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엄숙한 아카데미 시상식 자리, 사회자가 작품상 수상작으로 "PARASITE!"를 외치던 그 순간이. 우리나라 국격을 높였다 평가받을 만큼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쾌거는 한국인들의 가슴을 자못 벅차오르게 했다.
 그리고 최근, 또 한 번 한국인들을 설레게 만든 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 영화 〈미나리〉가 그 주인공이다.
 〈미나리〉는 비록 미국 영화사에서 제작하고 미국인 감독이 연출했으며 촬영까지 미국에서 진행한 미국 영화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이며, 출연 배우 스티븐 연도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한국인 윤여정과 한예리까지 출연한 영화다. 영화의 시놉시스도 한국 이민자 가족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영화가 전 세계 영화제 비평가협회 59관왕, 미국 영화협회·시상식에서 20관왕을 달성했다니, 한국인으로서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나리〉가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건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다. 지난달 28일에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 부문으로 후보에 올랐고,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수상을 한 건 축하할 일이지만, 작품상 후보에조차 오를 수 없었다는 사실이 이번 논란에 불씨를 지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인 영화만 작품상 부문에 출품할 수 있다는 규정이 존재한다. 이 규정에 따라 한국어 대사 비중이 많은 〈미나리〉는 작품상의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한 것이다. 이에 많은 영화관계자뿐만 아닌 저명인사들도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룰루 왕 감독은 "나는 올해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 같은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기대하는 미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적인 것'을 오로지 '영어의 사용'으로만 정의하는 구식 규정들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뉴욕타임스는 "미나리는 미국인 감독이 미국에서 촬영했고, 미국 회사가 자금을 지원해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이민자 가족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그런데도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경쟁해야만 한다"며, "최고의 상인 작품상을 노릴 수 없게 됐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이하 HFPA)가 바보같이 보이게 됐다"고 역설했다.
 또한, 영어 대사가 규정보다 부족함에도 제6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마찬가지로 규정에 미치지 못했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이 제6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최종 수상하기도 했던 예를 들며 할리우드 내부에서 인종차별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백인 감독과 백인 배우들이 만들었고 서양의 언어가 많이 나오는 영화일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영어가 나오기만 하면 외국어영화상이 아니라 작품상 후보로 분류했지만, 아시아계 감독이 연출하고 아시아계 배우와 아시아계 언어가 나오는 영화는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시킨 꼴이 된 것이다.
 결국 이번 논란을 의식한 건지,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HFPA가 "조직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흑인을 비롯한 저평가된 구성원들을 늘리는데 주력할 것"이라며 인종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에 전념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꺼지지 않는 불씨, 인종차별이 여전히 알게 모르게 사회 내에 만연해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로 인해 드러나게 됐다. 이를 타도하려는 움직임은 예부터 수도 없이 많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가 피부색이 아닌 작품성 그 자체만이 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볼 뿐이다.
 
김정환 기자 woohyeon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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