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넓혀 가길 바란다. /편집자

황토 고원을 넘어서

 중국 농업은 황하 중류 지역에 있는 황토 지대에서 처음 시작했다. 황토는 땅을 수직으로 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는 물을 밑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연결관인 모세관이 많이 형성돼 있다. 땅 밑에 있는 수분이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관개를 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토질이 성글고 부드러워서 초기 농업에 사용된 원시적인 도구로도 경작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황토 고원에는 비가 잘 내리지 않아 물이 귀했고, 벼농사 등이 불가능했다. 우리가 중국인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가운데 하나인 중국 사람들은 잘 씻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나아가 강수량이 부족해 건조한 황토 고원의 기후에서는 오히려 목욕을 너무 자주 해도 피부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 황토고원 위를 흐르는 것이 황허(黃河)이고, 황허는 중국문명을 태동케 한 어머니 강(母親河)이다. 황허문명이야말로 세계 사대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황허는 주기적으로 범람을 해 홍수를 일으켰기에, 황허의 치수는 중국의 역대 왕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국가의 대사 가운데 하나였다. 황허에 포함된 진흙 성분은 무려 40~60퍼센트에 이르러, 다른 지역의 강들에 비해 약 10여 배정도 많다. 진흙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 강물에는 유기물질이 풍부해 농사짓기에 유리하다. 그렇기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농사를 짓고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만리장성

오르도스란 무엇인가?

   황허는 발원지를 떠나 서쪽으로 흐르다 인산(陰山) 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동안 북진하다 다시 서쪽으로 흐른 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결국 서쪽으로 다시 흐른다. 이렇게 구불구불 흐르는 황허의 물길에 갇힌 직사각형의 땅은 고원과 사막, 초원, 염호(鹽湖) 등으로 이루어져 독특한 풍광을 자랑한다. 엄청난 두께의 황토 고원이 있는가 하면, 사막 안에 느닷없이 푸른 물이 넘실대는 호수가 있고, 그 밖은 황량한 초원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곳은 변방의 곡창지대로 많은 민족들이 눈독을 들였던 땅이었다.
 이곳은 본래 유목 민족이 방목을 하던 목축지였으나, 서쪽의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의 요충지였기에, 오랜 세원을 두고 한족(漢族)과 북방 유목 민족이 서로 뺐고 빼앗기는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처음에는 전국시대 조(趙)나라가 이곳에 진출해 인산(陰山, 음산)에 장성을 쌓고, 이어 진시황이 흉노족을 북으로 쫓아내고, 조 장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삼았다. 서역 경략에 적극적이었던 한 무제(漢武帝) 때에는 숴팡(朔方, 삭방), 우위안(五原, 오원), 윈중(雲中, 운중), 시허(西河, 서하) 등 여러 군(郡)을 두었다. 하지만 남북조시기에는 유목 민족이 이 땅을 지배하다가 수(隋)나라 이래로 다시 한족이 진출해 당대(唐代)에는 여러 주가 설치되었다. 이후 당나라 말기에 티벳 계통인 탕구트(黨項)족이 서하(西夏)를 세웠다가 칭기즈칸에게 멸망당하고, 몽골족이 지배했다. 현대에는 닝샤寧夏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독특한 경관과 여러 시대를 대표하는 만리장성 유적, 그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그곳 사람들의 이국적인 풍속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강으로 각인되어 있는 황허강
중국인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강으로 각인되어 있는 황허강

