 코델리아 : 어떻게?

 A : 천천히 눈을 감아봐. 뭐가 보여?

 코델리아 : (눈을 감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불과 며칠 전까지 나에게 있었던 어둠.

 A : 네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눈을 떠봐. 이제 뭐가 보여?

 코델리아 : 문손잡이. 손잡이가 보여. 여기는 정말 이상한 곳인가 봐. 분명 아무것도 없고, 좁은 곳이었는데 책상도 있고 창문도 있고 이젤도 있고 너도 있었어. 여기는 진짜 알 수 없어.

 A : 이제 저 손잡이를 잡고 나가면 되는 거야. 할 수 있지?

 

 코델리아,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는다. 동시에 무대가 환해지고 천장에 떠 있는 태양과 방에 걸려있던 다른 그림도 보인다.

 

 코델리아 : 여기는…. 내 방이었어?

 A : 맞아. 익숙하고 다정한 곳이었지. 이 안에서 넌 혼자 너무 외로웠어. 이제 밖으로 나가.

 코델리아 : 너는? 너는 같이 안 나가?

 A :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여기는 내방이기도 하거든.

 코델리아 : 뭐라고

 A : 여기는 네 방이면서 내 방이야. 너는 여기서 나갈 수 있지만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 나는 이 안에서 네가 보는 세상을 보고, 네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고, 네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거야. 이 넓은 방에서. 그니까 너는 내 걱정하지 말고 나가.

 코델리아 : 너도 같이 나가자. 나랑 세상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

 A : 나는 여기서 널 늘 지켜볼게. (망설이다가)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가끔은 내가 보고 싶으면 놀러 와도 돼. 하지만 이번처럼 너무 오래 있을 생각은 하지 마.

 코델리아 : (눈물을 머금고) 알았어. 놀러 올게. 그때는 어둡지 않고 밝게 나를 기다려줘.

 

 코델리아, 문을 열고 나간다. A, 방을 한 번 쭉 둘러보고 이젤 앞에 앉는다.

 

 남자 : (목소리만) 현지야? 너 지금 방에서 나온 거야? 아빠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잘했어. 잘했어.

 

 조명이 꺼진다. A, 무대 밖으로 나간다. 조명이 켜진다. 코델리아, 아까와 다른 옷을 입고 들어와 이젤 앞에 앉는다.

 

 코델리아 : 긴 꿈을 꾼 것 같다. 꿈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이 노트를 들여다본다. 지금 생각하면 일 년을 무슨 생각으로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이) 잊지 말아야 할 일 년에 A가 있었다. A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약속처럼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고 싶다. 코델리. 나는 이제 그를 코델리라고 부를 것이다. 코델리와 A. 코델리아

- 끝 -

 

희곡 부문 당선 소감

 저는 무언가를 쓰려고 하면 거창한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기획에서만 끝난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완성하지 못한 글만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써보고 싶은 글을 써서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이 글을 읽어주기만 해도 좋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써보고 싶다는 욕심 하나만 가지고 있는 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말씀해 주신 교수님들과 옆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가족들과 언제나 내 이야기가 재밌다고 해주는 친구들이 없었으면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강박을 버리고 더 열심히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희곡 부문 심사평

 이번에 응모된 작품은 대부분 현대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인간의 고독이나 고립, 욕망, 폭력, 미래에 대한 희망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개인의 가치나 존재의 불확실성에 의문을 갖는 젊은 세대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그런 점에서 삶에 대한 응모자들의 진지한 태도와 사유를 읽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아쉬운 점은 작품 대부분이 주제와 관련된 현상을 표면적으로만 표현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 주제일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묘사를 넘어 그 내면에서 새롭게 사유하도록 이끄는 남다른 성찰이 요구된다.
 희곡은 무대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잠재적인 텍스트라는 점에서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는 극적인 포인트, 다시 말해 연극성이 효과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많은 응모작이 특색 없는 대화의 나열에 그치고 연극적 구성의 힘이 약하다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코델리와 A>는 분열되어 있는 두 자아와 소리, 조명의 활용 등 극 구성과 연극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평가한다. 젊은 세대에게서 볼 수 있는 문제로, 스스로를 가두는 자아와 그 원인, 그리고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결말부까지 극 전개에 무리가 없다. <네모의 꿈>은 '물 밖에 버려진 물고기'같은 청년들의 분열된 존재 문제를 꿈의 대화방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인물 구도나 대사의 진행이 평범하여 충분한 극적 긴장을 만들지 못하는 점이 아ㅤㅅㅢㅂ다. <책에 없는 어떤 기록>의 경우, 도서관 책들과 화분, 커튼을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이끄는 구성이 흥미롭고, 언급하던 유령이 결국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는 부분에서 좋은 상징성을 확보하고 있다. <클라우드 라인>은 가장 멋진 구름을 '하늘 위'가 아니라 '땅 속'에서 찾겠다는 역설의 작품이다. 모든 것이 '효율'을 앞세우는 도구적 이성의 현실을 전도하려는 발상이 강한 울림을 준다. 다만 주제 전달의 강박이 극적 장치의 과잉을 초래하는 점이 아쉽다. <모두 그곳에 있다>는 고독사를 다루면서 실제로는 우리 주위에 '아무도 없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다양한 연극 장치를 시도한 것은 좋았으나 전체적으로 극적 긴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상담원 연결 중입니다>와 <광장수칙서>는 발상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좋은 글은 적당한 빈 곳이 필요한 데, 이 작품들은 지나치게 채워져 있다. 좀 더 덜어낸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시나리오 <비상구>는 가장 위급한 상황의 피난처인 비상구가 일상의 거처가 되어 버린 비참한 현실을 영상화한다. 시나리오는 영상으로 실연되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장면 전개가 필수적인데,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장면 전개가 너무 단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은 <코델리와 A>와 <책에 없는 어떤 기록>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두 작품 모두 희곡 언어 표현에 있어 상당한 훈련이 뒷받침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작가적 역량이 기대되는 우수한 작품들이다. 다만 극적 구성과 전개에서 연극적 상상력이 돋보인 <코델리와 A>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자들 모두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정진하기를 바라며, 앞으로 우리 희곡문학, 영화 시나리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정민영(한국외국어대학 독일어과 교수, 연극연출가)
이상복(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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