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강좌 <글로벌인문학>, <지역학(익산학)>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넓혀 가길 바란다. /편집자

 

차례
1. 서론: 카렌 호나이와 정신 분석, 『내가 나 를 치유한다』
2. 신경증 구조와 발병 원인
3. 신경증의 여러 증상
1) 영광을 좇는 탐색-영광을 좇다가 길을 잃는다.
2) 권리 주장에 사로잡힌다. 
3) 당위의 폭정-가혹한 내부 명령에 희생된다.
4) 가짜 자부심에 속아 넘어간다. 
5) 자기 혐오와 자기 비하-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6) 자기 소외-강박증에 사로잡혀 진실한 나에게서 멀어진다. 
4. 신경증 유형별 해결책과 신경증에서 벗어날 방법
1) 확장 지배 유형의 해결책: 통달의 호소력
2) 자기 말소 의존 유형의 해결책: 사랑의 호소력
3) 체념 유형의 해결책: 자유의 호소력
5. 정신 분석 치료법: 진실한 나 찾기와 좋은 인간 관계 맺기 
6. 결론: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다

 

1. 서론: 카렌 호나이와 정신 분석, 『내가 나를 치유한다』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1885-1952)

1885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11년 베를린정신분석협회에 가입했고, 1914년 베를린대학교에서 외상후 증후군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7년 분석가와 환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전이와 저항 문제를 다룬 「정신 분석 치료 기법」을 베를린성의학회에 발표했고, 1922년에는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여성 심리를 다룬 「여성 거세 강박 관념의 기원」을 제출했다. 1926년 별거 이후 결혼 생활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카렌 호나이는 논문을 17편 썼는데, 여성 심리를 다룬 논문이 13편이었다. 여성 심리를 다룬 논문은 나중에 『여성 심리학』(1966)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1931년 카렌 호나이는 시카고정신분석연구소의 초청으로 미국에 정착해 1934년에 개인 진료실을 열었다. 이후 뉴욕정신분석연구소와 신사회연구소에서 정신 분석가이자 교육자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35년부터 17년 동안 신사회연구소에서 가르쳤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정신 분석 개념을 명쾌하고 간명하게 전달해서 인기가 높았다.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 묶은 첫 번째 저술 『우리 시대 신경증 인격』(1937)을 출간했고, 프로이트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정신 분석의 새로운 길』(1939)도 펴냈다. 이를 계기로 프로이트를 추종하는 뉴욕정신분석협회와 결별하고, 몇몇 지지자들과 함께 정신분석진보협회를 결성하고 정신 분석가와 교육자로서 꿋꿋이 정진했다. 환자들을 진료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와 문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종교학자 폴 틸리히와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과 교류하면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정신 분석 저술을 연이어 출간했다. 『자기 분석』(1942)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정신 분석 치료를 보충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인간의 내면 갈등』(1945)에서는 모든 신경증이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내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서 발생한다는 이론도 제시했다. 1946년 정신분석진보협회 위원들과 『당신은 정신 분석을 고려하는가』를 공동 집필했고, 1950년에 마지막 저술 『내가 나를 치유한다: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을 출간했다. 신경증의 기원과 구조를 밝힌 마지막 저술은 카렌 호나이의 독창적인 핵심 사상을 담은 결정판이다. 카렌 호나이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이어받은 동시에 예리하게 비판하고 자신만의 정신 분석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신프로이트학파의 대표자로 평가받았다. 특히 카렌 호나이는 정신 분석가로서 환자가 내면의 통찰력을 길러서 스스로 치유하도록 도왔으며, 그녀의 저서는 사후에도 계속 치유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책들은 13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지금도 독자들을 매혹한다. 생전에 무시되거나 거부되었던 카렌 호나이의 여러 이론은 사후에 정신 의학뿐 아니라 주류 정신분석학계에서도 받아들였다.

