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세계: 들어가기 
   베트남어에는 '먹다', '어떤 능력을 소유하다', '습득하다'를 뜻하는 동사 'an'으로 합성된 'an ngu'(먹고 자다), 'an nam'(먹고 눕다), 'an choi'(먹고 놀다), 'an noi'(먹고 말하다), 'an lam'(먹고 일하다), 'an mac'(먹고 옷 입다) 같은 복합어가 많은데, 이것만 보아도 '먹기'가 인간 사회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시각(색·모양·고명), 청각(조리학생식사의 소리)과 후각(냄새), 미각(맛)과 촉각(식감)의 오감을 총체적으로 직조한 기호학적 복잡계인 음식의 세계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를 살펴보자.
 
 ▲역사학 및 사회학의 접근: 독일 문화사회학의 태두 짐멜(G. Simmel)은 일찍이 음식의 '사회적 가치'를 포착했으며, 엘리아스 (N. Elias 1969)는 서구 '문명화과정'의 핵심을 "살육(殺戮) 본능으로부터의 해방", 즉 '익힘'에서 목격했다. 공유된 식사는 생리학적 원시성을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고양시키면서 음식의 사회적 가치를 구축한다. 이 관점은 음식 먹기를 '지속 패턴'으로 간주한 프랑스 '아날 학파'(Annales: F. Braudel) 및 구디(J. Goody)가 주도한 영국 문화사회학에 수용되었고, 그 성과는 "음식의 사회학: 먹기, 다이어트 그리고 문화"(The Sociology of Food: Eating, Diet and Culture. Mennel 1992)에 수록되었다. 
 ▲종교적 변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사회주의자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     1837)는 음식을 '사회의 조화로운 공동작용을 창출하는 신성한 자극'으로 간주했는데, 그 출발점은 '성스런 [기독교]가족'(Familia Sagrada)의 구심점인 아버지(=요셉)였다. 근대 이전까지 가정은 경제적 기본단위('오이코스'(Oikos))인 동시에 예배를 통해 성령을 실천하던 작은 교회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예수)이 육화(肉化)된 물성에 비유된 음식(식사)은 가족의 동질성을 도모하고 물질적 현세와 종교적 내세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육체와 영혼, 정신의 균형, 육체에서 정신을 해방시키는 금욕의 근거는 '이것[=빵]은 내[=하나님] 몸(hoc est corpus meum)이며 내 몸을 상징한다'(significat corpum meum)고 말한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89~1179)의 영성주의였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가정은 정신적 양육을 담당하는 남편과 물질적 양육 및 가계를 이끄는 아내의 역할이 분리되고, 사회에서는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개념화한)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적 체계들"(경제, 법, 정치, 학문, 예술, 교육 등)이 창발한다. 현대에 와서는 메가―팩토리/프랜차이즈 산업으로 대변되는 맥도날드 윤리가 청교도 자본주의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명제가 선언된다.
 ▲음식문화의 산업화: 사회가 더욱 기계화학생개인화되면서 일종의 프로그램으로 코드화된 음식은 재코드화를 통해 확산되고, 길거리 음식 및 패스트푸드 산업의 전지구화로 귀결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 경제성이 정당할지라도, 이런 추세는 사회적 관점에서는 오이코스 공동체의 붕괴를 촉발하며, 그 결과 가정 고유의 조리법은 학습되지도 않고 따라서 전승되지도 않는다.
 ▲정치와 이데올로기: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프랑스[벨기에]식 '감자튀김(pomme frites/french fries)을 '자유의 [감자]튀김'(freedom fries)으로, 독일식 '자우어크라우트'(Sauer- kraut)는 '자유의 양배추'(liberty cabbage)으로 바뀌어 불렸다. 이와 연관되어 '음식 정책과 문화운동', '음식과 광고', '양적학생질적 연구', '음식 지형도', '음식 포르노', '쓰레기 음식', '음식의 윤리학과 세계화' 같은 시사적인 의제가 논의된다.
 ▲언어학과 기호학의 성과: 음식 텍스트를 형태론과 조어론, 의미론과 화용론, 텍스트언어학 등의 차원에서 분석한 것으로는 와인 감별어, 음식과 성별 및 권력, 민간어원론, 어휘 차용에 대한 분석이 있으며, 그 결과는 Intercontinental Dictionary Series (Key & Comrie 2012), "Food and Language: Sprache und Essen"(Lavric & Konzett 2009,), "Encyclo- pedia of Food and Culture" (Katz & Weaver 2002)에 집약되었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음식의 의미는 되풀이된 유추들의 체계에서 발견된다. 모든 개별 음식은 다른 음식들의 의미의 일부를 운반한다. 개별 음식을 다른 음식들을 나름대로 구조화하는 사회적 사건으로 해석했던 매리 더글라스(Mary Douglas)의 문화인류학 연구, 부분적으로 음식을 다룬 롤랑 바르트의 일본문화 비평서 '기호의 제국'(L'empire des signes. R. Barthes)은 단연 인상적인 업적이다. 
 
