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일본 나가사키에 소속된 하시마섬의 생김새가 군함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쓰비시 중공업의 소유였던 군함도는 19세기 탄광산업의 활황으로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서고 컬러 TV가 보급되는 등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 화려함의 뒷면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시절 탄광 인부로 강제 동원돼 노역을 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참상이다.
   지난 7월 5일, 비통하게도 군함도가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철강, 조선 그리고 탄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일본 정부는 등재 신청을 하면서 대상기간을 1850년에서 1910년으로 한정했다. 이후로도 가동을 계속했으며, 태평양 전쟁 중에는 극에 달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이날 등재된 산업유산 23곳 중 7곳에서 약 6만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끌려와 혹사당했던 역사를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추악한 역사를 감춘 채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홍보 DVD를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상영했다. 강제로 끌려와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던 인권유린의 현장 '지옥도'가 메이지시대 산업화를 견인한 찬란한 역사 유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뒤이어 일본 정부 대표는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며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일 외교당국이 등재 직전 발표한 일본 측 입장문에 사용된 강제징용 표현을 놓고 '강제노동(forced labor)이다', '노동을 강요당한 것(forced to work)이다'로 갈려 대립한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당시 방문객 등에게 강제징용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일본 정부의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조선인 강제 징용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에 가려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지워진 역사이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자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에 대해 진심으로 기쁘다. 해외의 과학 기술과 자국의 전통 기술을 융합해 불과 50여년 만에 산업화를 완수한 일본의 모습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것으로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선조들의 유산을 잘 보전해 후대로 계승하기 위해 새롭게 결의하자."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문화재를 지칭한다. 자국의 문화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과연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이 될 자격요건을 지니고 있는가에 있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아픔은 철저히 배제한 채 자국의 산업화만 앞세운 일본, 세계문화유산이 이야기하는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굴욕과 치욕,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군함도에 벌써부터 관광객이 붐빈다고 한다. 우리는 그곳이 '조선인 강제 노역장'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 한수산은 하시마 탄광의 실태를 고발한 장편 다큐소설 『까마귀』에 "진폐증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는 조선 징용공들이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는 지옥섬 하시마의 밤은 사나운 파도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고 썼다. 파도에 묻힌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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