카렌 호나이의 주요 저서

  1. Neurotic Personality of our Time (Norton, 1937), 정명진 옮김, 『우리 시대는 신경증일까?』 (부글북스, 2015)
  1. Ways in Psychoanalysis (Norton, 1939)
  1. (Norton, 1942), 정명진 옮김, 『나는 내가 분석한다』 (부글북스, 2015) 정명진 옮김, 『내 성격은 내가 분석한다-당신 자신이 분석가가 되어 스스로를 치유하라!』 (부글북스, 2019)
  1. Inner Conflicts (Norton, 1945), 이희경 옮김, 『신경증적 갈등에 대한 카렌 호나이의 정신 분석』 (학지사, 2006)
  2. You Considering Psychoanalysis? (Norton, 1946)
  1. and Human Growth (Norton, 1950), 서상복 옮김, 『내가 나를 치유한다』 (연암서가, 2015)
  2. Psychology (Norton, 1967), 김세영·정명진 옮김, 『여성의 심리학-남자의 심리학이 아닌 인간의 심리학을 위해!』 (부글북스, 2015)

 

2. 신경증 구조와 발병 원인

카렌 호나이는 프로이트 정신 분석 이론의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수정함으로써 성(sex)이나 성별(gender)에 구애받지 않는 모든 인간을 위한 심리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첫째, 오이디푸스 강박 관념이 아이의 인격 발달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에 동의하지 않고, 아이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모든 아이가 오이디푸스 강박 관념과 형제간 다툼을 보편적으로 경험한다고 주장했으나, 카렌 호나이는 문화와 역사 배경, 경제 상황, 가족사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성장 과정을 겪는다고 반박하고, 오이디푸스 강박 관념은 특수한 문화에 속한 특별한 가정에서만 형성된다고 결론지었다. 유리한 조건에 놓인 아이는 부모나 양육자에게 사랑받는다고 느껴서 건강하게 성장한다. 반대로 불리한 조건에 놓인 아이는 부모나 양육자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껴서 근본 불안에 시달리며 순응(compliance), 공격(aggression), 냉담(aloofness) 가운데 하나를 억지로 선택해 갈등을 해결한다.

둘째,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이 삶·사랑 본능(eros)뿐 아니라 죽음·파괴 본능(thanatos)을 타고났으며 인간의 폭력 성향이 자기 파괴적 죽음 본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렌 호나이는 우리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고 싶은 감정이 생긴다면, 그것은 본능 탓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위험에 빠지고 모욕당하고 이용당했거나 그렇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가학 성향과 피학 성향도 단지 본능으로 타고나지 않고, 사회 문화 요인이 영향을 미쳐서 이차 성질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정신 분석과 자기 인식을 거치면 바뀔 수도 있다.

셋째, 프로이트는 모든 심리 문제를 신경증이라 부르고, 심리 문제는 육체의 본능을 만족시키려는 욕구와 육체의 본능적 충동을 조절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내면 갈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렌 호나이는 신경증이 인간 관계에서 압박을 받을 때 발병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어린 시절 인간 관계를 맺을 때 겪는 장애가 어른 신경증 구조를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의 근본 불안과 어른이 되어 겪는 인간 관계의 장애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신경증 구조가 형성된다. 특히 신경증은 본능뿐만 아니라 문화와 계급 요인도 반영하며, 신경증의 진행은 이런 외부 요인이 계속 영향을 미쳐서 결정된다. 따라서 신경증은 문화마다 다르게 정의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상 심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렌 호나이는 서양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신경증에 걸린 인격을 대체로 확장 지배 유형, 자기 말소 의존 유형, 체념 유형으로 분류했다.

넷째, 카렌 호나이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무의식과 본능적인 욕구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했으나, 사회 문화 구조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형성되는 인간 관계가 인간의 심리 역학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선언에 뒤따른 결과는 둘이다. 하나는 사회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으므로 신경증이 발병하는 원인이 다르고, 각 문화에서 나고 자란 구성원이 기대하는 행동 방식의 차이에 따라 상응하는 신경증의 모습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는 자기 삶을 지배하는 근본 불안이 있지만, 신경증 경향을 극복할 힘과 의지도 있다는 것이다. 호나이에 따르면 정신 분석가의 과제는 “환자가 자신의 본능을 지배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경증 경향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불안을 덜어 주는 것이다.” 분석가는 프로이트의 전통적인 자유 연상 치료법의 수동적 역할을 넘어서, 환자가 스스로 자기를 분석하고 치유하도록 충고하고 지침도 제공하며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신경증(神經症, neurosis)은 현대인이 알게 모르게 대부분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이고, 신체 기관의 결함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기능상의 심리 장애를 가리킨다. 신경증의 증상으로 불안, 방어, 내면 갈등, 행동 장애, 감각 장애, 사고 장애가 있다. 신경증으로 분류하는 다른 장애로 각종 공포증, 신경 발작, 식욕 부진 같은 것이 있으며, 사실상 신경계에 의존하는 인간의 정신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모든 장애를 신경증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카렌 호나이에 따르면 신경증은 많은 사람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경로로 생겨나며, 구축 기력(constructive energes)이 낭비되므로 특히 불행한 정신 질환이다.

