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한 번쯤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함께 손잡고 밤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밤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했을 것이고, 동네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슈퍼 앞 평상에서 먹은 적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과 함께 걷던 길거리에는 항상 북적이고 시끄러운 음악소리의 프렌차이즈점이 들어섰고,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슈퍼는 점점 높아지는 임대료를 못 이겨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사라졌다.
 슈퍼가 있던 자리에는 임대를 알리는 종이만이 황량하게 붙어있다. 그마저도 금방 세련된 인테리어를 가진 프렌차이즈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이 자리를 차지한다. 전주 한옥마을의 모습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최근 몇 년 사이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아 해가 진 밤까지도 소위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옥마을 안에 들어선 상점의 대다수가 유명 프랜차이즈 가게와 카페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아시나요?
 위에서 언급한 한옥마을 이야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 못하고 쫓겨났다'거나 '전셋값을 견디지 못해 서울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이 현상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본래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처럼 도시 재건축 등으로 인해 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중·상류층이 낙후됐던 구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고, 이에 따라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
 사회가 발전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은 다른 나라들은 각자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캐나다에 위치한 몬트리올시는 지역 주민의 화합을 통해 문제를 극복했다. 지역민들은 주택협동조합을 구성해 주거공용작업실을 각 조합원들에게 배당했고, 적절한 가격의 임대료를 책정해 공간을 구축하고 공동운영체제로 운영을 시작했다. 주거 공간과 작업 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두 가지 용도가 가능한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단순히 도심의 자산가치가 오르는 것이 아닌 특정한 목적으로 장소의 용도가 변화하거나 재개발로 인해 도심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해 생기는 것이다. 도시에 개성을 부여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대학생들의 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대학가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동시에 기숙사에 들어오는 외국인의 수도 늘어 한국 대학생들이 기숙사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한다. 자취생들이 늘어나자 건물주들은 가격 담합으로 자취방 가격을 올려 그 부담을 대학생들이 고스란히 떠맡게 됐다. 간접적이지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 격'이다.
 홍익대학교 앞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홍대의 상권 중 하나인 상수역 주변이다. 상수역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음식점 건물의 건물주만 살펴봐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알 수 있다. 서울시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183개 중 외부에 거주하고 있는 건물주 비율은 2006년 1:1에서 2016년에는 두 배까지 치솟았다. 때문에 상가임대차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처하는 방법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정비하기 위한 도시재생 뉴딜정책, 임차인들을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최소화시켜 나가고자 공공 주도형 도심재생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공청회'를 개최해 임차인이 안정적 경영활동을 지속하고, 이로 인한 영업적 가치를 보장받기 위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차츰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서울특별시 성동구청 역시 2015년 9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주민협의체가 지역공동체 생태계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성동구청은 건물주들을 수차례 찾아가 '상생'이라는 가치를 인식시키고 설득했다. 꾸준한 설득 끝에 건물주 62%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자율협약에 동참했다.
 전주시도 지난해 젠트리피케이션 상생협의회를 구성·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지역상생 협력에 관한 기본조례'를 체결했다. 조례에는 상권보호를 위해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임대기간과 임대료 안정, 과도한 인상 없이 5년 이상 장기임대가 가능하도록 상생협약을 체결한 건물주에게 상가건물의 내·외부 수선에 필요한 일부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주시는 과거 한옥마을의 치솟는 임대료를 잡기위해 건물의 용도·구조 변경 등을 규제했으나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임대료 탓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새롭게 마련한 '첫마중길'에서 공동체 활성화와 지역문화조성을 위한 전주시의 노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해외사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빠른 시간 내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됐고, 우리나라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면 임차인과 건물주 둘 다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 현상은 지역과의 상생을 생각하지 못한 우리들의 적나라한 맨얼굴일지도 모른다.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젠트리피케이션. 하지만 어원에 맞지 않게 서로 상생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끝은 싸늘하게 빈 상가들만 남는 폐허가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먼 미래에 다가올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상업적으로 변질된 도시는 지속적인 사랑을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고, 발전된 도시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지역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때다.
 
 
  김하영 기자 hamadoung13@wku.ac.kr
 강민주 수습기자 hellomylady97@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