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넓혀 가길 바란다. /편집자
 
 
 한국인들에게 커피, 삼바와 축구로 알려져 있는 브라질에 2015년 5월부터 3년간 대사로 근무했던 기간은 하필이면 브라질이 사상 초유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했던 시기였다.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온갖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임 전 가졌던 장밋빛 기대들이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3년을 지내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틈만 나면 무언가 한브라질 관계와 관련한 일을 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왜냐하면 문제도 많고 불확실성이 적지 않지만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앞날에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고, 그런 브라질이 우리나라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선 브라질은 국력의 기본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국토, 인구, 자원에 있어서 모두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만한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브라질의 국토는 무려 우리나라의 약 85배에 달하지만 이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넓은 땅의 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대국들과는 달리 대체로 평야로 이루어진 브라질의 국토는 경작 가능 비율이 훨씬 높으며 풍부한 일조량과 담수량 등 농작물 재배를 위한 매우 양호한 조건까지 가지고 있다.  
 브라질이 손꼽히는 자원부국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넘치는 광물자원에 더해서 10여년 전 상파울로 앞바다에서 엄청난 양의 원유가 매장되었음까지 발견되자 '신은 브라질 사람인가 보다'라는 말이 유행되기도 했다.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은 궁극적으로 자원에 대한 수요 증가를 가져올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브라질과 같은 자원부국의 위상과 영향력은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한편 경제력이든 군사력이든 국력을 키워나가는 주체는 사람이다. 브라질의 인구는 약 2억 1천만 명으로 세계 5위이다.  또한 이 2억 인구가 갖는 강점은 민족, 인종, 종교 등과 관련한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생사회의 표본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많은 인구를 국가발전을 위해 모빌라이즈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슷한 여건을 가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리하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어진 여건으로는 브라질이 미래의 일류국가로 발전해 나갈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여건을 실질적인 능력으로 만들어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즉 훌륭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재 브라질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정치 부패와 후진적인 정치문화로 인해 국민들의 이익과 의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러한 정치의 후진성이 나타나는 것은 과거 식민지 시대부터 각 지역을 주름잡는 소수의 지배계층이 다수의 주민들을 먹여 실린다는 소위 가부장적인 정치행태가 그 주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브라질의 경제 역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크게 두 가지, 자본이 부족하다는 문제와 생산성이 낮다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먼저 자본의 문제는 브라질이 전통적으로 민간금융이 발달하지 못한 가운데 정부가 푸는 돈이 가장 중요한 자본의 원천인데 이 정부의 재정상태가 엉망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브라질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용할 실탄이 택없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경제의 생산성이라는 문제는 높은 인건비, 복잡한 세제, 까다로운 규제, 부족한 인프라 등 소위 브라질 코스트로 통칭되는 뿌리깊은 제도적, 관행적 문제점들로부터 비롯된다. 
 이와 같은 정치와 경제의 문제점들 뿐 아니라 교육, 치안, 공공의료 등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공공재에 관해서도 브라질은 아직 선진국을 거론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브라질이란 나라의 미래에 일류국가의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단시일 내 그 많은 문제들이 다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긴 호흡으로 바라 보았을 때 브라질이란 나라가 곰처럼 느리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여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들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브라질 국민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으며 브라질 정부도 노동과 연금개혁을 이루어 낸 데 이어 세제와 행정개혁 추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빠른 변화가 브라질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디지털 경제 시대는 브라질에게 후발주자의 역전이라는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이 IT분야에서 아직 선진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2억이 넘는 인구를 활용하여 네트워크 효과를 톡톡히 거둘 수 있다. 2억 인구가 언어를 비롯하여 비교적 높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매우 높은 수준의 도시화가 이루어져 있으며 브라질 사람들이 스마트폰 사용시간이나 SNS 사용빈도 등에서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디지털 소통에 능하다는 점에서 네트워크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브라질 정부의 적절한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브라질이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수혜자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세상은 기후변화 대처나 식량과 에너지 확보문제와 관련하여 소위 지속가능한 친환경 경제를 만들어 나가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에탄올을 비롯한 풍부한 바이오 자원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은 이 분야에 있어서 세계를 리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도 브라질의 미래에 기대를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능성의 나라 브라질은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나라인가? 브라질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익과 혜택은 무엇일까?
