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론적 사유의 차이
 어떤 것을 비교할 때는 그 경계를 먼저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특히 철학)과 자연과학(특히 물리학)에서는 시간,공간,물질을 기본 단위로 역학과 운동성을 논한다. 본고는 현대 유럽인과 동북아 3국(그 중 특히 중국)사람들의 생각을 비교분석하고자 한다. 사고의 배경이 철학인데, 동양은 서양에 비해 더 종교적이다. 동양철학은 유교,불교,도교,무교로 대별되는데 모두 종교이므로 서양철학과 차원을 달리한다.
 현대 동양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도 위 4종교가 습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는 유교, 윤리적 내세관은 불교, 현세적 건강수련은 도교, 기복적 지향은 무교적이다. 그리고 서양인의 사유는 기독교를 뿌리로 하지만 내세와 현세, 신과 인간의 구별하는 점에서 접근 시각의 차이를 나타낸다.
 흔히 동서문화의 특색을 말할 때 서양의 물질주의와 동양의 신비주의라고 하는 규정한다. 이는 아마도 서양과학기술로 세워진 물질문명이 앞서 가는 것에 비해, 동양은 물질문명이 발달되지 않아 정신주의 또는 신비주의라는 말로 특정하는 듯 하다. 그러나 서양철학은 혼성(魂)을 위주로 하고, 동양종교는 영성을 위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즉 서양철학은 혼의 지,정,의를 다룬다면 동양종교는 영의 직관(直觀),영감(靈感),양심(良心)의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지성은 보는 것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직관은 형이상학의 세계를 영성으로 관망하는 것이다.
 접근방법도 서양철학은 경험을 종합하여 가정하고 귀납법적인 추리분석의 방법을 쓴다면, ,동양은 연역법적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중국인을 위주로 하는 동양인은 땅을 중심으로 하는 천지자연의 유기적관계를 직관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표현의 방법도 정밀한 개념적 묘사가 없고 대체적으로 시적(詩的)이다. 동양인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뜻글자인 한자라는 문자의 속성에 따라 사유도 직관적일 수밖에 없다. 동서사고의 차이를 잘 규정한 현대철학자는 노드롭(Northrop)인데, 그는 사고의 두가지 기본적 개념 중, 동양인은 직관에 의해, 서양인은 가정에 의해 사고방식이 강하다고 설파한다.


시간관, 배경사고의 차이
 서양의 과학과 철학은 현상을 종합하여 가설을 만들고, 다시 추론과 증명을 통해 가설을 확정짓는 과정이다. 서양 자연철학자들은 사유의 근원을 물,불,공기,흙,바람,원자 등 구체적 인자로 설정하고 있는데 비해, 동양철학은 무극-태극-음양-오행-남녀만물 이란 생성론을 갖는다. 다시 말해 서양은 구체에서 추상으로, 동양은 추상에서 구체로 사유의 방향성이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은 경험론에서 논리가 발달되고 이성적 사유에 합치하는 합리론이 싹틀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이 양지(良知),양능(良能)과 같이 선험적 사유의 전제를 중시한다면, 서양은 과학과 실험,분석과 같은 실질적 세계에 입각점을 두고 있다. 동양인의 깨닭음은 소우주인 인간이 대우주인 신이나 자연과 코드를 맞추는 일이므로, 서양과 같이 현상세계의 데이터로는 궁극적 실제를 규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결국 동양인이 추구하는 세계는 하늘과 하나 되고, 인간의 실체를 깨닫는 종교의 경지이므로 초세간적이고 탈속(脫俗)적이다.
 서양 사고배경인 신화는 지중해와 에게해에서 연관한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출발하여, 일찍부터 해양을 중심으로 교역을 하면서 열린 사고가 형성되었다. 서양인이 생각하는 우주공간은 텅 비어 있고, 그 속에 있는 사물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유럽은 "地中海의 선물"이고, 바다를 어머니 품으로 여긴다.
 동양인은 히말라야,파미르고원의 대륙을 중심으로 닫힌 사고의 경향이 있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에 격리되어 있어 천하(天下:하늘아래) 혹은 사해내(四海內:동서남북의 바다로 둘러 쌓인 곳)로 파악하고 땅(土)을 오행에서 중심으로 본다.
 우주의 기(氣)가 사물을 생기게 하고, 오행은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유기적 연관 구조를 지닌다. 동양은 원형적,순환적(불교,도교,유교)역사관에 따라 윤회와 자연순리를 인간과 동일시하고,,서양은 선형적(시작,끝) 시간관을 표방하여 진보와 종말론적 역사관을 표방한다.

공간관, 인식방법의 차이
 동양은 농경정착문화에 근거하여 천인(天人),천지(天地)가 상호합일적이다.
 서양은 유목문화적 성격에 기인하여 천인분리,상호대립적이다. 따라서 서양은 자신의 입장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인사이더관점, 일인칭 시점에 충실하다. 서양에서 '본다'는 행위는 관찰자가 물체를 바라보는 행위. 따라서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시선에서 가장 멀리 있는 물체가 가장 앞에 있는 물체가 되는 것이다.
 동양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나를 인식하는 아웃사이더 관점, 삼인칭 시점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서양에서 본다는 것은 관찰자 중심이고, 동양에서 본다는 것은 대상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관찰자가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맹자 양혜왕장에 "孟子見梁惠王(맹자견양혜왕)하신대, 王曰(왕왈) 叟不遠千里而來(수불원천리이애)하시니 亦將有以利吾國乎(역장유이리오국호)잇가" 란 구절에서 견(見)으로 읽을지 현(見)으로 읽을지가 논란의 대상이다. 맹자와 양혜왕 가운데 누구를 상위에 놓느냐가 능동태(볼 견),피동태(뵐 현)의 결정적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다.
 주소도 서양에서는 자기 이름부터 쓰는 자기중심적이라면,, 동양은 넓은 영역에서 자신으로 좁혀 오는 것이다.

