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12.6 금 17:39
원광대신문
기사모아보기   
특집
제18회 <원광 김용 문학상> 당선작 - 희곡선형정 - 반걸음, 반걸음
원대신문  |  webmaster@wknews.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1.10  16:45:5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반걸음, 반걸음

 

 작성 의도:
 사람들은 엄마와 딸의 사이가 누구보다 더 가깝다고 하는데,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어른에 조금 더 가까워질 때다.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를 해야 할까. 용서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이 이상한 걸까.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라 쉽게 해결이 되지 않고, 쉽게 해결되면 왜인지 상처를 급하게 봉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 쉽게 해결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해결이 되지 않아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게 있을 것이다.
 때문에 시나리오 내부에서 무언가 다 해결되고 봉합되는 것 말고, 그 후에 인물이 조금 성장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자 했다. 한 보가 아니라 반 보씩 나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나이를 먹는다고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 보씩 나아가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 움직인 것만으로 모양을 달리하는 그림자처럼, 반 보일 뿐이어도 나아간 것만으로 천천히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
 재연 (20살 새내기)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빠 어렸을 땐 외할머니 집으로 내려와 지냈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라 형제도 없이 자랐다. 이혼 후엔 아빠와 자라며 엄마를 별로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을 잘 보러오지도 않고 만나도 별 얘기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엄마에게 자신도 매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그에 익숙하다. 애들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막상 다가오면 내치지는 않는다.
 
 엄마 (여 민희 40대 후반)
 이혼을 하고 서울에서 직장과 거처를 옮겨 다니다 결국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에서 어머니 밭일을 돕는다. 건조한 태도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자세 때문에 재연이 오해를 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그렇지만 재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하다. 재연이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리웠다. 시골 마을에서 딸이어서 박대 받은 상처가 있다.
 
 구희 (8)
 재연이 만나게 되는 아이. 밝지만 외로움을 많이 탄다. 마을 아이들과 무슨 일이 있거나 외로워지면 사당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첫 만남에 우연치 않게 자신을 도와준 재연을 잘 따르게 된다.
 
 할머니 (70후반)
 주로 밭에 나가 있으며 활발하게 마을을 돌아다닌다. 넉살이 좋으며 털털하다. 몸이 안 좋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이 보인다. 재연은 마냥 오냐오냐 예뻐하지만 딸과는 잘 지내는 듯 보이면서도 속을 찌르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키가 큰 사람 (나이, 이름 불명)
 키가 대략 2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인물. 너무 어두워 거의 검은 색으로 보이는 색감의 한복을 입고 나타난다. 재연을 이끈다. 사실 사당나무가 인간의 모습을 띤 것이다. 제 안으로 들어와 외로움을 달랬던 구희와 외로움을 많이 타던 재연을 만나게 해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S#1. 버스터미널
고속버스에서 내리는 재연. 읍내라고 하지만 썰렁하다. 멀리 지나가는 노인 한 명만 보인다.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재연은 주변을 둘러본다. 종이로 되어 있는 시내버스 시간표에 시간은 없이 1525354555분 숫자가 써있다. 핸드폰을 켜자 화면에 1213분이 뜬다. 허겁지겁 달려가는 재연.
 
S#2. 버스정거장버스터미널
정거장 의자 앞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재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전광판이 없어 핸드폰 화면만 쳐다본다. 12:19 이라는 숫자가 화면에 잡히고 재연은 주변을 둘러보지만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다. 다시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재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매표소 직원 앞에 선다.
 
재연: 말씀 좀 여쭐게요.
 
안내원이 고개를 든다.
 
재연: 저기 버스 시간표엔 15분이라고 돼 있는데 버스가 원래 좀 늦나요?
직원: 버스요? (재연을 흘끔 보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거 도착 시간이 아니라 출발 시간이에요.
재연: ?
직원: 15분에 버스가 종점에서 출발한다는 거예요. 15분에 출발하면 아마십 분 조금 넘게 걸릴 건데.
재연: 감사합니다.
 
S#3. 버스정거장
재연: 아니 뭐 이래
 
의자에 앉는 재연. 핸드폰을 보다 멍하니 앞을 본다. 매미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도로에는 다니는 차도 별로 없다. 손끝을 뜯던 재연은 이내 일어서서 초조한 듯 주변을 서성인다. 터미널 쪽과 도로를 번갈아본다. 멀리서 버스 터미널 시간표가 보인다. 서울행 버스 시간이 한참 남았다.
 
S#4. 버스 안
서울에서 쓰던 버스 카드가 찍히지 않아 허둥지둥 남은 동전을 끌어 모아 돈을 낸다. 버스 안에도 사람이 없다. 버스의 중간 지점 쯤 앉아 창가에 머리를 기댄다. 창밖으로 늘어선 나무들과 드문드문 서 있는 낮은 건물들, 논이 보인다.
 
NA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때는 아빠 차를 타고 왔었다.
 
버스가 자주 덜컹이지만 재연은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S#5. 버스정거장시골 집
정거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고물상 앞을 지나가자 묶여 있던 진돗개가 짖는다. 가방을 움켜쥐고 조금 빠르게 걷는 재연. 논 사잇길을 걷는다. 멀리서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옷으로 부채질을 하며 재연, 이윽고 대문 앞에 도착한다.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자루를 들고 마당을 지나던 할머니가 재연을 반긴다.
 
할머니: (자루를 내려놓고 재연 앞으로 빠르게 걸어오며) 아이고 재연아! 내 새끼 할미 보러왔냐?
재연: 할머니 몸은 좀 어때?
할머니: 뭐 안 아픈 데가 없지. 물팍도 안 좋고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재연: 그럼 들어가서 좀 쉬지 뭘 또 이런 걸 들고 옮기고 있어. 줘 봐.
할머니: 됐어 방에나 들어가 있어.
 
재연이 가방을 토방 위에 올려놓고 자루를 들려고 하자 할머니가 손사래를 친다. 잠시 실랑이를 하지만 결국 할머니가 자루를 이고 간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던 재연이 고개를 돌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텃밭으로 올라가던 할머니가 큰 소리로 외친다.
 
할머니E: 재연이 왔는갑다. 좀 봐라!
 
재연은 할머니가 외친 방향을 올려다본다. 엄마도 재연을 보는 것 같지만 모자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잠시 엄마가 있는 방향을 지긋이 바라보던 재연이 먼저 고개를 돌리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S#6. 안방. 저녁 식사.
텔레비전 소리E. 재연과 할머니 대화 소리E. 잔잔히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묵묵히 밥을 먹던 엄마가 문득 말을 꺼낸다.
 
엄마: (티비를 바라보며) 대학은 괜찮아?
재연: (잠시 엄마를 보다 이내 다시 반찬으로 시선을 돌리며) 나쁠 건 뭐 있어.
 
정적이 흐른다. 할머니 웃음소리 E. 작은 날벌레들이 전등 빛에 방충망 사이로 들어오고 자꾸 바닥으로 떨어진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기겁하는 재연. 티비를 보던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보더니 웃는다.
 
할머니: 못 본 새에 참말로 서울깍쟁이 다 되어 부렀구만. 뭐야, 옛날에는 잠자리나 매미도 잡는다하고 고동도 잡아 오더만.
재연: (밥그릇 근처로 떨어진 날벌레를 휴지로 닦아내며 투덜거린다.) 아니 대체 언제적 얘기야 그게.
 
엄마는 그런 두 사람을 보다 이내 다시 티비로 시선을 돌린다. 조금 멍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다. 티비 소리가 배경음으로 계속 들어가지만 세 사람 사이는 고요.
 
S#7. 옆방/
이불을 까는 재연. 할머니는 이미 이불 위에 누워 있다. 재연은 슬쩍 할머니를 보다가 미닫이문을 열어 마루를 본다. 마루는 아무도 없이 고요하고 화장실 옆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살짝 비치던 빛이 사라지는 게 화면에 잡히고. 재연은 미닫이문을 닫고 베개를 자기 자리 위로 던진다. 뒤돌아 누운 할머니를 바라보는 재연.
 
재연: 엄마는 원래 여기서 안 자?
할머니: (잠꼬대 하듯이) .
 
S#8. 이른 아침/마루
할머니E: (재연을 흔들며) 아야 일어나라. 해가 중천인디!
 
