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소통이며, 다른 하나는 분노이다. 어찌 보면 타인의 외부환경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환경이며, 이에 따른 자신의 처지가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현상이다. 정치적으로 대통령의 탄핵으로 표면화되었다. 한쪽에서는 환희를,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분노를 일으키는 사회 갈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타인은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서로가 손가락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통은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모두들 타인이 나의 생각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고 있다. 모두들 자신의 합리적 생각을 타인의 불통으로 이해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가 있으며, 나의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항시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정의가 타인의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 해소를 위하여 소통 혹은 권력의 행사를 하는 것이다. 많은 피를 경험한 서구 사회는 갈등 해결의 문제를 사회적 소통과 제도를 통하여 조정을 하여 왔으나,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갈등 해결을 거리에서 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금력이 지배하는 사회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 방식은 국제 정세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조선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길 때와 유사한 국제 정세에 처하고 있다. 두 개의 슈퍼파워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일본은 경제력과 문화력을 바탕으로 다시 군사 강국으로 일어서려 하고 있다. 유럽의 각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통합으로부터 분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도 독트린으로 방향을 잡고 있으며, 중국도 과거의 조공국과 같이 주변국들을 다루고자 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의 변화와는 무관한 것과 같은 태도로 내적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서로의 잘못된 점을 힐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태도가 우리의 눈으로 타국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으며, 경제 지도가 변화하고 있다. 남탓을 하느라 자신의 인생과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갉아먹는지를 알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 속하여 있다. 세계가 우리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 시장에서 군사, 경제, 그리고 문화력 없는 나라는 정의를 이야기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이 목소리를 크게 낼 광장도 없으며, 목소리를 함께 낼 나라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나만의 큰 목소리로, 나만의 눈으로 타국에 소통을 이야기하는 나라로 전락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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