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쟈크 라캉
 
  라캉의 이론과 문화 사회적 배경 
 쟈크 라캉(1901-1981)은 프로이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자 최고의 '발견'인 무의식 개념이 프로이트의 딸, 애나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자아 심리학에 경도되어 그 진가를 무시당하는 것에 반기를 들어 '프로이트로 돌아가기'를 외치게 된다. 프로이트의 핵심개념, 이드, 자아, 초자아 개념을 중심으로 애너 프로이트와 세계정신분석학회는 무의식에 대한 자아의 방어기제에 방점을 둔다면, 라캉은 이런 프로이트의 개념을 당대의 핵심적 사고 경향인 구조주의 즉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하여, 상징계[초자아 대신], 상상계[자아 대신], 실재[이드 대신]라는 개념으로 이론을 전개하여 세계정신분석학회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파문당한 해, 로마에서 단독으로 언어와 무의식의 상관관계를 발표한 라캉은 실비아 바타이유와의 사이에서 난 딸 주디드 밀러의 남편이자 철학자인 쟈크 알렝 밀레르를 후계자로 삼아 수요 세미나를 개최하여 파리의 지성계를 휩쓸면서 『에크리』(글쓰기의 뜻)를 비롯하여, 매해 세미나를 책으로 낸다. 그것들 중,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세미나 7권 『정신분석의 윤리』, 10권 『불안』, 11권 『정신분석의 네가지 개념들』, 20권 『앙코르』, 그리고 23권 『증후』 등이 있다.
 1981년에 사망한 라캉의 후기 이론 시기인 1975년-1976년에 개최된 세미나의 결과물인 『증후』는 그의 전 생애의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정신병의 상상적 차원을 강조하던 1930년대 후반의 상상계 시대, 1950년대 언어를 강조하던 상징계 시대, 그리고 마지막 기간으로 1964년의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가지 개념들』이후로, 실재를 강조하는 시대에서 라캉 후기  이론을 대표한다.
라캉의 증후 개념
 
 라캉의 세미나 23권 『증후』는 바로 이런 실재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라캉의 실재는 이런 맥락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핵심이 되는 무의식보다 더 모호한 불가능의 영역으로 인간의 망상을 추동하거나, 또한 예술과 다양한 정신적 활동을 야기시킨다. 그렇다면 라캉의 이론에서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되었다는 그의 명제처럼 언어와 불가분적이다. 라캉의 무의식은 이 점에서 프로이트적 무의식을 고수하는 프로이트적 추종자들을 비판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라캉의 무의식 개념은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라는 명제를 만든다. 이 명제는 '우리가 무의식에서 주체에 가해지는 스피치의 효과를 보아야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주체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언어 안에서 억압된 후, '무의식의 형성들(증후, 농담, 말실수들, 꿈들 등)'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일련의 정신분석가들은 프로이트도 무의식으로부터 '단어-표상'을 배제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런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비판한다. 이런 비평가들의 비난에 직면하여, 라캉은 상징계적 차원에서는 '사물-표상'과 '단어-표상'이 같이 존재하며, 또한 무의식에 포함되는'사물-표상'들은 일반적인 사물이고, '물자체적'사물은 언어에 의해 재현되지 않는'욕망의 원인'인 실재로서 무의식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의식과 실재는 서로 배제적인 것이 아니다. 결여로 인해 생성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명제가 이 둘을 연결시킨다. 다시 말해, 인간의 욕망은 자기 자체를 향한 욕망이라기보다 '타자를 위한 욕망'이다. 
 라캉의 무의식 개념은 다행히 실재의 개념에 의해 언어적 틀을 벗고 언어를 초월한 열린 차원의 면모를 유지하게 된다. 라캉의 후기 개념의 핵심인 실재는 라캉의 증후(생똠므) 개념으로 프로이트의 증후를 초월한 것이다. 의사였던 프로이트는 의학계에서의 전형적인 증후 개념이 의존하는 표층과 심층의 차원에 의거하여 자아에 의해 검열당하여 심층의 무의식으로 억압되게 하였던 요소들이 자아의 검열을 피해 다른 모습으로 표층에서 증후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런 검열은 꿈에서도 작업을 하므로, 프로이트는『꿈의 해석』에서 무의식에 억압된 요소들이 꿈 작업의 검열을 통해 서로 합쳐서 결합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는 압축과정(은유의 작업과 유사)과 본래의 요소들을 다른 요소들로 대체하여 탈바꿈하게 하는 대체과정(환유의 작업과 유사)을 거치므로 꿈에 나타난 꿈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 마찬가지로 정신과 의사 혹은 분석가의 의무는 억압을 피해 다른 모습으로 표층에 드러난 증후의 실재의 모습을 파악하여 피분석가의 정신의 꼬인 부분을 풀어주고 이런 증후를 용해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증후의 파악은 바로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요소들이 증후로 탈바꿈하는 양태를 분석하여 이렇게 증후로 나타나게 된 원래의 요소들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라캉의 언어적 증후 개념은 1961년에 들어와 다소 언어적 틀에서 벗어나 증후는 주체가 [언어적 차원으로 인식해야할] 자신의 메시지로 인식하는 대신에 주체가 생각하기에 실재로부터 오는 희미한 메시지인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딜란 에반스에 의하면, "1962년부터 라캉의 작업이 증후의 언어적 개념으로부터 탈피하여 해석될 수 없는 순수한 주이상스로서의 증후라는 견해를 향하여 갔다. 이런 개념적 전이는 1975년 [세미나 23권에서의] 증후(생똠므)의 소개로 절정에 다른다"
라캉의 주이상스와 증후(생똠므), 글쓰기
 
