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화

박정윤(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일억 번만 시도하면 나는 당신과 통화할 수 있다. 수첩을 잔뜩 사서 번호들을 다 적어놓았다. 공일공 공공공공 공공공공부터 공일공 구구구구 구구구구까지. 딱 일억 개.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중 하나를 쓸 테니까. 누구에게나 걸면 누구라도 받을 테니까. 계속 걸다보면 당신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겠지. 내가 여보세요? 하면 당신이 아, 여보세요?
 번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적는 것만도 수일이 걸렸다. 그다음엔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당신이 아닌 번호들을 차례로 지워나가는 거다. 그러니 사실은, 일억 번도 아닌 거다. 당신의 번호가 공일공 일공공삼 이삼칠팔정도만 되어도 대충 천만 번만 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또 어떤 번호들은 미리 지웠다. 내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있지만 당신의 것이 아닌 번호들, 아니면 너무 특이한 번호들. 같은 숫자가 네 번 연속으로 이어지는 번호나, 공일공 일이삼사 오육칠팔 아니면 공일공 이오팔공 이오팔공 같은 번호들. 그런 것들에까지 전화를 걸어 볼 시간이 내게는 없다. 당신은 그런 번호를 쓸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당신을 조금 안다. 당신은 도심의 한구석, 이라는 이상한 위치에 있는 독립영화관을 올 줄 아는 사람이다. 또 당신은 꽤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다. 숱이 많은데 정리되지는 않은 걸 보면 외관을 꾸미는 데에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구레나룻까지 빳빳하게 왁스젤을 발랐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세심한 성격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당신은, 최근에 시계를 선물 받았다. 명품이었는데, 아마 처음 가져보는 듯했다. 굳이 집도 아닌 곳에서 꼼꼼히 포장된 상자를 열어 손목에 걸쳐보았던 걸 보면. 뭐 그다지 참을성이 좋지도 않나 보지. 시계는 G사에서 나온 올해 봄 신상품이다. 품번은 GA18890294. 무상수리기간은 5년 후의 4월까지. 내가 어떻게 이걸 다 아냐면, 지금 당신의 시계 보증서가 내 손에 있으니까. 그래서 안다. 당신은 조심성도 조금 없는 것 같다.
 전화를 걸어 하는 말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여기 종로 E영화관인데요. 혹시 최근에 시계 보증서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종로라는 위치와 영화관 이름은 꼭 말한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영화관이 아닌, 낯선 독립영화관의 이름은 이성적이고 공적이다. 친절한 사람들은 전화를 잘못 거셨나보다고 대답해준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 잘못 걸었다고 쌀쌀맞게 대꾸하고는 끊는다. 다짜고짜 만나서 얘기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싫은 건 아이고 어떻게 아셨느냐고, 그쪽이 찾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진짜 당신은 아니었지.
 내가 처음 걸었던 번호는 공일공 공공공일 공공공일. 미리 지웠던 번호들을 제외하고 제일 앞에 있는 번호다. 그 첫 번째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만에 하나로, 억에 하나로 당신이 받으면 어떡하지? 전데요, 하면 당신은 내 목소리를 알아차릴까?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통화 아이콘을 톡 하고 누르니까.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렇지. 일억 개의 번호들 중 실제 개통된 번호는 팔천만 개뿐이라고 했다. 다섯 번에 한 번은 없는 번호가 나올 수밖에. 수첩에 적힌 번호 위로 취소선을 짓 긋고 다음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 다음, 또 다음, 다음……. 계속해서 없는 번호라는 소리샘이 흘러나왔다.
 안 되는데.
 누군가 받아야 하는데. 나는 꼭 당신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공일공, 찍고 걱정했다. 어쩌면 내 휴대폰이 고장 난 걸지도 모른다. 공공공일, 누르면서는 조금 억울해졌다. 내가 용건이 있다는데 누구라도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그렇게도 없나? 그리고 공공일삼, 하고 전화를 걸자 신호가 갔다. 여름날 매미처럼, 행진곡의 도입처럼. 그것도 아니면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사이렌처럼. 당신을 빨리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도 손이 떨렸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순간에 툭, 하고 신호음이 끊겼다. 그리고 여보세요, 말하려는 찰나에 고객님이 전화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제는 익숙하다.
 
