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속담 중에 '친구따라 강남간다[追友江南]'는 말이 있다. 자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남에게 이끌려서 덩달아 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강남은 어디일까? 서울의 강남? 아니다. 강남은 바로 중국의 양자강 남쪽 지방을 말한다.
 지난 겨울, 《프라임사업 인문학진흥사업단》 <융복합문화유산컨텐츠팀>에서는 문화유산콘텐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우고자 6박 7일간(2017. 12. 30~2018. 1. 5) 중국 강남지역의 문화유산과 박물관 답사를 진행했다.
 강남은 원래 양자강 이남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강소성 남부와 절강성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우리 팀이 갔던 남경과 소주, 항주, 영파, 보타산, 상해는 강남의 대표지역으로서, 우리나라 서해안과 중국 절강성 동해안을 잇는 남방항로를 통해 미술과 불교 등 다양한 문화가 교류했던 곳이다. 이번 답사에서는 고대 한반도와 중국 강남간의 문화교류, 중국문화유산의 활용 방법, 최근 세계박물관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중국박물관의 진시기법 등을 살펴봤으며,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 답사지인 남경의 중화문(中華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건설한 남경성의 성문이다. 세계 최대 고대 성벽이었던 남경성은 총 길이 33.676km 중 3,743m가 남아 있고, 안팎으로 총 31개의 성문 중 취보문과 석성문, 청량문, 신책문만 남아있다. 그중 제일 규모가 큰 것이 취보문, 곧 중화문이다.
 남경은 전국시대 초나라 때부터 명나라 때까지 9개 왕조의 도읍이었고, 북경, 서안, 낙양과 더불어 중국의 4대 고도라 한다.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중화문의 규모는 기대 이상이었다. 육중한 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명대의 무기들이 전시돼 있고, 중화문만의 독특한 구조인 반원형 동굴, 장병동이 보인다. 병사들의 휴식처, 무기고, 전쟁 시 병사 대기소로 쓰였던 총 27개의 장병동은 3천 명 정도의 장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문 위 누각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사람이 다니는 계단 길과 군수 물자를 실은 말이 다니는 마도(馬道) 등 세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성곽에 마도라니… 성벽 위까지 말을 타고 올라가게 함으로써 수고로움을 덜고 전쟁 중에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지혜가 돋보였다.
 성곽 위에는 쉴 수 있는 의자와 기념품 상점도 보인다. 특히 수백 년 전의 유적지에서, 그것도 세계 최대의 성벽 위에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몇 해 전 경회루에서 만찬을 열었다는 이유로 거센 비판여론이 일었던 때를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중화문 성벽 위의 자전거, 문화유산의 활용인가? 무모한 정책인가? 문화유산활용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등등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남경에 이어 운하의 도시, 항주와 소주에 들렀다. 중국 7대 고도 중의 하나인 항주는 춘추시대(B.C.770~B.C.403)때 오(吳), 월(越)국이 도읍을 다투어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탄생시킨 곳이다. 서호(西湖)에서는 명나라 문인 장대(張岱: 1597~1689)가 음력 7월 달놀이를 하며 읊었던 시 '달빛이 희미해지고 여명이 밝아올 무렵 사람들은 비로소 자리를 뜬다. 우리도 작은 배를 띄우고 십리길 연꽃 연못에서 달디 단 잠을 잔다'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았다.
 새해 첫날 찾은 소주의 한산사는 남조(南朝) 양나라 502년에 건립된 고찰로서, 당나라 선승(禪僧) 한산(寒山)이 주석하면서부터 그렇게 불리었다. 지금 남아있는 대웅보전, 나한당, 종루, 비랑(碑廊) 등은 후대에 보수한 건물들이다. 새해 첫날, 경내는 자못 북적였는데, 유독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종루였다. 추운 겨울, 덜덜 떨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워 물어보니, 종루의 종을 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곧 이어 종소리가 들렸다. 아, 이것이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에서 읊었던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울리는 한밤의 종소리'였구나. 1인당 10위안(약 1천 700원)을 내면 종을 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유산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이 아니고 무엇인가.
 항주 영은사와 비래봉 역시 새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영은사는 사찰이 위치한 무림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연관지어 '신선의 영이 깃들었다(靈隱)'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천왕전으로 들어가니 산문을 향해서 가슴과 배를 드러내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미륵보살이 우리를 반겨준다. 중국에서 가장 큰 목조불인 높이 24.8m의 석가모니불이 안치된 대웅보전에는 벽을 따라 이십제천(二十諸天)과 십삼원각(十三元覺)의 도금 신상이 늘어서 있고, 대웅보전 주위의 대전 양측에는 각각 다른 모습의 18나한(羅漢)의 조형이 마치 살아있는 듯 배치돼 있다.
