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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3.1운동 백 주년과 이규홍 의병장오늘의 대한민국 '애국'과 '희생'
윤진형  |  kiss74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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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1  17: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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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영웅이 나다
 이름을 잃고, 말을 잃고, 나라를 잃은 우리의 선조들이 빼앗긴 것들을 다시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숭고한 목숨까지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일본에 대한 항거의 시작을 알리는 한 마디, 1919년 3월 1일 탑골 공원에서 모인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그날 이후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일제와 목숨을 바쳐 투쟁한 우리 선조들을 역사 속의 기록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세월의 풍파에 그 흔적이 사라진 숨은 영웅들 만나봤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구한말 열강의 침탈에 따라 나라의 존망이 흔들릴 때 우리대학이 소재하고 있는 전북 익산에서 영웅이 등장했다. 이규홍 의병장이 바로 그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상태였다. 그는 불과 26세 나이에 불구하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되찾자'는 구호 아래 257명의 의병이 궐기하게 된다. 익산 관동(현 팔봉면 석암리)에서 출병식을 할 때 이규홍 의병장은 "왜군은 힘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의(義)로써 싸운다. 의는 힘을 이긴다"고 외쳤다. 익산 의병은 약 3차례에 걸쳐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왜병 129명을 사살했다. 아군도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85명이 전사하게 된다. 이 전투로 이규홍 의병장에게는 4천 원(당시 황소 1천 마리 값)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게 된다.
 이 후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이규홍 의병장은 익산 의병을 해산하게 된다. 이때 이규홍 의병장은 비감을 느끼며 시 한 수를 지었다. 
 '칼을 던지고 텅 빈 산에 앉아 있으니 흐르는 눈물이 옷을 적시네 저 두견새가 내 마음을 헤아려 불여귀의 비정을 울어주는구나.'
 
꺾을 수 없는 독립 의지 
 익산의 의병을 해산한 이후 이규홍 의병장은 지역별 조직망을 유지하며 지하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는 이후 10여 년의 지하운동을 펼쳤지만 그에게 걸려 있는 현상금 때문에 국내 활동에 한계를 느끼게 됐고 결국 1918년 상해로 떠나게 된다. 상해에 도착한 그는 독립청원서를 지니고 파리로 떠나는 김규식 박사에게 1천 300원의 여비를 지원했다. 간도에서는 김좌진 장군을 만나 그가 마지막까지 보유하고 있던 3천 원을 독립군 양성 자금으로 출연하게 된다. 학계에서는 이 군자금으로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대첩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그 이후 국내로 들어와 항일운동을 계속하던 이규홍 의병장은 1924년 2월 8일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고문은 4개월 동안이나 이어졌고 이후 병보석으로 출소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1929년 6월 6일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향년 48세로 눈을 감게 된다.
 
 
   
 
 
잊혀가는 '애국'과 '희생' 정신 
 구한말 우리 지역 전북은 이규홍 의병장을 비롯해 많은 의병들의 활발한 저항 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이 3만 8천여 명이었는데, 우리지역에서 궐기한 의병은 2만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우리 지역은 의병 활동의 주요 거점이었다. 의병이 많았던 만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의 희생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들의 흔적은 그 후손들이 남긴 비석 몇 개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지역에서는 이규홍 의병장과 함께 목숨을 바친 의병들의 정신을 잇는 '익산의병기념사업회(회장 이용희)'가 조직돼 활동하고 있다. 이용희 회장은 "의병 정신을 이끈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마음과 그 마음이 모여 자신의 몸과 재산을 바치는 희생정신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며,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주인이니만큼 민족의 주체적인 사상을 지킬 수 있도록 미래를 위해 노력해달라" 당부도 잊지 않았다.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난 후 100번째로 돌아온 해다. 그러나 최근 3·1절을 '삼 점 일절'로 읽거나 그저 '대한독립만세'라는 단어 수준으로만 알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 우리의 역사의식에 아쉬운 점이 많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 선조들의 '애국'과 '희생' 정신이 잊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군산 '근대건축관'에 들어서면 '나라를 잃었던 자들아 그날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3월, 새 학기를 맞이한 우리, 잠시 차분한 마음으로 선조들의 '애국'과 '희생'정신을 생각해보고 감사한 마음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윤진형 기자 kiss74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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