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칼 폴라니의 출생과 유럽 문명의 전환기
 폴라니는 아버지 미할리 폴라섹(Mihaly Pollascek)과 어머니 세실 볼(Cecile Wohl)의 사이에서 세 번째 아들로 1886년 10월 21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누군가 1899년에 태어난 하이에크를 부른 이름처럼 그도 "마지막 19세기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태어난 연도 뿐만이 아니라 가족 환경과 그가 지적으로 성장한 배경이 19세기 유럽 문명의 핵심이라 할 "자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내면화하고 있었던 캘빈주의에 입각한 내면의 양심과 도덕적 엄격성 그리고 어머니가 체현하고 있었던 19세기 말의 혁명적 상상력은 얼핏 모순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근대 유럽 문명이 낳은 "자유"라는 이상의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얼굴이며, 그러한 동일성과 모순성으로부터 나오는 엄청난 역동성이 19세기까지의 유럽 문명의 정신적 추동력의 본질이기도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인격에 체현된 이 두 개의 경향과 이상은 그 모순적인 역동성까지 포함하여 고스란히 어린 칼 폴라니의 인격 및 의식으로 들어온다. 당시 아직도 교권주의(clericalism)와 여러 낙후된 억압적 사회 기제가 누르고 있었던 헝가리에서 폴라니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도덕적 이상주의에 근거한 급진주의의 성향을 보인다(맏형이었던 아돌프(Adolf)는 헝가리 최초의 사회주의 학생 조직의 창설자였고, 고등학교 때에 이미 러시아 혁명가들의 저작을 헝가리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거대한 전환』을(1944년 출간) 쓰게 만든 직접적인 시대적 배경은 1차대전으로 인한 19세기 유럽 문명의 붕괴, 1930년대의 대공황과 그로부터 배태된 파시즘, 공산주의, 2차 세계대전의 일련의 사태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을 거쳐 미국까지 망명길에 오르면서 이 시대를 살아낸 폴라니는 이러한 일련의 혼란의 원인을 "시장 문명"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이중적 운동"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중적 운동"의 정치경제학 
 폴라니는 시장 경제야말로 인간의 본질에 가장 적합한 자연적인 제도라는 시장 신화가 역사적 인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허구가 하나의 허구나 가설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 사회를 근본적이고 전반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로 변할 때, 또 그런 '유토피아'가 현실의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 전반에 강요될 때 재난이 시작된다. 그러한 '유토피아'는 처음부터 실현될 수 없는 그야말로 유토피아일 뿐이므로 그것을 사회 전반에 강요한다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장이라는 유토피아를 강요할 경우 사회 전체가 엄청난 모순과 격동에 휘말리게 된다. 둘째, '유토피아'라는 허구가 마치 과학적인 법칙인 것처럼 통용되면 사람들의 이성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역동성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마비되므로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다. 
 따라서 폴라니는 시장 신화라는 허구 대신 실제 시장 자본주의 사회의 역동을 설명할 현실적인 정치경제학을 확립하려고 한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작업의 방향이며, 그 결실이 대표 저서인 『거대한 전환』이다. 
 인간, 토지, 화폐는 신이 창조했거나 인간의 사랑으로 태어나거나 신용과 채무 관계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 결코 판매하기 위해서 더 많이 혹은 덜 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자기조정 시장에 꼭 필요한 요소 시장을 확립하려면 이 세 가지 존재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상품이라는 일종의 허구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시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세 가지 물건은 허구적 상품으로 여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제도가 사회의 실체인 인간과 자연의 존재를 불안하게 만든다면 사회 자체가 파괴되기 마련이다. 사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동기가 동료 인간들과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자연과 교호하는 방식에서의 시간적 공간적 안정성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회의 제도가 그 존재론적 안정성을 파괴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업들마저 시장의 자기조정에서 파생되는 존재론적 불안정성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노동조합, 곡물에 대한 보호 관세, 사회 입법과 사회보장제도, 중앙 은행과 탄력적 금융제도,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 및 교육제도 실시 등 시장의 횡포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사회적 장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폴라니가 지적하듯이, 소위 자유방임 체제라는 것이 국가가 강제한 것인 반면 이러한 보호 운동은 자생적으로 그야말로 자유방임에 의해서 나타났다. 이는 시장 운동의 소용돌이에 인간, 자연, 생산 조직이라는 벽돌, 철근, 목재가 휘말려들어 사회라는 구조물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보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폴라니는 이를 '사회의 자기보호'라고 부른다. 폴라니의 정치경제학의 핵심 주장은 위에서 본 두 가지 모순되는 운동 경향, 즉 이중적 운동이 시장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역동성이라는 것이다. 
