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무심코 보게 된 영상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그 영상은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가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15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강연을 들으며 깨달았다. 제목 그대로 나에게는 장애인 친구가 없었고, 장애인 친구와 함께할 만한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좀처럼 그들을 쉽게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불어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 내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특정한 기준에 의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우열을 가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나 역시 차별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장애인에게 불평등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사회에 어느덧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장애인들은 어떠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며 살아왔는지,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난 23일에 공개된 '2018 전국 장애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학대 신고 사례 889건 중 신체적 학대는 27.5%, 경제적 착취는 24.5%, 방임은 18.6%를 차지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학대가 발생한 장소로 장애인 거주지(35.0%)와 장애인 복지시설(27.6%)이 높은 순위에 올랐으며, 장애인 학대 가해자 1순위가 장애인 시설 종사자였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통계 결과는 장애인이 사회적 취약계층으로서 각종 학대를 비롯해 노동력 착취와 인권 유린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드러낸다. 동시에 장애인에게 복지시설이 결코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있어 많은 역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은 개인 선택권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거주 시설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본인 의사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다고 한다. 시설에 들어가게 됐을 때 입소 기간은 평균 10년 이상으로 거주 시설 장애인들은 다양한 삶을 경험할 기회를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면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조차도 실현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행히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는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삶으로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 탈시설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탈시설화'는 장애인이 편의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자립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장애인 수용 시설은 장애인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들이 지역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인 수용 시설은 사회와의 접촉이 거의 없는 외곽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폐쇄적인 분위기가 강했으므로, 장애인의 재활 치료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탈시설화'는 물리적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 '시설화'로 인해 나타났던 제도적 문제를 차단하고, 장애인과 우리 사회의 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장애인 탈시설화'는 현재 국내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중이다. 이는 아직 대다수의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가려져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장애인은 왜 홀로 설 수 없는가? 이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보이며, 나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렸으면 한다. 때로는 기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슬프기도 할 이들의 하루가 인권 침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패치워크처럼 다채로운 무늬로 우리 사회에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상미 기자 sangmi0407@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