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성당면에는 교도소 영화세트장이 있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의 실화를 영화화하기 위해 지었다. 지강헌은 비정한 세상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다. 돈이 있으면 법 위에 군림하고, 가난하면 죄인이 되는 '더러운 세상', 익산시에서 교도소 세트장을 조성할 때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깡패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 익산은 인구 30만의 중소도시지만 폭력조직 6개, 조직원은 800여 명에 이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리 오라니, 네가 깡패냐?'는 말. 익산의 옛 이름, 이리에서 시작됐다.
 깡패는 '깽판(gang판)'을 벌인다. 질서가 없는 곳에 깡패가 기승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텍사스에도 깡패가 많았다. 인생 로또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술집이 들어서고 무법자가 활보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정의의 보안관이 등장한다. 물론 서부영화 속 이야기다. 야구선수 추신수의 소속팀 이름이 '텍사스 레인저스'인 것은 이 때문.
 1912년 호남선과 군산지선의 철길이 개통되자, 일제는 '황무지 개간'을 목적으로 익산에 빈민들을 이주시킨다. 조선의 토지수탈 총본산인 동양척식회사의 지사가 이리에 세워지고, 그 힘을 빌려 만경강 직강공사와 대간선 수로공사를 벌였다. 사람들이 늘어나자 군청, 헌병대, 우편소가 이리로 옮겨 왔다.   1936년 무렵에는 목천포 비행장을 통해 경성-이리 간 정기항공편도 이용할 수 있었다. 철인동에 주둔했던 군인들 덕에 유흥가도 번성했다. '10리에 펼쳐진 갈대밭에 사람 사는 집을 찾을 수 없던(十里蘆花不見巢)' 이리가 호남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이리 깡패의 역사도 이때부터다. 학생들은 깡패들이 무서워서 인근의 배산으로 소풍도 못 갔다. 깡패는 스스로 '주먹쟁이'라 불렀다. 이리 '주먹'들은 역전, 터미널, 극장을 근거지로 삼고, 발달된 교통편을 이용하여 타지로 세력을 뻗치곤 해서 '조폭의 고장'이란 악명을 날렸다. 한때 '이리에서 왔다'고 하면 경계하는 이가 있었다고. 그래서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할 때 '이리'에 연상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자 '익산시'로 정했다.
 익산의 '주먹'은 '깡'이 셌다. 군부독재 시절 공수부대장(준장)과 맞짱을 떴을 정도다. 어느 날 '원스타'는 역전다방에 갔다. 차를 핑계로 예쁜 마담을 보러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주먹'과 시비가 붙게 되었다. 갑자기 '주먹'이 '원스타'에게 물을 끼얹었다. (마치 못마땅한 예비 며느리의 얼굴에 물을 뿌리는 것처럼!) '주먹'의 선빵을 시작으로 삽시간에 다방 안에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원스타'는 작전상 부대로 후퇴. 잠시 후, 연병장에 공수부대가 집합했다. 그리고 익산시내는 단검과 몽둥이를 든 군인들로 발칵 뒤집혔다. 상점의 유리는 산산조각 나고 사내들은 발견 즉시 짓밟혔다. 깡패가 따로 없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발발하자 익산 사람들은 당시 군인들의 잔혹함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광주를 피로 장악한 전두환은 전국의 조폭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내 버렸다. 공수부대장의 뒤끝 때문이었을까?
 영화 <재심>은 2000년에 발생한 익산의 '약촌오거리 택시운전기사 살인사건'이 배경이다. 변호사 준영에게 도움을 주는 이는 익산의 '논두렁 건달'이다. 의리 있는 건달에 비해 죄 없는 시민을 패는 경찰이 오히려 조폭같이 묘사된다. 가난하고 못 배웠다는 이유로 인권을 유린하는 공권력이 곧 깡패인 폭력의 시절이었다.
 인질극을 벌이던 탈주범 지강헌은 유언처럼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경찰이 전해준 비지스의 노래 'Holiday'를 들으며 자살한다. 노래를 들으며 그는 고향을 떠올렸을까? 유년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의 영원한 휴일을 꿈꿨으려나? "내 머리에 부드러운 베개를 괴어주세요. 오, 당신은 언제나 휴일, 휴식 같은 사람이에요."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김수영, '거대한 뿌리' 부분)
 
  (다음 호에 계속)

  박태건 교수(교양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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