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건호 기자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 봤니?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도 대접받는 이유는 팬들이 있어서다. 팬들한테 잘해라". 이 말은 지금은 '예능인'으로 활동하고 과거 농구계의 '국보급 센터'였던 서장훈이 대학 시절 스승 최희암 전 감독에게 매일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서장훈의 농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팬들의 사인과 사진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응해줬다고 한다. 즉, 받은 사랑을 팬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최근 KBS 스포츠뉴스에서 보도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인 거부 영상'은 큰 논란을 불러왔다. KBS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부족한 팬 서비스 의식을 지적하며 프로야구 선수들이 경기 후 팬들의 사인 요청을 무시하는 영상 장면을 담았다. 선수들은 자신들을 응원하고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차에 올랐다. 특히 응원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사인을 받기를 원하는 한 어린 소년이 사인을 받지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슬퍼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야구장에 찾아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도 보고 좋은 추억을 기대했던 어린이 팬은 큰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었던 장면이었다.
  이외에도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여러 번 지적돼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국무대에서 화려한 성적을 남기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모 선수는 몇 년 전 팬들의 사인요청을 외면하고 전력질주 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또 다른 선수는 "내 사인볼이 중고 시장에서 판매가 되어 희소성이 떨어질까 봐 안 해준다"고 발언해 팬들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모든 선수의 팬서비스가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전 야구선수인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는 생전 처음 보는 팬에게도 장시간 토크가 가능할 정로도 팬 서비스가 몸에 배어,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투머치 토커'라는 별명까지 듣고 있다. 일례로 중국 베이징 우케송 스타디움에서 시범경기를 막 끝낸 후 사인을 요청하는 한국 팬들을 중국 공안과 LA 다저스팀 관계자들이 막아서자, 박찬호는 이들에게 강력히 항의했으며 나중에 사인회 자리를 별도로 마련해주겠다는 확인을 받고 경기장을 떠난 적이 있다.
  박찬호 선수의 이런 모습은 팬서비스로 비난을 받았던 야구선수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또한, "내 사인볼이 거래 되는 게 싫어 사인을 잘 안 해준다"는 모 선수의 말에 다른 모 선수는 "사인을 더 많이 해줘서 내 사인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면 된다"고 말을 해 많은 팬에게 사랑을 받았다.
  야구선수를 포함한 스포츠선수들은 공인이다. 사람들 앞에 많이 노출되고 대중들 앞에 서는 직업이기에 사람들은 공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팬들의 바람은 큰 게 아니다. 팬들의 사인 요청을 매몰차게 무시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사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정중하게 사양하면 팬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다음을 기약할 것이다. 팬 없는 프로스포츠는 없다. 팬들이 있기에 선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야구선수로서 높은 인기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몸값은 구단이 주는 것 같지만, 그 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결국 팬들이 지불하는 것이다. 단순히 운동을 잘하고 몸 관리를 철저히 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만이 '프로의식'의 전부는 아니다. 프로는 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데 존재 의의가 있고, 그들이 매일 착용하는 장비보다 애지중지해야 할 것이 바로 팬들의 존재다.
  스포츠애호가들은 선수들에게 팬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무시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선수들이 '팬들이 있기에 선수가 있다'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홍건호 기자 hong7366@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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