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넓혀 가길 바란다. /편집자

 맥심코리아 2015년 9월 표지

 

남성잡지 '맥심(MAXIM)코리아'사례
 2015년 9월 2일(현지시간) 영국의 패션잡지 '코스모폴리탄 UK'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례적으로 한국의 남성잡지 '맥심코리아' 표지에 대한 장문의 비판을 게재하였다. 이 글에서 잡지의 표지는 해당 잡지의 구매를 호소하기 위한 홍보적(호소적) 성격을 띠는 텍스트로 이해하며, 이에 따라 기능적인 관점에서 잡지의 표지는 넓은 의미에서 광고로 간주될 수 있다.
 코스모폴리탄 UK가 제시한 비판의 핵심은, 맥심코리아 9월호 표지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는 '역대 최악의 커버(In perhaps the worst cover idea of all time)'라는 것이며, 이와 함께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잖아? 이게 진짜 나쁜 남자야. 좋아 죽겠지?"라는 조롱하는 듯한 화보 소개 멘트 역시 '나쁜 남자'와 '범죄자'와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위험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표지에 대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청소년 유해가 아닌 것'으로 결정하였고, 맥심코리아 측 역시 성폭력 미화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출간을 강행하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이런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먼저 맥심코리아 2015년 9월호 표지를 살펴보면, 구형 그랜저 트렁크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폭력배 이미지의 남성 뒤로, 청테이프에 의해 결박된 여성의 다리가 보인다. 표지를 구성하는 개별 기호들, 즉 '검은색 대형 승용차', '승용차에 팔을 얹고 거만하게 담배를 피고 있는 남자', '청테이프에 묶인 여성의 다리', '트렁크 속 여성' 등은 하나의 화면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이러한 표지의 이미지가 구성하는 메시지를 영국의 코스모폴리탄은 성폭력의 이미지로 인식하였고, 한국은 이를 도덕적 가치의 부정적 표현인 '나쁜(bad)'이라는 표현을 활용한 나쁜 남자(Bad Guy), 즉 남성의 마초적 성격으로 인식하였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맥심코리아 측에서 보여준 윤리적 가치와 법률적 가치의 혼돈은 성폭력의 미화라는 비판을 받게 한 원인이 되었으며, 이를 용납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와 이 표지를 보고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맥심코리아 9월호의 소비자들 역시도 동일한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왜 발생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선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의 '신화화'와 '탈신화화'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롤랑 바르트

 

현대의 신화
 프랑스 구조주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그의 대표적 저서인 『현대의 신화 Mythologies』(1957,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역 1997)에서 신화를 현대사회의 다양한 현상이나 사건 그리고 거기에 내재된 숨은 의미로서 정의한다. 바르트는 신화를 기호의 2차적 의미작용을 통해 생성되는 이데올로기로 개념화하면서, 신화론의 핵심은 그것이 오래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특정 시기에 지배 집단으로 자리 잡은 특정 사회 계급의 산물로 본다는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신화는 반드시 역사적 발생 동기를 수반하여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창출하지만, 역사적 동기를 은폐하고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를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로 제시함으로써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용시킨다는 것이다(신화화). 이를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서 의미작용 (signification)을 설명한 소쉬르의 언어이론에 기대어 정리한다면, 바르트의 신화적 의미작용은 1차적으로 구성된 기표와 기의의 결합체인 기호가 새로운 신화 체계에서 2차적 기표가 됨으로써 요구되어지는 2차적 기의, 즉 내재적 또는 함축적 의미로 셋째 항이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는 신화분석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우리가 '자명한 것', 혹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화의 이데올로기를 들추어내어, 그 속에 은폐된 부르주아 규범을 타개(탈신화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신문, 잡지, 영화, TV, 광고 등 대중매체가 담론을 구조화함으로써 일반대중으로 하여금 그것을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일반적으로 철학에서 의미하는 '본능적인 것', '본질적인 것'을 말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여론'을 의미한다.