재연, 웅얼거리며 뒤척인다.
 
할머니: (재연의 등을 찰싹 때리며) 아야!
 
할머니, 재연의 이불을 뺏는다.
 
재연: (짜증내며) 아 알았어!
 
재연이 겨우 일어나 자리에 앉는다. 고개도 들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앞으로 기울어지려하자 할머니가 재연의 등을 때린다. 재연, 간신히 기어 나와 핸드폰을 집는다. 와이파이를 잡아보려 이리저리 왔다갔다하지만 표시는 간당간당하다. 파리가 재연의 주변을 날아다닌다. 재연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카톡을 보낸다. ‘여기 벌레 오져. 지금 일어나야 돼. 도랏. 집에 가고 싶어카톡 옆의 숫자 2가 사라지지 않는다.
탁 소리 나게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재연. 더워서 마루에 있는 선풍기를 킨다. 펄럭거리는 옷을 잡고 부채질을 하는 재연. 할머니는 이미 나가고 없다. 모자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엄마. 재연은 토방에 앉아 신발을 신는 엄마의 뒤에 슬쩍 선다.
 
재연: (뒷목을 긁으며) 할머니 많이 안 좋아?
엄마: (신발 뒤축을 확인하며) 그 양반 그거 다 꾀병이야. 니네 할머니가 아프면 세상에 건강한 사람 하나 없다.
 
엄마가 턱 끝으로 텃밭을 가리킨다. 고추를 따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고추 사이사이로 보인다. 머리카락을 묶어 넘기며 재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엄마는 문을 닫고 나가고 마루에 앉아 엄마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는 재연. 빛이 드는 마당을 멍하니 본다.
 
S#9. 돌담길
돌담길을 걷는 재연.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이 무성하다. 바람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재연이 보는 시선으로 돌담이 낮게 이어진 골목길이 화면에 잡힌다. 군데군데 슬레이트 얹은 지붕이 있는 집이 보인다. 대부분 빈터다. 멀리서 소 울음소리 들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 걷는 재연. 개 짖는 소리에 놀랄 때쯤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다.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회관 건너편에 여전히 거대한 사당나무 보인다. 사당나무를 단독 샷으로 잡고.
 
S#10. 사당나무 앞
사당나무 앞에서는 재연. 사당나무에 둘러져 있는 금줄을 만져본다.
 
S# 몽타주/과거회상
사당나무 앞에서 치러지는 제사를 보는 어린 재연. 사당나무엔 금줄이 둘러져 있고 나무 앞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다. 할머니가 재연 옆에 선다. 어린 재연이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할머니가 농사 잘 되게 해달라고 사당나무에 비는 거야, 답한다. 몽타주 끝/
 
사당나무를 빙 둘러보던 재연, 그네 앞에서 멈춰 선다. 새 것처럼 보이는 아기 의자 같은 것이 사당나무 굵은 줄에 매달려 있다. 재연은 그 위에 앉아보려다가 다리가 들어가지 않아 다시 일어선다. 찡그린 얼굴로 애꿎은 줄을 흔든다.
 
재연: (투덜거리듯) 여기 어떻게 앉으라는 거야?
 
S#몽타주/과거회상
같은 자리에 나무판자로 의자가 되어 있는 그네에 앉아 있는 재연. 혼자 그네를 탄다.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 바닥을 차려 하지만 발이 닿지 않아 앞뒤로 살살 흔들기밖에 못하는 재연. 이내 멈춰 서서 멍하니 길을 본다. 몽타주 끝/
 
S#11. 사당나무 앞
줄을 쥔 재연의 손과 그네, 그 위로 나뭇잎 그늘과 그 사이로 드는 햇빛이 화면에 잡힌다. 그늘이 져 햇빛이 사라지고. 줄을 흔들던 재연이 돌아본다. 한복을 입은 키가 큰 사람이 보인다. 키가 크고 해를 등지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찡그리며 자세히 보려는 재연. 앞에 선 사람이 재연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화면 전환.
 
S#12. 사당나무 앞/흑백 화면칼라 화면
놀란 표정의 재연이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이 흑백으로 보인다. 여전히 사당나무 앞. 재연 옆의 그네가 아까와는 다르게 나무판자다. 재연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지만 눈치 채지 못한다. 주변을 빙 둘러보던 재연은 무언가에 발이 걸려 휘청인다. 내려다보니 사당나무 밑동에 있는 구멍에서 삐져나온 신발코가 보인다. 고개 숙여 확인해보는 재연. 안쪽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 소리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그러자 뒤에 서 있는 이와 부딪친다. 화면에는 부딪치는 재연과 아까 마주친 키 큰 사람의 하반신만 잡힌다. 돌아보려는 순간 그 사람은 사라지고 뒤로 넘어지는 재연. 다시 원래대로인 풍경. 넘어져 주저앉은 채 재연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본다. 손을 털고 일어나 사당나무 주변을 빙빙 둘러본다. 조금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다.
 
S#13.
집에 오니 할머니가 토방에 앉아 고추를 말리고 있다. 재연은 조금 비틀거리며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재연: (머뭇거리며) 할머니 있잖아 사당나무에
할머니: (재연을 보지 않은 채 고추를 펼치며) ?
재연: (화들짝 잠에서 깨듯 놀라며) 아니다 아무 것도 아냐.
할머니: (고개를 들어 재연을 보며) 왜 말을 하다 만다냐?
재연: (헛기침하며) 아니 진짜 별 거 아냐.
할머니: 싱겁기는(다시 고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좀만 더 일찍 왔으면 제사 지내는 것도 보고 했을 건데. 이제 아마 제사도 몇 번 못 지낼겨.
재연: 제사? 그건 왜?
할머니: 뭐 제사도 지낼 사람이나 있는간지? 이제 동네에 사람도 없는디.
 
고추를 펴 말리는 손이 분주하다. 입을 비죽이는 재연. 햇빛이 쨍하고 매미 소리가 선명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조금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던 재연이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할머니가 다시 말을 꺼낸다. 재연은 멈춰 서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 , 그 근처에서 이상한 사람 보거든 나나 니 엄마나 동네 어른들한테 가서 얘기해라.
재연: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이상한 사람?
할머니: 뭔 저기 어디야. 어디서 온 무당이 자꾸 제사를 지내 싸가지고.
재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무당
할머니: 뭐라 하는데도 안 가고 꿋꿋하게 허는디 참 뻔뻔해. (일어서며) 아이고 안 쑤시는 데가 없네.
 
할머니는 재연을 지나쳐 오른쪽 창고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방충망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재연. 방충망만 닫아 놓고 문을 닫지는 않아 밖이 그대로 보인다. 밖을 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의 재연이 화면에 잡힌다. 마당을 지나가던 엄마는 그런 재연을 바라본다. 멍한 표정으로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한 듯한 재연.
 
S#14. /해질녘
마루에 앉아 있던 채로 그대로 졸다가 깬 재연. 일어나니 저녁시간이다. 상 차리는 엄마를 도와 부엌과 안방을 오간다.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티비 소리E. 어제처럼 세 사람 사이는 적막하다. 중간 중간 엄마와 할머니가 농사 일로 짧게 나누는 대화소리E. 티비를 보며 밥을 먹던 재연이 문득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재연: 근데 엄마는 사투리 안 써?
엄마: (재연을 마주보며) 다 까먹었어.
재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마주보자 어색해 티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재연. 그런 재연을 잠시 바라보던 엄마도 이내 티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티비 소리만 들려오는 밥상. 이따금 떨어지는 날벌레에 재연이 진저리를 친다.
 
S#15. 옆방/
밤새 뒤척이는 재연. 할머니 코 먹힌 숨소리만 들려온다.
 
S#16. 아침/옆방
할머니가 재연을 깨우는 소리 E. 방 안으로 드는 햇빛에 재연이 얼굴을 찡그린다. 뒤척이며 신음하는 재연. 할머니는 계속 재연을 흔든다.
 
재연: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아 어제 잠 설쳤단 말이야. 좀만 더 잘래.
할머니: (재연의 이불을 뺏으며) 낮에 퍼질러 자니까 그래. 인나라!
 
