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소생술'인 춤은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생리적 차원의 통합을 제공한다

  인류는 많은 시간을 '정신없는 몸, 몸 없는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정신과 몸을 분리할 때 우리의 삶은 맹목적이거나 공허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오래된 문명입니다. 자연의 일부인 몸, 주체로서의 몸은 이성에 밀려 그 기능을 상실하고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만 취급되면서 사람들은 병들어 갑니다. 몸으로 살아야 하는데 몸으로 살지 못하니 시들시들합니다. 그 무엇도 충족되지 못합니다. 우린 헛헛해 하며 방황합니다. 우리의 모든 병폐 앞에 '몸'이 있습니다. 
 이 병폐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도 '몸' 입니다. 그럼 이 몸을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야 할까요? 바로 '춤'입니다. 몸의 안과 밖이 만나는 지점에 춤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를 만나는 것이 춤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몸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우린 너무 오랜 시간 몸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몸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 몸은 움직이고 싶어 합니다. 몸은 맘껏 떠들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춤입니다. 한마디로 '자신 스스로의 춤'이지요. 우린 나의 춤을 출 권리가 있습니다. 기쁠 권리가 있고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린 맘껏 세상을 살아내고 누려야 합니다. 우릴 억누르고 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내 몸이 나와 화해하고 대화하고 소통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은 곧 타인, 모든 존재와의 화해, 대화, 소통입니다. 이 화해, 대화, 소통의 장으로 춤으로 춥니다. 
 전문가가 보여주면 보기만 하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 느끼고 체험하여 그 생명의 에너지를 다시 우리의 삶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삶을 위한 춤', '삶의 방식을 바꾸는 춤'입니다. 내 개인의 회복, 성찰과 성장이 확장되어 사회로 흘러가고 연결되어 건강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 행복의 요건입니다. 춤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추는 것이니까요. 문화유산인 몸을 현재로 데려오는 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혁신입니다.
 21세기는 몸의 시대라고 합니다. 디지털 문명 시대에 모든 것을 과학과 컴퓨터가 대체한다고 해도 대체 불가능한 분야, 아날로그의 감성이 필요한 시대에 인류의 문화유산인 '몸'의 문화를 재조명해야 하며 몸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곧 '나'의 이해이며 '인간', '삶'의 이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몸은 나 자체이며 세계를 향하여, 세계에 참여하는 실질적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표현, 예술은 인간과 삶의 문제이고 이야기라 할 때, 이 모든 것들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무엇을 발견하고 싹을 틔워야 할지 생각해 보면 그 답은 '몸'입이다. 
 몸은 체육, 무용에 국한된 자원이 아닙니다. 몸은 신체와 마음과 정신이 통합되어 있는 실체이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모든 경험과 기억과 정보와 감정이 뼈와 살과 근육과 피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는 박물관과도 같습니다. 
 내부의 씨앗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것도 상상하고 창조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자원입니다. 이 내부란 몸입니다. 몸 안에 사는 무의식과 잠재력, 인간의 모든 유산이 숨어 있고 보관되어 있는 창고이고 보물인 몸 안의 것을 몸 밖으로 꺼내는 춤이 절실합니다. 우리의 몸 안에 이미 피카소, 아인슈타인, 톨스토이, 에디슨, 모차르트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려내고, 끄집어낼 것인가? 바로 '움직임' 입니다. 움직임, 몸의 풀썩거림이 몸 안의 사유들을 나오게 하고, 감각을 깨우고, 무의식을 의식화시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형상화 시켜줍니다. 
 이 움직임을 스스로 찾아가게 도와주면 몸은 자연의 리듬을 찾아 시원으로부터의 몸과 모든 사물과 자연과 어울리게 되며 이것이 춤이 되는 것입니다. 화려해야만 춤이 아닙니다. '낮은 기술, 높은 감수성'으로 얼마든지 춤의 미적 체험을 할 수 있고 이 춤이 창조적 에너지를 만들어 우리의 생명력을 회복 시켜 줍니다. 
 춤은 인식이 분절화 되기 이전의 인식대상 전체 즉 지각적, 감각적 인식에 가장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에 이 시대가 원하는 '디지로그'를 실현할 수 있는 통합적 예술매체입니다.