파리 마치의 표지
파리 마치의 표지

 

 바르트는 신화를 빠롤(parole)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빠롤은 하나의 의사소통 체계이며 메시지로 언어적 규칙을 따르지만, 언어체계의 의미를 변형시킨다. 앞 단락에서 언급한 바처럼, 신화는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를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로 제시함으로써 그것의 역사성을 은폐하고, 결과적으로 신화가 갖는 정치적 효과를 은폐하게 된다. 신화적인 빠롤은 구어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자언어를 포함하여 다양한 표상들로 형성될 수 있는데, 사진, 영화, 기사, 스포츠, 광고 등과 같은 것들이 신화적인 빠롤의 매체로 활용될 수 있다. 바르트는 신화적 빠롤을 <파리 마치 Paris March>의 책 표지에 등장하는 흑인소년의 이미지를 실례로 설명하고 있다. 이 이미지는 프랑스 군복을 입고 경례를 하고 있는 흑인 소년의 모습으로, 이를 언어의 체계(1차적 의미작용 체계, 바르트의 의미에서 보면 외시적 의미)에서 보면, 소년의 이미지는 기표이고 흑인 소년은 기의가 된다. 그러나 이 표지를 보는 독자들은 단순히 흑인 소년만을 보지 않고 표지 이미지에 내재된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데, 이는 신화의 체계(2차적 의미작용 체계, 바르트의 의미에서 보면 함축적 의미)에서 부여된 의미이다. 이때 독자는 소년과 그의 가족(조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 소년이 어떤 상황에서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소년이 프랑스식 경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한 채 프랑스가 피부색을 떠나 충성을 맹세하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바르트의 신화는 이처럼 의미를 자연의 일부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역사적 기원을 위장하고 스스로를 보편화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방식을 바르트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 1997, 314 참조). 결국 바르트의 신화분석(달리 말해, 탈신화화의 분석)은 마치 객관적 진리인 척하는 조작된 이미지에서 '필연성'을 제거함으로써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부르조아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제 다음에서는 광고의 신화가 어떻게 생성되어지는지 그 구축양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TTL 광고의 기호학적 분석
 이 글의 분석 대상은 1999년 7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나타난 SK Telecom의 TTL 광고 시리즈 10여 편 중 2차 '물고기' 편의 TV 광고이다. 대상 선정 이유는 2차 '물고기' 편이 TTL 광고 시리즈의 컨셉을 가장 함축적으로 기호화한 광고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자 롤랑 바르트(R. Barthes 1977)는 "광고 텍스트는 언어 기호와 다양한 영상 기호 및 음성기호로 형성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광고 텍스트 속의 메시지가 개별 기호들의 의미를 넘어, 광고라는 구조 내에서 상호 작용하는 다른 기호와의 관계를 통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기호가 가지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기호체계를 사회변화라는 관점과 관련해 이해하려 하였다. 그럴 경우, 바르트는 기호의 의미화에 있어 외연적 의미를 부각하는 1차적 의미화 단계를 넘어서 2차적 의미화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 2차적 의미화는 함축적 의미와 신화 모두를 포함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의미작용단계를 광고 텍스트에 적용시켜 보면, 광고에 등장하는 기호들의 의미작용 파악에 유용하며, 광고 텍스트를 구성하는 기호의 의미가 기표로서 상품에 전달되는 기의의 파악과 함께 신화를 분석하는 데도 유용(有用)하다. 이 글은 분석 대상이 시리즈로 제작되었지만, 그 반면에 짧은 시간으로 구성된 텔레비전 광고임을 감안하여 이야기 구조보다는 시각적 이미지 분석에 더 비중을 두고자 한다.