*
 
 이곳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작년 말의 일이다. 영화관은 종로 시내를 벗어난 주택가 언덕에 있다. 삼 층짜리 건물의 2층과 3층을 사용하고, 1층에는 북카페가 있다. 집에서는 걸어서 삼십 분 거리지만 어쨌든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아 고른 곳이다. 면접 때 매니저는, 내 앞선 아르바이트생이 아주 오래 일했는데 복학을 한답시고 말 그대로 홀랑 떠나버렸다며 거듭 불평했다. 일을 시작한 후에도 매니저는 압박처럼 계속 내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며칠쯤 대꾸해주다가 하루는 근데 저는 학교 안 다녀서요, 했더니 그 후로는 내게 말 자체를 잘 걸지 않았다.
 영화관은 한 층에 한 관, 총 두 관이 있다. 하루에 틀어주는 영화는 서너 편이 고작이다. 말 그대로 독립영화나 대형 배급사에 밀려 관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진즉에 내려간 영화들이 여기서는 이주의 기대작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된다. 한 관에 좌석이라고 해 봐야 사십여 개가 전부인데도 매진 되는 경우를 여태 본 적이 없다. 많아야 열댓 명이 고작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프로젝터를 조절하고, 극장 의자를 털고, 앞사람이 놓고 간 음료병들을 치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정말 일 없고 편안한 사람들이구나. 그들은 세 시간 감상하고 나면 끝이지만 나는 매일 같은 대사들을 티켓부스에 앉아 몇 번이고 들어야 한다.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내용의 영화들을. 영화를 한 번 보고 만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자주 희미해진다.
 일이 이렇다 보니 자주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외우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주 정도에 한 번씩, 어디 한 번 당신의 취향이 어떤지 시험해보겠다는 듯한 면접관의 얼굴을 하고 매번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는 남자. 별로 다정해 보이지도 않는데 하루걸러 오는 중년 부부, 올 때마다 한결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노인과 언덕 초입에 있는 미술관 큐레이터들. 그들은 모두 영화관의 회원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 대해서도 꽤 안다. 그들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 생년월일을 원할 때마다 꺼내 볼 수도 있다. 영화관의 컴퓨터에 그 모든 게 저장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당신의 것만은 없지.
 그날,
 4월의 어느 날에 당신이 이곳에 왔다. 당신은 내가 있는 티켓부스 앞에서 적갈색 벽에 붙은 포스터들을 보았다. 아동 노동 착취를 담은 다큐멘터리의 포스터 속 아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감독의 유명세에 비해 별로 평이 좋지 않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포스터를 멀쩍이 서서 보다가 또 그다음에는 자신의 휴대폰을 보았다. 그러다가 아무 맥락 없이, 불룩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대뜸 작은 상자를 꺼냈다. 시계가 담긴. 당신은 그 시계 상자의 사진을 찍고,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차보고는 또 한 장을 찍었다. 울퉁불퉁한 벽돌빛 벽을 바탕으로.
 촌스럽네.
 속으로 웃었다. 왜냐하면 상자 밖에 G사의 금박 로고가 빛나고 있었거든. 그 명품 브랜드. 어디 자랑이라도 하려나 생각하는 동안 당신은 시계를 다시 조심스레 집어넣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제일 빠른 거로요. 시간표를 보니 대만의 멜로 영화가 삼십 분 뒤에 상영 예정이었다. 당신에게 말하니 그걸로 달라고 했다. 나는 당신의 카드를 받아들고서 물었다. 멤버십 있으세요? 그 말에 당신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 됐다. 티켓부스 뒤편에 걸린 영화관의 로고를 흘끗 보기도 했다. 딱 보니 처음이네, 생각하고는 더 묻지 않고 결제를 하려는데 당신이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티켓과 카드를 당신에게 건넸다. 떠나가는 당신을 가만 보다가 어, 그런데 기분이 나쁘다, 생각하며 인상을 썼다.
 괜찮다니? 뭐가?
 회원이 아니냐, 물었으면 맞다 아니다로 대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원이 아니면 아니라고 할 것이지 왜 괜찮다고 하지. 내가 뭐라 했나. 이번이 절호의 기회이니 멤버십 하나 만드시라고 부담을 줬나. 열 번 보면 한 번이 공짜라고, 북카페에서 아메리카노도 한 잔 드실 수 있으니 제발 좀 가입하라고 매달리기라도 했냐고. 짜증 나게. 사람을 뭐로 보고.
 불현듯 분이 떠올랐다.
 엄마는 모르지만 안방 자개장의 맨 오른쪽 서랍에는 모피 목도리가 하나 있다. 엄마가 막 시집 왔을 때 분에게 옷 사 입으라고 준 돈으로 산 거라고 분이 말했다. 그때 줘 봤자 어려서 잘 어울리지도 않을 거고, 시간 지나 주려고 했단다. 문제는 어느 날 엄마가 거실에 다들 둘러앉아 과일을 먹던 중에, 자기가 동물 다큐를 봤는데 그게 그렇게 끔찍하더라며 대뜸 말을 꺼낸 것이었다. 엄마는 아직도 그날 왜 분이 저녁밥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분은 얼굴도 내어 보이지 않고 나는 안 먹는다, 나는 괜찮다, 외치기만 했다.
 왜 갑자기 이 일이 떠올랐나. 스스로도 의아해하던 찰나에 매니저가 돌아와 교대를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부스를 빠져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다 저만치 바닥에 종이 한 장이 나뒹구는 것을 보았다. G사의 시계 보증서. 당신이 흘리고 간 거였다. 나는 그 종이쪽을 잠깐 보다가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다시 돌아와서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분실물 찾는 사람 없었어요? 매니저는 고개를 저었다. 대만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나오는 관객들을 보니 여고생 세 명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 한 쌍이 전부였다. 당신은 없었다.
 그 뒤로도 나는 보증서를 버리지 않았다. 다만 당신을 기다렸다. 언젠가는 올 것 같았다. 그 비싼 시계의 보증서인데. 다시 오면 좀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 질문에 또 괜찮다는 말로 대답한다면 갑자기 보증서를 내밀면서 정말요? 정말 이게 없어도 괜찮아요? 하고 묻는 거지. 그렇게 당황하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은근히 기다렸다.
 