카렌 호나이가 진단한 신경증의 발병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심리 현상과 행동은 상호 관계를 맺으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인간 관계에서 장애를 겪을 때 심리 갈등이 생겨난다. 도토리가 적당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자연스럽게 상수리나무로 자라나듯, 인간도 유리한 조건에 놓이면 자신의 특별한 잠재력을 실현하고 진실한 나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은 불리한 조건에 놓여 진실한 나를 망각한 채 헤매고 떠돌며 기력을 낭비한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유리한 조건이 필요하다. 유리한 조건이란 안전하다는 느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는 따뜻한 분위기, 타인의 선의를 느끼면서 타인과 건강한 마찰을 빚으면서도 ‘우리’라는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다. 유리한 조건에 놓인 아이는 좋은 인간 관계를 맺으며 접근 행동과 반항 행동, 회피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진실한 나(real self)와 더불어 건강하게 성장한다. 자신의 진짜 감정, 진짜 소망, 진짜 생각을 자발적으로 계발하고 자유롭게 잠재력을 키워 나간다. 반면에 불리한 조건에 놓인 아이는 좋은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해 세 가지 행동 가운데 하나가 극단에 치우쳐 경직되고 근본 불안에 시달리며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에 갇혀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불리한 조건이란 주변 사람들이 신경증에 매몰되어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 주거나 과잉보호하거나 학대하고 위협해서 주눅이 들게 하는 환경이다. 이때 아이는 진실한 나에게서 멀어지고 자신의 기질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는데, 접근 행동에 치우쳐 순응 유형이 되거나 반항 행동에 치우쳐 공격 유형이 되거나 회피 행동에 치우쳐 냉담 유형이 된다.

이렇게 어린 시절 인간 관계에서 장애를 겪으며 선택한 초기 해결책이 어른의 신경증 구조에도 영향을 미쳐서 신경증 해결책으로 바뀐다. 모든 신경증은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상에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집착하는 데서 발병한다. 아이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공상에 빠져 자신을 완벽한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생긴다. 이것을 자기 이상화(self-idealization)라고 부르는데, 자기 이상화는 아이의 정서와 심리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강한 아이는 자기 실현 과정, 곧 진실한 나를 찾아 키워 가는 과정에 잘 적응해서 어른으로 성숙함에 따라 자기 이상화의 역할이 줄어든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자기 이상화가 진짜 자기 실현을 대체하여 점점 강박에 사로잡히고 공상에 빠져들어 어른 신경증 환자가 된다. 특히 자기 이상화는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자아상을 만들어 내므로, 아이는 진실한 나에게서 멀어진다. 신경증 환자는 이상을 좇는 나와 현실의 나를 조화시킬 수 없어서 내면의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3. 신경증의 여러 증상

1) 영광을 좇는 탐색-영광을 좇다가 길을 잃는다.

내면이 성숙하지 않으면, 개인은 여러 필요를 충족하거나 한꺼번에 모든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여 마음속으로 이상적 자아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한한 권력과 고상한 능력을 부여해 스스로 영웅, 천재, 최고의 연인, 성자, 신이 된다. 순응은 선 자체로, 사랑은 성인의 덕으로 상상하고, 공격성은 강한 힘, 지도력, 영웅의 자질, 전능으로 상상하며, 냉담하고 초연한 태도는 지혜, 자족 독립으로 상상한다. 이런 자기 이상화는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실현하려고 집착할 때 신경증이 구체적으로 발병한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근본 갈등, 예컨대 상실감과 불안감, 열등감과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력으로 이상적인 자기 모습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상적인 자기에 집착하고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애쓴다. 이것을 영광을 좇는 탐색이라고 부른다.

이때 진실한 나, 진짜 자기를 실현하는 데 쏟아야 할 기력은 이상을 좇는 나의 현실화라는 목표로 방향이 바뀐다. 신경증 환자는 이상을 좇는 나를 진실한 나로 대체하고, 완벽해져야 할 필요를 만들어 낸다. 완벽해져야 할 필요는 비현실적 야망, 다시 말해 외면적으로 성공하려는 충동과 복수의 승리감을 만끽하려는 충동, 다시 말해 자신만 성공하려고 타인에게 창피를 주거나 패배감을 안겨 주려는 충동으로 나타난다. 이런 충동은 현실을 왜곡한 망상으로 결코 충족될 수 없고, 내면 갈등을 깊어지게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영광을 좇는 모든 충동은 인간에게 부여된 잠재력의 한계를 넘어 절대 두려워하지 않음, 절대 지배력, 절대 거룩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영광을 좇는 신경증 환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아무도 완벽할 수 없다. 결국 신경증 환자는 내면의 고뇌를 줄이기 위해 영광이란 허깨비를 좇기 시작하지만, 고뇌를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진다.