신경질적으로 앉았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재연. 할머니는 이불 정리한다며 재연을 밀어낸다. 재연은 기어가 벽장에 기댄 채로 존다. 새 지저귀는 소리E. 부엌에서 사람이 왔다갔다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부터 깨자며 할머니는 세수도 못한 재연을 끌고 간다. 마당 뒤쪽에 있는 텃밭으로 질질 끌려 올라간다.
 
S#17. 고추밭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쨍한 햇빛 아래서 고추를 따는 재연. 허리를 펴고 이마에 땀을 훔친다. 할머니가 옆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재연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이상한 소리를 낸다.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재연을 흘끔 본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재연이 웃는다.
 
재연: 할머니 솔직히 말해봐. (땀에 젖은 옷으로 부채질하며) 나 부려 먹으려고 불렀지.
할머니: (다시 고개를 숙여 고추를 딴다. 웃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너는 손도 느려서 도움도 안 돼.
재연: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렇지.
 
마저 고추를 따기 시작하는 재연. 고추를 따는 할머니와 재연이 메인으로 잡힌다. 같은 화면 한 쪽에 좀 멀리 있는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는 엄마도 들어온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S#18. 마당사당나무
재연은 텃밭에서 내려와 마당 감나무 뿌리 위에 앉는다. 그늘이 무성하다. 나무 밑에 할머니가 놔두고 간 물을 마신다. 바람이 불어 감나무 잎사귀들이 흔들린다. 잠시 감나무 그늘이 발밑에서 흔들리는 걸 바라보는 재연. 생각에 잠긴 표정에서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변한다. 물병과 모자를 내려놓고 사당나무로 향한다.
 
S#19. 사당나무 앞
사당나무 앞에서 다시 기웃거리는 재연. 다시 앞으로 그늘이 지자 놀라 돌아본다. 키가 큰 사람의 모습이 처음으로 화면에 제대로 잡힌다. 키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고 남자 한복을 입었지만 쓰개치마를 쓰고 있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고 혼자 흑백이다. 재연은 겁먹어 살짝 굳은 얼굴로 뒷걸음질 친다. 키 큰 사람이 천천히 재연을 향해 다가오고 재연이 소리치려고 할 때 사당나무에 등을 부딪치면서 화면 전환.
 
S#20.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놀란 표정의 재연이 주변을 둘러본다.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린애가 짧게 내지르는 비명이 들린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재연. 너저분하게 입은 여자애가 놀란 표정으로 서 있다. 그 애도 흑백이다.
 
아이: (놀란 표정으로 옷을 움켜쥐며) 언니 갑자기 어디서 나왔어?
 
얼굴부터 머리까지 쓸어 넘기며 주변을 살피는 재연. 당황을 숨기지 못한다. 조심스럽게 아이 쪽으로 한 발 내딛는다. 아이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한 발 물러선다.
 
재연: 나도 모르겠는데(얌전히 두 손을 모으며) 저기 얘, (말을 멈추며 표정이 굳는다)
 
나무판자 그네를 보는 재연.
 
S#몽타주.
S#11에 아기시트 그네에 앉으려다 실패하는 장면.
 
S#21.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재연은 사당나무를 등지고 주변을 둘러본다. 마을 풍경이 안개가 낀 듯 묘하게 흐릿하다.
 
재연: (주변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 저기,
아이: (재연의 말을 끊으며) 언니 언니, 저기 제기 좀 꺼내주면 안 돼?
재연: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
 
아이가 사당나무 한 쪽을 가리킨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가 돌아가는 재연. 제기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데 그 높이가 꽤 된다.
 
재연: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저게 왜 저기 있어?
아이: (턱을 치켜들며) 내가 좀 잘 차.
 
재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재연을 마주본다.
 
재연: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아니 이게 뭐야. 여기는 또 뭐고
아이: (간절한 목소리로. 슈렉의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재연을 바라보며) 좀 꺼내주고 가면 안 돼?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재연.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화면전환
 
S#22.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제기를 꺼내려고 뛰어오르는 재연. 손을 뻗어도 닿을락말락하지만 닿지 않는다. 옆에서 아이는 재연의 손이 제기에 가까워질 때면 주먹을 꼭 쥐면서 살짝 뛰어오르다가 끝내 꺼내지 못하자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아이의 얼굴을 흘긋 바라보는 재연. 한숨을 내쉬며 도움닫기를 위해 뒷걸음질 친다. 그래도 닿지 않자 좀 더 힘 있게 뒤로 뛴다. 그때 발뒷꿈치를 어딘가에 부딪친다. 딱 하고 호두를 떨어뜨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재연: ! (자리에 주저앉아 발뒤꿈치를 어루만지며) 미친아 미친.
 
찡그린 얼굴로 뒤꿈치를 어루만지며 주변을 뒤를 돌아보는 재연.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변한다. 햇빛이 쨍하고 매미 소리가 선명하지만 어쩐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스산하다. 마을 풍경이 흐릿하다. 일어서서 주변을 더듬어보는 재연. 마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손이 막힌다. 두드리자 벽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런 재연이 이상해보였는지 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아이: 언니 뭐하는 거야?
 
아이가 재연이 하듯 허공으로 손을 뻗는다. 아이의 손은 벽에 막히지 않고 통과한다. 통과한 아이의 손이 흐릿하게 보인다. 놀란 재연이 주변을 살피다 바닥을 내려다본다. 벽처럼 느껴지는 지점에 선이 그어져 있는 걸 발견한다. 재연은 그 선을 쭉 따라가 본다. 사당나무 주변으로 원이 그려져 있다. 선을 따라 걸으며 손을 내밀어보지만 역시나 그 선 위에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막힌다.
 
재연: (선을 가리키며) 이거 뭐야?
아이: (재연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이거? (선 위에 발을 올리며) 이거 제사 지내기 전에 긋는 선인데. 이 안에서 하는 거랬어.
재연: (떨리는 목소리로) 여기, 여기 어디야?
아이: (이상한 말을 듣는다는 표정으로) 여기 도당마을인데!
재연: 아니 그럼 맞는데
 
흘끔 나무를 바라보던 아이가 재연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아이: 것보다 언니, 제기 좀 꺼내줘! (애원하는 표정으로) 저거 없음 갖고 놀 게 없단 말이야
 
재연은 주변을 빠르게 살피지만 알 수 있는 게 없다. 머리에 손을 얹으며 머리칼을 헤집는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S#23.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재기를 꺼낸 재연. 아이와 함께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 아이는 너무 환한 표정으로 제기에 묻은 나뭇잎을 떼고 있다. 재연은 그런 아이의 옆모습과 흐릿한 마을 풍경과 그네를 번갈아 바라본다.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재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 너 이름이 뭐야?
 
제기를 손에 꼭 쥔 채 아이가 재연을 바라본다.
 
아이: (잠시 망설이며. 제기로 시선을 돌린다.) 구희야.
재연: 여기서 뭐해?
구희: (제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놀지.
재연: (구희를 따라 주저앉으며) 뭐하고 노는데?
구희: (재연을 흘끔 바라보며) 뭐 제기도 차고 (손가락으로 사당나무 밑동에 있는 구멍을 가리키며) 저기 들어가 있기도 하구.
재연: (밑동의 구멍을 바라보며) 저기? (구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때 그거 너였어?
구희: (의아한 목소리) ?
 
그때 구희 뒤로 나무에 걸린 금줄이 화면에 잡힌다. 금줄을 바라보는 재연.
E 제사 지내기 전에 긋는 선인데.
 
재연: (아이를 바라보며. 조금 상기된 목소리다.) 잠깐만, 제사 지내기 전에 긋는 선이라고? 제사 이미 지낸 거 아니었어?
구희: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과 의아한 목소리) 아냐 아직 제사 안 지냈는데.
재연: (살짝 떨리는 목소리) 지금 언제야?
구희: (약간 찡그린 표정으로) 무슨 언제야?
재연: (구희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날짜 말이야, 날짜.
 
구희가 살짝 물러난다. 재연도 물러선다.
 
구희: (제기를 만지작거리며) 628일인데.
재연: (눈을 깜빡이며) 년도는?
구희: (재연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1974.
 
