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 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 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공감과 성찰로서의 문학적 상상력과 인문학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한국문학의 새로운 코드

  문학적 상상력과 관련한 원론적 논의들이 최근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학의 새로운 코드로서 감 성 이나 윤리 혹은 치유 등의 항목이 조명을 받고 있 으며 더불어 공감 이나 성찰 등의 속성 역시 재론되 고 있다. 과연 한국문학의 새로운 코드로서 감성, 윤리, 치유 등의 항목을 설정하는 것이나, 공감, 성찰 등의 담 론을 내세우는 것이 시의적절하며 문제적일 수 있는가? 왜 이런 항목들이 설정되었으며 과연 새롭다고 할 수 있 는가? 사실 문학의 본질이나 속성과 관련하여 감성, 윤 리, 치료 등도 그렇지만 공감, 성찰 등은 그리 새롭지 않 고 차라리 익숙한 항목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 익 숙해서 다소 낡은 듯한 느낌까지 주는 담론들이다. 문학 개론이나 문학원론 같은, 이제는 그런 제목이 있던 시절 도 있었구나 싶은 구식의 수업 교재에나 나옴직한 용어 들이다. 한 마디로 문학에 대한 원론적 논의를 할 때 우 리는 감성, 윤리, 치유, 공감, 성찰 등의 용어를 두루 만 나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원론적 논의들이 왜 지금 다 시 제기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 우선 점 검해보는 것이 논의의 출발을 자연스럽게 할 것으로 판 단된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인문한 국지원사업의 몇몇 주제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 업에 참여 선정되어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는 인문학진흥을 위한 인문치료학 을,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은 소통, 치유, 통합의 인문학 -통일의 인문적 비전과 한국 인문학의 세계화 를, 전남 대학교 호남학연구원은 세계적 소통 코드로서의 한국 감성 체계 정립 을, 그리고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 소는 마음인문학-인류문명정신의 새로운 희망 등을 각 각의 대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 인문한국지원사업은 결국 치료 , 소통 , 감성 , 마음 등을 각각의 어젠 다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 어젠다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코드로서 감성이나 윤리, 혹은 치유 등의 항목을 설정하거나 공감, 성찰 등의 속성에 대해 재 론하고 있는, 최근의 문학적 상상력과 관련한 원론적 논 의들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물론 인문한국지원사업의 몇 가지 어젠다가 이 분야에 대한 최근의 연구 동향을 전적으로 함축하고 있다고 보 기는 어렵다. 또한 이들을 문학적 상상력과 관련한 원론 적 논의들과 직접적으로 연결지어 접근하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저 단순히 우연 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우연이 라고 하더라도 그 우연이 겹치면 그것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 겼던 덕목들이라 굳이 사유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원론적 항목들이 마치 새로운 어젠다인 것처럼 다시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언제부터인가 문학의 본질 이나 필요성, 혹은 쓸모에 대해 과연 정말 그런가 하는 회의와 재점검의 필요성에서 이런 질문들이 나오게 된 것은 아닐까?

 

  인문학의 위기와 대응

  감성, 윤리, 치유 등의 항목이나 공감 성찰 등의 담론 은 문학적 상상력과 관련하여 그리 새롭지 않은 게 사실 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들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시대 에 이제 우리가 본격 진입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아직은 확실 하게 도래하지 않은 것 같았던, 문학의 위축, 위기, 몰 락, 죽음 등의 불길한 담론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생각 들과 함께 근본적으로는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발버둥 을 그 가장 깊숙한 저변에서 발견하게 된다. 감성, 윤리, 치유, 공감, 성찰 등의 항목은 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에 맞닿아 있는 기본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문학 의 역할과 관련하여 문학과 생태, 문학과 치료, 문학과 인문학 등의 논의가 활발해진 것도 바로 이러한 불길한 징조의 직접적인 도래에 대한 저항적 반응인 것처럼 여 겨지기도 한다.

  문학이나 인문학의 위기론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질 중심과 신자유주의 풍토의 횡행 속에서 인 문학은 진작부터 도전과 위기 속에 내몰려 있던 처지였 다. 원래 인문학이나 문학은 고급문화이거나 예술로서의 권위가 나름대로 인정되는 영역이었지만, 대중문화의 폭 발적인 팽창으로 인해 이러한 풍토 역시 거의 사그라진 상태였다.

  이런 얘기가 반론으로 제시될 수도 있겠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지자체나 도서관 등에서 빈번하게 열리는 각종 인문학 관련 행사들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 심 혹은 참여 열기를 보면 인문학의 미래가 그렇게 어두 운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고 말이다. 우선 겉으로 보기에 인문학은 적어도 한국의 시민 사회에서는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문 학과 관련하여 사회에서의 풍요와 대학에서의 빈곤이라 는 모순된 현상을 설명하려면 좀 더 본질적인 접근이 필 요할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시장 경쟁 시대에 아무런 실 용성과 효용성을 가지지 못하는 철 지난 학문이라는 인 식이 팽배하고, 또 한편으로는 현대의 정해진 사유의 틀 에서 벗어나 새로움과 창의성을 대변하는 지적 행위로 그 수요가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스티브 잡스 (Steve Jobs)가 인문학을 언급하면서 갑작스럽게 그 수요 가 폭발적으로 창출된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인문학에 대한 작금의 이중적인 태도는 문학에 대한 태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인문학이 이중적인 태도 속에서 고투하며 생존해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듯이 문학 역시 그 실용성이나 효용성이 특히 의심받는 속에서도 인간의 삶에 필요한 인문학적, 예술 적 소양의 하나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생존을 모색해야 할 것 같은 것이다. 문학의 새로운 코드로서 감성, 윤리, 치료 등을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생존의 현실을 말 해주고 있는 것 같아 자못 서글프기도 하다. 공감이나 성 찰의 덕목에 대한 재론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한국문학은 지금 겉으로 풍요로워 보이지만 그 풍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풍요가 아니라 소비사회의 전형적인 패턴으로서의 풍요와 과잉일 뿐이 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로 설명 할 수 있다. 문학이 그저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으로 소비 되는 풍토의 만연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 중의 소비상품으로 간주될 운명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해 서 그 안에서 겨우 존재하는 방식으로라도 생존하려는 몸부림까지 스스로 포기랄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의 위 기가 논의되는 시대에 이러한 생존 방식이 서글프더라도 말이다.

