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는, 5월에 개최됐던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이 몇 년간의 장고 끝에 오랜만에 가지고 돌아온 신작 <버닝>이 수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국내 언론이 한동안 들끓었다. <버닝>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한 것으로, 제작 단계부터 유아인과 스티븐 연의 캐스팅과 강동원의 합류 가능성으로 많은 기대를 불러모았었다. 그러나 칸이 선택한 것은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인 <어느 가족>이었다. <어느 가족>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반면 <버닝>의 수상은 불발됨으로써 국내의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은 큰 실망에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영화제의 폐막과 함께 국내 영화관에 걸린 <버닝>은 흥행면에서도 처참한 실패를 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영화를 본 관객이나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와 별도로 영화학자로서 조금 주관적인 의견을 개진하자면, 칸에서의 수상 여부와는 상관없이 나에게는 <어느 가족>보다는 <버닝>이 오히려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고레에다 감독과 이창동 감독의 영화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전자를 조금 더 좋아하는 입장에서 <어느 가족>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은, 일본의 거장이 이제 '자기복제'의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미 10년도 더 전에 <아무도 모른다>(2004)로 칸영화제 경쟁부문(남우주연상)에서 수상하며 전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을 때부터, 일본 사회 내에서 가족에 대한 변화하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그는 <아무도 모른다>와 <걸어도 걸어도>(200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 이어 <어느 가족>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에서 줄기차게 가족의 자연적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위의 영화들 속에서 그는 가족애가 혈연에 바탕을 둔 자연적이고 근원적인 모성애나 부성애, 효(孝)의 윤리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라 할지라도 서로 아끼고 배려하며 그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의 이러한 가족관은 마침내 <어느 가족>에 이르러 범죄자라 할지라도, 좋은 부모, 좋은 형제가 될 수 있다는 데에까지 도달한다. <어느 가족>의 원제목은 <좀도둑 가족>으로 바로 이 좀도둑질과 노인연금 및 알바로 연명하는, 혈연 관계가 전혀 없는 3대에 이르는 대가족(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이모, 고모, 아들, 딸)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영화 속에서 유사 가족에 대한 고레에다 감독의 집요한 탐구는 마침내 극단적인 상대주의적 세계관으로까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고레에다의 영화와는 반대로 <버닝>은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돼 있는 세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창동은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탐구와 부조리한 현실세계의 재현을 통해, 고레에다와 마찬가지로, 이미 <밀양>(2007)과 <시>(2010)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다. <버닝>은 중년에 접어든 남성이 주인공으로 설정된 무라카미의 소설과 달리,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청년' 문제를 세 젊은이를 통해 우화적으로 영상화하며 한국 사회 내의 심각한 빈부격차와 청년의 좌절, 생사의 고민을 그린다. 소설가가 되려 하는 미취업 대학 졸업생과 나레이터 모델을 하는 그의 여자친구, 그녀가 아프리카 여행을 갔다가 만나는 강남의 상류층 백수 남성이 그 세 명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세 명의 젊은이를 보여주기만 할 뿐, 아무런 주석도 설명도 가하지 않는다. 영화 텍스트의 해석은 언제나 관객의 몫이지만, 절대로 친절하지도, 영화를 보고 나서 기분이 좋지도 않은 <버닝>이 관객에게 부과하는 짐은 대단히 무겁다. 때문에 나도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동안 악몽을 꾼 것 같은 노곤함과 귀신에 홀린 것 같은 이상한 찜찜함에 시달렸었다. 그러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러한 악몽 속에 사는 것이 2010년대 후반 한국사회를 사는 우리의 현실이며, 20대 젊은이들은 이를 실업과 청년 빈곤의 상황 속에서 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다. <버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리얼리즘보다 알레고리를 통해 그림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보다 격하게 묘파하는 감독의 의도라 할 것이다. 때문에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버닝>을 보고, 우리의 현실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생각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윤종 교수(원광대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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