*
 
 당신을 찾는 데에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내가 영화관에서 일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곳의 직원이고, 일하는 동안은 휴대폰을 쓸 수 없다. 나에게는 아직 걸어야 할 번호가 많이 있다. 이런 식으로는 당신을 찾는 일이 늦춰질 거란 것을 알지만 나는 영화관을 그만둘 수 없다. 영화관은 당신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니까.
 나는 지금 직원 휴게실에 있다. 2층 상영관 복도 끝 구석에 있는 곳이다. 테이블 위에는 씹다 만 샌드위치를 올려놓고, 또 다른 한쪽에는 볼펜 자국으로 종잇장이 우글거리는 수첩을 놓아두고,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공일공 공공공공 공이공팔 누르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종로 E영화관인데요…….
 수첩 낱장을 열 장 정도 넘겼을 때부터 요령이 생겼다. 어린이거나 여자거나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전화를 끊는다. 부재중이거나 통화 거절을 한 사람들은 받을 때까지 거는 것보다 시간차를 두고 걸 때 받을 확률이 높다. 나는 부재중이 찍혀 있으면 꼭 재발신을 해보는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아이거나 아주 나이 든 노인들이다. 그러면 나는 끊는다. 고맙지만 당신이 아니니까. 그렇게 해도 하루에 몇 장을 넘기기 어렵다. 내 엄지손톱만 한 두께의 수첩은 수십 권이 남았는데 나는 아직 한 권도 채 끝내지 못했다.
 "너 뭐하니?"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매니저다. 한 손에는 눅눅한 튀김 냄새가 올라오는 컵 비빔밥이 담긴 봉지를 들고 있다. 전화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수첩을 닫아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다. 매니저는 원형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는다. 봉지를 헤쳐 음식을 꺼낸다. 뚜껑을 여니 김 때문에 생긴 물이 밥 위로 후드득 떨어진다. 매니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숟가락을 들어 그것을 잘도 비벼 먹는다. 나는 휴대폰을 허벅지 위에 내려놓고 대신 마른 빵 조각을 집어 든다.
 "그래서 아직도 그 사람 못 찾았대? 연락 없어?"
 매니저는 왠지 준비해온 것 같은 말투로 묻는다. 나는 조금 긴장한다. 혹시 매니저가 당신을 직접, 찾겠다는 내 계획을 다 눈치챈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빵을 열심히 씹는 척 대답을 미룬다.
 "할머니는 좀 어떠신데?"
 걱정 같기도 하고 취조 같기도 한 물음이 이어진다. 대답을 바라지는 않은 듯 매니저는 자기 할 말을 계속한다.
 "금방 깨어나실 거야. 우리 할아버지도 평생을 병 같은 거 모르고 사셨거든. 근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목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나. 집안 어른들 난리 났었지. 폐암인 거 아니냐고, 담배를 그렇게 펴 댔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근데 뭐였냐면, 편도결석이더라고. 하얗고 노란 찌꺼기, 목구멍에서 나오는 그거."
 나 웃겨서 진짜. 매니저는 파편이 튀는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밥도 먹고 말도 한다. 매니저는 곧 일어나 휴게실 문 옆에 있는 정수기로 간다. 원기둥을 닮은 일회용 컵에 물을 한가득 따라 마시고는 새 컵을 뽑는다. 그러고는 물을 담아 내 쪽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적지 않게 따른 물이 일순 출렁 흘러넘친다. 오른쪽 손가락 끝을 적신다. 마셔. 매니저는 선심 쓰듯 말하고는 반쯤 남은 제 그릇을 봉투에 아무렇게나 집어넣고 휴게실을 나선다.
 참 세심하고 무례한 사람이네.
 나는 매니저의 할아버지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작년 성탄절 전, 할아버지의 삼일장 때문에 자리를 비웠으니까. 자식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죄가 많은 사람이라 빈소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고 떠들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천주교장을 치렀는데, 할머니가 저놈은 지옥 갈 건데 뭐 이런 걸 다 하냐고 소리를 질렀댔지. 닿지 않는 위로가 이렇게 치욕스럽다. 그런 사람을 갖다 대면서 나를 위로하고 분을 걱정하다니. 분이 어떤 사람인데.
 분은 남에게 상처보다 선물을 주는 게 익숙한 사람이고, 상처를 받아도 되돌려줄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분은 편도결석 따위 때문에 병원에 간 게 아니다. 지옥에 갈까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도 아니다. 분은 분이고, 분은 담배도 피지 않고, 누구에게도 원수지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따라서 분에게 닥친 사고는 유난히도 개연성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불행의 정의이기도 했다.
*
 야, 이쯤에 초등학교가 나와야 하는데 없다고 그날 분은 말했다. 봄이었고, 오후 근무 날이었고, 나는 이십 분의 휴식시간을 가지던 참이었다. 잠깐 눈이나 붙이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걸려온 분의 전화에 조금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지하철 나와서 직진만 하면 되는데 왜 초등학교가 없어? 물으니 분은 잠깐 앓는 소리 같은 것을 냈다. 내가 지하철에서 내렸다고 했니? 버스에서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주변에 뭐가 보여?"
 "육교가 있다. 횡단보도가 코앞에 있는데 뭐하러 저걸 만들었을까."
 집 주변에는 육교가 없어서 나는 한 번 더 짜증을 냈다. 분은 몇 달 전에 수년간 쓰던 폴더폰을 버리고 스마트폰으로 바꾸었지만 그걸 사용하는 법은 몰랐다. 길 찾기 앱에 집주소를 쳐본다거나 하는 일은 그때껏 액정을 버튼처럼 힘주어 누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분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주변에 누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찰나에 매니저가 들어왔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매니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어. 그러면서 들고 온 텀블러에 물만 따르고 나갔다. 다시 휴대폰을 귓가에 대고서 할머니, 하고 불렀다.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몇 번 더 분을 불렀다. 그러다가 대뜸 남자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아이씨."
 이 사람은 누군데 분의 옆에서 이런 적나라한 짜증을 내는 거지? 의문이 먼저였고 기시가 다음이었다.
 "할머니. 괜찮아요?"
 당신이었다. 의미는 달랐지만 괜찮아요, 라는 네 글자에 담긴 발음이나 어투 같은 것이 그랬다. 당신, 물을 수도 있었구나. 그 찰나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당신이 분의 옆에 있을까. 내가 듣지 못한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여보세요. 재차 묻고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누구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신도 두 번 묻지 않았다. 뒤이어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을 지나치는 것처럼 가까이 들리던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서 종내는 다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날에.
 나는 가만히 있다가 전화를 끊고, 전화를 걸었다. 119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사고가 난 것 같은데요. 저 말고요 우리 할머니. 여기 아니고 육교가 있는 곳이요. 초등학교는 없고. 어딘지는 몰라요. 위치 추적 안 돼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도 모르겠다고. 모른다고.
 
