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 강좌 <글로벌인문학>, 교양 강좌 <생명평화리더십>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필자가 준비한 강연의 제목과 PPT의 첫 화면은 신영복 선생이 쓰신 '여럿이함께'이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 20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신 분이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한 권의 책을 냈는데, 이 책이 1988년 첫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기며 이 시대의 고전으로 기록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여럿이함께'라는 '붙여 쓴 글씨'로도 확인되듯이 신영복 선생은 글씨체에도 조예가 깊다. 한 소주회사가 신영복 선생이 재직하고 있던 대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처음처럼'이라는 글씨를 받아 제품명에 새겨 넣기도 했다. 신영복 선생은 어려서 할아버지께 붓글씨를 잠시 배웠고, 교도소 서도반에서 글씨를 배우며 서민적 형식과 민중적 내용을 담아낸 독특한 서체를 창안해 발전시켰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이 쓴 글씨는 한 자 한 자가 어깨동무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어깨동무체', '연대체'라 불리기도 했고, 20년 감옥살이에서 얻은 글씨라고 하여 '유배체'라 불리기도 했다. 신영복 선생은 평소 '연대'와 '관계'를 중요시했고, 그의 글씨에도 이런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필자는 재심전문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전라북도 지역에서 발생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은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주었고, 의미 있는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지역 주민들과 언론의 관심, 공론화가 큰 힘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인사드린다.
 재심은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건을 다시 한 번 판단 받는 것이다. 1, 2, 3심 심급제를 두고 있고,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확정판결을 뒤집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시민들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며 필자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 주고 있다. 그런데, 재심사건 해결과정에는 필자의 노력도 물론 있었지만, 여럿이 함께 했던 연대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도 있었다. 이번 강연은 필자가 진행했던 재심사례를 언급하며, 사건마다 함께 한 연대의 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근에 필자가 진행했던 재심사건이 <재심>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내용은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다. 사건 개요를 말하자면, 2000년 8월 10일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살 소년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소년은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차배달을 다니던 아이였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사건 현장을 지나다가 누군가가 뛰어가는 장면을 봤다. 소년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던 경찰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경찰은 뒤통수만 봤다는 소년의 진술을 무시하고, 몽타주를 그리게끔 하거나 여관에 데려가 폭행을 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수사를 했다. 소년은 경찰의 강압수사에 굴복했고, 사람을 죽였다는 허위자백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3년이 지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가 군산경찰서에 접수된다. 진범과 진범을 숨겨줬다는 친구가 자백을 했다. 자백을 받아낸 형사는 군산경찰서 황상만 형사반장이었다. 그런데, 사람 죽였다는 자백을 하는데도 검사는 이들을 구속하지 않았다. 석방된 후 이들은 정신병원에 함께 입원하고 자백을 번복한다. 검사는 2006년 조용히 이들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다.

 황 반장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을 뒤집는 수사를 했는데, 당시 다들 말렸다. 법원이 유죄로 확정한 사건인데다가 수사를 잘못한 경찰과 검사, 오판한 판사까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들 황 반장이 다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뛰어들었다. 황 반장은 사비를 들여가며 재수사를 했다. 수사팀은 해체되고 아무런 지원이 없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1년 동안 재수사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정의를 보지 못하고 지구대로 좌천되는 등 불이익을 입었지만, 황 반장의 재수사 기록이 15살 소년의 억울함을 밝히는 의미 있는 자료가 되었다. 재심재판과정에서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로 인정받았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지난해 11월 17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된다. 16년 만이다. 같은 날 13년 전에 풀려난 진범, 황 반장 앞에서 자백을 했던 그 사람이 용인에서 체포됐다. 지금 강도살인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6년 만에 정의가 실현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재심사건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9년 2월 초 전북 완주 삼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도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구조가 유사하다. 지적장애인, 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폭행 등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한 사건이다. 판결이 확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 1999년 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부산지방검찰청이 제보를 받고 재수사를 진행했다. 수사과정에서 진범들이 잡히고 자백까지 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건이 전주지방검찰청으로 옮겨졌고, 당초 잘못된 수사를 했던 검사가 다시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 검사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진범들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고, 이들을 풀어줬다. 검사는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되어 자신의 잘못이 묻힐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풀려났던 진범이 16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 '내가 진범'이라고 고백했다. 진범이 나타나 자백하는 상황에서 검찰과 법원은 재심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이 사건도 지난해 10월 28일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됐고, 검사는 항소를 포기했다. 경찰, 검찰, 담당 판사가 사과를 했다. 잘못된 수사와 오판이 있었던 사례에서 공권력이 사과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런 정의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진범으로 하여금 세상 밖으로 나와 반성하게끔 한 피해자와 유가족의 관용 덕분이었다. '죄짓고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진범은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했는데도 풀려났다. 풀려날 당시만 해도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고, 자주 악몽을 꿨다고 한다. 연락을 끊고 고립을 택했다. 진범에게도 죗값을 받지 않은 사건으로 인한 고통은 컸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다룬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세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분들의 용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유가족,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밤길을 혼자 다니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하는 피해자. 그런데, 유가족과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큰 상처와 고통을 겪었지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살인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것도 아픈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 현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다. 진범은 지난해 1월 말, 자신 때문에 사망한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사죄의 절을 했다. 진범은 그 자리에서 "내가 저지른 죄가 확실한 만큼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고, 죽을 때까지 반성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피해자는 진범의 사죄를 받아들였다. 평생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살겠다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진범은 그 후 재심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내가 진범이다"라고 증언하며 재심을 적극 도왔다. 이 사건의 정의실현은 사과와 반성 그리고 관용의 힘 덕분에 가능했다.

 필자의 첫 재심무죄사건은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사건이다. 2007년 5월 14일 수원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어린 소녀가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이 소녀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이유로 노숙을 하던 지적장애인 2명, 가출청소년 5명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이 사건 해결과정에도 함께했던 '선한 연대'가 있었다. 노숙인을 돌보는 수원 다시서기센터 김대술 신부님과 가출청소년을 돌봐줬던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선생님들의 수고 덕분에 부족한 필자가 나설 수 있었다. 십 년 전만 해도 공익사건에 대한 열정이 별로 없었다. 공익사건에 충분히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부족한 시간과 노력을 채워준 분들이 신부님과 선생님들이었다. 사건 현장인 수원역과 수원고등학교 현황을 사진 찍어 가져오고, 퇴근 후에 사무실을 방문하여 밤새 사건 기록을 함께 검토하며 문제점을 분석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재심과 무죄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듯 침묵하지 않는 연대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그리고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사건,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재심.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도와준 결과가 아니다. 노숙인을 돌보는 신부님, 청소년센터 선생님들,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은 형사반장, 진범에게 관용을 베푼 피해자와 유족,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용기를 낸 진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하고 수사에 협조했던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고 나서줬기 때문이다. 나서줬던 소시민들의 힘이 연대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잘난 사람들의 호령이 아니라 작고 왜소한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 특별히 거룩하진 않으나 세상을 지키는 소금들의 힘임을 믿는다.

 필자는 지금 27년 전 부산에서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건도 필자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선한 연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가짜 살인범 낙동강 2인조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연재기사를 내보내며 공론화하고 있다. 댓글과 기사 공유로 함께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계속 지켜봐 주길 바란다. 여럿이 함께 하는'선한 연대'의 한 방식이다.


  박준영 변호사(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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