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이 몽룡의 품에 안겨 사랑을 나누는 중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한지 전등이 내려오고 있다.

   아직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던 날이 생생하다. 기자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엄마 옆에 꼭 붙어 무대와 한참이나 뒤떨어진 좌석에서 공연을 내려다봤다. 처음으로 봤던 뮤지컬은 <미녀와 야수>인데 시야도 안 좋은 좌석에서 얼마나 인상 깊게 봤던지 집에 돌아와 팬카페까지 가입할 정도였다. 워낙 유명한 디즈니 작품이라 그 이후로 뮤지컬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자의 생각을 깨줄 새로운 개념의 창작뮤지컬 <춘향>이 있다. 지난 4일 기자는 전북예술회관에서 공연 중인 <춘향>에 다녀왔다. <춘향>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전북브랜드공연이다. 또한 전라북도 최초의 장기공연으로 올해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12월 31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창작뮤지컬 <춘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전』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 연기 그리고 춤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야기와는 약간 다르게 각색됐다. 뮤지컬에서는 춘향이 아름답다고 알려진 원작 『춘향전』과 달리 박색 즉 아름답지 않은 얼굴로 묘사된다.
   만약 독자들이 '춘향이가 예쁘지 않다면 몽룡이와의 사랑도 각색될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 위해 춘향을 박색으로 각색했지만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변함없다.
   이번 뮤지컬의 김정수 총감독은 "『춘향전』이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고 이미 영화로도 많이 제작된 상태이기에 약간 비꼬면서 드라마틱하게 각색했다. 뮤지컬이니까 연기와 음악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다. 음악의 경우는 우리국악지만 또 새롭게 편곡한 부분을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뮤지컬의 리허설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은 소극장이라 맨 뒤에 앉은 관객들도 시야에 큰불편함 없이 뮤지컬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딱딱한 분위기를 상상한 기자의 생각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배우들은 목을 풀거나 마이크 음량을 체크 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연 주최측의 배려로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항상 좌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좌석을 바라보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사람들로 꽉 찬 좌석에서 큰 박수와 호응이 나오는 상상을 하니 짜릿함마저 들었다.
   리허설을 둘러보니 공연시간이 다가왔다. 입구에서 티켓 확인을 하는 헬퍼가 있었는데 뮤지컬의 컨셉에 맞게 한복을 입고 있었다. 좌석안내를 도와주는 헬퍼 또한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티켓을 내고 실제로 춘향이가 살았던 시대로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됐다. 실제로 공연이 시작되니 리허설 때 본 그 배우들이 맞나하는 의구마저 생겼다. 섬세한 분장으로 극 중의 인물들로 보였다.
   공연은 약 1시간 30분의 런닝 타임으로 보통 뮤지컬보다 짧은 편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춘향과 몽룡의 사랑, 당시 사회풍자 등을 담았다. 자칫하면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걸 담아 엉성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작품은 관객에게 한순간도 눈을 뗄 순간을 주지 않았다. 잘 짜여진 극본과 그 극본의 재미를 증폭시킨 연기자들의 몫이 컸다.
   뮤지컬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연상하게 하는 듯 한 생생한 라이브로 진행 됐다. 김정수 총감독의 말을 따르면 코러스 또한 라이브라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는 순간에도 노래를 같이 불러준다고 한다.
   또한 무대 바로 앞에서 노래를 위한 연주가 이뤄졌기에 뮤지컬도 보고 연주도 보는 두배의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퓨전뮤지컬 답게 연주도 태평소, 가야금 같은 전통악기 뿐만 아니라 베이스 기타 등의 현대적 악기와 함께 이뤄졌다.
   새롭게 편곡된 사랑가도 좋았다. '사랑가의 제일 유명한 대목 이리오너라 업고놀자 사랑 사랑 내사랑아'만 본다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꾼의 연륜 묻어나는 목소리를 상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춘향'에서는 사랑가를 빠른 장단으로 편곡했고 그에 맞게 화려한 안무 등의 볼거리가 있었다. 무대 연출은 섬세했다. 춘향과 몽룡이 애정표현을 할 때 위에서 한지전등이 내려와 애틋한 분위기를 띄웠줬다.
   뮤지컬에서 좋은 볼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연출, 연기, 음악 등의 합이 잘 맞아야 한다. <춘향>은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 합을 놓치지 않았다. 인상 깊었던 점은 그들이 배우들끼리의 호흡이 아니라 관객들과의 호흡도 중요시 했다는 것이다.
   기자 앞 줄에는 휴가를 나온 5명의 군인들이 앉아있었다. 배우는 공연 중 그들에게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또한 춘향의 하녀 향단이가 '스냅백 쓴 남자 마음에 든다'고 말하자 방자가 '군인은 건들지마'라고 정색해 웃음을 자아냈다.
   친구와 함께 방문한 기자에게는 '3번째 줄에 앉은 여성 두 분 어디서 오셨어요? 예쁘게 생기셨네요'라는 대사를 했다. 사또가 기자에게 말을 건 연기자에게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니 '거짓말을 치고 있다'고 말해 기자의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이렇게 같이 연극에 참여하니 재밌고 색달랐다.
   연극에 참여함으로 대극장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소극만장의 매력을 느꼈다. 또한 전북브랜드공연답게 ‘임실치즈처럼 쫀득한 입술’ 등 중간 중간에 전북을 홍보하는 대사도 같이 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번 뮤지컬을 관란함 여유정(21)씨는 "국악에 많은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뮤지컬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무대앞에서의 연주에서 전통악기와 현대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모습이 인상깊었고 이런 기회가 있으면 또 보고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는 이번 뮤지컬을 보기 전에 재밌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뮤지컬을 예술회관에서 한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또한 춘향은 막장드라마의 불륜처럼 너무나 흔한 주제였기 때문에 색다른게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사극의 제일 큰 스포일러가 역사책이라고 하지만 결과를 알고 봐도 재밌다. 이번 뮤지컬 <춘향>도 그랬다. 우리 모두는 춘향이 몽룡과 신분차이를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이나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색다른 <춘향>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신분차이, 사또의 방해 등 그들의 사랑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 이겨냈고 행복한 끝을 쟁취한다.
   춘향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의식주가 바뀌고 심지어 나라도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춘향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각색되고 있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위관리의 부정부패, 춘향이처럼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욕망 혹은 대리만족 등 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춘향전』에 공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만인의 공통관심사이기 때문 아닐까?

 신수연 기자 shinsud@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