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철학 이야기 (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한삶과 한마음과 한얼의) 김태창, 야규 마코토 저 정지욱 역 모시는사람들 2012.09.30.

  '공공(公共) 철학의 대두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과 여러 가지 이유로 대립하고 있다. 한일 간의 화해를 위한 대화의 장을 위해서 교토포럼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 세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좀 더 넓은 시야와 이상을 가지고 살아갈 세계에서는 문화, 가치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 관계가 다른 타자나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높은 차원에서 얼과 얼이 상통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에서는 '공공성(公共性)'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 개념 정의가 되지 않은 상태로는 아무리 논의해도 무의미한 토론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20년 전 '공(公)'과 '사(私)'의 문제가 큰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적 '공'의 당담자인 국가 공무원이 변질되었다는 진단과 함께 '공(公)'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아시아에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근대화 과정을 거쳤다고 평가 받았던 일본의 발전에 공무원이 공적인 영역에서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그런데 현대 일본이 '공(公')이 무너지고 '사(私)'가 압도하는 사회로 전환되면서, '공'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타락하고 비도덕적인 일상사가 노출되기 시작했고, 이로써 반관료적이고 반공무원적인 풍조가 팽배했다.
   전통적으로 일본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공(公)'을 받든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과 '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후자를 버려야 한다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다. 공과 사의 이분법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公)과 사(私)사이에 있는 '공공(公共)'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공공 개념이 입법 과정에도 기여를 하였다. 우리나라도 공공성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공과 사의 이분법을 해결하고, 사회의 다양한 갈등에 대처하는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하겠다.

   공공성의 의미
   우리가 공공(公共)이라고 할 때, 보통 서구에서 이야기하는 '공적(영어: public, 불어: publique, 독어: offentlich) 개념과는 다르다. 이 개념들은 따지자면 공공(公共)보다는 공(公)에 더 가깝다. 물론 서구적 개념들에는 1)모두에게 공개되며, 2)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통된다는 뜻에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공(公共)적인 요소가 들어 있기도 하지만, 국가나 정부에 관련된다는 의미 또한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 영역의 담당주체가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천황, 국가 권력인데 반해서, 'public'의 주체가 일반 민중이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우리가 지금 동아시아의 '공공' 개념을 만들 때, 서양 언어를 그대로 수입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사상 자원을 바탕으로 해서 민주주의를 담아내야 하며, 이것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애초의 공, 사 이원론이 이제는 상당히 조정되면서 공공(公共)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인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는 개인의 영역인 '사'를 죽이고 국가의 영역인 '공'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중국인들의 '파사입공(破私立公)', 일본인들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이 그러했다. 정도전의 이상국가론에 등장하는 '공천하국가(公天下國家)'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관념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러한 '공' 위주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공과 사가 공존하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자 한다. '활사개공(活私開公)'
   즉 '사'를 살려서 '공'이 열리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공공 철학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정부나 국가, 혹은 힘이 있는 누군가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더불어', '함께', '서로 서로' 살아가는 것이 공공철학의 기본 가치이다.