*
 
오후 다섯 시까지의 낮 근무를 끝나면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북카페로 향한다. 꽤 규모가 있는 인문도서 전문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이미지와는 다르게 2인용 나무그네나 꽃장식을 달아놓은 흔들의자 따위의 좌석들을 가져다 두었다. 나는 그냥 카페 안쪽 구석, 붙박이 나무 의자에 솜 죽은 방석만 달랑 얹어져 있는 자리에 앉는다. 거기에서 테이블 위에 수첩을 펼쳐놓고 계속 전화를 건다. 당신이 받을 때까지. 한편 계속 기다린다. 당신이 저 문을 통해 들어오기를. 북카페가 문을 닫는 열 시까지. 당신은 곧 내 일과다.
이런 나를 카페 직원이 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직원은 틈나는 대로 나를 주시한다. 어차피 내가 영업 종료 때까지 버티고 있을 걸 알면서도. 하지만 직원은 한번도 내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 적이 없다. 왜 몇 달 전부터 계속 앉아 있는지, 내가 주변 테이블 정리하면서 좀 들었는데 손님의 시계 보증서를 주웠으면서 왜 절차에 따라 분실물 처리를 하지 않고 전화나 걸고 앉았는지, 위층 영화관에는 그런 메뉴얼도 없는지. 직원은 묻지 않는다. 그러나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까 점심시간에 걸다 만 번호가 적힌 페이지를 펼친다. 오선지 같은 취소선들과 숫자들이 오톨도톨하게 손끝에 걸린다. 공일공, 하고 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을 듣는다. 가끔은 그에 맞춰 숨도 쉰다. 두르릇, 소리에 숨을 들이켜고. 두릇, 내뱉고. 그러다 툭, 하면 숨을 멈추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종로 E영화관인데요. 혹시 시계 보증서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서울이죠. 종로니까. 네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여기 영화관인데요, 종로 E영화관. 혹시 최근에 보증서, 시계 보증서 잃어버린 적 없으세요.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잘못 걸었나봐요. 아뇨, 할아버지. 전화 잘못 걸었다고요. 아니에요, 혜진이. 저 할아버지 모른다니까요, 저 진짜 혜진이 아닌데.
한참을 전화 걸다 건물 입구를 바라본다. 근처 고등학교 교북을 입은 학생 셋이서 시시덕대며 층계를 오르고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수첩 속 번호를 지워내는데 누군가 내 옆에 선다. 올려다보면 김 씨다. 엄마에게서 퀼트 초급반을 수강했던, 옆 동 사는 여자. 나는 재빨리 수첩을 덮는다. 어머, 너 맞구나. 여자는 뭐가 그리 반가운지 자기 혼자 박수를 친다. 들었던 거 같다. 너 작년부터 여기서 일한다고. 여기 영화관, 맞지? 고개만 끄덕이니 어떻게 된 애가 한결같이 정이 없다고 어깨를 툭 친다. 나는 많은 말들을 생략하고 어쩐 일이시냐고 묻는다. 동네 여자들이랑 무슨 좋은 영화 한다기에, 근데 그냥 영화관에서는 또 안 틀어준다기에 여기 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다 김 씨가 묻는다.
“병원엔 좀 들르냐?”
나는 쉽게 그렇다 말하지 못한다. 요 근래에는 당신 때문에 분에게 가보지 못했다. 분이 있는 곳은 육인실이라 오랜 시간 전화를 하기 곤란하다. 김 씨가 상기시켜주었다는 점이 짜증스럽지만 오늘은 병원에 들르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느이 엄마 불쌍하지도 않냐, 너는.”
“아.”
미친년. 한순간에 생각은 김 씨가 퍼뜨리고 다닌 이 동네 싸가지없는 며느리 이야기로 넘어간다. 주민센터 퀼트반 강사 그 여자 말이야, 하고 김 씨가 떠들고 다닌 그 말들로.
 