 이런 추세를 가늠해볼 때, 물질과 정신, 개인과 사회에 존재하는 음식은 텍스트언어학과 기호학의 공동관심사이다. 이에 비추어 음식을 생물학·생태학·식품공학·약리학의 관점에서, 또한 사회적 '가치대상', 즉 '기호세계'로서 관찰한다. 한편, 문화로서의 음식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인 의제로 정립되려면 어떤 기준이 필요한가?
 첫째, 살아있는 현실의 '생활세계'를 다루어야 한다. 둘째, 무한한 기호적 현상을 유한한 기호학적 '질서'로 환원시켜야 한다. 셋째, 이질적인 착상들을 동질적인 용어학으로 정돈하여 '체계론'을 수립해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여러 나라의 음식연구와 '미식학' (美食學)의 역사를 취합하여 음식의 의미론학생통사론학생화용론적 층위를 설명하고, 미시적으로는 문화기호학과 텍스트언어학의 개념 도구를 활용하여 분석학생진단해야 한다.

 ▲음식의미론: 음식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요소들, 즉 상이한 공동체들에서 변별성을 가지는 단위, 즉 '문화소'를 추출한다. 추출된 단위에 해당하는 공동체의 가치관(특히 '이분법')이 할당된다. 
 ▲음식통사론: 문화소들의 선택적 조합(상생 또는 상극, 정합 또는 부정합)에는 동양의 '음양오행론'이나 서구의 '원소론' 같은 문화권 특유의 '우주론'/'현실모델'이 선택적으로 개입한다.
 ▲음식화용론: [음식]기호체들과 사용자들의 관계, 권력과 윤리, 논증과 서사의 토대 및 '화용론적 위계구조'에 대한 준칙이 필요하다.