눈을 깜빡이는 재연.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재연: (작게 혼잣말하듯) 아니 이게 말이 돼? 무슨이게 뭔
구희: (조금 전과 다르게 좀 밝아진 목소리로) 근데 언니 되게 이상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재연: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이상하긴 여기가 더
 
말을 끝맺기 전에 재연과 구희 앞으로 그늘이 진다.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드는 재연. 아까 보았던 키 큰 사람이 서 있다. 놀란 재연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자 재연을 보고 있던 구희가 재연이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의아한 구희의 표정이 화면에 나오고, 키 큰 사람은 없고 다만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재연이 잠시 화면에 잡힌다. 재연이 입을 뻐끔거리자 다시 키 큰 사람이 화면에 나오고.
 
재연: (말을 잇지 못하며 키 큰 사람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아니 당신
 
키 큰 사람이 재연의 머리 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앉은 채로 물러서려 하지만 물러설 곳 없이 나무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는 재연. 눈을 질끈 감는다. 키 큰 사람이 재연의 머리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준다. 그리고 다시 화면 전환.
 
S#24. 사당나무 앞/ 칼라 화면
나무 기둥에 혼자 앉아 있는 재연. 주변을 둘러보지만 구희도 키 큰 사람도 없다. 마을 풍경이 선명하고 다시 색이 돌아와 있다.
 
재연: (황당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게 뭐야?
 
S#25. 마당
터덜터덜 대문을 밀고 재연이 들어온다. 감나무 옆 바지랑대에 걸린 수건이 흔들거린다. 잔디 위로 구름 그림자가 지나간다. 몸이 후들거려 재연은 토방에 털썩 주저앉듯 앉는다. 팔을 붙잡지만 미약하게 떨린다. 토방 위에 드러눕는 재연. 먼지가 일고 벌레가 재연의 얼굴 가까이 기어 다니는 것 클로즈업. 재연이 바로 일어난다. 소름이 끼친다는 듯 찡그린 얼굴로 머리와 등을 턴다.
대문이 열린다. 얼굴이 빨갛게 그을린 엄마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뭔가를 찾는 듯 주변을 살피다 재연과 눈이 마주친다.
 
엄마: 혹시 내 모자 못 봤니?
재연: 모자? (주변을 둘러보다 맞은편 감나무 밑에 있는 모자를 발견하곤 손으로 가리키며) 저거?
 
재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는 엄마. 감나무 밑의 모자를 발견하자 눈이 살짝 커진다. 모자를 들고는 재연 쪽으로 몸을 돌린다.
 
엄마: (추궁하듯이) 네가 쓰고 나갔던 거야?
 
당황한 재연,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한다.
 
재연: , 그냥 바닥에 있길래. 엄마 껀 줄 모르고
 
엄마는 굳은 표정이다. 재연은 어깨를 살짝 움츠린 채 엄마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꺼내려한다.
 
재연:
엄마: (재연의 말을 끊으며. 화가 난 듯 나직하게) 누구 껀 줄 알고 아무거나 막 갖고 가? (모자를 털며 한 템포 말을 쉬고) 경우 없기는.
 
모자를 털던 손이 멈칫한다. 말을 뱉어 놓고 엄마도 조금 당황하는 눈치다. 갑작스런 엄마의 말들에 눈을 깜빡이는 재연.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똑바로 마주 본다.
 
재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허 참 나.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한다) 아니 누구 껀지 묻지도 않고 가져 간 건 내 잘 못이 맞는데- (말을 끊고 잠시 말없이 엄마를 바라본다) 그러게. 아빠는 나 그렇게 안 키웠는데.
 
엄마의 눈이 흔들린다. 가만히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재연이 왼편의 텃밭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 재연을 바라보는 엄마. 재연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때 대문으로 들어오던 할머니가 재연과 눈이 마주친다. 재연과 엄마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엄마 뒤에 있는 감나무로 시선을 돌린다.
 
할머니: (감나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익으면 좀 보내주랴?
 
재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고개를 돌리며 모자를 쓰고 텃밭으로 향한다.
 
엄마: (할머니와 재연을 등지고 걸으며) 저 나무 감 맛없어.
할머니: (손에 쥔 농기구를 작게 흔들며 투덜거리듯) 따지도 않는 년이 말은 많아.
 
그 둘을 보던 재연은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S#26. 몽타주 집/텃밭/골목길
며칠이 빠르게 지나간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는 재연. 둘 사이에 대화는 없다.
고추를 따거나 감자를 캐는 식으로 텃밭 일을 돕는 재연. 사당나무 쪽으로 가는 골목길을 바라보지만 가지는 않는다.
 
S#27. 사당나무마당
해가 쨍한 오후. 사당나무 앞에서 무당이 제사를 지내는 장면. 이장이랑 동네사람들이 쫓아낸다. 마당으로 화면 전환.
 
할머니: (모자를 홱 벗어 제치며 꿍얼거리듯) 계속 가래도 오고 말이야쯧쯧
 
할머니가 모자를 던지듯 바지랑대 위에 건다. 마루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앉아 있던 재연이 방충망을 열며 고개를 빼꼼 내민다.
 
재연: 무당? (옷으로 부채질을 하며) 아니 왜 자꾸 온대요?
할머니: 기 받으러 온다나 어쩐다나. (방충망 한쪽을 마저 열고 방으로 들어온다. 한 템포 말을 쉬며) 지랄이여.
 
화면이 잠시 대문을 비추고 그 다음에 대문을 바라보는 재연을 비춘다.
 
S#28. 사당나무 앞
사당나무 앞에선 재연. 바람이 불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E. 시멘트 대충 덮은 길에서 흙으로 바뀌는 부분을 딱 넘었을 때 키 큰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이 재연을 향해 한 손을 내민다. 잠시 망설이던 재연이 천천히 손을 내밀고 두 사람의 손이 닿았을 때 화면 전환.
 
S#29.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남자애들이 구희의 제기를 나무 위로 던져버리는 장면. 재연이 무어라 소리치기 전에 재연을 발견한 남자아이들이 도망간다. 애들이 선을 넘어가자 달려가는 애들의 뒷모습이 흐릿해진다.
제기는 다행히 나무에 걸리지 않고 툭 떨어진다. 그걸 툭툭 털고 챙기는 구희. 재연과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는다.
 
재연: (가만히 구희를 바라보며) 잘 찬다며?
구희: (발끈하며) 잘 차!
 
보란 듯이 제기를 차 보이는 구희. 재연은 넘어진 듯 지저분해보이는 구희의 무릎을 잠시 바라보다 구희와 눈을 맞춘다.
 
재연: 잘 차네.
 
구희가 제기 차기를 멈추고 재연을 바라본다. 잠시 정적.
 
구희: 언니 서울 사람이야?
재연: .
구희: 여긴 왜 왔어?
재연: (잠시 고민하다 어깨를 으쓱이며) 나도 몰라.
구희: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그런 게 어딨어?
재연: (살짝 웃으며) 그러게.
 
정적이 이어진다. 바람 소리만 들린다.
 
구희: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재연을 응시하며) 언니 서울 말 계속 해 봐.
재연: ?
구희: 서울 가고 싶으니까.
재연: (의아한 목소리) 여기 안 있고?
구희: (당연하다는 듯이) .
재연: ?
구희: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며) 여긴 심심하니까. 할 것도 없고. 애들도 안 놀아주고
 
왜냐고 물으려 재연이 입을 여는 차에 구희가 눈치 챈 듯 말을 꺼낸다. 재연도 눈치를 채고는 입을 다문다.
 
구희: 그니까 서울 말 계속 해봐.
재연: (목덜미에 손을 올리며 난처한 투로) 할 얘기도 없는데
 
눈을 굴리던 재연의 눈에 사당나무 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화면에 사당나무 밑동 구멍이 잡힌다.
 
재연: (구멍을 가리키며) 저긴 왜 들어가는 거야?
구희: (잠시 머뭇거리다) 심심해서.
재연: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며) 나도 어릴 때 자주 들어갔는데.
구희: 나무 밑에?
재연: 아니 뭐, 장롱이나 책상 밑 같은 곳에.
구희: (살짝 개구진 목소리로) 심심해서?
재연: (멋쩍게 웃으며) 뭐 그렇기도 하고그냥 편해서.
구희: (속삭이듯) 나도 그런데.
 