중원과 중화, 
화이사상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 

'중국'이란 명칭이 한 나라의 국명으로 쓰인 것은 최근의 일(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그 이전에는 각각의 왕조의 명칭이 나라의 이름이었다. 따라서 현대 이전에 쓰였던 중국이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국명이라기보다 '세상의 한 가운데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 관념적인 용어였다. 아울러 '중원(中原)'은 '세계의 중심에 있는 평원'을 의미하는데, 지리적으로는 황허 이남과 양쯔강 이북 사이에 있는 화북평원을 가리킨다.
 한편 중심이라는 말은 상대적 개념으로 세상의 가운데가 있으면 주변부가 있게 마련이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 이외의 지역에 살고 있는 존재들을 싸잡아 '이적(夷狄)' 곧 오랑캐라 불렀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하는 가치판단을 '중화사상' 또는 '화이(華夷)' 사상이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중화사상'은 지리적인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관념 체계일 뿐이다. 여기에서 '화(華)'는 '꽃'이나 '빛'을 의미하고, 나아가 '광채가 나는 모습'을 형용한다. 그렇다면 화려하게 만개한 꽃봉오리와 어둠을 걷어내는 빛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지하고 몽매한 야만의 상태를 벗어난 문명의 단계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중국의 전통적인 '예악제도'를 가리킨다.   한편 중국인들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용어로 '화하(華夏)'라는 말이 있다. 하(夏)는 문화 수준이 높은 주례(周禮)의 지역을 가리키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종족은 화(華)라 불렀다. 따라서 '화하(華夏)'는 곧 중국을 지칭한다. '화하'는 본래 지명에서 나온 말이지만, 점차 황허중하류지역, 곧 '중원' 땅에 거주하면서 '황허문명'을 건설했던 이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굳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화하(華夏)'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사이(四夷)'라 불렀는데, 구체적으로는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화하(華夏)'의 기본적 함의는 역시 문화라 할 수 있다.
 

황색에 대한 단상
중국인은 왜 노란색을 좋아할까?

 모든 색 가운데에서 가장 상반된 색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황색, 곧 노란색이다. 그 만큼 노란색은 우리에게 다양한 느낌을 준다. 순수한 노란색은 진리를 나타내고, 서양에서는 노란색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의 색이라 믿었고, 나아가 오늘날에는 흰색과 더불어 교황의 색이 되었다. 노란색은 또 황금 비율과 같이 완벽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관용과 아량, 고귀한 품성과 지혜, 포괄적인 직관, 합리적인 사고, 정신적 성숙, 수확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부정적인 이미지로는 시기나 질투, 또는 부덕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란색은 부귀를 상징하는 황금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래서 한 사회의 발전이 최고조에 이르거나 개인의 일생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 시기를 일러 '황금기'라 일컬었던 것이다. 아울러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밝고 낙천적이며, 호기심이 강하고 태연하다는 말을 듣는데, 이것은 대체로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성품과 많은 부분 들어맞는다. 
 이 노란색과 더불어 붉은색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이다. 여기서 붉은색은 경사스러움과 행운을 의미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설날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줄 때 '홍바오(紅包)'라는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준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처음부터 황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한나라 이전의 왕조는 각기 그 나름의 색을 숭배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은나라라고도 부르는 상(商)나라는 백색, 주(周)나라는 적색, 진(秦)나라는 흑색을 각각의 왕조를 대표하는 색으로 여겼다. 진나라를 뒤이은 한(漢)나라는 초기에는 적색을 숭배했는데, 한 무제(漢武帝) 때 유가 사상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황색이 천자를 의미하는 색깔로 확정되었다. 유학자인 둥중수(董仲舒, 동중서)가 한 무제에게 오행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동쪽은 푸른 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붉은색, 북쪽은 흰색이며, 하늘의 아들(天子)로 하늘의 뜻을 대신 집행하는 황제의 땅인 중앙은 황색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 무제는 달력을 바꾸고 황제의 색깔도 황색으로 바꾸었다. 
 그 이후로 황색은 황제의 색이 되었다. 황궁이나 기타 황제와 관련이 있는 건물의 기와도 황색이고, 황제가 입는 의복이나 수레, 의장도 황색을 쓰는 등 황색은 일반 백성들이 넘볼 수 없었던 고귀한 색으로 황제의 신성함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중국문명을 탄생시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어머니 강으로 각인되어 있는 황허의 색깔과, 황허의 범람으로 비옥해진 황토 고원의 색깔, 그리고 그 땅에 의지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색 등 이 모든 것이 노란색, 곧 황색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황색은 좁게는 황제를 대표하며 넓게는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색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노란색과 붉은색을 하나로 담고 있는 상징물이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이다. 오성홍기라는 말 그대로 중국 국기는 빨간색 바탕 위에 노란색의 별이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별의 색깔이 노란 것은 '광명'을 의미하며, 밝은 미래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새로운 승리를 성취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가장 큰 노란 별은 중국혁명을 주도했던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대표하고, 작은 별 네 개는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당시 노동자, 농민, 지식계급, 애국적 자본가의 4계급으로 성립된 인민을 의미한다.

 조관희 교수(상명대 중국어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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