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없다면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인간의 마음을 얻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멧돼지를 잡으려면 멧돼지처럼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먹이는 무엇인지, 멧돼지가 좋아하는 집터는 어떤 곳인지, 멧돼지가 다니기 좋아하는 길목은 어떤 길목인지, 멧돼지가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멧돼지가 먹이활동을 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은 언제인지 등등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멧돼지 사냥꾼에게 총을 잘 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냥꾼 자신이 멧돼지가 되어 멧돼지처럼 생각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기술은 없을 것 같은데요. 기술 속엔 진심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사람의 마음'을 열매라고 한다면 그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꽃병의 꽃은 보기엔 화려하지만 뿌리가 없으니 기껏해야 며칠을 살아낼 뿐입니다. 하지만 땅 속 깊숙이 뿌리내린 꽃나무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뿌리만 있다면 적절한 시기에 꽃은 피어나고 열매는 맺히기 때문입니다.

   깊이 생각하려면 '생각의 도구' 필요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봐."
   대학시절, 지도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교수님은 제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끌어내길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거듭 생각해보았지만 끝끝내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급적 오랫동안 많이 생각하는 것이 깊이 생각하는 걸까요? 많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이 많지만, 많이 생각한다고 반드시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를 보면 오랜 시간 동안 거듭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단지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단지, '생각의 횟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해보세요."라는 말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도구를 최대한 이용해보세요."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생각의 도구'들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생각의 도구'들을 재구성해 가장 좋은 방법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구성할 수 있는 '생각의 도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입니다. 내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의 도구'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생각의 도구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필요한 만큼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의 효과는 없겠지만,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도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앞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그것을 거울삼아 뒷집도 문단속을 할 테니까요.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도 '생각의 도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사다리가 필요하고, 맛있는 피자를 만들려면 오븐이 필요합니다. 맛있는 원두커피를 만들려면 커피 머신이 필요하고, 원유에서 석유를 얻으려면 도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생각의 도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생각의 도구'가 어떤 방식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지 먼저 설명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개하는 '생각의 도구'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생각의 도구 
   봄날이었습니다. 시내의 한 카페에서 지인인 철학자를 만났습니다. 철학자는 나의 상상력을 테스트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재미있는 문제를 냈습니다. 그도 책에서 읽은 것 같았습니다. 철학자가 제게 낸 문제를 여러분께도 말씀드릴 테니 함께 풀어보시죠. 문제입니다.
   뚜껑이 없는 그릇에 꿀이 담겨 있습니다. 꿀의 단 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습니다. 꿀의 주인은 개미로부터 꿀을 지키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방문 밖으로 나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세숫대야에는 손가락 한 마디정도가 잠길 만큼 물이 차 있었습니다.
   주인은 꿀이 담긴 그릇을 세숫대야 중앙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짐작컨대 꿀 주인은 개미를 향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이 놈들아, 내가 이겼지. 너희들은 사람을 이길 수 없어."
   꿀 주인의 말을 듣고 개미들이 기죽을 리 없습니다. 개미들은 꿀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일제히 세숫대야를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숫대야 안쪽까지 기어오른 개미들은 몹시 난감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맛있는 꿀이 있었지만 꿀을 먹으려면 꿀 주인이 세숫대야 안에 만들어 놓은 강을 건너야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앞발을 담가 보기도 하고 더듬이를 담가보기도 했지만 개미들은 도무지 강물을 건너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개미들은 수영을 전혀 못하니까요. 어린 시절 종이배에 개미를 실어 시냇물에 띄워본 사람들은 개미가 수영을 전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물에 빠진 개미는 방향을 못 잡고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다가 힘이 빠지면 죽습니다.
   꿀 주인의 아이디어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는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을까요?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개미를 이겼습니다. 물 앞에 서서 쩔쩔매는 개미들을 바라보며 꿀 주인은 웃음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개미들은 불가능을 넘어 기어코 꿀이 있는 곳까지 갔습니다. 철학자가 저에게 낸 상상력 테스트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개미들은 어떻게 꿀이 있는 곳까지 갔을까요? 여러분도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이 문제의 답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상상력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상상력의 한계를 인정해야 했으니 난감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있으신지요? 잠시 시간을 드렸으니 이제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숫대야 안에서 강을 만난 개미들은 강을 건널 수 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습니다. 강물이 개미들을 막았지만 개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개미들은 방향을 돌려 세숫대야를 빠져나왔습니다. 세숫대야를 빠져나온 개미들은 일제히 벽이 있는 곳으로 줄을 지어 걸어가 한 마리씩 두 마리씩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개미들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상상이 되시는지요? 천장까지 벽을 기어오른 개미들은 천장을 거꾸로 매달려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개미에게 거꾸로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개미들은 천장의 어느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을까요? 개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꿀이 담긴 그릇으로 정확히 다이빙할 수 있는 지점이었습니다. 개미들은 잠시 아래를 보다가 꿀이 담긴 그릇 속으로 일제히 다이빙을 시작했습니다. 개미들의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개미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철학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느 책에 있는 이야기인지 철학자에게 묻질 못했어요. 물었더라면 여러분께 이야기의 출처를 말씀드릴 수 있었을 텐데요.
   꿀 담긴 그릇 속으로 개미들이 다이빙하는 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주인의 얼굴은 틀림없이 죽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기한 광경에 웃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개미가 이겼습니다. 꿀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게임에서 개미가 이긴 것입니다. 개미의 상상력이 꿀 주인의 상상력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예상하신 것처럼, 꿀맛은 보았지만 개미의 삶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개미들은 끈적끈적한 꿀의 늪을 빠져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요. 결국 이 게임에선 모두가 패자입니다. 개미떼가 빠져 있는 꿀을 먹을 수는 없으니 꿀 주인도 패자이고, 꿀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 개미들 역시 패자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가요? 이 이야기를 통해 제가 느꼈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개미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은 많아 닮아 있습니다. 어떤 면이 닮았을까요? 이야기에 나오는 개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인간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인간은 대부분 이성적인 선택 대신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격해진 감정을 못 이겨 더 좋은 선택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극단적인 말이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꿀 속으로 다이빙하는 개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꿀 속으로 다이빙하는 개미 이야기'를 '생각의 도구'로 기억하고 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단 한 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극단적인 말을 하려는 순간, '꿀 속으로 다이빙한 개미'가 생각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처럼 '생각의 도구'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도구'는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지요.
   다음에 들려드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좋은 '생각의 도구'가 되어줄 수 있길 소망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철환(작가)

 

   <필자 소개>
   소설과 동화를 쓰는 작가이며 풀무야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작품집으로는『연탄길』과『위로』등 총 23권이 있다.『연탄길』은 뮤지컬로 만들어져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소극장창작뮤지컬상'을 수상했으며, 동화『따뜻한 콜라』가 중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KBS 1TV <아침마당 목요특강>,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에서 강연했고,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했으며,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 온 <연탄길나눔터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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