 영은사 참배 후, 건너편의 비래봉으로 향했다. 비래봉에는 오대부터 원대에 걸쳐 조성된 약 300여 개의 불교 조각이 남아있는데, 불상 중에는 명문이 많이 남아 있어서 중국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편년자료가 된다. 비래봉을 대표하는 청림동의 '노사불회도'는 불교신자 호승덕이 정토에 태어나길 바라며 1022년에 불상을 조성했다는 명문도 있다. 총 13구의 부조상 중, 두 손을 양 어깨 높이로 들어 설법인을 취한 본존 노사불상은 도상적으로 처음 나타나는 형식으로, 우리나라 노사나불 도상의 시원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비래봉 답사 후, 서호 부근의 절강성박물관으로 갔다. 여기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뇌봉탑 전시실이다. 뇌봉탑은 975년 오월왕(吳越王) 전홍숙(錢弘)이 후궁 황씨(黃氏)의 득남을 기념하여 세운 8각형의 5층 누각식탑(式塔)으로, 1924년에 무너졌다. 붕괴 당시 탑의 천궁 안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 중 전홍숙이 8만 4천 개를 만들어 여러 탑 속에 넣었다는 아육왕탑이 눈에 띈다. 기단과 탑신, 상륜으로 구성된 탑의 탑신 각 면에는 석가모니 전생 이야기인 불본생 고사 장면이 새겨져 있고, 탑 안에는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해서 보협인탑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충청도에서 보협인석탑(고려, 동국대박물관소장)이 발견되어, 고대 우리나라와 절강성 사이의 문화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답사 6일째, 이번 답사의 하이라이트인 영파(寧波)와 보타산으로 갔다. 절강성 동부의 항구도시 영파는 고대 한반도와 중국 강남지역간의 문화교류 핫플레이스이다. 가장 먼저 찾은 영파박물관은 중국의 건축가 왕슈(王澍)가 신향토주의(新鄕土主義)를 표방하여 만든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람과 태양, 흙이 있는 옥상공간, 면과 선의 흐름이 제각각이면서도 이채로운 조화가 느껴진다. 3만㎡ 넓이에 이르는 박물관에는 7천년 전의 하모도 시대부터 근대 영파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전시 모형과 유물들이 많아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참여하고 몰입할 수 있는 전시기법이 돋보였다.
 중국불교 4대 명산인 보타산으로 가는 날,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한 해 1천만 명이 다녀간다는 보타산은 보제사를 비롯해 해제사, 남해관음대불, 불긍거관음원 등의 사찰이 남아있다. 옛 시인들이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으며,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고 노래했던 보타산은 사실 보타도라는 섬에 위치해 있다. 밤새 내내 배를 타고 갔었던 십여 년 전과 달리 고작 15분 만에 보타도에 닿고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이번에 보타산을 찾은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중심지인 낙산사의 원형이라고 알려진 보타락가산를 실견하기 위해서였다. 설화에 따르면, 862년 일본의 혜악스님이 중국 오대산의 관세음보살상을 모셔가기 위해 영파에서 배를 타고 나섰는데, 지금의 불긍거관음원 근처인 조음동에 이르자 갑자기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조음동에 정박하게 된 스님은 그 후 몇 차례 출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관세음보살이 일본으로 가기 싫어한다고 생각한 스님은 이곳에 불긍거관음원을 지어 관음보살상을 모셨다. 이후부터 이곳이 관음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불긍거관음원을 찾은 날도 역시 겨울답지 않게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다. 파도치는 바다를 보면서, 중국유학에서 돌아와 양양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관음보살의 현신을 보고 낙산사(보타락가)를 세웠던 의상대사가 떠올랐다.
 6박7일의 답사는 상해박물관과 대한민국임시청사 답사로 마무리했다.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직접 보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그런 점에서 '韓·中 文化遺産 交流 現場을 가다'라는 주제로 시행된 이번 답사는 강남의 아름다운 산수와 유구한 역사, 뛰어난 문화뿐 아니라 강남지역과 우리 고대문화의 교류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직접 견학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며, 국외현장답사의 기회를 갖게 해준 프라임 사업단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김정희 교수(역사문화학부)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