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의 출현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카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오가고 있다. 이러한 때 지인들끼리 가상공간에서 구어체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한 번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몇몇 형태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지난 호에서는 두음법칙에 대해 공부했다. 두음법칙의 포인트는 'ㅑ, ㅕ, ㅛ, ㅠ, ㅣ'임을 강조하였다.
 
 (1) 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나. ㅑ, ㅕ, ㅛ, ㅠ, ㅣ
 
 (1가)는 흔히들 말하는 모음 10개이다. (1나)는 그중 바로 2번째, 4번째, 6번째, 8번째, 10번째에 배치된 글자이다. 이들은 두음법칙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여러 현상에 관여한다. (2)는 소위 말하는 ㅣ모음 역행동화이다.
 
 (2) 가. 남편>냄편, 학교>핵교, 석유>섹유
    나. 바람이 있다면>바램이 있다면,
     아기>애기, 아비>애비, 어미>에미,
     지팡이>지팽이
 
 'ㅑ, ㅕ, ㅛ, ㅠ, ㅣ'가 그만큼 국어에서 활약상이 크다는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을 '바램이 있다면'이라 하는 사람이 많다. '냄편'이 사투리인 것처럼 '바램이 있다면'도, '애기'도 사투리이다. 'ㅏ+ㅣ'가 'ㅐ'로 바뀐 것이다. 이런 예들은 무수히 많다('아지랑이→아지랭이', '방망이→방맹이', '죽이다→쥑이다', '막히다→맥히다', '삼키다→샘키다', '그런 법이→그런 벱이' 등).
 
 (3) 굳이>구지, 텬디>천지
 
 (3)에 제시된 '같이', '굳이'의 발음이 '가치', '구지'인 이유도 이들 모음과 관련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이 '텬디(하날 텬, 싸 디)'라고 한 것을 우리는 현재 '천지'라고 한다. '텬'의 'ㅕ'와 '디'의 'ㅣ'가 포인트이다.('ㅑ, ㅕ, ㅛ, ㅠ, ㅣ' 때문이다) 바로 y, i의 위력이다. 사실 y, i만 알면 소리가 변동하는 까닭의 반은 정복하는 셈이다.
 (2)에 제시된 '아기'의 사투리는 '애기'이다. 왜 '애기'라는 방언형이 가능할까? 'ㅣ'는 힘이 강해서 앞엣것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다. 자기편으로 만드는 방법이 바로 앞에 작대기(ㅏ+ㅣ)를 붙이는 것이다. '아ㅣ기'가 '애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ㅣ'를 포함하여 앞에서 언급한 모음 'ㅑ, ㅕ, ㅛ, ㅠ, ㅣ'는 그만큼 힘이 강해서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유리하다. '학교'는 다니는 것이고 '핵교'는 댕기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학교>핵교'의 변화는 '아기>애기'의 변화와 완전히 동일하다. 또 다른 어르신은 '학교'는 다니는 것이고 '학조'는 댕기는 것이라 말한다. 글쓴이의 이름은 '임석규'이다. '임석규'의 방언형으로는 '임섹규'도 있고 '임석주'도 있다. 글쓴이는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 경상도에 살 때는 '임석주'로 불리기도 했다. 전라도 출신 매형은 글쓴이를 '임섹규'라고도 불렀다. '굳이[구지]', '텬디>천지'로 바뀌는 유형이 바로 '학조', '임석주', '같이[가치]' 계열이다. 그만큼 'ㅑ, ㅕ, ㅛ, ㅠ, ㅣ'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들 모음이 관여된 다음도 그 발음이 헷갈린다.
 
 (4) 가. 못잊어, 낯익은
    나. 물약, 환율
 
 (4가)의 '못잊어'를 '몬니저'로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디저'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낯익은'은 '난니근'으로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디근'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ㄴ 첨가이다. (4나)의 '물약'을 '물략'으로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략'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 '환율' 역시 '화뉼'로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다.(전자가 모두 표준발음이다) 이러한 발음차가 생기는 이유 역시 'ㅑ, ㅕ, ㅛ, ㅠ, ㅣ' 다섯 모음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ㅑ, ㅕ, ㅛ, ㅠ, ㅣ'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길로 많이 빠졌다. 두음법칙은 결국 옥편의 음대로 적지 않는 반칙을 살펴보는 것이었다(경로→노인). 옥편의 권위를 무시하는 또 한 가지를 알아보자. 바로 '나열', '선열', '규율', '백분율'에서 확인되는 '열/렬(烈, 列 등)', '율/률(率, 律 등)'의 경우이다. 바로 '렬'과 '률'이 모음이나 'ㄴ' 뒤에 놓일 때 '열'과 '율'로 되는 것이다. 이를 자전의 음대로 적으면 '나렬', '선렬[설렬]', '규률', '백분률[백불률]'이 되니 우리의 발음과 너무 동떨어져 버린다. '십월', '육월', '오륙월'이라고 하지 않고 '시월', '유월', '오뉴월'이라고 하는 것도 자전의 음대로 적지 않는 유형이다.
 드디어 '희로애락'에 대해서 검토해 보자. '격노(激怒)하다', '분노(忿怒)하다'에서의 '노'는 '노할 노(怒)'이다. 그러면 '희노애락(喜怒哀樂)'은 무슨 뜻인가? '기쁠 희', '노할 노'이기 때문에 당연히 '희노애락'으로 적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음은 안타깝게도(?) '희로애락'이다. 서울 사람의 발음이 그런 것이니까 하고 넘어가면 된다. '희노애락'을 '희로애락'이라 하는 것은 부드럽게 발음하는 것의 일종이다. '대노하셨다'가 아니라 '대로하셨다'가 표준어이다. 요점은 바로 자전의 음이 '노'인데도 특정 상황에서 '로'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반칙이지만 현실음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곤란(困難)'도 부드럽게 'ㄹ'로 발음한 것이다. '재난(災難)', '국난(國難)'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허락(許諾)'도 부드럽게 발음한 것이다. '승낙(承諾)'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智異山(지이산)'을 '지리산'으로 발음하는 경우도 옥편을 무시한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漢拏山(한나산)'을 '한라산[할라산]'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경남에는 '창녕군(昌寧郡)'이 있고, 함북에는 '회령군(會寧郡)'이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昌寧', '會寧', 각각에서 둘째 한자는 같은데 '녕'과 '령'으로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안녕(安寧)'에서의 '녕'을 고려하더라도 '회녕'이라 해야 할 텐데 우리는 '회령'이라고 한다. '무녕왕릉(武寧王陵)'이 아니라 '무령왕릉'도 같은 이치이다.
 이들은 바로 'ㄹ'을 사용하여 음을 부드럽게 한 조치이다. 이를 예전에는 '활음조(滑音調)'라고 하였다. '활'이 '윤활유(潤滑油)'의 '활(滑)'이니 대충 '활음조'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특정 발음에 윤활유를 끼얹으면 부드럽게 발음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1 : '바램'이 사투리인 것처럼 '바래'도 사투리이다. 하루빨리 잡무에서 해방되기를 바라(0)/바래(×)
 참고 2 : 중고등학교에서는 '아기>애기', '학교>핵교' 유형을 'ㅣ' 모음 역행동화라 한다. 그런데 '학교'에는 'ㅣ'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니 'ㅣ' 모음 역행동화라는 용어는 바람직하지 않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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