2) 권리 주장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모두 같은 현실,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저마다 생각도 욕구도 소망도 다르기에, 누구나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의 불일치를 경험한다. 성숙한 개인,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세상의 불일치를 적절하게 조율하며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신경증 환자는 세상과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성급한 결론에 매달린다. 자신은 아무 문제도 없으니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환상을 문제 삼지 않고 외부 세상에 맞서 권리 주장을 내세운다. 자신은 다른 사람의 특별한 주목을 받고 특별 대우를 받으며 특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경증 환자는 세상에 언제 어디에서나 특별히 주목받고 특별 대우를 받으며 특별히 존중받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경증 환자는 신경증에 사로잡혀 상상한 모든 필요를 권리 주장으로 내세운다. 이런 권리 주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나 직위를 가정하므로 비합리적이다. 또한 신경증에 사로잡힌 필요라고 인정하지 않고 권리 주장으로 내세우기에 과도한 것이다. 신경증 환자는 대체로 자신에게 중요한 모든 일, 자신이 신경증에 사로잡혀 상상한 모든 필요를 충족할 권한이 있다고 느낀다. 이런 권리 주장은 타인을 넘어 제도와 삶 자체로 향하고, 세상의 모든 일은 신경증 환자 자신에게 맞춰 변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실제 필요와 상상으로 꾸민 필요를 구별하지 못하고, 모든 필요를 권리로 내세운다. 또한 자신의 권리 주장이 수용되지 않을 때 분개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세상에 등을 돌린다. 왜냐하면 신경증 환자는 필요가 권리로 바뀌려면 여러 조건이 현실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으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독립을 원한다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면서 살려고 분투해야 한다. 거만하게 행동하면 누구나 상처받고 비난을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는 이런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를 무시한 채 권리 주장을 내세울 뿐이다.

3) 당위의 폭정-가혹한 내부 명령에 희생된다.

신경증 환자는 자기 자신을 최고 존재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내부 명령을 지어내 자신을 채찍질한다. “너는 완벽해야 해. 너는 모든 일을 참아내고 이해하며,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언제나 무엇을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해.”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는데도, 신경증 환자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완벽해지라고 요구한다. 이런 내부 명령은 신경증 환자에게 냉혹하고 가차 없이 요구되므로 ‘당위의 폭정’(tyranny of the should)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내부 명령은 신경증 환자가 행동하고 살고 느끼고 알 수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비롯해, 어떤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지에 관한 금기까지 포함한다.

신경증 환자는 정직, 관대, 배려, 정의, 존엄, 용기, 사심 없음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상상한다. 예컨대 완벽한 연인, 완벽한 남편, 완벽한 아내, 완벽한 선생이어야 한다고 상상한다. 내부 명령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참주 정치 아레서 벌어지는 폭정과 유사하게 당사자의 심리 조건, 곧 당사자가 현재 느끼고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무시하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작용한다. 엄존하는 자신의 취약성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여 자신에게 절대 명령을 내린다. 당위가 작용하는 전제는 어떤 것도 자신에게 불가능해서는 안 된다거나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자기 기만(self-deception)이나 불공정한 자기 비판(self-criticis)으로 이끄는 맹목적인 명령의 남발이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내부 명령 가운데 다수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당사자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터무니없는 공상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기대가 공상의 산물임을 지적으로 알게 되어도, 내부 명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경증 환자는 진실한 나에게서 멀어져 인간적 한계를 망각하고 이상을 좇는 내가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4) 가짜 자부심에 속아 넘어간다.