다시 바람 소리 들려온다.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은 두 사람으로 화면 전환. 구희는 심심한지 제기를 만지작거린다. 그런 구희를 바라보는 재연. 구희의 손바닥에 까진 상처가 화면에 잡힌다. 눈이 커지는 재연.
 
재연: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다쳤어?
구희: (손바닥을 오므리며 작은 목소리로) 넘어졌어.
재연: (주머니를 뒤적이며) 반찬고도 없고(구희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집에 가서 약 꼭 발라.
 
구희가 재연을 빤히 바라본다. 재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바람이 세게 분다. 흙에 눈이 들어가서 눈을 감는 재연. 화면이 잠시 어두워진다. 눈 비비며 눈을 뜨는 재연. 칼라 화면이다. 급히 옆을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카메라가 물러서며 사당나무에 혼자 앉아 있는 재연의 모습과 사당나무와 뒤편에 멀찍이 논이 펼쳐진 풍경이 잡히고.
 
재연: (중얼거리듯 눈을 깜빡이며) 영화도 아니고.
 
S#몽타주
쓸쓸한 표정의 구희. /
 
재연,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다.
 
S#30. 골목길
사당나무를 등지고 떠나는 재연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며 재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키 큰 사람을 잡는다. 카메라가 한 번 더 뒤로 이동해서 사당나무 밑에 서 있는 키 큰 사람과 재연의 뒷모습이 같은 화면에 잡힌다.
 
S#31. 마당
대문을 열자 토방에 앉아 고추를 말리고 있는 엄마가 보인다. 재연이 들어와도 돌아보지는 않는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과 옆모습 어딘가를 바라보는 재연. 매미소리가 크게 E.
 
재연: 엄마는 여기가 좋아?
엄마: (재연을 돌아보지 않은 채 고추를 펼치며) 그건 왜?
재연: (어깨 으쓱이며) 그냥.
엄마: 그냥 그렇지 뭐.
재연: (엄마 쪽으로 걸어가며) 그럼 왜 왔어?
엄마: (잠시 망설이다) 그러게.
 
엄마 쪽으로 걸어가던 재연이 발을 멈춘다. 엄마는 꿋꿋이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재연. 이윽고 엄마가 천천히 허리를 편다. 그래도 재연을 돌아보지는 않는다.
 
엄마: (먼 곳을 응시하며) 그럴 일이 있었어.
 
엄마를 바라보던 재연이 이내 발을 돌려 방충망을 열고 들어간다.
 
NA 엄마는 언제나 이야기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항상 그랬다. (사이) 항상, 이라고 할 만큼 보지도 못했지만.
 
S#32. 사당나무 앞/ 칼라화면흑백화면
다음 날 낮에 사당나무 앞에 선 재연. 키 큰 사람이 또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는다. 흑백화면으로 전환되면 구희와 재연이 나무에 기대어 앉아 이야기 하는 장면이나 제기를 차고 노는 장면이 소리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소리만 나오며
재연E: 너 내가 자꾸 없다가 생기고 있다가 사라지는데 안 무서워?
구희E: 별로. 서울 사람이잖아.
재연E: 그게 무슨 상관이야?
구희E: 언니는?
재연E: ?
구희E: 언니는 무서워?
재연E: 그러게. 생각보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좀 봐서 그런가.
구희E: 서울 사람이네.
 
재연의 웃음소리E.
 
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가 있는 구희. 그 옆에 앉아 있는 재연.
 
NA 내가 장롱이나 옷장, 책상 밑 같은 좁고 어두운 곳에 숨는 습관과 함께 자라날 때 내가 바랐던 건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다. 나오라는 말이나 내민 손도 너무 좋았지만 그보단 함께 있어주는 거. 어둡고 좁은 곳에서 함께 몸을 구기고 있어주는 거그런 걸 원했다.
 
S#33. 마당
마루에 앉아 방충망만 닫아놓은 재연이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하고 있다. 엄마는 빨랫감을 걷고 있다. 대문이 열린다. 재연이 처음 보는 동네 아저씨가 들어온다. 핸드폰을 보면서 흘끔흘끔 동네 아저씨를 보는 재연. 엄마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다.
 
엄마: (빨래를 내려놓으며 공손한 목소리로) 시아재 오셨어요?
동네 아저씨: (엄마를 흘끗 보며) 어어. (재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는 낯이다.) 너가 민희 딸이냐?
재연: (엉거주춤 일어선며 방충망을 연다. 어색한 미소) 안녕하세요
동네 아저씨: 그래. 서울에서 대학 댕긴다고?
재연:
동네 아저씨: 공부는 잘 하고?
 
재연,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꼼지락거린다. 동네 아저씨 재연에게 다가오며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동네 아저씨,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구겨진 만 원짜리를 꺼내 재연에게 건넨다.
 
동네 아저씨: (돈을 재연에게 내밀며) 아야, 이거 가지고 가서 과자라도 사 먹어라.
엄마: (재연과 아저씨의 앞을 막아서며) 아니 뭘 이런 걸, 괜찮아요. 줄 필요 없어요.
 
엄마와 동네 아저씨가 잠시 실랑이를 한다. 결국 동네 아저씨가 재연의 손에 돈을 쥐어준다.
 
재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동네 아저씨: (웃으며 재연의 툭툭 두드리며) 맛있는 거 사 먹고 가그라
 
엄마와 동네 아저씨가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재연은 방충망을 닫고 다시 이어폰을 꽂는다. 엄마와 동네 아저씨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다. 동네 아저씨가 나가려한다.
 
재연: (일어서며 방충망을 살짝 연 채로) 안녕히 가세요.
동네 아저씨: 어야
엄마: (대문 앞까지 따라나서며)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엄마가 다시 마당 안으로 들어온다. 재연은 방충망을 열지 않은 상태로 고개만 내밀어 엄마를 바라본다.
 
재연: (궁금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목소리로) 시아재?
엄마: (빨래를 걷으며 재연을 흘끔 본다) 항렬이 높은데 결혼한 남자보고 하는 말이야.
재연: 항렬?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궁금한 내색을 숨기지 않는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사이) 웬 존댓말? 뭐 그런 걸 아직도 챙겨? 친척도 아닌 거 같은데.
엄마: (빨랫감을 털며. 재연을 보지 않으며 말한다.) 나는 구자 돌림이지만 저쪽은 왕자 돌림이니까. (빨랫바구니를 들며. 무거운 숨을 내쉰다.) 집성촌이라 그래.
재연: (뭔가를 생각하듯 눈을 찡그리며) 근데 엄마 이름엔 안 들어가잖아.
엄마: (아주 잠깐 멈칫하지만 이내 빨랫바구니를 다시 옮기며) 여자애 이름엔 잘 안 써.
 
엄마가 빨랫바구니를 들고 집 뒤쪽에 있는 샘가로 간다.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재연.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
 
S#34.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해 질 무렵
구희가 사당나무 구멍 안에 앉아 있다. 재연은 그 옆에 앉아 발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구희: (고개만 빼꼼 내밀며) 심심해?
재연: (발로 그린 그림을 발로 뭉개며) 조금?
구희: 이거 갖고 놀아 그럼.
 
구희가 제기를 내민다. 재연은 앉은 자리에서 손으로 던지고 받으며 가지고 논다. 잠시 제기를 가지고 놀던 재연이 문득 말을 꺼낸다.
 
재연: (제기를 손에 쥐고) 근데 넌 형제나 자매 없어?
구희: (구멍 안에 몸을 감춘 채) . 혼자야. 언니는?
재연: 나돈데. (흐릿하지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형제자매 있으면 좀 덜 심심하려나.
구희: 몰라. (사이) 근데 지금 좀 덜 심심한 것 같기도 해.
 
재연은 제기만 만지작거린다.
 
재연: (문득 생각났다는 듯) 이름에 는 돌림자야?
구희: (망설이며) .
 
고개를 끄덕이는 재연. 구멍에서 얼굴을 내밀며 구희가 재연을 잠시 살핀다. 재연이 돌아보자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잠시 조용하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E.
 
