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신문방송사는 지난해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3박 4일간 북경, 연변, 백두산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2016 신문방송사 해외연수기는 총 3회에 걸쳐 게재된다. /편집자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지난 하계 방학기간(6월 22일~6월 25일) 중에 중국 연수를 다녀왔다. 북경, 연변, 백두산 일원을 주요 방문지로 했으며, 특히 우리대학과 연변대학 간에 진행되고 있는 북방연구소의 현황 취재가 주요 목적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첫 번째 여행지인 북경 일원의 연수기를 게재한다.
지난 6월 22일 새벽 2시 30분경,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중국의 심장' 북경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새벽에 출발했음에도 공항에 도착할 즈음엔 이미 환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1시간 30여 분 간의 비행. 연수단이 도착한 북경공항 풍경은 살짝 탁해진 공기를 빼고는 우리나라와 흡사했다. 그러나 각종 전광판과 표지판이 중국어로 제작되어 있는 걸 보고 중국에 도착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북경공항은 이용객이 전 세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큰 공항이란다.
  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만리장성이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만리장성은 지구 밖에서도 보인다고 하는데, 찾아본 결과 실제 길이는 6,350Km이지만, 폭이 10m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만리장성 안에 입장하기 전에 살짝 불안했다. 만리장성 안은 사람들로 꽉 차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만리장성 안에는 사람들이 적었다. 이에 안심하고 만리장성 위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높은 산 능선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장성들이 어우러지면서 장관을 이루어냈다. 이 풍경을 담아내고자 사진 셔터를 정신없이 눌렀는데, 풍경이 좋아서인지 사진이 전부 만족스럽게 찍혔다.

 

  모택동이 쓴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비석의 글귀를 뒤로하고 만리장성을 내려오던 중 성벽에 여러 나라 언어로 쓰인 무수히 많은 낙서를 발견했다. 그중엔 한글 낙서도 많아 괜히 기자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 낙서돼 있는 만리장성의 성벽

  점심시간이 되어 북경 외곽에 위치해 있는 중국의 현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건물은 2층 건물로 규모가 굉장히 커서 놀랐다. 1층은 도자기를 비롯해 여러 장식품을 팔고, 2층이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우선 2층에 올라가 식탁에 앉았다. 음식의 모양과 생김새는 한국 음식들과 비슷해 보였다. 실제로 중국 음식은 향신료가 강하고 소문대로 기름기가 많았지만 다들 잘 먹었다. 배가 고픈 탓이었으리라.
  천안문과 자금성을 관람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천안문은 북경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 교통체증이 심각했다. 천안문은 경비병들이 삼엄하게 배치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모든 출입구에는 보안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어, 가방과 몸을 전부 확인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천안문 사태' 이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란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6월 4일 공산주의 체제의 부정부패에 맞서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다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처참히 진압당한 사건이다.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광장 안은 모택동 주석 기념관, 인민 영웅 기념비, 인민대회당 그리고 각종 박물관이 있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린 천안문이 앞에 있었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제1대 주석으로 지금의 중국을 있게 한 인물로, 중국인들에게 국부로 추앙을 받고 있다.
  천안문 안으로 들어가 단문과 오문을 지나자 자금성이 나왔다. 자금성은 원래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의 태조 황제 홍무제가 원나라의 궁전을 모방해 남경에 지었다. 그러나 홍무제 사후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를 몰아내는 중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영락제는 북경에 궁전을 짓도록 해 14년 만에 지금의 자금성을 완공했다. 이후 명나라부터 청나라까지 24명의 황제가 이곳에 머물렀다. 자금성의 구조는 크게 외조와 내정으로 이뤄졌다. 외조는 황제가 국사를 돌보는 곳이고, 내정은 황제가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내부에 들어서니 건물들이 전부 붉은색과 금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궁전의 규모는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넓었다. 연수단 일행 대부분이 관람하는 중에 다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녁식사 후 왕푸징 거리의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기자는 중국에 가기 전, 야시장에 들를 기회가 온다면 전갈 꼬치 먹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살아서 꿈틀거리는 전갈을 보고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이리저리 가게를 둘러보다 어떤 분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다른 행인이 먹다 남은 음식을 그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을 봤다. 야시장을 밝힌 조명 뒤편에 드리운 그림자의 모습 같았다.
우리 연수단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북경역이었다. 북경역에서 장춘행 기차를 탄 후 다시 장춘역에서 연길행 기차로 갈아타야 하는 일정이었다.
  북경역 입구는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볐다. 표를 끊고 역 안에 들어가 기차를 기다리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곤해 보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물론 그중엔 신문방송사 연수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의 열차는 이동시간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열차가 침대칸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 침대칸에도 종류가 있는데,'잉워'는 3단 침대칸이고 침대 또한 딱딱하다고 한다. 그리고 '롼워'는 2단 침대칸에 부드러운 침대를 가리킨다. 신문방송사 연수단이 이용할 열차는 '롼워'였다. 짐을 풀고 바로 2층 침대에 몸을 눕혔다. 처음으로 누워보는 기차의 침대칸, 더욱이 이곳을 중국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무척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웅장한 만리장성 벽의 수많은 낙서들, 활기찬 천안문 광장에 삼엄한 경비병, 화려한 야시장 뒤편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 화려한 북경의 모습에 숨겨진 얼굴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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