 움직임, 동작은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움직임을 어떻게 인문학적 사유로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을지, 움직임 속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마음의 눈으로 본 이미지를 움직임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형상, 사물을 창조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의 자각과 자존감,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 경이감 없는 위대한 예술가, 과학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위대한 예술, 건강한 예술, 위대한 과학, 정치, 경제는 생명력 넘치는 나 자신의 존재로부터 시작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춤>은 인간과 표현과 예술, 삶 전반에 걸친 것을 경계 없이 몸으로 이해하고 체화하면서 나누고 공감하고 소통합니다. 춤은 동작이 양식화된 자기 억제에서 벗어나고 정형화된 몸짓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동작과 느낌 사이의 본질적인 반응 과정을 통해 스스로 만든 틀에서 해방시키고 인식과 재창조를 발견하도록 합니다. 
 춤을 통해 우리의 근원, 우리의 문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 재료인 '몸'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몸에 문제도 있고, 몸에 열쇠도 있습니다. 너무도 간단하고 단순한 해법이며 처방이고 묘약입니다.
 '감각 소생술'인 춤은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생리적 차원의 통합을 제공합니다.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생리적 차원은 뇌의 구조와 발달과정에서 뇌간, 변연계, 전두엽의 관계와 연결됩니다. 우리의 삶은 인지적인 차원에만 집중해서 오히려 뇌의 불균형적 발전, 다시 말하면 불균형의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뇌, 상처받은 영혼으로 불행한 인간, 불행한 삶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춤은 인간의 깊은 잠재성, 무의식을 일깨우고 드러나게 합니다. 수많은 지식은 핸드폰만 누르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전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나 자신을 아는 것, 나의 근원성과 접촉하는 것'이 가장 큰 자원입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포노사피엔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사람', '진정한 인간','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인간이 디지털시대 미래 인간의 핵심 역량이라고 유발 하라리, 최재붕 교수 등 미래학자들은 신인류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류 최대의 질문을 우리는 그동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왔고 그래서 풀기 어려웠습니다. '몸'으로 풀면 쉽고 단순합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몸'에 있기 때문이지요. 이 질문은 철학자, 예술가, 수행가만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질문이며 과제입니다. 이 질문이 교육과정, 혹은 전 생애에 걸쳐 자연스럽게 삶과 연결되어야 하겠지요. 어른만 이 질문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도 이 질문 앞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몸'은 인류의 진화과정과 그 축적물들의 보고입니다.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느낌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몸'을 발견하는 시대는 '나'를 발견하는 시대입니다. 이 말은 각자 다르고 다양하고 고유하며 고귀하다는 것입니다. '화엄'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춤입니다. 자신을 '화엄'으로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생명성입니다.
 몸과 세상이 만나도록 연결하는 지점에 '춤'이 있습니다. 형태를 따라 익히는 것이 아닌 내부로부터 스스로 흘러나오는 자연의 리듬, 자신의 내적 자각으로부터 나오는 움직임이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되고 자연과 세계와 소통하고 나누고 협력하고 상생, 사랑하게 하는 생명의 힘을 만들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창조성이 발휘됩니다. 
 춤을 추다 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런 에너지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연성이고 본성이고 회귀하고 싶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움직임이 기적을 만든다'의 실제가 춤입니다. 개인이 변화할 때 세상이 변화할 것입니다. 기존에는 개인보다 시스템과 구조를 바꾸는 데 치중했지만 몸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동시에 움직이며 서로 협력하는 제 머리와 골반과 팔과 다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즉 몸의 동시성을 이해하면서 지금은 변화 역시 동시에 일어나게 됨을 이해하게 됩니다.
 개인과 사회, 개인과 지구, 개인과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변화가 분명 공동체의 변화를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춤은 개인의 내적 자원을 부작용 없이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창조적 존재, '소우주'이기 때문입니다. 
 놀이하듯 즐기면서 자연스레 감각을 이완시키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감각을 깨우면 움직임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표현이 나오고 상상도 일어납니다
 춤은 서로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그냥 보고 느끼고 상상하도록 합니다. 사회적 역할이나 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로 서로 만나는 것만큼 깊이 공감하게 합니다. 이러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소통은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를 모두 존중하면서 상대의 욕구에 오히려 영감을 받아 창조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모두의 춤, 모두를 위한 춤, 모두에 의한 춤이 커뮤니티댄스(공동체의 춤;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며 공동체와 연결되는 춤)입니다.
 이런 춤을 통해 한반도가 지구 문명을 밝게 하는 등불이 될 거라고 꿈꿉니다. 한반도가 이념과 종교, 신념, 연력, 인종, 나이, 학력을 넘어 인간의 본성에 다가서게 하는 '인간성 회복'의 메카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합니다. 

최보결(최보결의 춤의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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