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생은 절대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번 호에 소개할 영화 '버드맨- 혹은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은 이런 삶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 '리건'은 히어로 영화 '버드맨'으로 인기를 끌었던 왕년의 무비스타다. 시간이 흘러 이젠 사람들에게 잊혔지만, 한 연극의 연출과 주연을 맡으며 더는 '무비스타'가 아니라 '배우'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갑작스레 한 배우가 불구가 돼버리고, 급히 그 자리를 채우게 된 배우는 무대 위에서 난동을 부린다. 비평가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의 연극을 망쳐버리겠다고 선언한 데다, 아내와는 이혼한 지 오래됐으며, 유일한 가족인 딸 '샘'과의 관계는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들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인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을 떠올려보자. 리건은 연극 쉬는 시간에 예기치 못한 일로 뉴욕 한복판을 나체로 뛰어다니게 되는데, 이 광경이 SNS에서 화제 되며 그의 근황은 물론 그가 출연하는 연극까지 대중의 관심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갈구했던 대중의 사랑은 순수한 애정이 아니라,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수치심과 함께 찾아온다. 이렇듯 영화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던 것이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에서 비롯되기도 하며, 간절히 바라던 것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모순을 보여준다.
 결국 리건은 자신이 열망한 사랑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상태에서 연극이 시작되고 그는 연극 중 자신이 맡은 인물이 사랑에 배신당해 총을 겨눠 자살하는 장면에서 실제 권총을 들고 무대에 올라간다. 그리고 "난 사랑받지 못해. 난 존재하지 않아. 난 여기 없다고"라는 대사와 함께 직접 자신의 머리를 쏜다. 하지만 관객들은 리건의 자살이 연기라고 생각해 그에게 기립박수와 함성을 보낸다. 리건은 마침내 그가 갈망했던 것(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을 이룬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과 우리가 갇힌 인생의 모순에 대해 이 영화가 다시금 강렬히 전하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리건은 죽지 않았다! 얼굴이 완전히 묵사발이 되긴 했어도 리건의 연극을 망쳐버리겠다던 비평가는 예술지 1면에 그를 새로운 전설이라 칭찬한다. 그의 쾌차를 비는 촛불집회가 생중계된다. 그러나 그는 원하던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떨떠름해 보인다. 잠시 뒤 샘이 들어와 그가 좋아하는 라일락을 건네고 서로를 껴안는다. 리건은 샘이 잠시 병실을 나간 사이 창밖으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다 투신한다. 곧이어 샘은 사라진 리건을 찾다가 열려있는 창문에 걸린 하늘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이게 바로 '버드맨'의 마지막 장면이다.
 "당신은 그럼에도 이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나요? / 네. / 그게 무엇이었나요? / 내가 지구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영화 도입부이자 레이먼드 카버가 암으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시집의 한 구절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샘은 리건이 가장 싫어하는 장미를 건네며 "아빠가 원하는 건 그들에게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 대사와 결말은 일맥상통한다. 그는 삶의 목표인 '사랑받는 것'을 유지하되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자신의 딸인 샘으로 바꾼 것이다. 즉 무비스타 버드맨이나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배우가 아닌 아빠로 딸을 위해 무대를 펼치고자 하늘로 날아올라, 가장 본질적인 배역-'나'로서 내 무대를 제대로 즐겨줄 관객을 위해 전부를 바친다.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모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마침내 진정한 인생의 목표를 깨닫고 자신의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리건처럼 우리도 각자의 무대 위 주인공으로서 기필코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길 바란다. 레디, 액션!
이규희 수습기자 gh292gh@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