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외국어대학은 부산·경남지역에 위치한 A 대학으로부터 "우리 학교를 인수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A 대학은 의과대학까지 갖추고 있지만, 재정난으로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한국외대는 학교를 통째로 인수할 여력은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번에는 같은 지역 B 대학에서 똑같은 제안을 받았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등록금 동결 정책이 지속되자 대학들이 운영을 포기할 정도로 재정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며, "실제로 의과대학이 없는 지방 사립대들은 수년 전부터 매물로 나와 있지만, 선뜻 관심을 갖기에는 부담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반값 등록금' 정책은 학생들이 등록금에 대해 느끼는 실질적인 부담감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대 중반쯤부터 가파른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잦았고 정부 측에선 등록금 관련 논의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들은 2009년부터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정책과 더불어 정부에서는 소득수준과 연계한 국가장학금 제도를 도입했는데, 등록금을 인상하면 국가장학금 등과 같은 대학재정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그 결과 상당수 대학들은 10년이 넘은 오랜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허리띠를 졸라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이 시행되면서 대학생들의 불만은 잠재울 수 있었지만, 반면에 대학의 경쟁력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uacquarelli Symonds(QS)에서 매기는 세계대학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위상 하락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립대 기준으로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이 2014년까지만 해도 아시아 상위 20위 대학에 속해 있었지만, 2015년 이후부터는 한곳도 없다. 아시아에서 4위까지 올라갔던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서울대마저, 지난해 10위에 그쳤다.
   서울 및 수도권에 있는 주요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운 지방 사립대들은 존폐를 고민할 정도의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전라도에 있는 한 4년제 사립대 C 대학은 주변 대학과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압박으로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년째 신입생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결된 등록금이라도 납부해줄 학생이 줄어들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한 C 대학 관계자는 "생존을 위한 모든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대학 재정 상황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11년째 인하 및 동결을 지속해온 우리대학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매년 반복되는 위기와 피해는 어쩌면 우리에게 거대한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지도 모른다.
   세계 주요 대학들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을 주목하고 수준 높은 연구와 과감한 투자로 미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반값 등록금' 정책에 묶여 미래를 위한 준비에 소홀하지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등록금이 반으로 줄었다고 해서 만족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나타날 교육 수준의 저하를 시작으로 대학생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 등의 많은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잃어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 예산팀장은 "등록금 동결로 인한 대학 경쟁력 하락이 조만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값 등록금 정책의 과실을 따져보는 것과 더불어, 정책의 지속성을 고민해보고 위기에 처한 지방 대학들을 살리는 정부의 또 다른 정책이 요구될 때이다. 

임지환 기자 vaqreg@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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