음식기호학의 구상
 음식기호학의 구상은 크게 이론, 실제, 응용을 다루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 기호학 분과로서의 음식기호학의 이론적 정초 : 음식에 대한 학문적 관심, 매체산출물에 대한 관찰을 집약하고 유럽과 동아시아의 단서들을 추출하여 이를 기반으로 음식기호학의 틀을 수립한다. '음식에 대한 학문적 관심'에서는 역사학과 사회학, 종교, 음식문화의 산업화와 난맥상, 정치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텍스트언어학과 기호학의 관점에서 포섭할 수 있는 개념소를 추출하고 그 결과를 음식연구에 관한 사상적 계보로 정돈한다. '음식 전성시대의 매체산출물'에서는 TV, 방송, 영화 등을 주름잡는 스타 셰프들의 컬트 현상, 미식 만화('고독한 미식가', '식객' 등)를 살펴보며, 다른 한편 음식폭력, 푸드 포르노, 기호학적 공해, 프랜차이즈 시대의 숙명 같은 시사적인 의제를 진단한다. '유럽의 음식기호학적 단서'에서는 베를린 소재 '게오르크 짐멜 문서보관소'의 자료를 활용하여 독일 문화사회학, 프랑스 아날 학파, 영국 문화사회학의 성과를 취합한다. '동아시아의 음식기호학적 단서'에서는 경북 안동의 '음식디미방', 판소리(흥보가·춘향가·고전소설) 같은 조선과 근현대 음식 텍스트를 탐색하고, 중국과 일본, 인도의 단서도 조사한다. 제2부 음식기호학의 실제: 음식의미론·음식통사론·음식화용론의 사례를 추출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해당 층위에서 각 분야의 분석을 진행한다. '실제 분석을 위한 사례'에서는 음식에 관한 단상을 담은 텍스트들, 이를테면 저술서, 논문, 칼럼, 매체산출물(TV, 방송, 영화, 인터넷 등), 현장의 사례를 선별 수합한다. '음식의미론'에서는 일차로 음식의 형태학생의미부를 구성하는 다양한 식단들을 시대별·지역별·용도별로 분화하고, 그 다음에 맛, 조리법에 관련되는 명사, 동사, 형용사/부사를 분석한다.
 끝으로 이런 단위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바탕으로서 해당 문화권에서 어떤 현실모델/기저이분법, 우주론(음양오행, 상생·상극, 체질론)이 개입하는지 설명한다. '음식통사론'에서는 문화소들의 조합에서 나타나는 정합과 부정합을 판별한다. 시간과 공간의 통사론을 설명한 후, 문법적 차원에서는 명사와 형용사, 동사와 부사 사이의 '연어'(連語) 관계를 다룬다. 감각적 차원에서는 오감 사이의 연동, 즉 '공감각'(共感覺)을 다룬다. '음식화용론'에서는 음식[기호]의 생산과 수용 그리고 매개와 가공에 관여하는 행역자들과 제반 요인의 관계, 이를테면 권력과 정치, 의례와 예법, 가정식과 외식(레스토랑의 기원), 공간과 건물, 만찬용 의상과 식당 인테리어, 텍스트종류를 다룬다. 제3부 성과의 응용과 전망: 음식의 소비와 광고에 이르는 소통과정에 필요한 '기호세계 소통준칙'을 제안하고, '이론'과 '실제'의 성과를 스토리텔링에 적용하고 문화산업에 기여하는 방안을 고민한다. 예컨대 유럽(이탈리아 치즈 박물관, 독일 빵 박물관)과 한국의 음식 관련 테마파크(제주 감귤전시관, 봉평 메밀전시관, 전주 한옥마을, 순창 고추장마을, 임실 치즈파크, 안동 등)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기호학적 스토리텔링 기법을 제안한다. 
 
활용 및 기대효과
 첫째, 인문학은 다양한 텍스트와 콘텐츠의 생산·수용·매개·가공에 관련된 과제를 담당하여 수월성과 경제성을 겸비한 블루칩으로 재도약할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음식에 관한 프로젝트를 사례로 기호학의 원천도구를 활용하여 경쟁력 제고를 도모한다. 둘째, 기호학은 언어와 문학, 신화와 전설 같은 고전적 주제는 물론이고, 생활세계에 대한 기여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셋째, 어문학 관련 학과에서 실천할 수 있는 성과를 문화교육 커리큘럼, 텍스트언어학, 마케팅 기호학, 외식경영학, 콘텐츠 인력 양성, 박물관 설계에 적용하여 상승효과를 도모한다. 넷째, 이론과 실제, 교육과 산학의 유기적 협동에 유념하면서, 글로벌 세계에서 활동할 인재의 콘텐츠 역량과 지속가능한 다문화능력의 함양을 지향한다. 끝으로, 사회의 요구에 신속히 대처하는 커리큘럼 및 스토리텔링학생문화산업에 적용하는 통합교과를 개발해야 한다.

박여성 교수(제주대학교 독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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