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산업혁명과 인간 생활의 변화
 1780년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의 등장이 촉발한 제1차 산업혁명은 석탄·섬유 산업(방적기)과 물류혁신(증기선, 증기차)이 중추였으며, 인류의 수천 년 농업 중심의 생활을 확연하게 상공업 쪽으로 이동시켰다. 1860년대 전기 에너지 활용이 계기가 된 제2차 산업혁명은 석유, 자동차, 전화, 기계 산업이 주도하였고,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시작된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대량생산 체제가 그 특징이라 할 것이다. 이때부터 생산과정에서 기계에 의한 인간의 소외 문제가 무겁게 토론되었다.
 1960년대 '디지털'이라는 명칭과 함께 등장한 '제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시대'을 연 배경이라 하겠는데, 로봇, 컴퓨터 등 '생각하는 기계'가 그 중심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생각하는 기계'란 종전까지의 기계가 인간의 손발이 하는 일의 보조자 내지는 대행자였다면, 인간의 두뇌 기능을 대신하는 기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때(Dartmouth, 1956)부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인더스트리 4.0(I4.0)' 또는 '제4차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는 관점에 따라서는 제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소로 꼽는 만물환지능통신(AICE)과 그를 매개로 한 디지털 초연결 사회 그리고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범용화, 무인운송수단(자율주행자동차, 드론, 항공기, 보트)의 개발, 스마트공장 또는 3D프린팅에 의한 맞춤생산, 이러한 생산소비양식으로부터 파생할 주문형 경제 내지 공유경제 방식은 아직은 인간이 기계를 부리는 단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야 종사자들이 2030년대로 예상하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속화돼 바이오프린팅, 자가변형기기가 등장하고, 합성생물학에 기반을 둔 사이보그가 출현하면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 더하여 미구에 맞춤형 아기, 초인공지능(ASI)까지 출현하면 그때 이 세계는 더 이상 '자연인간'의 세상이 아닐 것이다. 이쯤 되면 인간에 의해 제작되고 조종 받던 로봇이 정교화를 거듭해 마침내 스스로 로봇을 제작하고 스스로 조작하고 조정하여, 독자 세계를 구축하는 한편 인간을 제압하는 국면이 도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이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은 자연인인 '우리의 마지막 발명'으로서, '인간 시대는 끝'이라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종전의 제3차 산업혁명까지는 '혁명'이 인간의 의식주 양식의 급변을 뜻했다면, 제4차 산업혁명에서 '혁명'은 인간 개념을 급격하게 변화시켜, 인간 또한 '하나의 생각하는 기계', 그것도 상당히 열등한 기계임을 확인시키는 문명의 변환이 될 수도 있다. '동물성' 다시 말해 생명성이 기계성으로 해독됨으로써 '이성적 동물'이나 '이성적 기계'가 동질 내지 동격의 것으로 이해될 것이니 말이다.
 
   현대 문명과 '인간' 개념의 혼란
 근대의 다수의 '과학적 사실'들은 전통적인 인간관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인간' 개념의 본질을 뒤흔드는 것은 자율성에 대한 회의이다.
 전통적인 인간 개념에서 인간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도 인간 존엄성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인간의 인격성이다. 그런데 자율성이란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스스로 세운 그 법칙을 준수하는 자기입법능력과 자기규제능력, 곧 자유의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능력을 가진 것을 정신이라고 일컬으니, 인간은 이름하여 '정신적 존재자'로 이해된다. 그러나 근대 문명의 형성과 함께 '정신'은 두 방면에서, 즉 한편으로는 정치사회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에서 협공을 받았다.
 근대 문명의 핵심적 요소는 시민사회와 과학기술이라 할 것이고, 시민사회의 토대인 민주주의와 과학기술의 기초인 자연과학은 근대인의 최고 성취라 할 것인데, 이 둘은 '정신'의 희생을 대가로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이념에서 출발하며, 주권재민은 투표권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투표권은 '1인 1표'로 실현되며, 이때 '1인'은 '하나의 몸'을 단위로 한다. 게다가 의사결정을 다수결에 맡김으로써 민주주의는 상대주의 기조에 서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본래적으로 자유롭다고 선언하면서 주장한 첫 번째 자유의 권리가 '신체의 자유'이다. 민주주의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신체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인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의 가치는 주권자인 개개인의 의론을 통하여 정해진다는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정신'적 존재자라기보다는 '신체'적 존재자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인간임은 그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는 보통의 생각과 상충된다. 그런데 이런 상충에서 자연과학은 민주주의 기조의 편에 선다. 자연과학이 이해하는 자연 세계의 사물들과 사건들은 모조리 인과관계 가운데 있으며, 그러니까 자연 안에 자유로운 존재자 곧 '정신'이란 있을 수 없다. 인간도 자연물들의 인과관계 속에 있는 하나의 물체일 따름이다. 이렇게 되면 물체들 중 하나로 간주되는 인간은 더 이상 행위의 주체, 인격으로 납득될 수가 없게 된다.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상대주의는 보편적이라는 이성의 위상에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현대 과학이 제기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의구심은 입법적 이성의 지위를 흔들리게 한다. 이성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개념이 혼란에 빠졌다.