엄마는 분을 분이라고 부른다. 어머님이라고 하지 않고 분 씨, 라고 해준다. 분 씨, 밥 먹어요. 분 씨, 날도 좋은데 동네 한 바퀴 돌까요. 혹시 이 앞에 세탁물 좀 찾아와줄 수 있나요, 분 씨. 매번 감사해요. 분은 그것을 아주 좋아한다. 엄마가 언제부터 분을 분이라고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엄마를 따라 분이라고 불러볼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예의보다는 느낌의 문제였다. 엄마가 분을 부를 때의 느낌을 나는 따라 할 수가 없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여기다 자주 말을 보탰다. 고부지간 좋은 건 알겠는데 선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암만 시어머니한테 분, 분. 함자를. 김 씨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매번 마주칠 때마다 까르르 웃는 척 싫은 소리를 하길래 몇 번은 참다가 한 번은 말했다. 아줌마, 이웃인 건 알겠는데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거 아니에요? 김 씨는 그 후로 길바닥에서 이웃들과 우리집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머, 내가 이런 소릴 하면 그 집 딸한테 혼나지, 하며 짐짓 사리는 척했다. 이웃들이 영문을 몰라 물으면 그제야 실컷 목소리를 높였다. 덕분에 아주 되바라진 애라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그 애의 불운한 할머니 이야기도 그녀를 통해서였다.
그 집 할매는 옛적에 잘난 아들을 뭔 일로 잃었다. 남은 건 새파랗게 어린 며느리랑 두 살 된 손녀뿐이었다. 그 후로 셋이서 없는 살림에 연금 그거 푼돈 받아가며 어렵게 살아왔다. 며느리는 나중에 주민센터 강사가 되어서 또 푼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불쌍한 할매가 어느 날은 친구 만난다고 나왔는데 도통 집에 돌아가는 길이 기억나지 않았던 거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총총해서 길고양이 이름 붙여 밥 먹이던 할매였는데 하필 그 순간에.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래서 가족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며느리가 안 받았단다. 다시 손녀한테 마저 전화하던 참에, 손녀가 할머니 여보세요 하던 참에 차가, 할매의 작은 몸에 비해 너무나도 커다란 차가.
더 무서운 건 그 범인이 안 잡혀서 아직 돌아다닌다는 거지. 그녀는 그 똑같은 래퍼토리를 주변 모두에게 공평하게 이야기했는데 몇 번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며느리가 먼저 전화만 받았어도 좋았겠지. 그 여자가 시어머니 이름을 멋대로 부를 때부터 정해진 일인지도 모른다. 더럽게 운 나쁜 집안이야. 나 아는 경찰도 그래, 막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제대로 된 목격 제보 하나가 안 들어온단다. 이런 일이 또 없었다고.
그랬던 김 씨가 엄마더러 불쌍하다고 한다. 몸에 열이 돈다. 휴대폰을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진짜 되바라진 애가 어떤 건지 보여줄까. 대뜸 비명을 질러 어머 얘가 미쳐 돌았나 싶게 당황하게 또 무섭게 만들어줄까. 휴대폰으로 머리를 내리쳐서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억울하게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물어봤자 답은 없다. 누구든 원하든 원치 않든 불행은 원래 평온한 표정으로 남의 안부나 묻고 있을 즈음에 찾아들거든. 손이, 울음을 참는 어깨처럼 떨리기 시작할 때 김 씨가 갑자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고 기죽어 있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힘내라는 거지.”
김 씨가 자리를 뜬다. 나는 홀린 듯한 기분이 된다. 방금 나를 감싸던 뜨거운 기운이 일순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카페 곳곳에 흩뿌려져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 달라붙는다. 무례한 중년 여자로부터 하찮은 위로를 받는 젊은 여자의 사정을 상상하게끔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정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궁굴려지면서 몸집을 키운다. 그들로 하여금 안온한 현재와 무난했던 어제에 대해 감사하게 만든다. 체감이 아닌 감상에 그치는 그 과정은 어느 정도는…… 영화 보는 일을 닮지 않았나. 사람들은 다 그렇다. 줄거리 같은 소문은 사랑하는데 귓가의 흐느낌은 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내통하고 싶지 않아 한다.
나는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선다. 나가는 길에 직원이 웬일이냐는 듯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본다. 곧 시선을 돌린다. 이상할 것도 없다.
 
