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학생회는 10일 “지금까지 학생들의 다양한 의사는 ‘반미투쟁’, ‘독점자본타도’와 같은 거시 담론에 묻혀 무시됐고 학우들은 학생운동의 객체로 전락했다”며 “한총련 탈퇴를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또 어떤 정치 조직에도 가입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 탈퇴 및 `탈정치화'를 선언한데 이어 다수의 비운동권 대학 총학생회도 탈퇴 움직임이 일고 있어 한총련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한총련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예고되었다.

 지난 1995년 전두환·노태우 처벌 투쟁의 승리로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던 한총련은 이듬해인 1996년 8월 ‘연세대 사태’ 이후 ‘이적단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됐다. 2000년 이후 총학생회 선거철이 되면 ‘한총련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들이 출현했다. 2003년에는 전대협과 한총련 의장을 3명이나 배출했던 한양대가 한총련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 동안 한총련은 대학생 조직이면서도 다수 학생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화돼 있었다. 특히 친북(親北), 반미(反美) 노선을 중심으로 한 정치투쟁에 치중해왔다.

 1970~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여야 ‘386 의원'들은 한총련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으로 “대중 기반 상실”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북한에 쏠린 한총련 이데올로기가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 총학생회가 1960년대 4·19 혁명과 70년대 유신독재 및 80년대 군사독재 종식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점은 분명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투쟁 방향과 방식도 변해야 했는데 시대의 변화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일관하다 한총련은 학생들의 지지를 상실하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약해지는 한총련 대신 생활 중심의 청년운동이나 학술운동이 새롭게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교수는 한총련·전대협 중심의 전투적 학생운동이 1세대, 운동권이 주도하는 학내 복지운동이 2세대였다면 현재는 학생들의 생활 관심사에 밀착한 3세대 미시적·분화적 학생운동의 시대라고 분석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역시 “서유럽, 일본의 학생운동이 1980년대를 거치며 변화를 겪었듯 우리도 거대담론에서 미시담론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며 “취업, 복지 혜택 등 구체적인 삶에 치중하는 운동 양상은 앞으로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가의 탈정치 현상이 대학의 생명인 비판적 지성의 쇠퇴와 몰락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 학생회는 조직구성원인 학생들의 의견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비판 세력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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