첫째 브라질은 우리 외교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협력대상국이다. 한국의 외교는 북한문제로 인해 부득이 소위 4강과의 관계에 매몰되어 있으나 이러한 4강외교를 잘 하기 위해서라도 4강을 넘어서는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  즉 4강 이외의 국가들의 좋은 협력관계가 4강을 상대할 때 우리의 카드가 되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게 할 말을 다하는 나라이며 브라질의 대외정책의 기조에는 모든 국가들간의 평등과 공평무사의 원칙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둘째, 자원대국인 브라질은 우리나라의 식량과 자원 안보를 위한 중요한 협력 대상이다. 소비하는 곡물의 4분의 3을 수입하고 있는 한국에게 곡물 도입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식량안보가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하자원도 같은 맥락이다. 자원빈국인 한국에게 브라질이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셋째,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현재 인도와 동남아 지역이 무역다변화 1순위 대상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중남미지역과의 교역 확대 가능성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며 그 중심에 브라질이 있다. 특히 브라질과의 교역 확대를 기대할 수 있는 몇 가지 요건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내수에 의존해 온 브라질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15%에 불과하기 때문에 앞으로 교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과 브라질 양국은 비교우위 분야가 서로 다른 상호보완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교역에 있어서 서로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들어 브라질 정부가 대외개방을 통한 글로벌 경제 편입만이 브라질 경제가 살 길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브라질과의 교역 확대를 역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 브라질은 무역 뿐 아니라 투자진출에 있어서도 우리 기업들에게 황금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이다.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대형 건설사들을 비롯하여 심각한 경제침체로 인한 부채 증가에 허덕이던 브라질 기업들이 자산을 싼 값에 내놓을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재정난에 봉착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들이 급매하는 자산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과거에는 브라질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도 외국 기업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다섯째 브라질이 기술협력 대상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보통 브라질하면 우리가 IT를 비롯하여 기술을 전수하는 시혜를 베풀어 주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도 일부 분야에서는 우리가 배우고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69년에 설립된 브라질 항공기 제조업체 엠브라에르가 세계 항공기 사장에서 보잉과 에어버스에 이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항공, 우주 분야에서는 우리가 브라질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할 처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친환경 에너지를 비롯하여 바이오 경제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데 이 분야의 최강국인 브라질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한 양국간 협력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마지막으로 브라질이 한국에게 줄 수 있는 기회의 하나로 인력진출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언어의 문제도 있고 한국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은 브라질에서 한국인들이 만족스러운 취업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IT등의 분야에서는 브라질에서도 전문성 여하에 따라 고액의 연봉이 보장될 수 있고 앞으로 브라질 경제가 살아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IT 분야는 4차산업혁명 도래와 함께 브라질 정부가 역점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앞으로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데 이러한 발전을 뒷받침할 브라질의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이 밖에도 석유화학, 항공기, 우주선, 바이오 에너지 등 브라질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는 꽤 괜찮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당장의 청년실업 문제의 해소 차원을 넘어서서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브라질이라는 나라는 해외이주를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좋은 대상지역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넓은 땅과 쾌적한 공기가 있고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브라질 사회의 포용력이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 브라질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 상파울로를 중심으로 약 5만 명의 한국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데 한국과 브라질 양국관계의 무게를 생각할 때 그리고 다른 이민사회들과 비교할 때 5만명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먼 장래의 일이 되겠지만 통일이 되어 2천5백만 북한인들이 남한의 취업시스템에 도전을 가져 온다면 인력의 해외진출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과제가 될지 모르는데 그런 가능성에 대비해서도 인력진출 대상지역으로서의 브라질의 가치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브라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양국 관계가 만개하지 못한 데에는 양국간의 지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로 비롯된 핸디캡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 소통의 시대, 비대면의 시대을 맞아 앞으로는 이러한 거리와 차이의 문제가 주는 부담이 훨씬 경감되리라 기대되며 그러한 점에서 브라질과의 관계를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관 교수(前 브라질 대사)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