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73돌이었다. 1446년 세종은 자모 28개를 만들어 반포했다. 인류 역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국왕이 '친히' 문자를 창제하여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던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한글의 우수성과 실용성에 대한 찬사는 이제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이면 깨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는 글자'가 한글이다. 그래서 한글을 '아침 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글은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글 공부를 안 한다. 한글 공부를 하자고 하면 다 아는 것을 왜 배우느냐고 반문한다.
 한글이 읽고 쓰기에 더없이 편한 글자라는 사실은 세계의 석학들도 공인하고 있다. 하지만 알파벳을 안다고 영어를 아는 것이 아니듯 한글 자모를 안다고 한글을 아는 것은 아니다. "국어가 몇 개의 품사로 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는 대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8품사"라는 답이 돌아오면 더 절망적이다.
 국어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다 보니 대학생들의 쓰기와 읽기 능력 또한 아쉬운 점이 많다. 읽고 쓰기 쉬운 문자를 사용하는 것과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국어도 언어이다. 국어에도 문법이 있고 어휘가 있다. 문법은 이해해야 하고 어휘는 모아야 한다. 토익시험 준비하는 것의 10분의 1 정도만이라도 국어에 관심을 갖는다면 대학의 글쓰기 풍경은 달라질 것이다.
 좋은 글은 모국어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몇 개월 안에 글쓰기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학생들도 많다. '우리말이 제일 어렵다'며 머리를 긁적이고 마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 문자가 우수하다고 읽고 쓰는 일에 별다른 노력을 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들은 졸업학기나 돼야 국어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는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와 같이 취업에 필요한 공식 문서 작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력을 두세 페이지 수준으로 담아내는 글쓰기조차 힘들어한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대학이 외국어 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낯선 언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국어 활용 능력 제고를 위한 교과목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힐난하기 전에 우리 대학 전반의 글쓰기 역량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학습 자료는 물론이고 대학에서 발간하는 홍보물이나 홈페이지 게시글 등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좋은 글에 노출돼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대학의 국어 활용 능력과 대학의 역량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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