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 인문학진흥사업단≫에서 추진하는 <융복합 인문치료 전문가 양성팀>, <융복합 문화유산 콘텐츠 전문가 양성사업팀>,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 전문가 양성팀>, <글로벌 동아시아 문화 콘텐츠 전문가 양성사업팀>, <중국 역사 문화 콘텐츠 전문가 양성사업팀>, <영미 역사 문화 콘텐츠 전문가 양성사업팀> 등 6개 팀의 해외 연수가 겨울 방학 동안 실시됐다. <원대신문>은 각 사업팀의 연수 성과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

  

▲ 타이완 정치대학교 최말순 교수의 특강 중에 찍은 기념 사진

 

 지난 2월 9일, 우리 <글로벌 동아시아 문화 콘텐츠 전문가 양성팀>은 겨울 방학을 이용해 타이완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3박 4일간 진행된 이번 연수에는 총 14명(교수 1명, 인솔자 1명, 학생 12명)이 참가했으며, 타이완의 역사적 장소들을 돌며 견문을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타이완(台灣)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나라보다 중국(中國)을 먼저 떠올린다. 그것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타이완은 중국과는 다른 독립된 국가이며, 심지어 타이완은 독자적인 타이완 달러(台를 쓴다. 이러한 것들을 본다면 타이완은 '오롯이' 존재하는 나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타이완에 가게 되면 그곳이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우펀(九 거리의 홍등이나 한국의 중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테이블, 길거리를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한자로 쓴 간판처럼 중국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완이 중국과는 다른 곳이라는 점을 느끼게 됐다. 바로 야자수가 자라고, 항상 푸름을 간직한 에버그린-EVERGREEN-의 나라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부터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타이완은 중국적인 이미지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타이완은 중국보다 앞서 수많은 서구 나라들의 발길이 거쳐 간 곳이다. 대표적으로 홍마오청(紅毛城)에 가게 되면 우리는 9개의 국기를 볼 수 있는데,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일본 등의 국기이다. 이들 나라들은 홍마오청 지역을 차지했던 나라들이다. 이처럼 타이완은 수많은 나라들의 식민지 같은 존재로 지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타이완인은 스스로를 오래전부터 타이완에서 살아왔던 사람들(本省人)과 1949년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철수해 왔던 사람들(外省人)로 구분하기도 한다.
 타이완 사람들은 타이완이 중국과 비슷한 듯하지만, 중국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타이완도 일본의 식민지로서 살아온 과거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타이완 총독부 건물은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가장 뚜렷하게 느끼게 해 준 상징물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총독부가 세워졌지만, 한국은 1990년대에 총독부 건물을 폭파시켰다. 그러나 이와 달리 타이완에는 여전히 일본의 총독부 건물이 남아 있어, 그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 타이완 고궁국립박물관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또한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부산물이자, 우리나라에서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이완에도 위안부와 관련된 흔적이 있다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놀랄 거라고 생각한다. 타이완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야 했던 상처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타이완에는 2016년 완공된 '아마의 집(阿家-和平與女性人權館)'이 있다. 아마는 대만어로 할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스스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밝힌 50여 명의 할머니들의 이름이 금속관에 새겨져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2천여 개의 이름 없는 금속관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차마 자신의 피해 상황을 밝히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의미한다. 전시된 금속관 조형물은 찬란한 시절을 비참하게 보내야 했던 그들을 위로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과 관련된 사진과 글, 그리고 직접 수를 놓은 그림들이 그들의 과거를 말해 주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가 끝나고 독립을 한 타이완은 차후, 공산당에서 쫓겨난 국민당 장제스(蔣介石)가 총통이 되고, 그 과정에서 들고 온 중국의 유적, 보물들을 전시한 '고궁국립박물관'이 있다. 고궁국립박물관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그곳에서는 중국의 오랜 역사적 보물들을 볼 수 있으며, 그 보물들을 보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도 관광객이 찾아올 만큼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타이완에 있는 대학 중에서 총 세 곳을 방문했는데, 진리대학(眞理大學), 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 그리고 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이었다. 진리대학은 외국 선교사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서양식 대학이다. 옥스퍼드 대학과 같은 대학을 만들고 싶어 했던 선교사는 서양식 건축물의 정면에 'Oxford University'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타이완대학은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즉 일제강점기 당시의 경성제국대학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완대학은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은 국립 타이완대학교라고 불리며 많은 타이완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명문대학이다. 마지막으로 정치대학은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정치와 관련된 학과가 유명한 대학이다. 수많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을 배출한 대학으로 앞서 소개한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타이완의 중고등학생들이 선망하는 대학 중의 하나이다.
 위와 같은 내용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이완은 중국과 일본의 흔적이 뒤엉켜 있는 곳이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타이완을 살펴본다면, 단순히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타이완의 대중적인 종교는 불교와 도교로, 거리 곳곳에서 마치 일본의 신사를 떠오르게 하는 사당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불교와 도교가 혼합되어, 불상이 있는 곳에 위패가 올라갈 수도 있는 곳이 또한 다름 아닌 타이완이다. 집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타이완은 밤이 되면 위패를 모신 집에서 연등에 불을 밝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을 단순히 중국이나 일본의 모습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을 홍콩과 더불어 쇼핑하기 좋은 관광지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타이완이 우리와 같은 상처를 갖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타이완은 여러 차례 외부 세력에 의한 식민 지배를 겪었으며, 조선보다 먼저 일제의 식민지가 된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타이완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타이완을 생각했을 때 그저 지우펀 거리에서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는 홍등 같은 것들만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잊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을 단순히 아시아, 동아시아에 위치한 한 나라로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과거와 역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을 넘어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 그리고 우리와 관련된 나라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오직 우리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올바른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없으며, 그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아집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이완과 같이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나라를 바라보며 그들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다시 반성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필자는 <글로벌 동아시아 문화 콘텐츠 전문가 양성팀>에서 주선한 타이완 연수를 통해 위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단순히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다시금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김혜인(국어국문학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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