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독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나이 불문,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재난 문자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간 전국적으로 발송된 재난 문자는 총 1만 6천78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발송된 461건보다 약 36배가량 많은 수치다. 내용을 살펴보면 코로나19에 관한 소식이 주를 이루며 그 외에 폭염, 폭우, 산사태 등의 기상 특보 소식을 담고 있다. 이처럼 재난 문자는 매번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행적을 재난 문자를 통해 공개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대두되고 있다. 방역을 위해 허용되는 사생활이나 인권 침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애매하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이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국가가 권력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미 국회에서는 코로나19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각각 지난 2월과 5월에 통과시킨 바 있어, 지금 당장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1791년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이름의 원통 모양 감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파놉티콘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보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단어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의미한다. 이 감옥은 중앙의 원형 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감시탑 바깥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을 만들도록 설계됐다. 중앙의 감시탑은 어둡게 죄수들의 방은 밝게 만든 것이 특징인데, 그로 인해 역광선 효과로 감시자들은 죄수를 감시하지만 죄수들은 자신의 감시 여부를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규율과 감시에 내면화된 죄수들은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게 된다. 
 파놉티콘은 오늘날에 이르러 '정보 파놉티콘'으로 불린다. 죄수들은 작은 감옥 안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나왔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감시자들 또한 어디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판 죄수인 '우리'들은 단순한 감시에서 '정보'로 진화한 통제와 규율 아래 살아가고 있다. 이는 여러 정보통신 기기나 시스템으로 인한 감시 체계를 뜻한다. 대표적으로 CCTV, GPS(위성항법장치)를 비롯해 신용·체크카드, 휴대폰, 공중전화, SNS 등의 인적 사용 기록과 최근에는 QR(Quick Response)코드를 활용한 전자출입명부까지 다양한 수단이 존재한다. 물론 각종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고 해결하거나, 요즘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같은 선한 의도는 이해하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정보를 누군가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달갑지 않은 사실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완벽히 파악해 공개하기까지 시간은 채 하루도 걸리지 않다고 한다. 정보통신 기기가 첨단화된 요즘, 우리 사회는 사각지대 없이 곳곳에서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화두에 오른 정보 파놉티콘 즉, '감시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 정보가 노출되거나 악이용 당하는 감시사회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를 위해 실효성이 있는 또 다른 새로운 법안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본인 스스로가 개인 정보를 소중히 다루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국가에서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코로나19 확진자의 개인 정보와 동선 공개의 기준', '국가의 감시 사회가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등을 마련해야 한다.

임지환 기자 vaqreg@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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