   포스트휴먼과 인간성 문제
 20세기 후반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의 부상으로 하나의 물체, 물질조직으로 간주될 상황에 처한 인간 앞에 21세기 초부터 '유사인종(posthomo sapiens)'의 출현 가능성마저 높아지면서 인간(homo)이 한낱 자연물인지 그 이상의 어떤 품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더욱더 격화되고, 인간 위격(位格, humanism)의 근본이 뒤흔들리는 국면이 빚어지고 있다.
 자연인도 로봇이나 사이보그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계적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개인의 복제도 가능해져 한 개인을 동일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자연인이 이때까지 그의 자율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근거로 주장했던 '존엄성'의 하나의 지반을 상실한다. 여기에 초인공지능은 고사하고 인간의 평균적 지능 수준에 이르는 인공지능의 개발과 그에 상응하는 의생명과학기술의 진보만으로도 인간의 삶의 방식에는 격변이 일어날 것이다.
 곳곳에서 '영생(永生) 프로젝트'가 생겨나 사람들의 불사 욕구를 부추기고, 그것도 산업화할 공산이 크다.    [생명과학(life sciences)이 기업화하면 제약회사가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체 인간은 어느 지점까지 의생명과학기술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가? 만약 의생명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할 수 있는 한 생명을 이어간다면, 자연인으로 태어난 인간도 하나같이 종국에는 인공인간 내지 사이보그로 생존할 가능성이 증대할 것이다. 인류의 영생을 기원하는 것과 개개인이 영생할 것을 바라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각 생명체는 각기 자연 수명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개개 자연인간도 자연 수명 정도까지만 의료의 보조를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이와 더불어 인간의 유전자 변형·복제·성형 시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다. 이를 인간의 기술능력이 미치는 한 허용하면 자칫 우생학적 조치가 성행할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이 역시 인간의 자연 수명 내에서 인간의 자연적 인체를 보전하는 수준 정도까지만 시술은 허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넘어서면 자칫 인체 플랫폼화의 추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시술에 의해 자연인이 변형되어 가면 각종 '프랑켄슈타인'의 파생과 함께 '동일인' 개념이 파기되고, 이로부터 숱한 윤리적, 법률적,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드디어는 '인간 존엄성' 개념 자체가 해소될 염려 또한 크다.
 그러나 한낱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니라 '인공마음(Artificial Mind)'이나 '인공인간(Artificial Human)'이 출현하는 국면이 되면, 그리고 그것들이 단일한 인공적 소통기호체제(언어)를 가진 채 등장한다면, 인간은 훨씬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인간과 다름없는 감정과 지성을 갖추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과 다르게 대해야 할 이유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권 부여 문제에서부터 저러한 유사인종의 독립국가 인정 문제까지도 숙려해야 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연인간이 저러한 단일체제 아래서 움직이는 유사인종에 예속되는 문제 상황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설왕설래 중에 인간에 대한 관점 변경을 종용하는 포스트휴먼의 사회에 직면해서 우리가 재확인할 일은 무엇보다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며, 마련해야 할 것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인간 문명사회 진보의 틀 안에서 관리하는 규범이다.
 
 충분한 대비책이 마련되기 전에라도 인공지능과 로봇, 생명공학 등은 이른바 '가치중립적'이라는 과학기술과 이윤 창출이 최대 관심사인 투자자와 기업, 산업 진흥과 국가 방위를 우선시하는 정부에 의해 급속도로 진흥될 것이다. (그 와중에 악한이 끼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국면에서 근대 문명의 총아인 과학기술의 진보 끝에 도래할 '포스트휴먼 사회'가 야기하고 제기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응답을 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문명'은 가치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이성의 힘밖에는 없다. 무릇 이성은 언제나 시대의 물음에 답하면서 새 길을 걷는다. '이성'은 말이자 대화이고 정도(正道)가 아니던가.
 
 
 
백종현(서울대 명예교수, 한국포스트휴먼학회 회장)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전) 한국철학회 회장
주요 저서 :『독일철학과 20세기 한국의 철학』,『시대와의 대화: 칸트와 헤겔의 철학』외 다수

 

주요 역서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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