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근간에 무심코 인터넷을 뒤지다가 '처먹-', '쳐들-'은 무조건 외워야 하는 것처럼 방송을 하는 블로그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이런 사람들이 국어는 어렵다고 이상한 소리들을 한다. 하기야 필자가 몇 년 전 이들 유형을 공무원 시험에 최초로 출제했으니 아직 많은 사람이 알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공무원 수험서에도 해당 단어가 잘 설명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중 매체의 자막은 물론 톡에서는 맞는 표기보다 틀린 것이 더 많을 정도이다. 우선 다음 말들 중 무엇이 맞는지 판단해 보자.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관련되는 말들을 매우 많이 사용한다.
  (1) 가. 곰탕을 (처먹는다 쳐먹는다)
    나. 차를 (처박았다 쳐박았다)
    다. 국제적 감각이
      (뒤처진 뒤쳐진) 후보
    라. 믿음을
      (저버린다 져버린) 사람
 옳은 표현을 가려내려면 첫 글자 '처/쳐', '저/져'가 '치-' 또는 '지-'와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쳐' 또는 '져'로 쓸 때에는 반드시 '치-', '지-'와 관련되는 경우여야 한다. '설렁탕에 후추를 쳐서 먹는 것'은 '쳐 먹는 것'이고, 며칠 굶은 사람이 설렁탕을 허겁지겁 먹는 것은 '처먹는 것'이다. 전자는 '후추를 치고', '후추를 치니'처럼 '치-'와 관련시킬 수 있다. '공을 치고', '공을 쳐서', '장구를 치고', '장구를 쳐서' 등을 생각해 보면 'ㅣ'와 'ㅕ'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적의 진지로) 쳐들어가다'를 '처들어가다'로 쓰지 않는 이유는 '진지를 치고, 진지를 쳐서' 등과 같은 말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차를 '처박고'를 '쳐박고'로 적지 않는 이유는 '차를 치고', '차를 쳐서'라는 말이 '처박고'의 의미와 관련되지 않기 때문이다. '뒤처진'을 '뒤쳐진'으로 쓸 수 없는 이유 또한 '뒤치-'와의 관련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치-'와 마찬가지로 '지-', '찌-'도 동일한 유형으로 생각하면 된다. '신의를 저버리다'의 '저'를 '져'로 쓸 수 없는 이유도 '신의를 지-'는 것과 관계없기 때문이다. '뒤처져서'에서 '져'는 '뒤처지고', '뒤처지니'라는 말이 있기에 '지-'와 관련되는 것이다.
  (2) 가. 물에 젖어서 종이가 자꾸
      (처져요 쳐져요)
    나. 오늘따라 피아노가 잘 안
      (처져요 쳐져요)
 (2가)의 '물에 젖은 종이'는 '치-'와 관계없다. 사실 위에서 살펴본 '뒤처지다'에서 '뒤'만 빼면 '처지다'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뒤쳐지다'는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사실 '뒤처져서', '뒤처졌다'와 같은 형태를 많이 보면서 살아 왔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박히게 되어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바로 '뒤쳐진'과 같이 'ㅕ'가 어딘가에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뒤쳐진'이 상당히 안정적이라 생각한다. 사실 'ㅕ'는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뒤처쳐서'와 같이 '져'에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는 '치-'와 관련된다. 그러니 피아노를 '쳐서', '쳐도', '쳤다'와 같이 쓸 수 있을뿐더러 '-어지다'가 결합한 '피아노가 잘 쳐져요'와 같은 형태로도 쓸 수 있다. '치+어+지+다→쳐지다', '치+어+지+어+요→쳐져요'와 같은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음 문제를 풀어보자.
  (3) 가. 가방에 책을 자꾸
      (처넣으면 쳐넣으면) 안 된다.
    나. 이익 없이 돈만 자꾸
      (처들이냐 쳐들이냐)?
    다. 그 모자, 만 원
      (처줄게 쳐줄게) 내게 팔아라.
 (3가), (3나)는 앞 형태가, (3다)는 뒤 형태가 옳은 표현이다. '책을 치다', '돈만 치다/돈을 치다'라는 말은 문맥과 관련이 없다. 반면 '가방은 만 원 치고, 펜은 천 원 쳐서 합이 만천 원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이다. 이 경우에는 '쳐'로 써야 한다.
 다음 문제를 풀어보면서 마무리하자. 틀린 것을 둘 골라 보자.
 
 ①화장을 너무 처발랐어.
 ②높이 쳐들린 지붕 위로 햇살이 비친다. 
 ③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라.
 ④거름을 밖으로 처내고 있다.
 ⑤가방에 장난감을 처담고 있다.
 ⑥낙엽을 불에 쳐댄다.
 ⑦가망 없는 사업에 돈을 마구 처댄다.
 ⑧사기가 너무 떨어졌다.
  사기를 쳐올릴 방안을 생각하자.
 ⑨쌓인 눈을 3소대 쪽으로 쳐올리자.
 ⑩주가가 처박혔다.
 
 ☞ 답은 ④, ⑥이다. '거름을 치-', '낙엽을 치-', 둘 다 가능해 보이지만 후자는 '낙엽을 막대기로 친다'는 뜻이 되어야 하는데 ⑥은 문맥상 그런 뜻이 아니니까 '처댄다'로 써야 한다. 참고로 ②, ③의 '쳐'는 '치솟다'의 '치-'와 관련된다. '위로 향하여' 정도의 의미로 파악하면 된다. '눈을 치뜨다'와 관련시키면 된다.
 한편, "이익 없이 돈만 자꾸 처들어 간다"와 같은 표현도 가능해 보이지만 사전에는 '처들-'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등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서울 사람들이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안 쓴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좋다. 사실 '처/쳐'에 익숙하면 사전에 없는 형태도 찾아낼 수 있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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