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점기, 조선음식 말살정책에도 익산에는 최고의 맛집이 버티고 있었다. '조선 맛 보이는 우리 요리점'(동아일보 1930년 1월 10일)이 바로 '해신관'이다. 해신관은 우리 전통요리를 지킴으로써 '조선인 체면을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다. 익산은 우리나라의 4대 청동기문화권이자 지리적으로 산, 들, 바다가 인접하여 음식문화가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익산의 대표음식이라 꼽을만한 것이 딱히 없는 것은 이상하다.

 "내게는 입과 위만 있는 것 같소." 푸줏간의 문이나 보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아쉬움을 달랜다는 『도문대작』의 저자 허균이 한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품평서로 꼽히는 이 책을 허균은 익산에서 귀양살이 도중에 썼다. 귀양살이로 깊어진 향수를 강릉과 서울의 음식을 떠올리며 달랬던 허균. 전주나 부안의 맛에 대해서 '침이 나게' 칭찬하던 그가 정작 『도문대작』을 집필하며 맛보던 '익산의 맛'에 대해선 함구한 것은 왜일까? 정말 익산은 입맛 잃은 이들의 유배지였나?
 기록상 익산의 가장 오래된 음식은 서동설화에 기록된 '마'다. 서동이 마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을 정도니 천오백 년 전부터 마는 주요 식재료였던 셈. 송수권 시인은 마를 '향토적 에로티시즘을 가진 음식'(『남도의 맛과 멋』)이라고 평한다. 음식의 에로티시즘이란 한 접시에서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것. 금기를 넘어 생의 충동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 마였다는 말씀이다. 최고의 맛을 느꼈을 때 전라도에서는 '개미 진다'고 말한다. '개미 있는 음식'은 혀끝에서 느끼는 맛을 넘어 정서적인 만족감까지 포함한다. 수천 년간 익산에는 마가 개미 지게 팔렸다.
 익산군이 이리시와 통합되기 전에는 황등에 군청이 있었다. 황등 5일장엔 전국의 장사꾼이 모여들어 흥성했고 최고급 석재인 황등석이 생산되어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였단다. 밥집을 찾으려면 군청 앞으로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황등에는 맛집이 많았다. 황등비빔밥의 역사는 이때부터다. 황등비빔밥은 비벼서 내주는 것이 특징인데, 빨리 먹고 고된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을 위해 귀한 소고기를 고명으로 얹었다.
 전라북도에서 즐겨 먹는 콩나물 음식도 익산에서 발달했다. '콩나물 김치'는 아삭아삭한 콩나물의 식감과 무침의 시큼한 맛을 살린 것이 특징. 강변 사는 사람들의 풍토병인 간디스토마의 토혈을 예방하는 데 콩나물이 특효가 있어 강 주변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익산의 웅포면은 인근의 성당면과 더불어 고려시대부터 쇄곡선이 다녔던 물류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의 미식가들은 웅포 8미(味)로는 ①곰개의 젓갈김치 ②금강의 농어 ③새멀의 우어회 ④나루멀의 팔진주 ⑤진소의 백일주 ⑥강변의 해장국 ⑦지종천의 참게 ⑧해창의 뱅어를 꼽는다. 우어를 뼈채로 썩썩 썰어 매콤 새콤하게 무친 우어회는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을 정도다.
 익산에서 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식당은 순대국밥집이다. 특히 오소리감투에 솔(부추)를 듬뿍 얹어 먹는 국밥은 (꿀꺽!) 일품이다. 백중날이면 들일하는 사람들이 추렴해서 돼지를 잡고 정자나무 아래 큰 솥을 걸어 한나절 고아 먹었단다. 땀 흘리며 훌훌 들이키는 돼지국물 맛도 진했겠지! 그 외 민간에서 즐겨먹던 음식으로 범벅이 있다. 익산지역에 가장 많이 불렀던 민요도 역시 '범벅타령'이다. "정월에는 만두범벅, 이월에는 송편범벅, 삼월에는 냉이범벅, 사월에는 쑥범벅, 오월에는 느티범벅, 유월에는 보리범벅, 칠월에는 밀범벅, 팔월에는 수수범벅, 구월에는 호박범벅, 시월에는 무시로범벅, 십일월에는 팥죽범벅, 섯달에는 긴떡범벅, 이만하면 열두 달, 범벅이 만족하구나"
 음식 이야길 하니 어렸을 적 가족들과 두레밥상에 앉아 밥 먹던 생각이 난다. '혼밥'이 유행인 시대, 음식은 고향과 가족의 다른 이름인가 보다.
 이번 회로 연재를 접는다. 부족함이 많아 양해를 구한다. 지면을 허락해 준 <원대신문사>에 감사한다. 익산학연구소에서는 다음 학기부터 <익산학강좌>를 개설할 예정이다. 좋은 분들과 못다 한 이야길 더 하고 싶다. 끝으로 한국전쟁 때 춘포초등학교에 있었던 미군의 오폭사건을 제보해주신 손영미 교수님, 매회 소감을 보내준 이숙향 학장님, 침침한 눈으로 미욱한 글을 읽으셨을 늙으신 아버지께 고개 숙인다. (完)
  박태건 교수(교양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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