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욕조

양하얀(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입천장은 혀의 의자야
혀는 오랫동안 쉬는 기간을 가져

천장에 박힌 돌기들을 하나씩 헤아릴 때면
해도 저무는 것이 지치는지 언덕에 걸터앉지
이때다 싶어 새들이 노을의 살점을 뜯으면
허공엔 출발지와 목적지가 엇갈린 날갯짓들 가득해
나는 칭얼거리는 어둠에 익숙해져서
눈을 감고도 저녁의 눈곱을 떼어줄 수 있어

나의 말은 젖은 책이 되어
뒷장을 넘기지 않아도 알 수 있을까
새벽을 오래 앓은 창문들이 바람에 땀을 말리면
아픈 이마를 짚어주는 수건의 축축함도 잦아들고
이부자리에 누워 세어본 양들도 모두 달아나지

침을 삼킬 때마다
입술에 잡힌 주름이 바스락 구겨지는 소리
모두 이 소리만 듣고 싶대, 그러니까 제발

내 목소리는 사막 속 낙타 젖이 흔들리는 소리일까
아이의 입에서 솜사탕이 숨죽이다 사라지는 소리일까
서까래 속 어둠처럼 목구멍에 알맞게 웅크리곤 해

혀는 살이 자꾸만 찌는지 천장에 붙어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아

침이 투명하다는 건
어떤 숨도 끌어당기지 못한다는 것
표정없이 빠져나가는 나의 숨도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비닐봉지의 끊긴 숨마저도
의자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야

 

시 부문 당선 소감

여러분의 아픔도 설득시켜보고 싶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데 이곳이라고 늘 착각하는 삶을 사는 것만 같았습니다. 늘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내몰았습니다. 계속 아파하면서도 저의 상처를 설득시켜보고 싶었습니다. 이만큼 아프고 또 아플 것 같고 영원히 아파야 하는, 얇고 긴 삶을 적어보기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가끔 제 작품을 보고 공감해주는 지인들을 보며 감히 여러분의 아픔도 설득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하더라도 진심을 담은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쓰겠습니다. 부정적인 제 작품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모든 제 지인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체리를 먹는 시간처럼 똑같이 꼭지를 떼고 씨를 뱉고 입술이 예쁘게 물드는, 우리 모두 소외되지 않기 위해 늘 감히 착각의 삶을 기록하겠습니다.

 

시 부문 심사평

새로운 서정의 가능성
   올해 김용문학상 응모작들을 통해 현재 우리 시단의 흐름을 일부 가늠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언어와 감각 사유의 관계를 낯설게 일그러뜨리던 패기를 가라앉히고 언어의 적소(適所)를 발견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이번 응모에서 두드러졌다. 감각의 솔직함으로 무장한 시들이 조용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각의 솔직함을 나름의 화법으로 실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베지테리언」, 「저울」, 「집의 궤도」, 「테두리」, 「엎어진 욕조」 등을 꼽을 수 있었다. 「베지테리언」의 장점은 설득력 있는 어조에 있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저울」은 말의 조각들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상상력이 인상적이었지만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집의 궤도」는 치밀하게 설계된 언어의 레고블록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짜임이 시적 상상력을 제한하면서 익숙한 서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테두리」와 「엎어진 욕조」 등 2편이었다. 두 작품 모두 개성적인 화법으로 시적 대상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테두리」의 경우 고백의 서사를 차분하면서도 솔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평면적이어서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엎어진 욕조」도 고백의 방식을 취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입천장은 혀의 의자야"라는 선언을 증명해가는 전개 과정이 믿을 만했다. 모호한 표현들이 눈에 띄었지만 시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할 줄 아는 장점을 가리기에는 미미했다. 심사위원들은 숙의 끝에 새로운 서정의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는 점에서 「엎어진 욕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응모자들에게도 격려를 전한다.

심사위원: 강연호(시인,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신(시인,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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