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범 기자

 

  지난 방학 중에 대구를 방문했다. 볼 것이 없다고 손사래 치던 지인의 말과는 달리, 살면서 처음 와본 대구는 전주 촌놈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이곳에 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곱창 골목을 거닐던 중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무민 원화전>에 대한 광고였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택시를 타고 전시장을 찾아갔다. '무민'은 토베 얀손 (Tove Jansson, 1914~2001) 여사가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전쟁의 공포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평화와 유머'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며 나온 캐릭터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캐릭터들 사이로 전시물에 대한 안내 문구가 적혀있었다. 쓱 훑어보고 지나가던 발걸음을 다시 돌리게 만드는 글이 적혀있었다. "눈은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이글루를 만들면 따뜻해져. 새하얀 것 같지만 분홍빛을 띠고 어떤 때는 파래. 세상 무엇보다 부드럽다가도 돌멩이보다 단단해질 수 있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무민의 겨울 中>"
  자연의 이치에 대해 설명하듯 당연하게 적혀있는 문구였지만, '눈'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도 문제없이 이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내가 평소에 차갑다고 여기던 것'에 대한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때쯤, '글'은 차갑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잉크일 뿐이었다. 글이 차가운데 신문이라고 따뜻할 리는 없었다.
  신문사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냉랭함은 단지 날이 추워서였을 뿐만은 아니었다. 고작 네 명 남짓한 기자들이, 스물 정도의 인원이 들어가는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편집장 또한 차가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에 관련된 이야기를 제외하면 그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항상 끝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말을 걸기도 부담됐다.
  약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싸늘했던 편집장과는 오고 가는 원고 메일과 술잔 속에서 그의 온기를 찾을 수 있었고, 글 또한 주인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관심을 먹고 자란 글쓰기에서는 성장하는 즐거움을 수확할 수 있었다. 글로 이뤄진 신문 역시도, 이제 그가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해야 달래줄 수 있을지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눈으로 이글루를 만든 것이리라.
이글루가 따뜻한 이유는, 어쩌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는 곳과 살지 않는 곳의 온도 차이가 확연하듯, 이글루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 온도와 신체적 온도를 가리지 않고 그저 따뜻하게, 못해도 차갑지 않게는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또한, 새로운 학생들도 들어왔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은 '눈'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눈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일단 다가가라. 그리고 만져봐라. 이윽고 눈이 벽돌 모양으로 변하면 차곡차곡 쌓아라.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부단히 쌓아나가다 보면, 어느새 아늑한 이글루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선배들은 1학년들에게 무엇이든 시도해 보라고 조언을 던져주곤 한다. 기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대학생으로서의 첫해는, '스스로 하기'를 배우는 해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기에는 대체적으로 정해진 길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은 시간표부터 스스로 짜는 곳이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것에 길들여진 아기 새라면, 1학년은 둥지에서 벗어나는 시기다. 하루아침에 둥지에서 떠나기란 쉽지 않기에, 조금씩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홀로서기까지 가장 빠르고 힘이 되는 방법은, 동아리 등의 그룹에 들어가는 것이다.
  차가운 곳이라고 긴장하지 말자. 차가운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자. 꾸준히 움직이다 보면 따뜻한 이글루가 될 것이다. 어떤 시작이든 의미 있게 다가올 테니까.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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