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인문학진흥사업단》 <융복합문화유산콘텐츠전문가양성사업팀>에서 주관한 중국 현장 답사연수기(지난 12월 30일~1월 5일까지, 6박 7일)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과 수많은 교류를 해왔다. 프라임인문학진흥사업단의 융복합문화유산콘텐츠전문가양성사업팀은 그 흔적들을 찾아보기 중국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올 1월 5일까지 총 6박 7일의 일정으로, 남경·소주·항주·영파·보타산·상해 지역 일원의 문화유산들을 살펴보았다.
 답사를 떠나기에 앞서 1팀 5명, 총 4조 20명으로 구성된 답사 참가자들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중국 고도의 보존현황', '중국 강남지역의 세계유산 활용현황', '중국 강남과 우리나라의 문화교류', '중국 박물관의 전시기법' 등을 주제로 스터디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답사하게 될 중국 강남지방의 특성과 문화유산들에 대해 좀 더 꼼꼼하게 파악하고 답사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중국답사는 지난 일본답사와 마찬가지로 문화유산의 활용과 그 관리 방법에 대해 살펴볼 뿐 아니라, 각 문화유산이 지닌 의미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문화유산의 현주소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우리가 과거와 마주하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은 중국 남경은 여행의 목적이 아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시작으로, 답사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새기며 버스에 올랐다.

 

 중국에 도착한 첫 날, 중화문, 태평천국박물관, 명고궁 유지를 둘러보았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곳은 바로 태평천국박물관이다. 태평천국박물관은 1951년 태평천국운동 100년을 기념해 개관했는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운동 당시 사용되었던 건물을 재건하여 박물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아쉽게도 우리 팀이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늦어 유물들을 보지는 못했다. 대신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남경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강남의 정원과 첨원을 둘러보았다. 특히 첨원 전체를 두른 조명이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밝게 빛나기 시작하자 그 풍경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다. 태평천국박물관은 박물관으로서도 그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조명으로 정원을 꾸며 볼거리를 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정원 내부에 기암괴석을 배치해 산과 연못을 만들어 그 주변 건물들을 물 위로 반사시켜 그 풍취를 극대화한 모습이 장관이었다.
 둘째 날은 놀라기 바빴던 하루였다. 그것은 바로 중산릉과 명효릉 때문인데, 중산릉의 전체 면적은 약 8만㎢이며 명효릉은 담벽 길이만 22.5㎞라는 데서 그 놀라움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중산릉은 중국 혁명의 선구자라 불리는 중산 손문 선생의 능이고,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명효릉은 명나라의 첫 황릉으로서 명 태조 주원장의 능이다. 주목할 점은 바로 명효릉 입구에 늘어선 문·무관 석상이다. 우리나라 경주에 위치한 원성왕릉, 통칭 괘릉으로 불리는 통일신라시대 능에서도 이러한 석상을 볼 수 있는데, 능 앞에 석상을 세우는 풍습은 중국에서 상·주 시대부터 내려온 순장 풍습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와 중국이 얼마나 문화교류가 활발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셋째 날 둘러본 곳 중에서 호구탑과 한산사가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호구탑은 '동양의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며, 수많은 장식으로 꾸며지고 위로 올라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외형과 탑 표면에 벽돌로 정교하게 만든 까치발이 각 층을 감으며 올라가는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순수한 장식 목적의 탑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호구탑이 기울어진 것을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 신기함을 참지 못하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커다란 크기와 정교하게 조각된 탑의 외관까지 나를 놀라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호구탑을 답사한 뒤 이동한 곳은 한산사이다. 새해 첫 날을 맞아 한산사는 종을 울리기 위해 새해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다른 곳들보다 더 붐볐다. 한산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웅보전 오른쪽에 위치한 나한당 안을 채운 500 나한상이다. 녹나무로 만든 조각상을 도금한 500 나한상은 각각 다른 모습과 표정을 하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넷째 날 방문한 서호 박물관과 절강성 박물관은 특히 유익했다. 우리 연수팀은 우리나라의 박물관과 어떤 점이 다른지 꼼꼼하게 살피며 전시 유물들을 관람했다. 이들 박물관들은 각 전시장마다 다른 색채를 띠고 다른 테마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답사 마지막 날 방문했던 상해 박물관까지 포함해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전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각 유물들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한 전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사를 하며 비단 문화유산만 관람한 것은 아니었다. 다섯째 날의 스케줄을 위해 영파로 이동하기 전, 항주에서 '송성가무쇼'를 관람했다. 송성가무쇼는 남송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계 3대 쇼 중 하나에 속한다. 가무쇼를 관람하는 내내 그 남다른 스케일과 화려함에 넋을 잃었음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퍼포먼스 위주의 극이었으나 결코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연달아 이어지는 군무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송성가무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영파에서의 날이 밝았다. 비가 많이 내려 이동하기 불편했던 하루였다. 물론 그 덕에 운치 좋은 천일각과 아육왕사의 풍경을 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흐린 하늘 때문에 기운이 빠졌는지 모두가 힘들어했다. 이 날 방문했던 영파박물관은 일주일 동안 다녀온 박물관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한상과 불상, 보살상들을 하나하나 조명을 비추어 각 상마다 자리를 만들어 놓은 전시장은 각 상들의 배치가 자칫하면 조잡해 보일 수 있었으나 뚜렷하게 자리를 차지한 덕에 오히려 극적인 효과를 더할 수 있었다.
 영파에서 보타산으로, 우리는 여섯 번째 날을 맞이했다. 보타산은 관음성지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스님의 일화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특히 주목할 곳은 바로 조음동이다. 조음동은 청나라 강희제가 명명한 곳으로, 인도에서 건너 온 한 스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겠다는 일념 하에 조음동에서 3일 간 정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지 않자 몸의 일부분을 잘라 바치는 '연지공양'을 올리게 되는데, 연지공양을 올리는 순간 인도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해진다. 이 소문은 빠르게 중국 전역에 퍼져나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음동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음동에서 죽으면 관세음보살이 극락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지는 일도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지자 청나라 장군이었던 진구사와 지방 관리사 이분은 '금지사신연지(禁止捨身燃指 : 몸을 바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내용)'비를 세우기에 이른다. 조음동은 또한 우리나라 양양에 위치한 낙산사와 지리적으로 유사해, 의상대사가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양양 앞바다에 낙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답사의 마지막 장은 상해가 차지했다. 그 중에서 단연 인상 깊었던 곳은 '상해임시정부청사'였다. 임시청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해 보여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다. 이 좁은 곳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의 그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 했다. 당장에라도 저 아래층에서 작전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그 현장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좁고 가파른 계단들로 이어진 층들과 작은 공간들까지 전부 머릿속에 아프게 다가왔다.
 이번 답사에서 본 수많은 문화유산들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혼자서는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에 가서 직접 눈으로 문화유산을 느끼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우리나라와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중국의 과거를 체험한 기분이 들 정도로 한껏 그곳에 녹아있었던 것 같다. 이런 답사의 기회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힘들기만 할 줄 알았던 연수기간들은 돌이켜보니 온통 근사한 경험이었고 좋은 일로 가득했다. 새로운 문화유산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주일의 대장정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안소연(역사문화학부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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