구희: (구멍에서 나오지 않은 채 신발코만 살짝 삐져나와 있다.) 원래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데.
재연: (조금 놀라며) 그럼 안 되는데 들어가는 거야? 안 혼나?
구희: (발을 오므리며) 혼나니까 들어오는 거야.
재연: (놀람과 황당함이 섞인 목소리로) ?
구희: (조금은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 끝으로 갈수록 작아진다.) 혼내러 오는 게 좋아서그냥 그렇게라도 보러오는 게.
 
재연은 입만 뻐끔거린다. 구희가 구멍 밖으로 비져 나온 발을 괜스레 바닥에 문지른다. 잠시 조용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불편한 분위기. 재연은 자리를 옮기고 싶은 듯 엉덩이만 조금 들썩인다.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다.
 
구희: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부러 밝게 내는 목소리) 언니 서울 언제 가?
재연: (구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 방학 끝나면?
구희: 그럼 겨울 방학에도 와?
재연: (입 근처를 어루만지며) 모르겠네 그건
구희: (입매를 굳힌 채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또 놀러와. 꼭이야.
재연: (고개를 조금 뒤로 빼며) 한 번 보고.
구희: (아예 구멍 밖으로 나와 재연의 옆에 앉으며) 꼭이야.
재연: 보고.
 
앉아서 재연의 얼굴을 빤히 보는 구희. 재연은 미안한 마음에 구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구희: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그럼 가기 전에 인사는 하고 가야 돼.
재연: (구희의 손가락을 빤히 보다 이내 새끼손가락을 걸며) 알았어.
 
구희가 씩 웃는다. 흐릿한 표정으로 잠시 마주보던 재연도 이내 마주보며 미소 짓는다.
 
S#35. 사당나무 앞 골목길/칼라 화면 저녁
항상 가던 길로 가려다 멈칫하는 재연. 이내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하늘을 보고 바닥을 보고 돌담 너머나 먼 곳을 보며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한다. 괜스레 자꾸만 눈가를 어루만진다. 조금 빨개진 눈가. 외롭고 슬프고 화가 난 듯한 기색이 뒤섞여 있는 표정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간 재연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불빛이 없어 별이 선명하게 보인다. 잠시 별을 보다가 이내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가 상을 차리고 있다. 티비 소리E. 재연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재연: (주변을 둘러보며) 할머니는?
엄마: (반찬 뚜껑을 열며) 건넛집에 놀러가셨어. (사이) 오늘 저녁 거기서 친구 분들이랑 드시고 오신대. (재연을 올려다보며) 먹어.
 
자리에 천천히 앉으며 재연이 엄마를 빤히 바라본다.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가 재연을 마주본다.
 
재연: (울음이 조금 묻어나는 목소리) 나는 왜 놓고 갔어? 그렇게 바로기다렸다는 것처럼.
 
엄마, 그대로 굳은 채로 재연을 바라본다.
 
재연: (코 막힌 소리로) ? 왜 그랬어?
 
재연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비스듬히 떨군다. 잠시 조용하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다 엄마가 말을 꺼낸다.
 
엄마: (재연을 바라보지 못하며 작은 목소리로) 그냥.
 
재연, 눈가와 코가 벌개진 채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눈가와 머리카락만 신경질적으로 어루만진다.
 
엄마: (입술을 씹으며 망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재연: (거의 우는 듯이) 아니 그게 무슨,
엄마: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힘들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재연이 엄마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엄마는 재연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한참을 그렇게 엄마를 바라보는 재연. 둘 다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티비 소리E. 이내 재연이 먼저 고개를 돌리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울며 밥을 먹는 재연. 그 옆에서 엄마는 수저도 들지 않은 채 그 자세 그대로다. 이내 밥만 퍼 먹다시피한 재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재연이 떠나고도 가만히 앉아 있는 엄마가 화면에 오래 잡힌다.
 
S#36.
모두가 잠든 밤. 뒤척이던 재연이 천천히 일어나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간다. 그런 재연을 잠결에 바라보는 할머니.
 
S#몽타주
일찍 잔다고 불도 안 끈 상태에서 재연이 눕는다.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지만 더워서 얼굴을 가리지는 못한다. 부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재연의 눈이 울어서 벌개진 것을 보는 할머니. 몽타주 끝/
 
S#37. 사당나무 앞
흙길로 들어서자 키 큰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인다. 재연 천천히 다가간다.
 
재연: (조심스럽지만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날 왜 자꾸 데리러 가는 거야?
 
키 큰 사람이 천천히 팔을 벌린다. 재연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조금 물러선다.
 
재연: (경계하는 목소리로) 뭐야?
 
키 큰 사람이 서서히 다가온다. 재연은 키 큰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조금 뒤로 물러선다. 그러다 멈춰 선다. 어느새 재연 앞까지 다가온 키 큰 사람이 이내 재연을 안고 등을 토닥여준다. 재연은 잠시 가만히 안겨 있다 천천히 마주 껴안는다. 재연을 뒤에서 잡는 카메라. 미동도 없던 재연의 몸이 조금 들썩인다. 서서히 멀어지는 카메라.
 
S#38. 텃밭/
쨍한 햇빛 아래 묵묵히 고추를 따는 재연. 재연과 떨어진 곳에서 일하던 엄마가 자루를 끌고 내려간다. 매미소리E. 둘의 모습을 살피던 할머니가 엄마를 따라 내려간다.
 
할머니: (조금 성 내는 투로 엄마의 옆에 붙어서) 니는 니 힘든 것밖에 안 보이냐?
엄마: (앞만 보고 걸으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거 내력이잖아.
 
걸어 내려가는 엄마와 할머니의 뒷모습이 화면에 담긴다. 다 내려와서 마당을 가로지르는 엄마와 내려오는 길목에 멈춰선 할머니. 카메라가 멀리 이동해서 두 사람의 앞모습과 저 뒤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재연의 모습까지 한 화면에 담는다.
 
S#39. 마당
토방에 앉아서 쉬는 할머니와 재연. 두 사람은 고추 말리고 남은 신문지로 부채질을 한다. 멍한 표정으로 구부정히 앉아 있는 재연.
 
할머니: (불쑥 끼어든다는 느낌으로) 엄마가 서운하게 하디?
재연: (계속 앞을 보면서) 뭐 기대도 안 했어.
 
정적. 매미소리E.
 
재연: 할머니는 좋은데.
할머니: (한숨을 내쉬듯이) 나가 너한테나 좋지.
 
재연이 할머니 옆모습을 흘끔 바라본다. 할머니도 잠깐 재연과 눈을 마주치다 이내 감나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할머니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재연.
 
할머니: (감나무 보며) 열리면 보내 줄랑께 다 먹어라.
재연: (마찬가지로 감나무 보며) 많이는 필요 없어. 아빠 감 별로 안 좋아해.
 
S#40. 골목길
사당나무 쪽으로 향하는 재연. 반대편에서 엄마가 걸어오는 게 보인다. 엄마와 재연의 눈이 잠깐 마주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고 자기 갈 길을 걸어간다.
 
S#41. 사당나무 앞/흑백화면
구희가 구멍 안에 들어가 있다. 재연은 그런 구멍 앞에 발을 세우고 앉는다.
 
재연: 구희야.
구희: (나오지 않은 채) ?
재연: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구희: ?
 
재연이 팔을 벌린다. 구희가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뭐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재연: (뻘쭘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포옹하자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슬슬 나와서 안기는 구희.
 
구희: (재연의 품에 안 긴 채 정말 이상하다는 목소리로) 무슨 일 있어?
재연: (부끄러워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로) 그냥, (잠시 말을 멈춘 채) 뭐야?
 
말을 하던 중에 땅이 크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도 흔들린다. 재연이 팔을 풀고 주변을 둘러본다.
 
구희: (재연의 앞에 그대로 앉은 채 정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언니?
재연: (주변을 둘러보며 더듬더듬 구희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방금 못 느꼈어?
 
땅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린다. 주변 풍경이 여전히 흑백이지만 선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던 풍경이 선명하게 보인다. 재연이 눈을 크게 뜬다. 홀린 듯 일어선 재연이 그쪽을 향해 걷는다.
 
구희: (엉거주춤 일어서며) 언니?
 