*
 
경찰은 당신을 조사해달라는 내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어했다. 목소리같이 흔적도 남지 않는 걸로는 누구도 찾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참 전에, 그것도 영화관에서 일하다 한 번 들은 목소리가 정확하겠느냐고요. 나는 정중하고 정확하게 요구했는데 그는 반말로 대꾸했다. 나는 답답했다. 당신이 괜찮다는 말을 지독히도 생생하게 지껄여서, 내가 언젠가 똑같이 불쾌하게 만들어주려고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기억이 틀릴 리가 없다고. 경찰은 귀찮은 내색을 숨기지도 않고 나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문득 떠올랐다. 휴대폰 케이스 뒤에 넣어둔 당신의 시계 보증서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휴대폰을 막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경찰은 갑자기 조서를 작성하던 키보드를 한쪽에 밀어두며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아가씨. 여기에 한 열댓 명의 남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허공을 손날로 가볍게 짚으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남자들한테 내가 전부 안녕하세요, 하라고 시킬 거야. 아가씨 들으라고. 그리고 다음날에 똑같은 남자들을 데리고 와서 똑같은 말을 하라고 해. 그럼 아가씨는 그 목소리들을 다 구별할 수 있어?”
잠깐 정적이 일었다.
“범인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한다면서. 그 말 증명할 수 있느냐고.”
증명이라고.
내가 왜?
나는 분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달라고 온 건데. 증명은 나의 일도 의무도 아닐 건데 왜 나한테 그걸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일은 누구의 몫이길래.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찰은 무어라 더 말하려다가 아이고 그래 오늘은 그냥 가라고 손짓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줄곧 이쪽을 보고 있던 의경 하나가 어어, 하고 다가왔다. 경찰이 말렸다. 가라고 해. 그냥 교통사고 조서라, 지금처럼 정신없는 상태에서 써봤자 하등 도움 안 되거든. 가서 쉬어요.
불행은 그냥 일어나지만 그냥 불행인 일은 없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이 중요한 사실에 관심이 없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내가 당신을 잡겠다고 직접 나섰다는 것. 그 방법이 당신이 흘리고 간 종이 조각 하나를 인질로, 이 세상의 모든 목소리를 들어 당신을 잡아내려 한다는 것.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내가 그것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 이야기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마치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
 