신경증 환자는 완벽함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완벽해졌다고 믿더라도 절실히 필요한 자신감(self-confidence)과 자존감(self-respect)을 얻지 못한다. 신경증 환자의 의기양양한 감정은 낯선 환경에서 버팀목을 잃을 때, 실패를 겪을 때, 또는 혼자가 될 때 순식간에 무너져 가라앉는다. 굳건한 자신감, 건강한 자부심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경증 환자는 대부분 진실로 존재하는 장점과 상상으로 꾸며낸 장점을 혼동하고, 자신이 현실에서 살아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령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고생하며 정직하게 분투하는 삶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진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상을 좇는 나로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를 때 자부심을 느낀다. 이렇게 신경증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가치를 뒤바꾸어 가짜 자부심을 얻는다. 비일관성은 제한 없는 자유로, 기존 도덕 규약에 맞선 맹목적 반항은 흔해 빠진 진부한 편견을 넘어선 도약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막는 금기는 성자의 이타심으로, 환심을 사야 할 필요는 순수한 선의로, 의존은 사랑으로, 남을 이용하거나 착취하는 행위는 용의주도한 태도로 바뀐다. 복수심은 정의로, 좌절감을 안겨 주는 기교는 최고 지성을 갖춘 무기로, 일에 갖는 반감은 ‘치명적 일 중독에 맞선 저항’으로 뒤바꾼다. 이러한 가치 전도로 신경증에 사로잡힌 가짜 자부심을 얻는다.

신경증에 사로잡힌 자부심은 카드로 지은 집만큼 실체가 없으며 미약한 외풍에도 쉽게 무너진다. 이런 자부심이 손상되거나 상처를 입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두 반응은 수치심(shame)과 굴욕감(humiliation)이다. 신경증 환자는 쉽게 상처받는다. 그러나 신경증에 사로잡힌 가짜 자부심은 상처받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고, 수치심과 굴욕감을 드러내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내면 조건이 신경증 환자에게 초조감과 짜증을 일으키고, 이차 반응으로 격노와 두려움이 나타난다. 가짜 자부심의 손상은 복수심에 불타는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복수심에 불타는 적개심은 싫음에서 혐오로, 화가 나는 짜증에서 살인 충동을 느낄 만한 격노로 바뀌기도 한다. 두려움과 불안, 공황은 굴욕이 예상되거나 굴욕당했을 때 나타난 반응일 수 있다.

5) 자기 혐오와 자기 비하-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신경증 환자는 이상을 좇는 나로 기력의 무게 중심이 바뀔 때, 의기양양해질뿐더러 현실 속의 나(actual self),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서 신경증에 걸리기도 하는 자기를 잘못된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름답게 꾸민 나, 미화된 자기, 이상적으로 그린 나는 좇아야 할 환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현실 속 존재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현실 속 존재는 신에 버금가는 완벽한 자기의 관점에서 볼 때 경멸의 대상이 된다.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나는 이상을 좇는 내가 우연히 만난 거슬리는 낯선 사람이 되고, 이상을 좇는 나는 현실 속에서 마주한 낯선 사람을 증오하고 경멸한다. 이로써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는 자랑스러운 이상을 좇는 나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자기 혐오의 양태는 대략 여섯 가지로 나타난다. 쉴 새 없이 자기에게 내세우는 요구, 무자비한 자기 비난과 자책, 자기 비하, 자기 좌절, 자학, 자기 파괴이다. 이런 자기 혐오는 신경증 환자를 내부의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함정이다.

자기 혐오(self-hate)는 신경증 환자가 이상을 좇는 나를 창조하면서 벌어지지 시작한 인격의 균열을 알리는 계기이며, 내면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표시이다. 사실 자기 혐오는 거의 모든 신경증 환자가 가지는 본질에 가까운 특징이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실제로 두 가지 갈등이 자기 혐오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다. 하나는 긍지 체계 내부에 있는데, 확장 충동(expansive drive)과 자기 말소 충동(self-effacing drive) 사이에 잠재하는 갈등이다. 다른 하나는 긍지 체계 전체와 진실한 나 사이에 일어나는 심층 갈등이다. 후자의 갈등은 자부심이 최고조에 이를 때 억압되지만, 긍지 체계가 위기를 맞고 신경증 환자가 진실한 나에 가까워질 때, 다시 말해 자신의 고유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의 고유한 소망을 인식하고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책임을 질 때, 전면에 등장하여 구축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6) 자기 소외-강박증에 사로잡혀 진실한 나에게서 멀어진다.

악마와 맺은 계약에서 자기 포기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파는 행위에 상응한다. 이를 정신 의학 용어로 ‘자기 소외’(alienation from self)라고 부른다. 자기 소외는 기억 상실이나 이인증(탈인격화)에 나타나듯 정체감을 상실하는 극단에 이른 질병에 두루 사용한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감정, 소망, 신념, 기력에서 멀어진다. 이는 자기 삶을 결정하는 능동적 힘이 존재하는 느낌의 상실이자 자신이 온전한 유기체라는 느낌의 상실이다. 정확히 말해 진실한 나, 곧 우리 자신을 살아 있게 만드는 생명력 넘치는 중심에서 소외된다는 뜻이다.