구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재연. 구희 뒤에 있는 사당나무가 화면에 들어온다. 나무에 둘러져 있는 금줄에 색이 보인다. 재연, 놀란 표정이다. 나뭇잎도 순간 녹색으로 보였다가 다시 흑백으로 돌아온다. 금줄은 여전히 금색으로 보인다. 그때 누군가 재연의 어깨에 다급하게 손을 얹는다. 재연이 돌아보자 키 큰 사람이다. 항상 흑백으로 보이던 키 큰 사람의 옷에 걸려 있는 노리개 색이 보인다. 금색이다. 바로 화면전환.
 
S#42. 사당나무 앞/칼라 화면
어느 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재연. 덩그러니 서 있는 재연 옆에서 그네가 흔들린다. 새로 바뀐 그 그네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재연이 주변을 보는데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E로 끼어든다. 돌아보는 재연. 무당이 사당나무 구멍 앞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놀람과 약간의 무서움이 뒤섞인 표정이다.
 
재연: (떨리는 목소리로) 뭐 하시는 거예요?
 
무당 중얼거리는 소리E.
 
재연: 뭐 하시는, (깨달은 표정)
 
무당의 중얼거림이 커진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재연이 주춤주춤 물러선다. 이내 집으로 뛰어간다.
 
S#43. 텃밭농작로
헉헉대며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재연. 마당에 아무도 없다.
 
재연: (방충망을 열며) 할머니! 할머니?
 
불러도 대답이 없다. 방충망을 닫고 텃밭으로 뛰어간다.
 
재연: (둘러보며) 할머니!
 
주변을 둘러보던 재연, 대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논과 논 사이 길을 달린다. 길에 드문드문 서 있는 동네 어르신들이 재연을 돌아본다. 아랑곳 않고 할머니를 찾는 재연. 멀리서 동네 어르신들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재연, 헉헉대며 달린다.
 
재연: (숨을 고르며) 할머니, 사당나무에 지금, 무당 와 있어. 지금 거기서 이상한 거 해.
 
할머니와 동네 어르신들 표정이 굳는다.
 
동네 어르신1: 우짠디야
 
한 손은 무릎을 짚고 다른 한 손은 배를 어루만지며 숨을 몰아쉬는 재연. 재연의 시점으로 보는 시골 풍경이 화면에 잡힌다. 그리고 서글픈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재연.
 
S#44. 회관
회관에 모여 회의하는 동네 어르신들. 심각하고 화가 난 표정들이다.
 
S#45.
티비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재연.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티비 소리랑 섞인다. 예능에서 사람들이 웃는 소리E.
 
할머니: (방 문을 열지 않은 채 마루에서) 거기 시멘트로 막아버리기로 했다.
재연: (잠에서 깬 듯 화들짝 놀라며 방 문을 연다) ? 사당나무 구멍?
할머니: (천천히 다리를 굽혀 앉으며) 내일 바로 하기로 했어.
재연: (다급히 문지방 위로 상체를 내밀며 할머니를 바라본다) 아니 그걸 왜,
엄마: (부엌에서 나오다 놀라 굳은 표정으로 재연의 말을 끊고 끼어든다) 그걸 막아? ?
 
재연,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발끝으로 앉은 채 할머니를 응시한다. 화가 난 듯 굳어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재연의 표정이 저도 모르게 풀린다. 할머니는 엄마와 재연의 시선을 피하며 다리를 주무른다.
 
할머니: (혀를 차며) 안 가면 우리가 막아야지 별 수 있것냐.
엄마: (조금 화난 목소리로) 아니 그래도 다짜고짜 그러는 게 어디 있어 무식하게. 갈 때까지 못 들어오게 근처 출입만 막아 놔도 되는 거잖아.
재연: (냉큼) 맞아.
엄마가 재연을 흘끔 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바로 각자 눈을 돌린다. 그런 둘을 번갈아 보는 할머니.
 
할머니: (한숨을 내쉬며) 느그들이 여기서 이래봤자 아무 소용없어. 다 동네 회의에서 결정 난 거야. 나는 가서 씻을랜다.
 
할머니 천천히 자신의 다리를 붙잡으며 일어난다. 그런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며 따지는 엄마와 재연.
 
엄마E: (따지는 투로) 누가 하재?
재연E: (애원하는 조로)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얘기하면 안 돼?
 
S#46. 토방/ 저녁
재연은 토방에 앉아 있다. 의미 없이 핸드폰을 눌렀다 끄기를 반복한다. 빛을 보고 날벌레들이 날아오면 옆에 놔둔 파리채로 잡는다. 부엌으로 향하던 엄마가 재연을 발견한다.
 
엄마: (방충망을 열지 않은 채 그 앞에 서며) 왜 나와 있어?
재연: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더워서.
 
재연을 바라보던 엄마, 부엌으로 들어간다. 불 켜는 소리, 냉장고 열리는 소리, 물 따르는 소리E. 재연은 슬그머니 눈을 뜬다. 별이 많이 보이는 하늘이 화면에 잡힌다. 엄마가 다시 마루를 지나간다.
 
재연: (문득 생각났다는 듯 별거 아니라는 투로) 엄마 사당나무 좋아 했어?
엄마: (대답하기 싫다는 듯 말끝을 흐리며) 그냥그랬지 뭐.
재연: (살짝 코웃음 치며) 왜 다 그냥 그래. 그렇게 할 얘기가 없어?
 
엄마가 재연을 바라본다. 재연은 하늘만 보고 있다. 재연을 잠시 응시하다 하늘로 시선을 돌리는 엄마.
 
엄마: (나직한 목소리로) 서울에선 별 잘 안 보이지?
재연: (날벌레들을 향해 파리채를 휘두르며) 엄마 보기 싫으니까 들어가기나 해.
 
엄마는 잠시 재연을 바라보다 들어간다. 파리채 휘두르기를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재연은 손에 얼굴을 묻는다.
 
S#47. 옆방/새벽
이상하게 눈이 일찍 뜨인 재연. 창호지로 들어오는 옅은 새벽빛을 잠기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바라본다. 이내 눈이 조금씩 또렷해지며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방을 나선다.
 
S#48. 사당나무 앞/ 새벽
재연이 사당나무 앞에 서 있다. 재연의 옆모습을 잡고 있다가 재연이 돌아보자 화면이 돌아가며 키 큰 사람이 키 큰 사람이 잡힌다. 바람이 불자 팔을 살살 문지르는 재연.
 
재연: (잠긴 목소리로) 저기 구멍 시멘트로 막아버린대.
 
키 큰 사람은 다만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바람결에 흙이 들어가 재연은 눈을 깜빡인다.
 
재연: (망설이는 투로) 나 이제 못 가?
 
키 큰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쓰개치마가 흔들린다. 바람이 멈추고도 재연이 눈을 깜빡인다.
 
재연: (중얼거리듯 허탈한 목소리로) 내가 걔 안아줬는데.
 
정적. 재연은 고개를 떨구고 발끝을 내려다본다. 애꿎은 발끝을 흙에 문지른다. 계속 정적.
 
재연: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심스러운 투로) 인사만이라도 하고 오면 안 돼? (사이) 나 인사는 하고 오기로 약속했어.
 
카메라는 재연의 발과 흙바닥만 잡는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만 보는 재연의 시야에 그림자와 함께 불쑥 손이 들어온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재연. 그 손을 맞잡는다.
 
S#49. 사당나무 앞/새벽/흑백화면
주변을 둘러보던 재연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다.
사당나무에 기대어 앉아 무릎을 모으고 앉아 조는 재연. 이번엔 재연이 구희를 기다린다.
 
S#50. 몽타주/서울 집/과거 회상/칼라화면
중학교 졸업장과 꽃다발을 신경질적으로 식탁에 올려놓는 재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온다. 화면을 보니 엄마다. 받지 않으려 핸드폰을 뒤집어 졸업장 위에 올려두는데 핸드폰이 계속 진동한다. 재연은 방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든다.
 
재연: (짜증 난 목소리로) .
엄마E: 재연아 졸업 축하,
재연: (엄마의 말을 끼어들며 화 난 목소리로) 그럼 왜 안 왔어.
엄마E: (미안한 목소리. 그러나 주변 소음에 잘 들리지 않는다) 미안해. 너무 바빠서 그랬어. 다음에 꼭 갈게. (핸드폰을 막은 듯 한층 작은 소리로) 잠시만요. (주변 소음이 한층 커진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까?
 