 

  문학의 본질로서의 공감과 성찰

  여기서 새삼스럽지만 문학의 본질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 가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우리를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 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질문으로 이끌어간다. 문학 의 본질로서 성찰과 공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고전적 이면서도 보편적인 논의라고 할 수 있겠다. 공감이란 용 어는 문학뿐만 아니라 윤리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도 집 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철학에서는 이성중심주 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공감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찰이 란 자기동일성을 기초로 자신을 돌이켜보고 깊이 생각하 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을 통한 공감과 성찰의 기능에서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학치료의 가능성도 살펴볼 수 있다. 문 학치료란 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쓰기/읽기 과 정을 통해 치료 대상자의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호 전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치료가 문학 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학치 료는 이제 철학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과 함께 그리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널리 통용되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들을 포괄하여 인문치료나 예술치료라는 보다 광범위한 용어까지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치 료 라는 의미를 의학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고자 하는 시각에서 보면, 문학치료는 다른 인문치료나 예술치료 등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 가능성이나 효용에 있어서 의문이 있다. 문학치료학 역시 학문으로서의 토대가 더 다져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실제 사례 연구도 더 이뤄져 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문학의 이러한 치료적 속성에 주목하면 문학치료에서 문학텍스트는 독자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생산자 자신에 게도 치료의 과정과 모형이 될 수 있다. 문학치료에서 중 요한 것은 읽기/쓰기를 통한 참여 당사자의 정서적 반응 이라는 점에서 시인 작가 등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문학치료사이자 치료의 대상자로서의 역 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창작자 자신 의 내적 상처를 치료하는 양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 례로써 가령 백석의 일련의 시편들을 들 수 있다. 조심스 럽지만 모든 문학은 자기서사의 성찰을 보여줄 때 가장 문학답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감과 성찰의 역할 역시 증대된다. 가령 백석의 일련의 북방시편은 작가의 자기 서사에 기반한 창조적 작품 서사가 다시 작가 자신의 자 기서사의 변화가능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 능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비단 백 석의 경우만이 아닐 것이다.

 

  문학과 인문학의 존재 방식

  여기서 문학이 예술이자 인문학의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말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술이자 인문학 의 이중적 성격이란 말에서 이른바 문학의 윤리를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공감과 성찰로서의 문학적 상상력이 갖는 특성과도 연관된다. 문학적 상상 력은 예술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문학 적 상상력은 감정이나 정서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인 영역에 속하지만, 그 최종 귀결은 삶에 대한 어떤 가 치나 태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영역이기도 하 다.

  특히 한국에서 문학은 인문학적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그 이유를 동양적 전통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필 수도 있겠지만, 특히 20세기의 식민지 경험과 국토 분단, 사회적 혼돈과 이념의 대립, 산업화과정에서의 부정적 징후 등 근현대사의 질곡과 관련시킬 수도 있다. 문학은, 혹은 문학마저도 당위로서의 삶의 윤리를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있어 문학은 심미적, 쾌락 적 속성보다는 도덕적, 실천적 속성이 강했던 것이 사실 이다. 그래서 문학은 예술의 차원이라기보다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와 가치에 더 무게가 얹혀 있어, 때로 진지하고 때로 엄숙하기조차 했다.

  문학은 자기 성찰을 향할 때 가장 문학답다. 그 성찰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것이 윤리의 강박에 사로 잡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겨우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일 것이다. 여기서 겨우 라는 부사가 갖는 의 미는 여러 가지이다. 그 역할에 대해 내세울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의미도 있고, 내세울 수 있더라도 표 나게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있고, 표나게 내세워봐야 빈 수레처럼 소리만 요란할 것이라는 뜻도 있으며, 그렇 지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공감과 성찰로서의 문학적 상상력은 새롭거나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그 위상과 역할에 대한 관심의 확대는 인 문학에 대한 최근의 갑작스러운 수요와 상당 부분 관련 을 맺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위기 속의 발버둥이라는 저항 적 반응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인문학의 위기가 일상 화된 시대에 놀랍게도 인문학 관련 강좌나 프로그램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원래부터 문학을 포함하여 인문학 은 그렇게 위기에 간신히 대응해 가는 사유의 과정으로 존재하는 영역일 것이다.

 

강연호 교수(시인, 문예창작학과)

<필자 소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대문학이론학회 회장, 국어문학회 부회장 역임. 계간『문예연구』 편집 주간, 계간 『시와 정신』 편 집위원.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주요 저서> 『한국 현대시의 미적 구조』,『시창작이란 무엇인가』 (공저) 등과 시집으로 『비단길』,『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기억의 못갖춘 마디』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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