영화관이 있는 언덕과 골목을 빠져나가 큰 길가로 가면 곧바로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나는 분하지만 김 씨의 말대로 병원에 가기 위해 그 정류장 앞에 선다. 그곳에서 09번 버스를 타면 병원에 한 번에 갈 수 있다. 그 길목에, 병원보다 두 정거장 더 가까운 곳에 <노인복지관, 세란내과>라는 정류소가 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영업하고 있는 동네 내과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 분과 함께 그곳에 가본 기억이 있다. 편도선에 염증이 나서였나.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에 분은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할머니, 나 자주 아플까봐. 그런 말을 했다가 어깨를 퍽 소리 나게 맞았다.
내과는 4층짜리 벽돌 건물에 있는데,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그 시립노인복지관과 마주 보고 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분도 그곳에 들르곤 했다. 거기서 뭐해, 물으니 동네 할머니들하고 대화 조금 하고 봉사학생들에게 안마도 받다가 산책이나 간다고 했다. 산책이라고 하면 언덕을 오르는 일. 막 가파르진 않지만 노인이 왕복한다면 좀 힘들 만한 그런 언덕이다. 언덕의 반대편은 대형대학병원의 쪽문 공터와 닿아있다. 분은 꼭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하루는 분이 이런 얘기도 했다. 사실 쪽문에서는 매일 누군가의 자식이며 부모고 남편 또 아내인 사람들이 휴대폰을 붙들고 있다. 목소리를 낮춰 가만가만 수화기 너머로 말하다가도 이 개쌍놈의 새끼야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불상하고 죄 없는 나의 그 애가 어째서 이런 일을 겪냐며 왜 나한테 왜왜왜 못된 놈들이 세상에 수억인데 왜 이렇게 되느냐며 무너지는 그들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 대목에서 나는 인상을 쓰고 그건 아주 나쁜 취미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흥미로 보는 거잖아, 그건. 내 말에 분은 좀 놀란 듯했다.
“흥미가 아니라 알고 싶은 거지. 아프고 결백하다잖니.”
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억울하고 결백한 건 경찰이 들어줄 거고 다치고 아픈 건 의사가 해결해줄 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니 할머니도 그냥 운동이나 열심히 해서 나는 저기 가지 말아야지, 그 궁리나 하시라고 장난스레 덧붙였다.
세란내과를 지나쳐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는 병원의 정문 앞에 나를 내려준다. 분은 지금 이 병원 501호실 창가 침대에 누워 있다.
벌을 받는 기분이라고 자주 느낀다.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간만에 온 병실에는 환자가 분을 포함해 셋뿐이다. 두 명 중 한은 이전에 본 적이 있다. 오른편 가운데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있는 남자다. 구면이니 아는 척 해야 하나 하고 멀거니 보다가 등을 지고 돌아선다. 병실 문 바로 왼쪽 침대에는 새로 온 노파가 누워있다. 머리는 깎여 있고, 몸은 뒤척이다 멈춘 것처럼 아무렇게나 뒤틀려 있다. 얼핏 마임 배우 같다고 생각한다. 노파의 눈은 나를 향해 있다.
나는 어물쩍 목인사를 하고 창가 쪽 분의 침대로 걸음을 옮긴다. 분은 여전히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귀퉁이에 있던 간이 의자를 끌어와 앉는다. 잠깐 분의 얼굴을 보다가, 침대 속으로 손을 넣어 분의 다리를 주무른다. 분의 다리에는 살이 하나도 없다. 살을 주무른다기보다 뼈를 더듬는 느낌이다. 손끝이 자꾸만 비늘 같은 가죽 위에서 미끄러진다.
“야. 나 화장실.”
노파가 대뜸 말을 걸어온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병실 문을 연다. 지나가는 조무사를 한 명 붙잡는다. 화장실 가고 싶으시다는데요. 조무사는 들어오지도 않고 문틈으로 병실 안을 살짝 들여다본다. 저 분 보호자세요? 묻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조무사는 한 걸음 물러선다. 원래 다들 저러세요. 기저귀 입혀드려서 괜찮아요. 그러고는 자리를 뜬다.
노파는 답이 없다.
돌아와 분의 이불을 정리해주고서 창밖을 바라본다. 어느새 일어난 한이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조심스레 노트를 펼친다. 표시들로 빼곡한 앞장에 비해 번호만 적힌 뒷장은 잉크가 조금씩 번진 것 말고는 깔끔한 편이다. 다음 주쯤에는 한 권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한 달 반에 한 권. 몇 권이 남았더라. 몇 번이나 남았더라…….
전화를 건다.
귀가 조금 먹먹해진다. 누군가 받고 내가 묻고 서로가 전화를 끊는 일이 몇십 번이고 반복된다. 어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당신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에 분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 번호를 누르는 손이 빨라진다. 여보세요? 여기 종로 영화관인데요. 혹시 시계 보증서 잃어버리지 않으셨어요.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여기는 E영화관이고 저는 직원인데요. 최근에 시계 보증서 분실하셨나요? 네, 보증서요. 시계.
“아, 시계 보증서요?”
일순간 상대와 나 사이에 침묵이 돈다. 나는 번호를 확인한다. 나는 방금 전 들었던 상대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린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당신인가.
“글쎄요. 보증서라.”
상대가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당신인가. 내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걸 알고 이러는 건가. 긴장에 뒷목이 뻣뻣해지는데,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넘어온다.
“너 이래서 걔 잡겠냐?”
이제 천 번 대면 어떡해. 내가 같이 좀 걸어줘? 도와줄까? 신이 난 듯한 그 말투에 깜짝 놀라 전화를 끊는다. 이 사람 누구지. 누군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그것도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닌 것처럼, 이미 나 같은 사람들을 수없이 지켜봐 온 것처럼 그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누구를 찾았을까. 뭐라고 하면서 찾았을까. 왜 찾았을까. 의문이 하나 떠오를 때마다 방금의 번호 위에 선을 긋는다.
끝내는 어떻게 됐을까, 그 사람들.
나는 이제야 그런 것이 궁금해진다.
“야.”
다시 노파다.
“왜 이제 전화했냐.”
노파는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다. 어쩌면 잠꼬대인지도 모르겠다. 다들 너 멀리 떠났다고 하더라. 내가 지겹다고. 노파는 계속 말한다. 뭐라도 들은 것처럼 한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내가 여기 있는데 네가 어디 갈 사람이냐.”
 
*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떠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며칠이 지나고서 다시 병원에 들르게 됐을 때 노파에게 꼭 이 말을 해줘야지 싶었다. 병실 문을 열자 먼저 와 있던 엄마가 분의 마른 등을 닦아주다가 반가운 얼굴을 하고 나를 보았다. 말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이 사람들 새로 왔대, 인사해. 원래 남자가 잇던 자리에는 목에 깁스를 하고 지루한 표정으로 게임기를 두드리는 아이가 있었다. 노파가 있던 자리에는 간호사들의 말을 자꾸만 따라 하는 여자가 있었다. 주사 놓을게요. 놓을게요. 큰 소리로 떠드시면 안 돼요. 안 돼요. 팔에 힘주시면 어떡해요. 어떡해요, 히히, 어떡해요?
 