재연은 식탁 근처를 왔다갔다하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다. 눈가가 벌겋다.
재연: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 됐어 오지 마. 맨날 말만 좋지. (코 먹는 듯 숨을 들이쉰다.) 오지 마. 가 그냥. 그런 거 잘하잖아.
 
S#51. 사당나무 앞/아침/흑백화면
흐릿한 화면에는 아이의 손과 흔들리는 재연만 잡힌다. 누군가 흔들어 일어나는 재연. 구희가 재연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있다.
 
재연: (놀라 뒤로 물러나며) , (나무 기둥에 머리를 부딪친다) !
구희: (약간 놀란 듯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왜 여기서 자?
재연: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작은 신음을 내뱉는다) 너 기다리느라. (구희를 보며) 너 근데 이렇게 일찍 와?
구희: (살짝 뒤로 물러서며 시선을 피한다.) 그냥 뭐. (다시 재연을 보며) 언니는 오늘은 일찍 와도 되는 날이야?
 
재연이 구희를 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재연의 표정. 멀뚱멀뚱 재연을 보던 구희의 표정이 천천히 굳는다.
 
구희: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재연의 눈치를 보며) 언니 뭐 안 좋은 얘기 하려고 그러지.
재연: (담담하려 하지만 조금 미안한 투로) 나 이제 서울 가.
구희: (서운한 목소리) 언제?
재연: 오늘.
구희: 그럼 언제 와?
재연: (저도 모르게 구희의 시선을 피하며) 안 와.
구희: (애원하는 투로 말끝을 늘이며) 왜애. 오면 되잖아.
재연: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단호하려는 목소리로) 안 돼. 다신 못 와. 이 얘기 하려고 왔어인사는 하고 가기로 했으니까.
구희: (재연의 옷자락을 잡으며) 그럼 내가 서울로 갈게. 어딘지 말해주면 갈게.
재연: (재연의 손을 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못 봐
구희: (울먹이며) 그런 게 어딨어
재연: 그러게미안해.
 
울먹이는 구희를 안아주려다 팔을 내리는 재연.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다독여만 주고 돌아선다. 따라오는 발소리에 더욱 발걸음을 빨리한다.
 
구희: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 언니! 언니!
 
주먹을 꽉 쥐는 재연. 구희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차에 재연이 금을 넘어간다.
 
S#52. 사당나무 앞골목길/아침/칼라화면
사당나무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재연. 눈이 젖어 있다.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재연은 어깨 부분의 옷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빠르게 골목으로 향한다. 길목에서 엄마와 마주친다.
 
엄마: (놀람과 안심, 약간의 화가 섞인 목소리) 너 여기 있었어? 아침에 자리에 없어서-
재연: (아직 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 나는 아직도 엄마가 이해가 안 돼.
엄마: (어이없다는 듯) ?
재연: (꿋꿋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하고 싶지도 않고.
 
재연이 계속 얼굴을 닦는다. 엄마는 무슨 소리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재연을 바라보다, 표정이 오묘해진다. 재연이 엄마를 지나친다. 엄마가 그런 재연을 돌아본다.
재연은 이제 얼굴을 닦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로 걷는다. 반대편에서 할머니가 걸어온다.
 
할머니: (뒷짐 지며 걸어오다 멈춰 서서) 너는 안 갈라냐? 메칠 뭐 거기서 놀드만.
재연: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얼굴을 가리며) 그냥 쉴래. 일찍 일어났더니 졸려.
 
할머니가 뭐라 말을 더 잇기 전에 재연은 할머니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할머니가 재연을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지만 이내 가던 길을 마저 걷는다. 재연이 자리를 떠나고서 계속 같은 자세로 서 있던 엄마가 할머니와 마주친다. 엄마, 재연이 있는 쪽을 한 번 더 살피고는 이내 말없이 몸을 돌려 걷는다.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걷는 할머니.
 
S#53. 골목길
걸어가던 재연의 뒷모습을 잡던 카메라가 앞으로 나와 재연의 시야에 보이는 풍경을 잡는다. 햇빛이 쨍하다. 낮은 담벼락 그늘에 군데군데 어둡긴 하지만 대충 부은 티가 나는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가 보일 정도다. 나무 녹음에 그 근처 햇빛은 언뜻 녹색으로 보인다. 멀리 있는 비닐하우스에 반사된 빛이 반짝 거린다. 멈춰 서서 그 풍경을 보던 재연이 문득 뒤돌아본다. 화면은 다시 재연의 시선으로 옮겨가 걸어가는 엄마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잡는다.
 
NA 당신을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도 이해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말자. (사이) 알아주지 말자.
 
할머니와 엄마의 뒷모습을 오래 잡는다. 그들이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
 
S#54. 사당나무 앞
동네 사람들이 사당나무 앞에서 시멘트를 부으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사당나무가 유달리 푸르러 보인다. 매미 우는 소리 선명하게 들려온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와 할머니의 뒷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할머니: (앞을 보며) 너 옛날에 저기 심심하면 들어가 있던 거 기억난다.
엄마: (별거 아니라는 투로) 심심해서 들어간 거 아니야.
할머니: 이젠 구희라고 안 불러줘도 괜찮냐?
엄마: (짜증난 목소리로 할머니를 흘끔 흘겨보며) 부르지 마.
 
카메라가 천천히 멀어지며 둘의 뒷모습이 작아진다.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그 둘의 모습이 사라지지만 사당나무는 화면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 끝까지 남아 있는다. ‘사당나무 흔들릴 때제목이 나오면서 화면이 암전된다. (177.1)
 
 
희곡 부문 당선 소감
 
반걸음이라도 괜찮다면
 
 선현정(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요즘 들어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일이 늘었습니다. 이제 정말 사회로 나갈 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답은 없는 것 같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처럼 느껴지는 날들이었습니다. 여전히 그게 너무 큰 욕심처럼 느껴지는 건 변함이 없고, 슬프지만 답이 안 보이는 것도 맞을 겁니다. 그래도 이 상을 통해 그간의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위로를 받은 것 같은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쓰는 일의 즐거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 고민을 나누고 응원해주는 친구들과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주시는 교수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분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나리오 부문 심사평
 
실패 두려워하면 성취는 없다
 
 원대신문에서 개최하는 김용문학상 공모전은 일종의 대학생 글 품평회이다. 공모전의 핵심은 더 많은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모전의 핵심은 도전하는 것이다.
 올해 투고 작품 중에는 시나리오가 많았다. 영상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징후이다. 공모 시나리오 소재는 바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여론의 인권침해에 관한 문제부터, 안락사, 가족 등 다양하다. 최근 우리는 한 연예인의 불행한 죽음을 경험했다. <판옵티콘>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소위 '알 권리'를 앞세우며 개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들을 매우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문제는 사건의 구성과 인물이 너무 평이하다는 점이다.
 진로 때문에 겪는 부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화해하는 <스케치>와 모녀간의 거리감을 여름방학의 마술적 경험을 통해 좁혀나가는 <반걸음, 반걸음> 모두 수채화처럼 단정한 작품이다. 아쉬운 점은 <스케치>는 너무 도식적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반걸음, 반걸음>은 시골마을의 사당나무(서낭나무)를 중심으로 꿈과 현실을 매개하여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키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안락사의 문제를 차분하게 전개한 <뒷정리>, 갑자기 시력을 잃은 작가가 시련을 극복하고 재기한다는 인간승리를 영상화한 <클로즈 업>은 두 작품 모두 극적 구성이나 인물 설정이 너무 평이하다는 문제가 있다.
 공모된 희곡 작품 중 <푸른 가면>은 유럽 고전극 풍의 대사와 동화적 상호텍스트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극적 사건과 우의적 의미가 너무 평이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모노드라마 <뫼비우스>는 주인공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심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극이 전체적으로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여 메시지 전달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결론적으로 공모 작품 수와, 글의 형식과 내용에서 특별한 도전정신을 보여준 작품이 적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반걸음, 반걸음>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글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
 이상복(원광대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이승진(원광대 유럽문화학부 교수)
 
 
< 저작권자 © 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원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70-749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44-2 | TEL 063-850-5551~4 | FAX 063-850-70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찬근
Copyright 2005 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wknews.net
원광대신문사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