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중앙의 두 인물이 각각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다 출처 : 바티칸 미술관

 김성태 감독의 깊은 한숨 속에 필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올 것을 직감했다.
레슬링부가 창단 이래 늘 좋은 성적만 거둬온 것은 아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국민들에게 사랑받으며 생겨난 수많은 레슬링부 사이에서, 우리대학 레슬링부는 다른 빛들에 가려져있는 상태였다. 실적을 내지 못하는 운동부를 대학에서 곱게 보기는 힘들었다. 결국 대학에서는 레슬링부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경제적인 지원이 줄어들자, 장학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아졌다. 심지어는 대회 참가비가 부족해,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만 선발해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대회에 나가 경험을 쌓아야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경험을 쌓기 위해 온 대학인데,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전할 기회마저 줄어들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떤 선수는 스스로 참가비를 마련해야 했다. 김 감독이 눈여겨봤던 1학년 A 선수는 평소 훈련을 빠지는 일이 없는 성실한 선수였다. 그는 레슬링 대회에 선발될 정도로, 그 당시 기준으로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였다. 이렇게 얻기 힘든 기회를 앞두고 그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김 감독은 '빠질 리가 없는 앤데'하는 생각에 짐작 가는 곳이든 아니든 이곳저곳 찾아다녔고, 결국 A 선수를 찾아냈다. A 선수는 미꾸라지를 팔고 있었다.
A의 옆에 앉은 김 감독은 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A 선수는 대회에 나갈 때마다 미꾸라지를 팔아 직접 대회 참가비용을 마련해왔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자신의 봉급을 모아서 A 선수의 등록금을 대신 내줬다고 한다. 그의 장래성을 봤던 투자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맡은 선수가 미꾸라지를 팔아 대회비를 마련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던 걸 몰랐던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을까. 진실은 아마 김 감독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진실은 아무래도 좋다. 결과적으로 A 선수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으니까. 2학년이 된 A 선수는 그 전과는 달라졌다. 그야말로 피, 땀, 눈물을 딛고 일어선 A 선수는 일류 선수로 탈바꿈했다. A 선수는 88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리스트를 꺾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힘들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숨통이 조금 트인 상태다. 예산 문제로 선수 확보마저 어려웠던 초창기와는 달리,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점 더 많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대학 레슬링부는 7~8년 전부터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전국 대학 레슬링부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며, 실제로도 많은 고등학교 선수들이 우리대학 레슬링부를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김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대학 레슬링부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지 위상이 높아서만은 아니었다. 선수들의 부모님과 만나 이야기하면, 선수들이 우리대학 레슬링부에 들어와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인성이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평소 무뚝뚝하던 자녀가 인사도 잘하고, 말수도 느는 등 전에 비해 훨씬 밝아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성격 변화의 이유로 '발표'를 뽑았다. 훈련이나 대회가 끝나면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키는데, 자신이 부족했던 점이나, 이번에 잘 되었던 점을 찾아 발표를 하게 한다. 이를 통해 다른 선수들과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발전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필자는 이 이야기에서,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아카데미(Academy)에서 지식을 나누는 철학자들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리고 레슬링 경기를 펼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모습이 그들과 겹쳐 떠올랐다.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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