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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마음으로]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로 불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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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1  19: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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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우리 조상은 동굴에 간단한 그림을 그려서 의사를 표현했고, 이후 한자가 들어오게 되면서 지명, 인명 등을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선조들이 우리말을 표기하려 한 방식에 대해 훑어보고, 나아가 세종대왕의 우리말에 대한 인식까지 알아보려 한다. /편집자

 

 지난 호에서는 황산벌[黃山伐, 놀뫼부리-지난 호의 사진 밑에 '황산부리'라고 소개된 것을 바로 잡음], 솝리[어떤 지역의 중심지: '소부리', '서라벌/금성(金城)'과 대응]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우리 선조들의 표기 수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선조들은 한자를 빌려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음으로 읽는 음독(音讀)과 뜻으로 읽는 석독(釋讀)의 방식이 그것이다. 아래의 일본어 자료가 도움이 될 듯하다.
 (1) 山田(야마다), 田中(다나까),
   中日(주니찌), 每日(마이니찌)
 中은 '나까'라 읽히기도 하고 '주'로 읽히기도 한다. 일단 '나까'는 음독이 아니다[석독]. '주'는 우리의 한자음 '중'을 참고하건대 음독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일본어에는 석독과 음독의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한국은 지금 음독으로만 읽지만 지명 표기에는 석독의 흔적이 꽤 남아 있다. '대전(大田)'을 '한밭'이라 하고 '웅진(熊津)'을 '곰나루'라고 하고 '마포(麻浦)'를 '삼개', '춘포(春浦)'를 '봄개'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식으로 생각해 보자.
 '혁거세(赫居世: 블그나이, 붉은해/밝은  해?)'와 같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하자. 한자도 전래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난감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를 후세에 알리고 싶다. 어떻게 할까? 자신과 혁거세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것을 그릴 수 있겠다. 그러다가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마침 한자가 들어와 있다면 어땠을까? 혁거세 친구의 이름은 '개똥'이라 하자. 개똥이의 친구 중에는 '붉은해'도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다. '개'라는 음을 가진 한자는 많은데 불행히도 '똥'이라는 음을 가진 한자는 없다. 그러면 포기를 해야 하는가? 아니다. '犬便[개 견, 똥 변]'이라고 쓰면 된다. '犬便(견변)'이라 쓰고 '개똥'이라고 뜻으로 읽으면 된다. 바로 '개똥'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표기된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개똥이라고 뜻으로 읽었는데 현대인은 음으로 밖에 읽지 않는다. 그래서 '개똥'은 '견변'으로 둔갑한 것이다. '혁거세'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사람들은 '赫居世(혁거세)'라 적고 '블그나이' 정도로 읽었을 텐데 현대인들은 아쉽게도 '혁거세'라고 읽을 수밖에 없다. '붉은해'를 의미하는 당시의 발음은 '블근하이→블그나이' 정도였을 것이다. 바로 혁거세(赫居世)가 불구내(弗矩內)와 병치된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다른 석 자의 한자 둘을 적어 놓고 동일한 음[블그나이]으로 읽는 것이다. 여기에서 '석독'과 '음독'을 생각하면 된다. 불구내(弗矩內)는 그대로 음으로 읽으면 된다. 불구내(弗矩內)의 당시 음은 '블그나이' 정도였다(ㅐ는 '아이'로 ㅔ는 '어이'로 읽혔다). 赫居世는 당시 '븕을 혁/더 븕을(>밝을) 혁', '살 거', '누리 세' 정도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면 '블거누리' 정도가 된다. '赫 븕 居 거 世 누리>뉘'. 차례로 석독, 음독, 석독을 하여 '블그나이/블거나이' 비슷하게 읽혔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어떻든 다른 석 자의 한자 각각은 발음이 비슷해진다. 여기에서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가 아니라 '븕은하이/밝안하이(붉은해? 밝은해)' 정도로 불렸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현대어로 '붉은해'는 연음하면 '불그내'로 읽히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정리를 해 보면 동굴에 그림을 새겨서 후대에 알리려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 표기를 하려는 욕구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犬便[개똥]'과 '赫居世[불구내]' 시대이다. '犬便(견변)'이라 적고 '개똥'으로 읽었다는 뜻이다. 赫居世라 적고 '블그나이/발가나이(붉은해? 밝안해?)' 정도로 읽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표기 인식이었다.
 인명을 살펴보았으니 지명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 선조들의 피눈물 나는 표현에 대한 갈망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개똥이라는 사람이 '새말'에 살았다는 것을 후세에 알리고 싶다. '개똥'이는 '犬便'이었다. '새말'은 바로 '신촌(新村)'이나 '신리(新里)', '신동(新洞)'이 될 것이다[새 신, 마을 촌/리/동].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새말'이 있다. 특정 마을에서 분파되어 나오면 거기가 '새말/새마을'이 되는 셈이다. 가장 많은 지명이 신촌, 신리 등이다. 새말과 비슷한 또 다른 마을 이름으로 '신기(원광대 정문 옆쪽 마을)', 혹은 '신기촌'이 있다. '新基[새 신, 터 기]'라 적고 '새터'라 읽었으며, '新基村[새 신, 터 기, 마을 촌]'이라 적고 '새터말'이라 읽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이다. 서울시 2기 지하철(5∼8호선) 역명은 이러한 석독의 정신과 관계된다. 석관동(石串洞)의 '돌고지', 은평구 신사(新寺)의 '새절', 아현동 '아현(兒峴)'의 '애오개' 등이 유명하다. '애오개'에 대해 설명해 보려 한다. '兒峴: 아이 아, 고개 현'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는 '애고개'인데 ㄱ이 탈락되었다.(어려운 내용이다. y 뒤 ㄱ 탈락) 그래서 '애오개'가 된 것이다. '애오개'는 '아이가 죽으면 버리는 곳'이다. 거적을 덮어 버리는 것이다. 납량 특집 전설의 고향 '내 다리 내놔'의 배경도 '애오개'인 듯하다. 여기에 이르면 '裡里(이리)'를 '이리'로 읽지 않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裡里'의 음과 뜻은 각각 '솝 리', '마을 리'이다. 13세기 향약구급방에는 현대어의 '속'을 '솝'이라 하였다. 裡里의 첫 글자는 뜻으로 읽고 둘째 글자는 음으로 읽으면 바로 '솝리'가 되는 것이다. 자음동화가 되면 자동적으로 '솜니'로 발음되는 것이다. '솝리', '솜니', '솜리'를 발음해 보라. 모두 같음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이것을 '솜리'로 적고 있을 뿐이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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