신경증 환자는 현실 속의 나와 진실한 나에게서 이중으로 멀어진다. 자기 상실은 키르케고르의 말을 빌리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자기 상실은 절망, 곧 자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이거나 자신이 되려는 의지가 없는 데서 오는 절망이다. 첫째로 자기 소외는 신경증에 걸려 강박에 사로잡히는 모든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다. 강박에 사로잡히는 특성은 신경증 환자에게서 자율성과 자발성을 모조리 빼앗는다. 예컨대 모든 사람의 호감을 사야 할 필요가 강박이 되자마자 신경증 환자가 느끼는 감정의 진정성은 줄어들고, 영광을 얻으려고 힘 드는 일을 하려고 몰리자마자 일 자체에 빠져드는 자발적 관심은 줄어든다. 둘째로 자기 소외는 진실한 나에게서 물러나는 능동적 회피 행동으로 조장된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소망하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것을 느끼고 소망해야 하는 것을 소망하고 좋아해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간단히 말해 신경증에 사로잡힌 자부심이 감정을 지배하고, 진실한 나는 옛 성 비밀 감옥에 갇힌 꼴이다.

 

4. 신경증에 사로잡힌 해결책

신경증 환자는 남들이 자신을 자기가 생각하는 완벽한 존재로 여겨 주기를 바라고, 남들이 자신의 공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분개한다. 언제나 남에게 이용당했다고 느끼며 세상에 화를 내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격렬하게 체험한다. 또한 타인과 함께 살기 어려울뿐더러 자신과도 잘 지내기가 힘이 든다. 자신의 가치를 비현실적인 자아상에서 찾지만, 공상에 지나지 않는 자아상에서 비롯된 자부심은 현실에서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설상가상으로 신경증 환자는 이상에 맞춘 완벽한 자아상을 실현할 수 없어 자책에 시달리고 자기혐오에 빠진다. 자기혐오가 온 마음에 퍼져 내면의 불화가 끊이지 않아서 무슨 일이든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성취하지도 못한다. 결국 신경증 환자는 자기 이상화와 자기혐오로 생긴 내면의 압박과 부담을 줄이려고, 세 가지 성격 유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데, 바로 포괄적인 신경증 해결책이다.

1) 확장 지배 유형의 해결책: 통달의 호소력

확장 지배 유형은 진실한 나를 억압하고 이상을 좇는 나와 온전히 일체가 되어 내면 갈등을 해결한다. 이런 유형은 모든 것에 통달해야 직성이 풀리며, 모든 면에서 우월해야 할 필요에 내몰리고, 타인을 조종하거나 지배하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순응하거나 유화 행동을 하거나 의존한다는 생각 자체를 몹시 싫어한다. 그에게 달성하지 못할 것은 없으며,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어찌 되었든 그는 운명의 주인이거나 운명의 주인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해서는 안 되며, 무력해지는 순간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실현하려고 고군분투하는 확장 지배 유형은 어떤 책임과 의무도 면제받을 권한이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타인을 괴롭히고 이용하고 공격하면서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권리 주장을 내세운다. 그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면제받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타인과 세상을 멋대로 지배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확장 지배 유형에는 세 가지 하위 유형이 있는데, 자기 도취 유형과 완벽주의 유형, 오만한 복수 유형이다.

2) 자기 말소 의존 유형의 해결책: 사랑의 호소력

자기 말소 의존 유형은 이상을 좇는 나에게 경도되어 진실한 나를 망각함으로써 내면 갈등을 해결한다. 이런 유형은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행동에서도 우월감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에게 쉽게 복종하고 의존하면서 타인과 잘 지내려고 유화 행동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무력하고 괴로운 조건을 혐오하기는커녕 도리어 계발하고, 의식하지 못한 채 과장한다. 우월한 처지에 놓이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그는 도움과 보호를 원하고 자신을 내던지는 사랑을 갈구한다. 모든 것을 사랑해서, 곧 사랑으로 남을 포함한 세상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부응하지 못하면, 죄책감과 열등감, 자기 혐오에 사로잡히기 쉽다. 자기 말소 의존 유형에게 사랑의 호소력은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수단만이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기 말소 의존 유형의 인생은 가치도 의미도 없다. 그에게 사랑은 숨을 쉴 때 필요한 산소 같은 요소이다. 그래서 자신이 타인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도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권리 주장을 내세운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타인이 되고 타인도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3) 체념 유형의 해결책: 자유의 호소력

