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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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새로운 내각에 대한 장관 인선을 하면서 '부모찬스'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자녀 특혜 편입 문제로 불거진 '부모찬스'의 문제는 출발점은 공정해야한다고 여겼던 청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 계속됐던 자녀입시 논란에 이어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다보니,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은 계속해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노력해야하는가?", "노력을 해도 붙을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은가?" 와 같은 딜레마에 빠져, 실패를 맛보기도 전에 패배한 꼴이 돼 버렸다.

'부모찬스'가 과연 정당한 능력인가?
 대학 입시에 '부모찬스' 논문을 '스펙'으로 활용한 미성년자는 최소 10명 이상으로 확인됐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별 적발 사례에 의하면, 보면 서울대가 22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외 연세대 10건, 건국대·전북대 각 8건, 성균관대 7건, 경북대 6건, 경일대·포항공대에서 각 4건 등이 적발됐다. 하지만 이중 각 대학이 이들의 입학 과정을 심의해 입학 취소로 처리한 사례는 총 5명뿐이다. 지난달 5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 입학 취소에 이어 7일 고려대에서도 입학 취소 판정을 받은 조국 전 장관의 자녀, 2015년 강원대 수의학과 편입학 전형에서 입학 취소를 받았던 이병천 서울대 교수의 자녀가 포함됐다. 그 외 전북대 2명, 고려대 1명도 추가 파악됐다. 이런 수법으로 대학교수인 부모, 혹은 부모의 지인 도움으로 논문 공저자가 된 미성년자는 96명에 달한다. 하지만 처벌을 받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무더기 논문 비리가 적발됐지만 교원 중징계는 3명(해임 1명, 정직 3개월 2명)에 그쳤다.
 '부모찬스'는 단순히 논문 비리뿐만 아니라 그것이 공정한 입시경쟁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다른 경쟁자들 보다 동일한 출발선이 아닌 곳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 볼 수 있다. 부모 찬스를 사용한 자녀들은 공정에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심의 결과 연구물이 합격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돼 학적을 유지한 경우가 다다했고 검찰 조사까지 받았지만,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된 사례가 전부였다. 이들은 명백하게 부정한 서류를 제출했지만, 대부분 경징계 처벌을 받고 넘어갔다. 이처럼 우리는 '부모찬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갖고 있다. 

'부모찬스'는 정당한 능력이다
 '부모찬스'는 타고난 능력인가? 개인의 실력이 아닌 부가적인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에 반칙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위와 같은 의문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부모 찬스를 인정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도전했던 것들이 산산조각날 것이다. "기회가 평등하면 재능과 노력에 따라 누구나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부모찬스'를 누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청년들 입장에선 상위 계층이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는 것으로 볼 것이다. 무엇보다 같은 노력을 한 두 사람이 '부모찬스'로 인해 한 사람만 붙게 된다면, 이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부모찬스'를 재능의 영역으로 봐야하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 상위 계층들에겐 자신의 부와 명예를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지위나 능력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찬스'가 과연 재능이 맞는지 놓고 본다면, 재능은 대부분 타고나는 능력이다. 그리고 '부모찬스', 쉽게 말해 부모의 부와 명예 또한 자식들에겐 타고 나는 것이기에 재능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모찬스'는 차별적인 사회구조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그 시장이 인정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걸맞은 보상을 준다. 능력있는 사람과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보상격차는 도덕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어느 능력이 뛰어난가는 도덕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똑같이 노력했다고 하더라도 능력 덕분에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결국 시장이 정하게 된다는 것. 이러한 모습은 태도의 문제로 이어진다.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이 있던 미국의 경우를 보자. 하지만 지금 미국의 상황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상승(계층 이동)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가난은 되물림 된다. 소득 기준 하위 5분위 가정 출신자는 그중 단 5%만이 상위 5분위에 이르렀고, 대부분은 중산층에도 이르지 못했다. 하버드와 스탠포드 대학생   2/3은 소득 상위 5분위 가정 출신이다. 장학금과 기타 지원책이 충분히 기반 돼있지만,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도 되지 않는다.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따라서 사회 계층 이동성은 더 이상 불평등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없다.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은 사라져버렸다. 부모 찬스는 이러한 사회 계층 이동성을 막아버리는 역할을 한다. 상위 계층의 부모 찬스를 재능으로 본다면, 하위 계층 학생과 상위 계층 학생이 똑같이 노력을 해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동선'의 도덕관념이 자리 잡아야
 인간의 이기성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이기적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는 말을 했다.
 자기 이익에 대한 인간의 평가는 이기적일 수도 있고, 이기적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역사는 말한다. '부모찬스'를 능력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차별적인 사회구조냐는 질문도 위 질문처럼 상충되는 개념이며,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 다만 기자는 이런 판단에 앞서 우선적으로 '공동선'에 대한 도덕관념 확립을 제시한다. 
 즉, 부모찬스는 승자를 오만으로, 패자를 분노와 굴욕으로 몰고 간다. '능력'도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이긴 하나, '부모찬스'나 '뒷배경의 능력'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을 무너뜨린다. 왜냐하면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를 오만으로, 패자를 분노와 굴욕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좌로나 우로 치우쳐지지 않는 '공동선' 윤리의식을 고취 시켜야 한다. 주변 사람을 위한 '선' 의식 탑재에 능력이라는 이름이 그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완벽히 만족을 못한다 할지라도, 가장 근접한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입시제도에 '공동선'이란 의식 아래서 특권층에 대한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특혜를 없애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이기적이든, 이기적이지 않든 인간의 선택은 좀 더 '공동선'에 수렴한 결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배성민 수습기자 aqswdefr3331@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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