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
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
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형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시작해 볼까 한다. 정한모 시인의 '가을에'라는 작품이다. 그 1연을 제시한다.

(1)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물들으며', '날으고'를 운율을 고르기 위한 시적 표현, 소위 시적 허용이라 배운 듯하다. 사실은 그 두 단어는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사투리이다. 정한모 시인의 일상 발화가 그대로 시어화된 것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
이와 관련된 중부지방 사투리는 의외로 쉽게 접할 수 있다. '피리를 불은 적이 없다', '가진 돈이 자꾸 줄으니까'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사투리는 대화 시 툭툭 튀어 나올 수 있으니 쓸 때만은 조심해야겠다고 느끼면 된다. 이른바 'ㄹ'로 끝나는 어간은 모두 이 부류에 드니 엄청나게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2)에 제시해 본다. 1분간 30개 정도가 생각날 정도이다.
(2) 길다, 날다, 널다, 놀다, 달다, 덜다,
들다, 말다, 멀다, 몰다, 물다, 밀다,
벌다, 불다, 살다, 쓸다, 알다, 열다,
울다, 잘다, 절다, 졸다, 줄다, 팔다,
풀다, 거들다, 기울다, 다물다, 떠들다,
여물다, 저물다…

다음은 스포츠 종목의 응원가로도 자주 활용되는 대중가요이다. '거칠은/거치른'으로 시작되는 노래이다.

(3)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   을 마시자. 보석보다 찬란한 숨결이 살고    있는 저 언덕 너머…

'거칠은'의 기본형은 '거칠다'였다. 'ㄹ'을 받침으로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불다', '줄다' 등도 'ㄹ'을 받침으로 하는 어간이다. 그런 경우 '-니까'를 통합하면 '부니까', '주니까', '부시니까', '주시니까'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소위 'ㄹ'이 탈락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칠-'과 '-ㄴ'이 통합하면 '거친'으로 되어야 한다.
'ㄹ'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포르투갈의 축구 선수 Ronaldo는 '호날두'로 불리지만 브라질의 은퇴한 축구 스타 Ronaldo는 '호나우두'로 불린다. 대비가 이루어진다. 우리말의 'ㄹ'에 해당하는 L이 '포르투갈'에서는 자음적 성격, '브라질'에서는 모음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말의 'ㄹ'의 성격은 어떠한가. 명사에 조사가 결합한 아래 형태를 살펴보자.

(4) 가. 집은, 물은, 차는
나. 집으로, 물로, 차로

(4가)에서 받침 'ㄹ'은 '집'의 'ㅂ'에서와 같이 조사 '-은'과 결합하게 된다. 이때의 'ㄹ'은 자음 'ㅂ'과 동일한 자격을 갖는다. 그런데 이 자음 'ㄹ'이 모음처럼 기능할 때도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4나)의 '물'과 '-(으)로'가 결합하면 '물으로'가 되어야 할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때는 오히려 '차+로'와 같이 '으'가 빠진 '물+로'로 발화를 해야 정상적이다. 곧 '-(으)로'와 결합할 경우 'ㄹ'은 모음과 한편이 되는 셈이다. 이번에는 동사인 경우를 보도록 하자.

(5) 가. 집으면서, 물면서, 차면서
나. 집으니까, 무니까, 차니까

(5가), (5나)에서 공히 'ㄹ'은 모음과 한편을 이루고 있다. '집으면서', '집으니까'에는 '으'가 나타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물면', '무니까'에서는 어간에 받침 '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으'는 확인되지 않는다. 모음으로 끝난 어간 '차-'에도 '차면', '차니까'에서처럼 '으'가 확인되지 않는다. 바로 'ㄹ'이 모음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화자들은 통일을 추구할 수 있다. 'ㄹ'을 자음이라고 강하게 인식하고 싶다면 '집으면서', '집으니까'를 기준으로 하여 '물으면서', '물으니까'로 발화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앞에서 언급한 '거칠은'은 '거칠-'에 'ㄴ'이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거칠-'에 '은'이 통합되는 것이다. '작은', '검붉은' 등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거칠은'의 발음에 주목해 보자. '거칠은'의 발음은 '거치른'이다. 그러니 기본형은 '거치르다'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1)에 제시된 '시구(詩句)' '날으고 있는' 또한 '날+은', '날+으니까'가 '나른', '나르니까'로 되어 기본형이 '나르다'로 돌변하게 된다. 그래서 '나르는 원더우먼'과 같은 형태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나아가 '모자가 바람에 날라 간다'에서 '날라'라는 형태까지도 확인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추론이 작용한 것이다. 표준어 '모르-'의 서울 사투리는 '몰르-', 표준어 '흐르-'의 서울 사투리는 '흘르-'이다(몰르고, 몰르니까 / 흘르고, 흘르니까). 위의 '나르는 원더우먼'에서 '나르는'은 '나르다'를 기본형으로 파악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 기본형 '나르다'를 가지고 비례식을 세워 보자.

(6) 가. 모르다 : 몰라 = 나르다 : χ
나. 모르다 : 몰르다 = 나르다 : χ

χ 자리에는 '날라', '날르다'가 차례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모르-'의 활용형을 기준형으로 유추를 하여 χ 자리를 채운 것이다.

참고 : 모더니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광균의 '외인촌'에서도 '거칠은'과 관련된 시적 허용(?)이 확인된다. 김광균은 중부지방인 황해도의 개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이얀 모색 속에 피어 있는 / 산협촌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 파아란 역등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우엔 /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 …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우엔 /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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