*
 
나는 지금 육교 위를 걷고 있다.
사고가 났던 곳의 그 육교다. 집에서 도보로 이십 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날 분이 어떻게, 무엇을 타고 이곳에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육교의 난간에는 이번 여름과 가을 내내, 김 씨가 말한 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칠십 대 여성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목격자가 있다면 담당 경찰관에게 연락을 달라는 내용을 담은. 계절이 바뀌면서 현수막은 내려갔다. 연장을 해달라 말했지만 이미 다음 사람이 예약되어 있다며 거절당했다.
억울한 마음이 커서 종일 육교가 내다보이는 곳에 서서 무엇이 걸리나 바라보았다 .사라진 내 아들 좀 찾아주세요. 잃어버린 곳은 공원. 때는 2002년. 오른쪽에 커다랗게 박힌 남자아이의 사진, 앞니 빠진 그 어린 얼굴이 바람 때문에 물살에 비친 상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 봤다. 도착해서는 소파에 앉아 조금 울었다. 겨울이 지나면 또 바뀔 것이다.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하다. 익숙하다는 것은 괜찮다는 게 아니라 나는 계속 육교에 온다. 육교 계단을 오르면서 궁금해한다. 당신은 왜 보증서를 찾으러 오지 않나. 그 아끼던 시계의 보증서인데, 잃어버린 걸 분명히 알았을텐데. 당신이 시계를 꺼내본 곳들을 더듬다가 한 번쯤 영화관에 들렀을 법도 한데. 당신의 시계는 고장 나지도 않나. 계속해서 내일과 모레를 거리낌 없이 맞이하러 잘도 흐르나.
육교에 올라서서는 흐르듯 달려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본다.
불빛이 살아있는 듯 점멸하고 숨결 같은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모든 물체가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듯 서로 다른 속도와 모습들로 매일매일 바뀐다. 나는 그런 게 없다. 흐르는 시간이 없다. 나는 분이 없는 봄을 맞이해 무사히 다음 나이가 될 자신이 없다. 어제의 일이나 오늘의 일이나 내년, 그다음 해의 일 모두 내게 똑같을지 모른다. 모른다는 게 두렵다. 고장 난 채 초침만 등신처럼 같은 허공을 찌르는 이 세계가, 세계랄지, 아니면 시간이라 해야 할지. 나아가지도 않고 돌아오지도 않는 지금, 이곳이 언제 끝날까. 응?
소란 속에서 내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이 있을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소설 부문 당선 소감

 

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나의 문장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거듭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는데 최근 들어 이거 좀 오만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문장의 참 거짓을 따지자면 어쩔 수 없이 참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 몇 줄짜리 문장이나 되어보자고 제 곁에서 웃고 떠들고 손을 잡았다가 더러는 놓고 그러고 나서는 울며불며 죽일 듯 노려보다 떠나가거나 남은 건 아닐 테니까요.
 소설은, 수 번을 고치는 동안 '찾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남은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전화의 발신자와 수신자 모두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만날 남들을 적어 내리다가 꽤 많은 저를 썼습니다. 때문에 혹시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어린 생각으로 쓴 게 아닐까, 공모에 내기 전까지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으로 그 생각들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쓰겠습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아직도 자라고 있습니다.
 
 
 
 소설 부문 심사평
 
   단편의 감각과 사유
 올해 김용 문학상에 투고된 작품들은 단편 소설의 미학을 차분하게 잘 구현한 수작들이 많았다. 일상에서 느끼는 미묘한 변화의 순간을 잘 포착하여, 사소한 변화로 인해 뒤틀리기 시작하는 일상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판타지, 스릴러, 공포, 미스터리 등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시공간을 벗어나지 않고, 개인의 현실적 삶의 문제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깊이가 있었다.
 특히 모든 작품들이 초반 흡입력이 좋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서두의 장편을 구성하는 상상력과 감각이 돋보였다. 하지만 작품의 마무리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감각적 서두, 미세한 균열이 일으키는 삶의 문제를 포착하는 섬세한 시각 등은 단편의 미학을 충분히 보여주었으나, 결말에서는 어떤 의미도 만들지 못하거나, 너무 과잉해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단편의 결말은 오히려 깊은 사유 속에서 이미지화되어야 한다. 급하게 소설을 마무리 짓기보다는 결말로 가기 전에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차분함이 필요하다.
 심사위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투고작 중에서 다음의 세 편을 최종 후보로 올려놓았다. 「해설(解雪)」, 「그네는 어떤 얼굴로 흔들리나」, 「전화」이다. 「해설(解雪)」은 화자의 이혼 문제가 부당 해고의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오키나와의 독립 문제와 맞물리면서 한 사람의 일상을 통해 역사적 문제까지 생각하게 해보는 작품이었다. 모든 소재들이 의미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난 느낌이 아쉬웠다. 「그네는 어떤 얼굴로 흔들리나」는 아파트 경비 노인, 아이 실종, 불량소녀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묵직한 작품이었다. 다만 기존 소설이나 영화의 익숙한 모티프들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어서, 단단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었다.
 「전화」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뺑소니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범인을 찾으려는 손주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어, 끝까지 잘 읽히는 작품이었다. 전형적인 스릴러로 풀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처음부터 직접적인 문제를 던지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시계 보증서를 잃어버린 손님을 찾는 화자의 이상한 집착으로 시작하며, 진짜 사건을 능청스럽게 숨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독자들이 소설을 끝까지 따라 읽어갈 수 있게 하며, 우리 삶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대한 주제를 감각적으로 전달하였다. 추적의 서사에 걸맞게 문장도 짧고 간명하여 마지막까지 속도감 있게 달려가게 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을 써내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주라(문화평론가,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은경(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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