체념 유형은 모든 갈등에서 물러나 내면 갈등이 없는 듯이 살아간다. 이런 유형은 이상을 좇는 나(ideal self)와 현실 속의 나(actual self), 진실한 나(real self) 사이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자유와 독립을 얻으려고 야망도 사랑도 포기하고 고독하고 냉정하게 살아간다. 체념 유형은 내면의 싸움터에서 물러나 아무 관심도 없다고 선언한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능동적 삶을 포기하고 물러나서 모든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 신경증 환자에게 체념이란 건전한 의미의 투쟁과 분투도 포기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안주한다는 뜻이다. 체념의 분위기는 모든 신경증 환자에게 조금씩 나타나지만, 체념 유형에게는 두드러진다. 체념 유형은 자신과 인생의 방관자가 되거나 삶에 참여하려 하지 않고 노력을 꺼리며 타성에 젖어 산다. 또 목표 세우기와 계획 세우기에 무능하며 무엇이든 소망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따라서 체념 유형이 내세우는 권리 주장은 둘이다. 하나는 삶이 쉬우면서 아픔이 없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권리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자신을 성가시게 하거나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권리 주장이다. 특히 체념 유형은 정말로 필요한 것까지 포함하여, 아무것에도 애착을 갖거나 집착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무것도 아무도 자신의 행동을 제약할 만큼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떤 종류이든 영향이나 압력이나 인연에 신경 과민 반응을 나타낸다. 다른 어떤 사람도 자신을 필요한 존재로 느껴서는 안 되며, 양측의 관계는 당연시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생활 방식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움츠러들고 물러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무시한 채 홀로 고고하게 자유와 독립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5. 정신 분석 치료법: 진실한 나를 찾아 통합하고, 좋은 인간 관계를 맺으라

4절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확장 충동과 자기 말소 충동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온갖 갈등이 생긴다. 확장 지배 유형은 확장 충동을 전면에 드러내고 자기 말소 충동은 억압한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은 야망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며 타인에게 폭군처럼 행동한다. 자기 말소 의존 유형은 자기 말소 충동을 전면에 드러내고 확장 충동은 억압한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은 모든 기력을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는 데 쓴다. 두 유형과 달리 체념 유형은 확장 충동도 자기 말소 충동도 억압하지 않아서 복잡한 특징을 나타낸다. 체념 유형은 확장 충동을 드러내더라도 능동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모든 야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경멸하고 세상에 도전하거나 반항할 따름이다. 체념 유형이 자기 말소 경향을 드러내면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소심해진다. 또 타인의 필요에 민감해서 인생을 대부분 남을 돕거나 대의에 봉사하며 살게 된다. 결론적으로 체념 유형은 자기가 좋을 때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유형이 품은 자유 관념은 무엇을 하려는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 무엇에서 벗어나려는 소극적 자유이다. 체념 유형은 갈등을 해결하려고 갈등의 소지가 있는 활동을 중단하는 것처럼 어떤 당위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체념하는 유형은 세 가지 하위 집단으로 나뉜다. 끊임없이 체념하는 집단과 반항하는 집단, 피상적으로 생활하는 집단이다. 피상적으로 생활하는 집단은 다시 재미를 추구하는 부류와 특권이나 기회주의에 편승해 성공을 추구하는 부류, 잘 적응한 자동기계처럼 사는 부류로 나뉜다.

최근 젊은 세대에도 세 가지 신경증 유형이 모두 나타나는데, 체념 유형이 가장 눈에 많이 띈다. 앞 절에서 살펴본 포괄적 신경증 해결책은 가짜 해결책으로 일시적으로 압박감이 줄어들 뿐이고, 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은 내면에 갈등이 더욱 심각해져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에 걸리고, 무력감과 절망에 빠지거나 자아 본위가 되며, 신경 과민 상태에 빠지거나 타인에게 잔인해지거나, 모든 인간 관계를 끊고 자기만의 공간에 틀어박힌다.

