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차이나타운이다. 하지만 차이나타운 주변에는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인천의 개항장(開港場)이었기 때문이다. 윤요호 사건으로 인해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맺은 후,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일본 조계지가 형성되고 일본인들을 위한 공간이 생겼다. 그곳이 바로 누리길의 시초다. 누리길에는 '인천아트플랫폼',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원래 중구문화미술공간이란 이름이었다.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인천시가 인천 개항장 주변에 근대식 건물을 매입해 조성한 단지다. 원래는 '일본우선주식회사'를 비롯해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을 시기에 지어진 물류창고들이 있었다. 주변에 인천항이 있어 물류를 저장해 놓을 수 있는 창고 위치로 제일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트플랫폼에는 '대한통운'이라고 적혀있는 건물이 있다. 지금은 인천 문화공간의 중심지로 완전히 탈바꿈됐다.
 드라마 <드림하이>가 이곳에서 촬영됐고, 원빈이 등장하는 '드라이피니시' 맥주 광고도 아트플랫폼에서 제작됐다. 젊고 재능있는 예술가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 및 스튜디오 제공하는 창작지원 프로그램도 시행되고 있다. 어느새 이 지역은 과거 식민지시대의 아픔을 딛고 인천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전시회나 공연 등을 쉽게 관람할 수 있다.
 아트플랫폼 가까이에 한국근대문학관이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근대문학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한용운 선생의 「알 수 없어요」와 현진건의 「빈처」, 백석의 「여우난곬 족」, 염상섭의 '만세전'도 원고나 작품집의 형태로 전시 중이다. 이렇게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전시된 한국근대문학관은 김치 공장과 물류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어졌다.
 
▲ 인천개항박물관
 아트플랫폼에서 한 블럭 위로 올라가면 시유형문화재 7호로 지정된 인천개항박물관이 있다.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이곳은 개항 당시 인천의 유일한 금융기관이었다.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을 통해 일본의 금융침투가 가속화됐고, 이를 통해 일본은 국내 최초 금융기관이었던 대한천일은행으로 지급되는 자금을 끊으려고 했었다. 후에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은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다가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변경됐다.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은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천개항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물건을 소장하고 있다.
 제1전시실에는 최초의 군함 양무호를 비롯해 해안경비함 및 세관감시선 등으로 활용되던 광무호와 일본인의 의해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 해양 지하수를 끓인 물을 사용한 공중목욕탕인 월미조탕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또 우표를 비롯해 우편물, 우체통, 전보꾼의 모형, 전화기 등도 전시돼 있고,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 인천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 현재의 증권거래소와 비슷한 형태로 곡물을 거래했던 미두취인소 등의 자료를 관람할 수 있다. 제2전시실은 철도관련 전시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노선인 경인선 철도와 관련된 모형, 승차권 등 철도 분야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제1전시실보다는 제2전시실을 관람할 때의 마음이 더 무거웠다. 철도부설권의 대부분을 일본이 차지한 뒤로 이권침탈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제3전시실은 개항기 인천의 개항장 일대를 연출한 전시실이다. 개항기 거리풍경을 재연해 놓은 포토존과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제4전시실은 제1은행 시절 금고를 활용한 전시실이다. 개항기의 금융기관과 인천 전환국과 관련된 자료가 보관돼 있다.
 바로 옆에는 인천개항박물관 기획전시실이 있다. 상시 관람이 가능한 인천개항박물관과 달리 인천개항박물관 기획전시실은 기획전시를 할 때에만 열린다.
 
▲ 인천근대건축전시장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는 기획전시를 하지 않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관람하지 못해 아쉬움이 더욱 컸다. 한 블록 건너편에는 인천근대건축전시장이 있다. 인천근대건축전시장에는 근대시기 인천의 주요 건축물을 설명하는 모형이 전시돼 있다. 이 건물은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이 건물 또한 일본 제1은행과 비슷한 용도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후에는 한국흥업은행지점으로 사용되다가 카페, 가구점등을 거쳐 인천 근대건축전시장으로 바뀌었다.
 인천 개항장 지역에는 근대사의 아픔을 가진 건물들이 한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돼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아픈 역사를 가진 건물에서 그 흔적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의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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