 1975년 세미나에서 라캉은 증후(생똠므)를 조이스 읽기를 통해 설명한다. 라캉의 조이스에 대한 관심은 영문학자이자 조이스 연구가이며 라캉과 함께 조이스를 쓴 쟈크 오베르가 인도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라캉의 새 개념인 생똠므로서의 증후는 '해석될 수 없는 순순한 주이상스'와 수반되는 개념이다. 주이상스는 라캉의 난해한 이론에 일조를 하는 어려운 개념으로 '즐거움'으로 해석되면, 주이상스가 부분적으로 암시하는 성적인 쾌락(오르가즘)의 의미가 생략되어 영어에서는 그냥 주이상스로 표기되고, 초기 한국 학자들은 향락으로 기입하였다. 라캉이 1950년대에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 담론의 설명에서 노예가 주인의 쾌락을 위해 사물들을 생산하는 맥락에서 사용되다가, 성적 쾌락을 위해서도 간혹 사용되었다. 그러나 라캉의 후기 이론 시기에 와서 라캉은 프로이트가 쾌락과 죽음 충동의 원칙을 구분하였듯이, 주이상스와 쾌락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이 구분에서 라캉이 강조하는 것은 쾌락 원칙에서처럼 쾌락은 존재의 핵, 즉 욕망의 원인과 연루되어 일상적인 쾌락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쾌락은 커녕 불안을 야기시키는 욕망의 원인, 실재의 차원을 피하는 쾌락 개념을 하위의 개념으로 간주하였다. 반면에 어떤 주체는 쾌락 원칙을 초월하여 자신의 일상적 쾌락에 제한이 오더라도 규범적 차원을 넘어 죽음충동처럼 실재의 차원을 향해 치닫는 주이상스를 추구한다. 이런 주이상스는 결코 쾌락이 아니라 고통도 수반하는 '고통스런 주이상스'이다. 증후로서의 주이상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아픔에서 해방되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행사하는 자아의 방어적 차원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의 삶의 불가해하고 어려운 무의식과의 대면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는,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기꺼이 그 증후를 고집하는 '고통스런 주이상스'를 고집하고 그것을 즐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환자들이 병의 치유를 선택하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 선택한 '고통의 주이상스'의 증후를 고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이유이다. 
 
라캉의 증후(생똠므) 세미나와
조이스의 글쓰기 
 
 라캉은 조이스의 글쓰기는 조이스의 자아가 그의 무능한 아버지로 인한 세 범주의 잘못된 매듭을 다시 고치게 하여 그의 욕망의 원인, 보로미안 매듭이 형성되게 하는 제4의 차원의 꼬아잇기라고 말한다. 라캉은 조이스의 세 범주가 하나씩 엇갈려 매듭을 잇지 못하고 실재의 선이 상상계를 지나지 않아 상상계의 이미지의 일관성, 통일성들을 갖추지 못해 와해 될 상황에서 글쓰기를 통해 두 선이 다시 맞물리게 매듭을 형성하게 한 것으로 읽는다. 라캉은 사회에 진입하고 성인이 될 때 어릴 때의 이자적 집착을 버리고 상상계 혹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상적 생활을 한다고 본다. 이렇게 어머니와의 상상계적 이자적 관계에 No!(nom)를 향해 상징계로 유도하는'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로-향하기'라고 말함으로써, 언어에 도착의 의미를 덧붙인다. 라캉은 결여의 인간의 운명은 다 원초적 상황을 버리고 '아버지로-향하기'라는 도착적 언어 행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라캉은 "보로미안 매듭은 프로이트가 아버지의 기능으로 모든 것을 유지하게 하는 것의 결과이다. 나의 보로미안 매듭은 실제의 법과 아무 연관이 없는 법, 사랑의 법'아버지로 향하기'"라고 고백한다. 아버지의 부재로 세 범주가 뒤틀린 조이스의 글쓰기는 이 허물어진 범주 중의 하나를 글쓰기라는 증후의 행위를 통해 세 범주를 하나의 보로미안 매듭으로 형성하게 한다. 라캉은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적어도 쓰여진 형태로 자신의 보로미안 매듭을 형성하기를 배우는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끝으로 라캉은 조이스의 글쓰기에서 수많은 수수께끼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보로미안 매듭의 핵인 욕망의 원인, a를 수많은 기표들의 관계에서 표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의 텍스트가 난해한 것도 바로 규정될 수 없는 이 실재의 욕망의 원인을 중심으로 "조이스의 텍스트가 보로미안 매듭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신명아 교수(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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