   공공성의 담보자로서의 시민
   요즘 한국 정부는 '국민 행복'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한다. 이 '국민'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공공성의 담지자가 대체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오랫동안 '국민'과 '비국민'이 구별되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은 '차별'로 이어져 왔다.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국민'이고, 공적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비국민'으로 치부된다. 비국민은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국민과 더불어 비국민까지 아우르는 개념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에 대해서 한중일에서는 다양한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시민(市民)'이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일본에서는 국민(國民)이나 공민(公民)이, 중국에서는 인민(人民)이 애용되다가 최근에서 우파의 승리로 공민(公民)의 개념이 우세하다. 한중일이 공유할 수 있는 '민(民)' 개념의 성립이 요청되는 바, 이에 대해서 내가 제안하는 개념은 '지민(志民)'이다. 율곡과 퇴계는, 사람이 사회적 활동을 할 때 먼저 뜻을 세울 것(立志)을 당부했다.
   이러한 '지민(志民)'은 과거처럼 관(官)에 의해서 주도되는 공(公) 밖의 주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새로운 공공성의 주체자로서의 지민은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서로 간 소통한다. 밀실에서 결정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공공성이 아니다. 대화를 통하여 자기와 타자 사이에서 물음이 오가며, 생각이 교환되면서 깨달음이 생기고, 의미 있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상호 간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생명의 철학, 새밝힘의 철학으로 나아가기
   동학의 개벽 사상은 공공 정신과 통한다. '백성과 더불어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與民開闢)'는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백성을 위해서 정치를 펼친다(爲民仁政)'는 전통적인 유교관을 넘어선다. 이러한 동학의 정신이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 안에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때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다.
   동학 이전에도 한반도의 전통 사상에 있었던, 공공(公共) 사상의 몇 가지 단서를 얻고자 한다.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치우'의 건국 이념을 보면, '말로써 나라를 구한다(以言救國)'라는 어구가 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이'를 원활히 소통시키는 공공성의 철학을 이야기 할 때, 우리를 '살리는' 것은 '말(言)'이다. 공공철학에서는 말로써 철학을 살리고자(以言活哲)한다. 철학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철학(下哲)에서는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 그 다음 단계의 철학(中哲)은 제대로 아는 것을 말한다. 가장 높은 단계의 철학(上哲)은 서로가 통함(通)을 깨달는 것이다.
   이러한 서로간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생각(哲)과 생활(生)과 행동(行)을 밝게 하는 것이 우리 철학의 근간이다. 나는 이러한 철학을 순수 우리말로 '새밝힘'이라고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얼을 집중시키는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생각과도 상통한다. 푸코는 민주주의의 최고를 '파르헤시아(Parrhesia)'에서 찾았다. 한 사람씩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사회는 권력과 힘으로 제압당한다.
   이러한 공공 철학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말로써 나라를 구하고(以言救國), 말로써 철학을 살리고(以言活哲), 철학으로써 백성을 살리고(以哲活民), 백성으로써 온 세상을 살린다(以民活世).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세대 간, 정당 간, 계층 간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말로써 서로 통하는 세상이야말로 '천국'이다. 공공 철학은 바로 서로를 살리는 말로써 세상을 밝게 한다.
   얼과 얼이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말을 다듬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말로써 목숨을 살릴(以言活命)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명의 철학'이다. 생(生)과 명(命)을 합친 '생명(生命)'이라는 말은 한국어의 독창적인 조합이다. 명(命)이 거대한 빙산이라면, 생(生)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생(生)이 눈에 보이는 삶의 모습이라면, 명(命)은 생을 받치고 있는 근원적인 우주적 생명력이다. 명(命)의 받침을 받아서 개별적인 존재인 우리가 한 사람씩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생(生)이다. 우리 안에 있는 우주적 생명력을 키워야 한다. 우주 생명이라는 입장에서 우리 모두는 더불어, 함께, 서로 서로 공공(公共) 정신을 키워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활명연대(活命連帶)'이다.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때 우리는 함께 나가는 미래를 만들고(未來公創), 행복한 미래의 창조(幸福公創)를 말할 수 있다. 우리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대우주의 영성과 우주적 생명력이 깃들어져 있으며(內有神靈), 밖으로는 이러한 천지만물을 살리는 생명력을 가지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外有氣化). 바로 이것이 한국적 철학에 바탕한 공공성이다.
   진정한 공공성을 위해서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대화하여 합의점을 찾아내고, 합의된 사항을 실현하도록 협동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모아진 생각과 행동을 통하여, 기존의 낡은 생각이나 관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이 열려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것을 연다는 의미의, 공공성의 '개신(開新)'이다. 새로운 지평과 차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의미이다. 과거와 같이 '공(公)'을 위해서 '사(私)'가 희생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특질과 개성을 살려서 세계에 공헌하고 함께 살자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성주의, 생명주의, 평화주의적 사상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이러한 공공적 사유에 바탕을 해서 앞으로 우리 젊은 세대들은 한국적 사상과 동아시아 삼국의 전통 사상자원을 발굴해서 활용하면서 민주화된 공동의 철학과 사회 체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논의가 철학적 담론을 넘어서서 우리의 혼, 마음과 몸을 살리는 다양한 운동으로 연결되면 좋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먹거리 운동, 참된 건강론, 교육의 문제까지 아울러서 생각할 수 있는 공공철학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김태창 교수(충북대학교)
<필자 소개>
학력 및 경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충북대 교수, 행정대학원장, (현)일본의 장래세대종합연구소장, 공공철학공동연구소장, 수복서원(樹書院) 원장
주요 저서 :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 비판』,『인간·세계 그리고 신』,『정치철학적 사고의 궤적과 그 주변에 모아진 사고의 단편』,『현대 정치철학』, 『21세기에의 지성적 대응』,『공복(共福)의 사상』(일본어판),『지금 왜 장래세대인가?』 등 다수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