SK Telecom의 TTL 광고, '물고기'편
 이 광고의 배경은 은유적이며, 인물은 신비스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광고 메시지는 눈으로 바로 보고 파악하기가 힘들 정도로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먼저 광고를 구성하는 주요 기표들을 살펴보면, 어두운 톤의 방, 소녀, 어항, 물고기, 핸드폰 등이며, 이들의 1차 의미화는 보여지는 그대로인 외시적 의미(기의1)를 획득한다. 그러나 1차 의미화 단계에서의 기표는 다시 신화의 체계에서 새로운 의미(상황적, 맥락적 의미, 기의2)를 획득하게 되는데, 광고의 숨은 메시지는 바로 이러한 신화의 체계에서 수행되는 2차 의미화의 단계에서 발견된다. 이 지점이 바로 바르트의 탈신화화 작업이 요구되는 자리이며, 광고의 숨은 메시지, 즉 함축의미를 발견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전체의 배경이 되는 어두운 방은 규칙이나 막혀 있는 방의 공포감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소녀가 귀를 막고 있는 이미지와 연계하여 살펴보면, 소녀를 둘러 싼 틀에 박힌 상황이나 구속된 상황이라는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 또한, 방 안을 가득 채운 물의 기표는 새로운 탄생을 잉태한 기호로 의미화되면서 떨어지는 물방을 소리와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탄생을 긴장하며 기대하게 한다. 또 다른 주요 기표인 깨진 어항은 구속(틀에 박힌 상황)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상징하고, 그 속에서 울리고 있는 TTL 로고가 적힌 핸드폰은 이러한 탈출을 돕는 TTL의 탄생을 알려주고 있는 것으로 의미화할 수 있다. 박제되어 있던 물고기가 뒤집어져 움직이다 소녀가 잡으려 하자 도망을 가 버린다. 이는 기존의 고정된 사고나 구속된 생활을 박제된 물고기의 기표로 표현하면서, 잡히지 않고 도망을 갔다는 것은 구속된 현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자유를 꿈꾸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와 함께 물고기의 움직임은 새로운 시작, TTL의 탄생을 갈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벨이 울리고 TTL 로고가 찍힌 핸드폰을 바라보는 소녀는 이 광고를 보고 있는 수용자의 TTL에 대한 호기심을 표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호적 해석은 물론 기호의 속성이 '자의적'이기에 해석 역시 자의적 일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자유. 스무살의 TTL'이라는 언어 기호와 만나면서 이러한 자의적 해석은 더욱 더 의미를 고착화한다. 이제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광고의 메시지를 정리해보면, 이 광고에서의 기표는 네모난 방, 소녀, 물, 박제된 물고기, 물방울 소리, 어항 등이 사용되었고 이 기표에 대한 신화적 의미는 신세대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011의 TTL을 연계함으로써 '011의 TTL은 신세대의 자유를 상징한다'는 자연스런 인식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스무 살에게 TTL은 무슨 의미일까? 고등학교 졸업, 해방된 느낌, 대학 입학이나 사회생활 등 스무 살에게는 많은 경험이 열려있다. 세상에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시기이자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轉換點)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생활이나 부모님께 구속되어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시기다. 아직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99년 시기의 스무 살에게 있어서 핸드폰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 수 있는 통로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나만의 채널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한 마디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는 곧 TTL은 '내가 처음 만나는 이동 전화 서비스, 처음 만나는 자유'인 것이다.

탈신화화는 광고의 신화 더욱 공고히
 각종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발달하고 매스 미디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오늘날과 같은 정보사회에서 광고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광고 제작 및 분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광고가 사진 및 영상, 배경음악, 그리고 카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광고는 기호로 구성된 의미 결정체로 간주될 수 있다. 사실 광고의 메시지는 광고하고자 하는 내용을 언어나 이미지 등의 기호로      -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고의 이해는 기호 속에 숨겨진 비밀스런 조합의 해독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처럼 기호 속에 숨겨진 광고의 메시지가 어떻게 수용자에게 자연스러운 인식을 만들어내고 있는지(신화화)를 신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였으며, 더 나아가 광고 메시지의 기호학적 분석을 통해 광고 속에 숨겨진 의도를 도출하는 탈신화의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소비사회에서 바르트의 신화론은 광고와 같은 자본주의 문화 첨병들에게 오히려 주요한 도구가 되어 그들의 의도를 숨겨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는 브랜드 신화의 구축에 활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소비사회에서 바르트의 탈신화화는 신화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를 더욱 합리화하고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겠다.  


오장근 교수(목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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