존재파악의 차이 
 존재 근원에 대한 파악에 있어 희랍에서 우주의 근원은 (제작자 신을 제외한다면) 영원한 질서의 원형인 형상과 그 형상에 의해 규정받는 질료이고, 기독교에서는 창조자 신과 다시 일체의 피조물을 신으로부터 구분하는 만드는 무(無)이다. 불교에서는 유정의 불생불멸의 심과 그 심의 본질을 망각한 무명에 바탕한 업이며, 유가에서는 우주의 추상적 원리인 리와 그 리에 따라 현상을 형성하는 기이다.
 희랍: 이데아(형상) 그리고 질료
 기독교: 창조자 신(神) 그리고 피조물이 의거하는 무(無)
 불교: 진여심의 심(心) 그리고 무명으로부터의 업(業)
 유가: 태극의 리(理) 그리고 개체 형성의 기(氣)
 서양인이 보는 세상은 각각의 개체가 모두 모여 집합을 이루는 공간으로 아래의 정의가 말해준다.
 "개체야말로 진정한 실체" (아리스토텔레스)
 "마치 큰 채석장이 건축가 앞에 놓여 있듯이 세계존재 전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건축가는 이러한 자연이라는 우연덩어리를 최대한 경제적이고 합목적적이며 확고하게 그의 정신에서 우러나온 원형상으로 만들어 놓을 때만이 자신의 이름값을 하는 것이다(괴테)
 동양인이 보는 세상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장과 같은 공간으로, 동양인들은 이 우주공간이 기(氣)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가 모여서 사물을 이루고, 사물은 주변의 기와 항상 연결된 상태로 존재한다.
 동양의학은 인간을 소우주라고 보고, 인간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면 건강하다는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세계관이고, 물아일체(物我一體: 대상과 내가 하나 상태)를 추구한다. 불교에 있어 유정이란 바로 기독교적 신(神)의 위치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유일한 신의 의지가 우주를 창조하였다면, 불교에서는 무수한 유정의 업력이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된다.

가치와 언표의 차이 
 자기중심적 서양인은 타인을 위한(爲人) 사고보다는 자신을 우선시하는 위기(爲己)적 사고에 충실하다. 따라서 정(正),반(反)의 모순율이 대립을 거쳐 합(合)으로 모아지는 변증법의 논리를 갖고 있다. "남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생존하자."는 단테의 정의가 이런 배경에서 출발한다.
 상대중심(爲人)의 동양은 정작 출발점에서는 위기지학(爲己之學) 절실하게 추구한다. 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다는 생각에서 이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계기적인 논리를 개발했다. 확대 발전하는데 장애가 생기다면 바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피드백 구조를 갖는 것이다. 중용도 계량적 절반이 아닌 가치론적 황금율과 같은 것이고, 궁극적 조화의 경지를 추구하면서도 개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기저논리를 갖는다. 그래서 지성인[君子]은 화이부동(和而不同)-즉 서로 조화는 추구하되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경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기 위한 가르침인 유교나, 자연과 동화되는 경지를 추구하는 도교, 만물의 순환유전을 깨닫는 불교는 모두 변하는 세상에서 개인의 실체(實體) 명확히 파악하는 긍극에의 도달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한편 개체성을 중요시하는 서양은 명사(名辭)를 주로 사용하고,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동양은 동사을 위주로 사유한다. 득의망언(得意忘言: 뜻 얻고 언어 잊음)이란 장자의 철학이나, 언불진의(言不眞意)로 언어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공자의 철학은 인간의 언어가 갖고 있는 진리터득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래서 동양의 종교는 언어와 인식 너머의 초인의 경지에서 자신이 신이 되는 자력(自力)신앙적인 면이 일반적이다.

동양적 사고의 지향 
 서양은 안정성 중시,안정적 실체,일관성 강조하고, 동양은 무한한 가능체를 추구하고, 배움(학문,교육)통한 성인군자 지향한다.
 <공자>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는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맹자> 세상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
 서양은 개체성 중시하여, 자유의 보유자,자율성 독특성 강조하고, 동양은 사회적 관계체를 중시하여, 부모형제이웃이 더불어 사는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공자> 먼곳에서 오는 친구가 있으면 또한 즐겁지 않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맹자> 부모가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父母俱存兄弟無故 一樂也)
 서양은 합리성 중시하여, 이성의 주체과 자기주관을 강조하고, 동양은 능동적 주체론에 입각해서 문제를 자기에게 찾는 자기주체를 지향한다.
 <공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으면 또한 지성인이 아니겠는가?
 (人不知不不亦君子乎)
 <맹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仰不愧於天 俯不於人 二樂也)
 논어의 첫부분과 맹자의 인생3락을 중심으로 논한 것처럼, 동양적 사고는 인간을 완성된 인격체를 향한 가능성, 집단과 관계 속에서 능동적 주체와 자기정체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동양인의 성공은 자신의 부귀영화보다는 가족과 소속집단의 영달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근거하고 있다.

정규훈 교수(총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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