 이 이중적 운동에서 시장의 '유토피아'적인 성격 그리고 그 유토피아를 강요함으로써 나타나는 뜻밖의 현실적 결과라는 폴라니의 관점이 집약되어 나타난다. 사회의 한 부분에서는 국가 기구를 통해 사회 전체를 시장의 자기조정에 순응시킴으로써 시장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순수한 '시장적 사회'를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 운동은 사회 조직의 뼈대인 인간과 자연의 존재론적 안정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마찬가지로 국가 기구의 힘을 빌어 시장 경제에 개입하고, 시장으로부터 사회 조직을 지키려고 애쓰게 된다. 이 두 운동은 서로 모순된다. 시장으로의 운동이 확장될수록 인간, 자연, 생산 조직의 고통은 심해진다. 
 그리고 사회의 자기보호가 강화될수록 요소 시장이 경직되고 시장의 자기조정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편 이 두 대립물은 통일되어 있기도 하다. 사회의 생산 과정이 시장이라는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 경제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모든 계급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의 자기보호를 통해 사회의 기본 조직이 유지될 때에만 비로소 시장 경제도 작동할 수 있다. 
 시장 경제는 결국 이러한 이중적 운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애초에 꿈꾸었던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이상은 그야말로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로 끝나고 만다. 나쁜 것이 또 하나 있다. 길항 작용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이 이중적 운동은 사회 전체에 엄청난 불안정성을 낳게 되며, 종래에는 자기조정 시장의 논리를 강요하려는 경제의 논리와 사회의 자기보호를 관철시키려는 정치의 논리가 서로 모순하면서 사회 전체를 극심한 혼란으로 몰고가며 결국에는 붕괴시키고 만다. 폴라니는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제국주의, 1차 세계대전, 대공황, 파시즘과 공산주의,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문명사의 과정을 설명해 나간다. 
 
21세기와 '거대한 전환'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출간된 지 65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사회 과학 전반과 역사학에 있어서 중요한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칼 마르크스는 시장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그 작동 법칙의 내적 모순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아예 폐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시장 자본주의 특히 금융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서 그것을 국가의 적절한 개입으로 조절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폴라니는 그보다 시장 경제란 현실에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며, 거기에 담겨 있는 인간, 자연, 화폐가 상품에 불과하다는 상품 허구는 단지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착각하는 일종의 상상이요 매트릭스일 뿐이라고 갈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의 방향 또한 시장 경제를 폐절하거나 국가에 의한 적절한 개입 등으로 그저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도 시장도, 이 사회라는 실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를 시장에 묻어버리려 하거나 국가에 묻어버리려하는 짓은 모두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방향은 사회라는 실체와 거기에 담겨 있는 인간의 자유와 가치와 이상을 틀어쥐고서, 국가와 시장이 그러한 목적에 복무할 수 있는 기능적 제도로서의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폴라니가 제시하는 사회 변혁의 방향이 될 것이다. 
 폴라니는 아마도 20세기의 끝무렵이 되어 다시 인간 만사와 세상 만물을 상품으로 바꾸어 상품 시장과 금융 시장을 전 지구적으로, 그것도 19세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와 깊이와 강도로 벌이자는 소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전 지구를 덮게 될 것임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겪은 오늘날 약 30년간 전 지구적으로 자행된 상품화(commodification)는 어쩌면 다시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전 지구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세계 경제의 조직 원리였던 금본위제가 하루 아침에 붕괴하고 그를 이어 거대한 전환의 급류가 터져나와 전 지구를 바꾸어 놓은 바 있다. 
 오늘날 지구적 경제의 조직 원리인 지구적 자본 시장의 자기 균형 원리는 지금 심한 의심과 불신을 받기 시작했으며, 어쩌면 이것이 다시 급격하게 무너지는 날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급류가 다시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폴라니의 이 저서는 동시대인들보다는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읽히도록 쓰여진 책인지도 모른다. 시장 경제의 유토피아라는 매트릭스에서 깨어나 우리 이웃과 자연을 바로 보고 바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회 실체의 복원도 우리를 위해 그가 일생을 준비한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필자소개>
 196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캐나다 요크대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로는『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소유는 춤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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