이제 진정한 정신 분석 치료 방법을 제시해 보자. 정신 분석 치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지침을 따를 때 신경증 환자가 자신의 심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첫째, 정신 분석 치료는 신경증 환자가 선택한 주요 신경증 해결책을 넘어서도록 돕는 것다. 다시 말해 환자들이 이상에 맞춰 만들어 낸 자아상이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깨우치고 진실한 나를 찾아서 내면 갈등에서 해방되도록 돕는 것이다. 환자가 진실한 나를 찾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치료는 완료되며, 진정한 성장도 가능해진다. ‘진실한 나’를 찾아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둘째, 정신 분석 치료는 인간다운 성장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인간다운 성장이란 각자 타고난 본성의 자연스러운 계발로서 도덕적 성장을 의미한다. 전통 철학과 종교의 관점이나 프로이트의 비관주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의 명령과 신의 명령, 초자아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본성을 길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화할 수 있는 구축 기력이 내재하므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본성과 일치하여 자기 실현에 힘을 쏟으며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자기 인식과 정신 분석은 도덕성의 진화와 인간다운 삶과 성장을 도울 수 있다. 비판 이성으로 자기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진실한 나에게서 우러나는 감정과 욕구를 정말로 느끼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신경증은 인간의 유한성을 망각한 채 지성 능력과 의지력을 과신하고 상상력이 무한으로 뻗어나갈 때 발병하는 정신 질환이었다. 우리가 진실한 나를 찾아 새롭게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우주 안에 거주하는 하찮은 존재라고 인정하고 타고난 잠재력의 범위 안에서 겸손하고 고요하게 자기를 실현해 나간다는 뜻이다.

셋째, 정신 분석 치료는 신경증 환자가 현실에서 스스로 책임지며 담담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책임을 지는 일은 본디 자신과 자기 인생을 담백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것은 세 가지 방식으로 작용한다. 첫째로 자신을 축소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명정대하게 인정한다. 둘째로 자기 행동과 결정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빠져나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셋째로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둘러싼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깨닫고, 타인이나 운명 또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도움의 수용을 배제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모든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정신 분석 치료를 통해 신경증 환자는 현실에 직면하고 선택하며 책임을 지면서 삶으로써 좋은 인간 관계를 맺고, 자신과 타인, 세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든 제각기 타고난 잠재력을 실현하며 성장한다. 그런데 내면에서 죄어오는 압박에 지나치게 많이 시달리는 사람, 그러니까 신경증에 걸린 사람은 진실한 나와 멀어져 기력을 낭비하고 괴로워하며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는 진실한 나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느끼고 바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실한 나를 확인하는 일은 바로 신경증에 사로잡힌 나를 극복하고 진실한 나를 찾아 실현하겠다는 결단이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방향 전환이다. 그러나 진실한 나를 확인했다고 하여 모든 갈등과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상상의 세계나 이상계, 가상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고요한 마음으로 진실한 나에게 끊임없이 물으면서 진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사는 것이 최선이다.

카렌 호나이는 『내가 나를 치유한다: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에서 신경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냈고, 신경증의 일반적 특징을 설명하면서 신경증에 걸린 성격 유형을 독창적으로 분류했으며, 전문 분석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응용할 수 있는 탁월한 치유 방법까지 차근차근 제시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는 누구나 스스로 자신과 타인의 정신과 성격 유형을 분석할 줄 알게 될뿐더러, 자신이 겪는 갈등의 원인을 찾고 갈등에서 생긴 문제에 직면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참다운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책임의 주체로 가정할 때만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자기 인식(self-knowledge)은 목적이 아니라 자발적 성장의 힘을 끌어내는 구체적 수단이다. 우리는 자기에서 홀려 집착하는 신경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성장할 때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타인도 진심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정신을 분석함으로써 진실한 나를 찾고 자신을 어루만지고 달래며 꾸준히 성장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다.

우리는 상상의 마력으로 인생을 살아 낼 수는 없고, 인생의 모든 고난을 신통력으로 한꺼번에 해결할 수도 없다. 신경증은 현대인이 대부분 알게 모르게 앓는 정신 질환이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마력으로 살아가는 마법사처럼 살 수 있는 양 꿈꾸는 사람인데, 마법사는 상상 속에서는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어도 현실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신경증을 극복하고 진실한 나를 찾아서 성장하려면, 상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고단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단한 생활 속에서 진짜 자유와 진짜 행복, 진짜 평화를 찾을 때, 건강하고 인간다운 성장도 가능하다.

 
서상복 박사(서강대 철학과, 카렌 호나이의 『내가 나를 치유한다』의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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